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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드라이브 기행] 화암팔경 424번 지방도  이 길에도 작은 금강이 들어서 있네
[드라이브 기행] 화암팔경 424번 지방도  이 길에도 작은 금강이 들어서 있네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9.10.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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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풍경.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정선] 여느 여행지에나 ‘팔경’은 흔히 있지만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것들을 모두 구경하기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선의 424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마치 8개의 전시장을 돌듯 그림처럼 펼쳐지는 화암팔경을 차례대로 둘러볼 수 있다.    

드라이브의 들머리는 덕우삼거리다. 정선읍에서 59번 국도를 타고 사북 방향으로 가다 보면 야생화 공원을 만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이정표를 따라 424번 지방도로 들어서면 된다. 

드라이브 길이라지만 처음부터 풍광이 썩 빼어난 것은 아니다. 산골마을의 평범한 일상이 창밖으로 이어진다. 산 중턱에 펼쳐진 밭에선 옥수수가 알을 꽉꽉 채워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길 곳곳에서 옥수수를 쪄 파는 아낙들의 기다림이 입맛을 당긴다. 밭에서 따 그대로 솥에 넣고 찐 ‘100% 강원도산’ 옥수수는 밋밋하면서도 자꾸만 먹게 되는 것이 처음부터 달짝지근하게 혀를 유혹하는 도시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화암동굴로 입구까지 올라가는 모노레일. 사진 / 손수원 기자

“우리는 소금이고 설탕이고 하나도 안 넣어서 기래요. 그래도 꼬신내가 나고 달잖소. 우리 집에서 기른 찰옥시시래요.”
할머니는 3000원에 커다란 옥수수 5개를 봉지 가득 넣고도 “이건 덤”이라며 두 개를 더 넣어주신다. 그러고 “맛배기는 따로래요”라며 커다란 옥수수를 반으로 뚝 잘라 기어코 손에 쥐어 주신다. 촌할머니의 인심이 옥수수보다 훨씬 더 구수하고 달다.   

정선군 동면 화암리에서 태백시 하장면으로 이어지는 424번 지방도는 강과 나란히 달리는 길이다. 이 작은 강은 조양강의 지류인 동대천이다. 조양강은 동강이 되고, 동강은 한강이 되니, 이 길은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유유히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며 산골마을의 가을 풍경을 마주하고 달리면 이윽고 화암팔경 중 제1경인 화암동굴에 이르게 된다. 산쪽을 바라보니 동굴로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모노레일이 구름처럼 오간다. 

얼음이 녹는 듯 신비로운 화암동굴의 종유석. 
얼음이 녹는 듯 신비로운 화암동굴의 종유석. 사진 / 손수원 기자

화암동굴은 금을 캐는 금광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천포광산’으로 불리던 곳인데 금을 캐다가 우연히 천연 종유동굴을 발견한 것이 바로 화암동굴이다. 천연동굴이면서 금광이기도 하기에 금광 채굴 현장까지 살펴볼 수 있다. 동굴 안을 테마별로 꾸며놓아 다른 동굴들보다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동굴 안은 항상 10℃를 유지해 춥다. 

화암동굴은 지난여름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2~3년 전부터 피서철에 맞춰 동굴 안에서 공포체험 이벤트를 하는 때문이다. 덕분에 정선을 찾는 관광객도 많이 늘었다. 정선향토박물관이 함께 있어 둘러볼 만하다. 

화암동굴을 나오면 이제부터 제2경, 제3경… 제8경까지 쉴 틈 없이 만나게 된다. 제2경은 거북바위다. 하지만 그 전에 제3경 용마소를 먼저 만나게 된다. 용마소는 따로 이정표가 없어 그냥 지나쳐 버리기 일쑤다. 용마소를 찾기보단 화암교를 지나 용마소둔치휴양지를 찾으면 쉽다. 

용마소는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강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있다. 이 역시 이정표가 없어 어떤 것이 용마소인지 헷갈리겠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기암절벽과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작은 소(沼)가 한눈에 들어온다. 물이 어찌나 깨끗한지 은은한 에메랄드빛이 돌 정도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그림바위와 물길의 풍경이 동양화처럼 어우러지는 용마소. 사진 / 손수원 기자
사진 / 손수원 기자
정선의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는 소금강. 사진 / 손수원 기자

소를 에워싸고 있는 기암절벽을 그림바위라 부르는데, 이는 비단 이곳의 바위만을 부르는 이름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명승지로는 금강산을 꼽았다. 때문에 각 지방에서는 자기 마을에 아름다운 풍광을 일컬어 ‘작은 금강’ 즉, 소금강이라 불렀다. 현재는 강릉 소금강이 가장 유명하지만 정선에도 이에 못지않은 풍광이 있으니 ‘정선 소금강’이라 이름 붙이고 그 주위의 바위들을 ‘산수화를 그린 것처럼 아름다운 바위’라 하여 모두 ‘그림바위’라 부르는 것이다. 화암(畵岩)이라는 지명도 이때부터 생긴 것이다. 

잠시 너럭바위에 앉으니 바위와 부딪히며 흐르는 물소리가 어찌나 세찬지 계곡 안에 들어온 느낌이다.

