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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단풍 ·낙엽 사색 기행] 문경 대승사 윤필암, 묘적암 아는 사람들만 조용히 찾는 황금빛 숲길 
[단풍 ·낙엽 사색 기행] 문경 대승사 윤필암, 묘적암 아는 사람들만 조용히 찾는 황금빛 숲길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9.10.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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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단풍과 낙엽이 한가로운 가을을 전하는 길.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문경]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지는 산길은 가을에 황금 길로 변신한다. 신라시대 고찰의 풍경이 있는 문경 사불산으로 가면 각기 다른 멋을 뽐내는 암자와 하늘을 뒤덮을 듯 울창한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진 황금 숲길을 만날 수 있다. 

사불산으로 가는 길, 처음부터 선택의 기로에 선다. 대승사와 김룡사. 서로 이웃한 운달산과 사불산에 있는 이 두 절은 신라 진평왕 때 지어진 절들로, 두 곳 모두 절로 향하는 숲길이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지는 가을 풍경은 한적하면서도 아름다워서 찾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낙엽이 카펫처럼 깔린 사불산 등산로. 사진 / 손수원 기자

이렇게 이름난 곳이 두 갈래로 나뉘어 있으니 운전대를 어느 한 곳으로 돌리기가 어렵다. 그래도 우선은 대승사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대승사도 명소지만 그에 딸린 암자인 윤필암과 묘적암 가는 길이 아는 사람들만이 찾는다는 가을 명소이기 때문이다. 

대승사까지 가는 길은 시멘트로 잘 닦여 있다. 차 한 대가 오갈 수 있는 좁은 길이건만 어찌된 일인지 트럭이 더 많이 오고간다. 몇 번이나 차를 비켜주느라 식은땀이 날 지경이다. 알고 보니 대승사에 큰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 아무래도 대승사 구경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정원을 연상시키는 윤필암의 전경. 왼쪽으로 보이는 곳이 사불전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사진 / 손수원 기자
낙엽이 아름다운 사불산의 가을 풍경. 사진 / 손수원 기자

대승사를 나와 왼쪽 방향으로 조금 들어가면 쭉 뻗은 숲길이 나온다.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은 아니지만 길 옆으로 늘어선 전나무와 팽나무, 굴참나무 등이 한껏 아름다움을 뽐낸다. 가을 단풍이 절정에 이르면 이 길의 풍경도 노랗고 빨갛게 변한다. 

대부분은 차를 가지고 윤필암 입구까지 오르지만 숲길을 제대로 즐기려면 대승사 입구에  세워두고 걷기를 권한다. 아무리 천천히 간다한들, 차 안에서 고개만 쏙 내밀고 감상하기엔 너무 벅찬 풍경이다. 더구나 살짝 땀이 난 피부에 와닿는 가을바람의 느낌을 빼놓고선 단풍놀이가 심심해지기 때문이다. 

얼마간 길을 걸으면 이윽고 두 번째 갈림길에 들어선다. 윤필암과 묘적암. 오른쪽으로 가면 윤필암, 왼쪽으로 가면 묘적암이다. 하지만 여기에선 그리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길이 굽어 잘 보이지 않지만 윤필암은 이정표에서 불과 100여m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윤필암에 들렀다 묘적암으로 가는 편이 낫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저 멀리 보이는 암석이 사불암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윤필암은 암자라고 하기엔 규모가 큰 편이다. 1380년 처음 지어진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가 되다가 1980년 초에 아예 모든 건물을 새로 지었다. 그래서 흔히 보아오던 암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모습이다.   

윤필암은 수덕산 견성암, 오대산 지장암과 함께 3대 비구니 선방으로 유명하다. 비구니 스님들이 머무는 곳이라 조경에 특히 신경을 쓴 모양이다. 워낙 산세가 아름다운 덕분이기도 하지만 곳곳에 꽃을 심고 정원을 꾸며 마치 풍광 좋은 한옥 펜션을 연상케 한다. 

사실 윤필암은 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꽤 이름이 있는 곳이다. 여러 종류의 야생화를 모아 매년 전시회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윤필암은 ‘꽃보다 아름다운 스님들의 도량’이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리곤 한다. 

