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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등사의 '두 가지 이야기' 속으로
전등사의 '두 가지 이야기' 속으로
  • 유은비 기자
  • 승인 2016.08.19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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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의 처마 끝과 은행나무에 숨겨진 이야기
전등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대웅보전. 사진 / 유은비 기자

[여행스케치=인천] 사람이 머문 곳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깃들기 마련이다. 이야기와 함께하는 여행은 여행자의 상상력이 더해져 그 길이 더욱 흥미롭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전등사로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전등사의 입구인 대조루를 지나 바로 보이는 대웅전의 지붕은 처마 끝이 들려 있다. 곡선이 심하게 휘어 올라간 지붕을 한참 보고 있으니 그 아래, 발가벗은 여인의 조각상이 처마를 떠받치고 있다.

영원한 고통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벌이라도 받는 걸까? 함께한 전인옥 강화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이 조각상에 얽힌 전설을 풀어놓는다.

“배신한 사랑도 품어내는 자비예요.”

대웅보전 처마를 떠받치고 있는 여인 조각상. 사진 / 유은비 기자

전인옥 해설사는 ‘사랑을 배신당한 목수의 복수로만 나신상을 보면 안 된다’는 주의부터 주었다. 대웅보전을 짓던 목수가 주모와 사랑에 빠진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목수는 대웅보전을 지으며 받은 돈을 모두 주모에게 맡겼고, 공사가 끝나면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 살림을 꾸리려 했으나 주모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공사가 마무리될 무렵, 주모는 목수의 돈을 가지고 다른 남자와 달아나버린 것이다.

“절망에 빠진 목수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사찰로 돌아가 공사를 마무리해요. 주모에게 벌을 주는 마음으로 나신상 네 개를 만들어 처마를 들어 올리게 만들죠. 하지만 죄에 대한 벌만은 아니에요. 아침저녁으로 스님의 독경을 가장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자리인 거죠. 참회하고 좋은 곳으로 가길 염원하는 마음… 결국 자비의 마음 아닐까요?”

전등사에 오르는 길목에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거대한 나무 두 그루가 있다. 오랜 세월을 나이테로 둘러 거대한 몸통과 굵은 가지가 하늘 높이 솟았다. 보호수라고 적혀있는 팻말 앞에 그는 걸음을 멈춘다.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열매가 열리지 않았죠.”

은행이 열리지 않는 은행나무. 사진 / 유은비 기자

전등사 최고의 미스터리인 열매를 맺지 않는 은행나무를 가리키는 전인옥 해설사는 짐짓 진지하게 그날의 이야기를 한다. 불교의 탄압이 심했던 조선 말기, 조정은 전등사를 탄압하고자 일을 꾸미다가 사찰의 은행나무를 발견하곤 나무의 평소 수확량의 두 배가 넘는 양의 은행을 조세로 걷을 것을 명했다 한다.

말도 안 되는 조세 징수에 견디다 못한 전등사의 스님들은 이 위기를 기도로써 헤쳐나가기로 하고 몇 날 며칠 온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린다.

“기도를 마치는 날, 하늘에서 새카만 구름이 몰려오고 온 사방에 벼락이 치기 시작했어요. 은행나무도 벼락을 맞았는데 그 후론 한 톨의 은행도 볼 수 없었답니다. 결국, 스무 가마니는커녕 은행 한 가마니도 세금으로 걷어갈 수 없게 되었지요.”

두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다시 한 번 전등사와 은행나무를 둘러보자. 오랜 세월만큼이나 축적된 전등사의 이야기는 여행자의 발걸음을 통해 계속해서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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