거북바위는 화암약수로 가기 전 전망대에서 가장 잘 보인다. 돌산의 절벽 위에 작은 바위가 하나 얹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거북바위다. 남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 바위는 그냥 보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한 모습이다. 예부터 고장의 수호신 같은 존재로 여겨지며 화암팔경 중 두 번째를 자랑한다. 

이 거북바위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제4경인 화암약수로 갈 수 있다. 양쪽으로 늘어선 가로수가 산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약수터 근처는 야영장이 들어서 있다. 화암약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쌍약수와 본약수 두 곳이 있는데, 아래쪽의 쌍약수의 물맛이 좀 더 약해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탄산과 철의 맛이 독특한 화암약수. 한 사람이 하루에 1ℓ씩 떠 갈 수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사진 / 손수원 기자
제5경인 화표주. 꼭대기에 뾰족한 바위에서는 신선이 노닐었다는 전설이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바가지에 약수를 가득 떠 한 모금 마시니 진한 쇠 맛과 함께 탄산 기운이 입 안 가득 전해진다. 탄산이온과 함께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그렇다.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해서인지 물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약수터를 돌아 나와 삼거리에 서면 산 중턱에 꼿꼿이 서 있는 바위를 볼 수 있다. 바로 제5경인 화표주다. 커다란 바위기둥을 겹쳐놓은 듯한 화표주의 꼭대기엔 뾰족하게 깎아놓은 듯한 바위가 서 있다. 옛날 산신들이 이 돌기둥에 신틀을 걸고 짚신을 삼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나무들 사이로 뜬금없이 솟아 있는 암석이 눈길을 끈다.    

이 화표주를 이정표 삼아 약 4km에 이르는 소금강이 시작된다. 강원도, 그중에서도 정선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뼝대(‘바위로 이루어진 높고 큰 낭떠러지’의 강원도 사투리)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이 바위들도 그림바위라 부른다. 

위아래로 쭉쭉 뻗은 기암절벽의 자태는 굵은 붓으로 한 번에 내려 그은 듯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 곳곳에 흩뿌린 듯 서 있는 낙랑장송들은 세월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작은 금강에 소재를 더한다. 그저 눈으로 한번 슥 훑어보는데도 한 폭의 산수화가 저절로 그려진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죽어서도 몰운대를 지키고 있는 고목. 시간이 정지된 듯한 풍경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어떤 이는 강릉 소금강처럼 유명하지 않음을 한탄하기도 한다. 그곳에 비해 부족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정선 소금강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비결일 수도 있다. 개발이 되지 않았고, 손을 덜 탔으니 자연의 그것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테고, 그런 점이 여행객들에게는 더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소금강엔 그림바위 외에도 제법 이름이 있는 바위들이 여럿 있다. 소금강의 정문 역할을 하는 사모관대바위와 족두리바위, 신선 삼 형제가 놀았다는 삼형제바위, 동굴 속에 사는 두꺼비 모양을 하고 있다는 돌두꺼비바위 등이 소금강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이정표 하나 서 있지 않은 탓에 이곳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눈 뜨고도 쉬이 찾을 수 없다. 

소금강 풍광에 넋을 잃고 달리다 보면 몰운대에 이르게 된다. 몰운대는 조양강으로 흘러드는 어천가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야트막한 200m 남짓 산길을 오르면 작은 정자에 이르게 되는데, 오른쪽으로 보이는 절벽이 바로 몰운대이다. 정자에서 보는 몰운대의 풍광도 절경이지만 제대로 된 구경을 하려면 몰운대 위로 올라가는 편이 낫다. 

깎아지른 암벽 위에 서자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부는 느낌이다. ‘몰운(沒雲)’이란 안개에 잠긴다는 의미인데, 비록 안개는 끼지 않았지만 사방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광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몰운대에서 내려다보면 족히 수십 명은 앉을 만한 너럭바위가 넉넉히 자리하고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사진 / 손수원 기자
150여 년 전 화전민들이 만든 백전리 물레방아. 사진 / 손수원 기자

몰운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고사목. 꽃봉오리에 살짝 앉아 있는 나비처럼 아찔하게 서 있는 소나무는 몇 백 년에 걸쳐 바위에 뿌리를 내렸으나 몇 해 전에 벼락을 맞아 죽고 말았다. 이왕이면 살아 있는 소나무가 있었으면 했건만, 말라 죽은 나무가 쓰러지지도 않고 그대로 서 있는 모습에 삶의 연민마저 느껴진다. 

몰운대에서 다시 길을 달리면 마지막 구경거리인 광대곡이 나온다. 하지만 광대곡은  드라이브 길에 들르기 참 애매한 곳이다. 4km의 계곡을 따라 12용소와 폭포들이 자태를 뽐내지만 한참을 걸어야 하기에  이들을 제대로 보려면 애초에 하루 날을 잡아 오는 편이 낫다.  

광대곡까지 이르면 화암팔경은 모두 본 셈이다. 대전리에서 합수교를 건너 사북으로 갈 요량이라면 150년 전에 화전민들이 만들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물레방아인 백전물레방아를 둘러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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