[여행스케치 = 쿠바]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전 세계 35개국을 돌아다닌 여행 중독자 김치군. 작년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에서 영예의 대상을 거머쥔 그가 음식을 테마로 한 따끈따끈한 세계 여행기를 들려준다. 가이드북보다 재밌고 알찬 정보가 가득한 생생 여행기가 지금 바로 시작된다.
쿠바 하면 가장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혁명가 체 게바라가 먼저일 것이고, 다음으로 헤밍웨이, 사회주의 등의 키워드가 따라붙을 것이다.
그런 몇 가지 이미지를 떠올리며 쿠바에 첫발을 내디뎠다. 짐을 풀어놓고 한동안 거리를 거닐면서 라틴아메리카에 속한 여느 나라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가장 신기한 점은 바로 미국과 관련된 음식 브랜드를 전혀 발견할 수 없다는 것. 전 세계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는 도미노피자, KFC, 맥도날드 등과 같은 프랜차이즈점을 단 한 곳도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가게에서 파는 음료수나 맥주조차도 쿠바산 이외의 것은 찾기 어려웠다. 그나마 가끔 눈에 띄는 브랜드가 있다면 유럽계 식품회사인 ‘네슬레’ 정도였다.
이런 쿠바의 사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한 이후, 쿠바는 오랜 시간 미국으로부터 무역제재 조치를 당했다. 자연히 미국과 관련된 모든 회사들은 쿠바 시장에 뛰어들 수 없었고, 그나마 몇몇 유럽과 중국 회사들만이 쿠바와 교역을 했다. 덕분에 코카콜라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쿠바의 뚜꼴라(TuKola)가, 버드와이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크리스털(Crystal)이 들어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쿠바는 대부분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밖에 없었다.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안전한 식료품을 살 수 있지만, 그마저도 풍족하지는 않다. 더구나 적은 양의 과일이나 채소도 볼품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전체적인 식료품의 질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쿠바의 길거리 음식을 찾아서
식료품이 풍족하지 않은 탓에 레스토랑의 음식들은 하나같이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쿠바의 주된 수입원 중의 하나가 관광이기 때문에 도시에는 관광객을 위한 식당들이 꽤 잘 갖추어진 편인데, 문제는 미국에 버금가는 음식의 가격이다. 따라서 쿠바의 음식은 외국인들이 사먹는 음식과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으로 명확하게 구분이 될 수밖에 없다. 한 달에 몇 만 원의 월급으로 연명하는 현지인들에게는 그런 음식은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쿠바 사람들과 다름없는 가난한 여행자도 번듯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내가 여행하던 당시는 원화의 가치가 많이 떨어져 여행 경비에 허덕일 때였다. 자연히 쿠바 사람들이 이용하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쿠바 사람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난 것이 바로 아바나의 길거리 음식들이다.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의 명동으로 불리는 산 오비스뽀 거리와 까삐똘리오. 그 앞은 현지인들을 위한 길거리 음식으로 가득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음식이 바로 피자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치즈와 소스 그리고 토핑이 가득한 피자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푸석한 도우 위에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조금 뿌려진 소스와 그 위에 수줍은 듯 살짝 올라 있는 치즈가 전부다. 재료가 푸짐하지 않으니 맛 또한 그저 그럴 수밖에….
쿠바의 샌드위치는 더욱 상황이 심각했다. 한 번 베어 물면 다시 먹기 싫어지는 딱딱한 빵 속에 제대로 익히지도 않은 햄 한 장이 들어 있다. 그나마 먹을 만한 것은 튀김이었다. 보기엔 감자튀김처럼 보이지만 사실 밀가루 이외엔 아무런 재료도 들어 있지 않은 밀가루튀김이다. 바삭한 튀김옷 안에 밋밋한 밀가루 덩어리가 들어 있는 튀김이 그나마 입맛에 잘 맞았다.
먹을 만한 메뉴를 하나 더 추천하자면 다름 아닌 볶음밥이다. 그나마 한가득 만들어서 쌓아둔 것을 데워주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각종 야채와 밥을 볶아 만든 따끈한 볶음밥은 행복에 겨울 지경이었다.
길거리 음식촌을 벗어나 이번엔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레스토랑을 가보기로 했다. 이윽고 만딴사스라는 도시에서 번듯하게 보이는 스파게티 전문 레스토랑을 찾아냈다. 스파게티의 가격은 단돈 12CUP(650원). 듣자마자 혹하는 마음에 한 그릇을 시켰지만, 눈앞에 놓인 스파게티를 보고 어떻게 그 가격에 스파게티를 팔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스파게티 면발 위에 제대로 비벼지지도 않을 정도로 아주 약간 얹은 소스와 치즈가 전부였던 것. 결국 한 그릇을 더 먹고서야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랍스터 두 마리가 단돈 1만3000원!
쿠바에서 숙박은 호텔이 아니면 까사 빠르띠꿀라르(Casa Particular)라는 곳에서 묵어야 한다. 까사 빠르띠꿀라르는 정부의 허가를 받고 개인이 운영하는 민박인데, 정부에 내는 세금이 워낙 많다 보니 주인들은 아침과 저녁식사를 통해 수익을 내려고 한다. 숙박은 어쩔 수 없이 신고하고 세금을 내야 하지만, 식사는 신고하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나는 노천 살사 공연으로 유명한 트리니다드(Trinidad) 광장 주변의 한 민박집에서 묵었다. 숙박 비용과 별개로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는 따로 지불해야 했다. 여기에 랍스터 요리를 추가할 수 있었는데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놀랐다. 두 마리에 단돈 10CUC(240CUP)으로 한국 돈으로 1만3000원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묵는 동안 저녁마다 질 좋은 랍스터로 배를 가득 채웠다. 다른 재료는 너무도 비싸서 엄두를 내기 어려운데, 어째서 랍스터는 이렇게 저렴할까.
그날 저녁, 살사 공연을 보기 위해 마요르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이런 의문은 증폭되었다.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일반 가정집에서 문을 열고 저녁식사를 파는 곳이 많았는데, 그곳 랍스터의 가격도 역시 비슷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안꼰해변에서 만난 낚시꾼 덕분에 그 의문점을 풀 수 있었다.
그는 해변 근처의 얕은 물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아주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 랍스터를 잡아 올리고 있었다. 그는 “한 마리를 낚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한 마리당 2CUC(48CUP) 정도는 쳐주어서 꽤 쏠쏠하고, 별다른 수입이 없는 쿠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거기다가 트리니다드 주변의 해변엔 랍스터가 꽤 많이 사는 편이란다. 이런 이유로 내내 입맛에 맞지 않는 길거리 음식으로 연명을 하다가 트리니다드에서 생각지도 못한 최고의 만찬을 즐기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