윤필암에는 특이한 법당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사불전(四佛殿)이다. 흔히 법당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사불전은 불상 대신 뜬금없이 통유리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윤필암은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암자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이유를 모르고 유리 앞에 서자 사불산의 광경이 꽉 들어찬다. 그런데 그 모습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바로 사불암이다. <삼국사기>에 기록하기를, 붉은 천에 싸인 바윗덩어리가 하늘에서 떨어졌고, 그 네 면에는 불상이 새겨져 있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신라 진평왕이 몸소 찾아와 예를 올리고 바위가 떨어진 곳 밑에 절을 창건하였으니, 이 절이 대승사이고, 그 바위가 바로 사불암인 것이다. 공덕산이 사불산이란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사불전에 불상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유리에 비친 사불암의 마애불이 바로 불상인 것이다. 바위를 직접 가져다놓을 수 없음에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한 것이다. 사람들은 유리에 비친 사불암을 보거나 법당 안에서 사불암을 우러러보며 마음속에 부처를 그린다. 말하자면 사불암은 이 산 전체의 불상인 셈이다.  

사불전 뒤편은 사불산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윤필암의 여성스러움과 절벽의 남성다움이 오묘하게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든다. 하지만 윤필암은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스님들의 수행도량이기에 사불전 뒤로는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다. 하지만 ‘발길을 돌려주세요. 스님은 공부 중’이란 애교 섞인 문구 덕분에 기분 좋게 발길을 돌린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두 갈래 길이 나오지만 대부분은 윤필암을 먼저 들렀다 묘적암으로 간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이정표가 있던 곳으로 다시 나와 묘적암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사불산 낙엽 길의 절정이 펼쳐진다. 낮인데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하늘로 쭉쭉 뻗은 전나무와 상수리나무 등이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듯한 분위기다. 

이 길 역시 시멘트 길이지만 나무를 오르내리는 다람쥐와 청설모 등을 눈으로 담다보면 땅보다는 나무를 보고 걸을 일이 더 많다. 윤필암까지 오는 길이 ‘쭉 뻗은 대로’였다면 묘적암 가는 길은 ‘굴곡 많고 험난한 길’이다. 단풍이 아름답다고 단숨에 오르려 하면 숨이 턱까지 차 몇 번을 멈춰야 하는지 모른다. 단풍과 숨은 절벽, 야생화 하나하나를 살피며 천천히 걸으면 풍경은 배가 된다.   

네다섯 구비를 돌아 마지막 모퉁이를 돌면 마치 터널을 빠져나온듯 사불산 아래의 시원한 전망이 펼쳐진다. 이윽고 바위 턱을 하나 넘으면 거짓말처럼 사뿐히 내려앉아 있는 한옥 한 채와 마주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묘적암이다. 바로 그 전에 있는 약수터에는 나옹선사가 약수를 떠서 멀리 해인사의 불을 껐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깊은 산 속 민가처럼 자리 잡은 묘적암.  사진 / 손수원 기자
사진 / 손수원 기자
스님은 단풍이 들면 그걸 언제 다 쓸어내나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윤필암이나 묘적암 모두 대승사에 속한 암자이니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는 예감은 완전 빗나갔다. 산 속에 오롯이 세워진 화전민의 집처럼 묘적암은 한가롭게 서 있다. 윤필암이 최근에 다시 지어진 것과 달리 묘적암은 세월을 잘 간직하고 있다. 고목으로 지은 암자 입구엔 해우소가 덩그러니 서 있다. 마치 옛날 시골 외갓집을 연상시키는 모습이 정겹다. 

묘적암은 고려 말 나옹선사가 출가한 곳으로 유명하다. 성철, 서암 스님 등도 오랫동안 이곳에서 머물렀다. 지금도 시기에 따라 한두 명의 스님이 수행을 하기 위해 머문다. 이곳 역시 윤필암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날이 아니면 출입을 삼가야 할 곳이다. 굳이 들어가겠다면 머무는 스님에게 물 한잔 얻어 마실 수 있겠지만 한사코 수행을 방해할 수는 없는 터, 그저 대문 앞에서 잠시 엿보고 다시 길을 내려간다.

묘적암에서 대승사로 가는 길, 산행이 아쉽다면 윤필암에서 사불암으로 올라가볼 수도 있다. 사불암에 오르면 산에 둘러싸인 윤필암과 묘적암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내장산이나 치악산 등 거대한 가을 명산에 비할 순 없지만 아기자기하게 황금빛을 뽐내고 있는 사불산과, 이웃 운달산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어 조용하게 가을을 만끽하기엔 이쪽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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