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 부산] 우리나라 제일의 항구도시인 부산은 등대의 도시이기도 하다. 지금 기장으로 가면 수많은 등대 중 유독 눈에 띄는 등대들을 볼 수 있다. 젖병을 닮은 등대, 로봇 태권V를 닮은 등대, 장승 등대…. 눈을 의심케 하는 기묘한 모습의 등대들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부산의 끄트머리에 있는 기장군 대변항. 멸치가 한창인 이곳에 또 다른 명물이 들어섰다. 젖병등대. 이름부터가 참 희한하다. 언뜻 등대와 젖병이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도무지 그것 말고는 연관성이 떠오르지 않는다.
젖병등대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는 포구의 끄트머리 즈음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등대라고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모양새 덕분인지, 등대 주변엔 사람들이 꽤 많이 모였다.
“이기 등대라꼬? 옴마야 하필이믄 젖뱅을 따라 만들었노? 요요 뽈록하이 나온 데를 눌리믄 저 꼭따리에서 우유라도 나오나?” “니가 함 눌리바라, 나오능가.”
사람들은 평생 보도 듣도 못한 거대한 젖병 아래서 온갖 추측을 쏟아낸다. 세계 최초의 젖병 모양 등대로 통하는 이 등대는 부산지방항만청과 부산관광컨벤션뷰로가 올해 초 ‘등대를 이용한 도시 이미지화 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후 만든 첫 작품으로 작년 9월부터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젖병 모양은 소중한 생명이 탄생한 것을 기념하고, 저출산 시대에 출산을 장려한다는 뜻이 있다. 말하자면 ‘스토리텔링이 있는 등대’라는 것이다. 또한 2013년 세계인구총회를 부산에서 개최하고자 하는 부산시의 염원도 깃들어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등대가 시멘트나 철로 만들어지는 것과 달리 젖병등대는 만질만질한 타일이 촘촘히 붙어 있다. 더욱 특이한 것은 어린이와 아기의 손과 발의 모양이 그대로 찍혀 있는 석고판. 이 144개의 석고 작품이 붙어 있는 이유 또한 출산을 장려한다는 뜻으로, 부산 지역에 사는 만 2세 이하의 아기들을 뽑아 만들었다고 한다.
젖병등대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꼭대기의 젖꼭지. 도자기로 구워 지붕처럼 얹었는데, 어찌나 통통하게 먹음직스럽게 생겼는지 몸통을 타고 올라가 한번 입에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게다가 꼭지 모양엔 발그레한 색까지 돌아 더욱 먹음직스럽다.
“와! 지기 머꼬? 마징가 아이가!”
한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바다 위 갯바위에 나란히 서 있는 두 개의 등대가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보인다. 마징가Z다. 게다가 뒤쪽에 있는 것은 로봇 태권 V다. 젖병등대만 알고 별 생각 없이 왔는데, 의외의 발견에 기분이 ‘업’된다.
작은 포구 안에 유별난 등대가 세 개나 있었다니! 그런데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왼쪽을 보니 빨간 닭볏을 닮은 등대가 보이고, 태권V 등대 뒤를 자세히 보니 장승 모양의 등대도 있다. 심지어 장승 등대 뒤에는 축구공을 닮은 월드컵 등대도 있단다.
눈길을 주는 곳마다 속속 발견되는 재미난 등대들에 정신이 팔릴 수밖에 없다. 이들은 모두 각각의 의미-2002 월드컵 개최를 기념한 월드컵 등대, 관직과 성공을 의미하는 닭벼슬 등대, 어부들의 안전을 의미하는 장승 등대 등-를 가지며 부산 바다를 지키고 있는 스토리텔링 등대들이다. 특이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 의미를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게다가 오는 9월에는 열정적인 야구의 도시 부산의 이미지에 맞게 야구배트와 야구공의 모습을 한 ‘야구등대’도 만들어진다 하니 앞으로 점점 구경거리가 늘게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