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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가고 싶은 섬]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남아 있는 통영 한산도
[가고 싶은 섬]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남아 있는 통영 한산도
  • 권선근 객원기자
  • 승인 2022.03.15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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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산도 산책길.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볼수록 더 아름다운 항구 통영

통영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한산도. 그 섬에 무수히 많은 스토리와 콘텐츠가 있다. 이순신 장군과 맑은 바닷물과 섹시한 자태를 뽐내고 서 있는 적송과 산책로까지. 통영은 참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시인과 소설가, 작곡가를 배출한 낭만 포구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들어가면 통영은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진 도시다. 이름부터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전라·경상·충청)에서 빌려왔다는 것이다.

통영에 갈 때마다 맑고 고운 바닷물과 부드러운 바닷바람, 그리고 짭조름한 바다향기에 반하곤 한다. 통영에 도착한 날 마침 봄비가 내렸다. 덕분에 봄비가 내리는 날 한산섬 소나무숲길을 걷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이루어졌다. 사랑하는 사람(혹은 옛사랑)과 동행하면 더 좋았을 텐데…. 아주 오래 전 여수에서 통영까지 쾌속선을 타고 데이트를 왔던 옛추억을 소환하며 한산도 가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여객 선은 파랑주의보가 내리면 운항하지 못하지만 봄비 정도에는 너끈히 닻을 올린다.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한산도까지 07시15분부터 2시간 간격으로 7회 운행한다.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한산도에 있는 제승당 여객선터미널.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여객선이 바다로 나가는 동안 통영시내를 휘둘러본다. 통영시내는 바닷물만큼이나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세계적인 음악가를 배출하 고, 나전칠기라는 세계적인 공예품을 만들어낸 예술의 고장이란 품격이 엿보인다. 참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다. 갈매기 몇 마리가 여객선 주위를 배회한다. 먼 옛날, 430여 년 전에는 이곳이 왜군의 침략을 감시하고, 침입한 왜군을 물리친 조선의 최전방 방어선이었다. 모든 국토는 선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서 지켜낸 땅이다. 모든 평화에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밑바닥에 깔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봄비 내리는 날 더 아름다운 한산섬 산책로
통영시 한산면을 여행객들은 그냥 ‘한산도나 한산섬’이라 부른다. 한산면의 본섬인 한산도는 통영에서 직선거리 6km 떨어진 곳에 있는 통영시 섬관광의 일번지나 다름없다. 충무공의 빛나는 전승 업적과 숨결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조선수군은 저 유명한 한산대첩의 ‘학익진’ 전략으로 왜군을 물리 쳤고, 덕분에 조선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었다. 한산대첩은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삼대대첩으로 불리고 있다.

한산도항에서 제승당까지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걸어간다.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제승당 경내에 봄과 가을에 이순신 장군 제사를 모시는 영당이 있다.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여객선이 한산도에 다가가자 거북선 모양을 한 등표가 보인다. 등표는 선박들이 다니는 뱃길 주변에 있는 암초에 설치해서 바다를 오가는 수많은 어선과 여객선의 안전운항을 돕는 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밝은 빛을 내는 등대는 아니지만 선박들의 안전을 돕는다. 임진왜란때 민초들이 등표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한산섬은 낯설지 않다. 우리나라 남해안 여러 섬에서 느낄 수 있는 포근한 기운이 느껴진다.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고, 산세도 험하지 않아 보인다.

통영 여객선터미널을 떠난 지 20여 분 만에 한산도항에 도착한다. 바다는 여전히 잔잔하고 물이 맑다. 푸른 숲이 투영된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이순신 장군 발자취를 찾아 길을 걷는다. 가느다란 봄비가 추적 추적 내리니 섬의 적막함이 더 짙다. 해송과 적송이 어우러진 숲길이 한적하고 아름답다. 소나무숲은 우거져 있는데 새소리나 바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빗물이 흘러내리는 적송의 근육질 몸매가 섹시해 보인다.

통영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이 있다. 사진은 멍게비빔밥.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제승당 안에 있는 이순신 장군 영정.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조선해군작전사령부가 있던 한산도 제승당
한산도항에서 1km 남짓 걸어가자 제승당에 다다른다. 1592년, 임진왜 란이 발발한 이후 이순신 장군은 한산대첩을 통해 바다의 제해권을 구축하였다. 그 후 한산도에 운주당(運籌堂)을 짓고, 조선해군을 지휘했으니 이는 지금의 해군작전사령부를 역할을 했다. 이곳에서 왜군을 물리치기 위한 작전을 수립하고, 총통 등 신식 무기를 제작하여 보급했다. 조선의 남해안을 방어했고, 수차례 왜군과 싸워 승리했다.

그런데 1597년, 정유재란이 나기 전 장군이 모함을 받아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정유재란 때 원균의 참패로 운주당은 소실되었다. 그러다가 1739년 영조 때 통제사 조경이 중건하고, 제승당(制勝堂)이라 이름 지었으며, 장군의 유허비를 세웠다. 제승당에는 장군의 영정을 안치한 사당 충무사, 활쏘기 훈련을 한 한산정, 송덕비, 수루, 대첩문, 수호사(守護舍), 한산문, 관리사무소 등부속 시설이 있다. 제승당 내부에는 장군의 해전과 ‘진중생활도’를 그린 해전도, 각종 총통, 작은 거북선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제승당 마당 한켠에 수루(戍樓)가 있다. 작은 누각인 수루에 올라가니 남쪽 바다가 훤히 보인다. 평상시 병사들이 적의 동태를 살피는 고, 경계근무를 서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장군은 틈틈이 혼자서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왜군은 호시탐탐 조선을 침략하려 들고, 가족이나 형제도 없이 빈한한 나라의 수군을 지휘해야 하는 지도 자의 고독을 누가 알까. 장군은 이 수루에서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 웠을까. 장군은 수루에 홀로 앉아 나라를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리곤 했다.

제승당 입구.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제승당 경내에 있는 수루에는 이순신 장군의 시 한 편이 걸려 있다.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어느 달 밝은 밤, 장군은 이 수루에 앉아 시를 한 수 지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영조 때 김천택의 <청구영언>에 실린 이순신 장군의 ‘진중시’다. 이 시를 쓴 무대가 바로 이곳이라고 전한다. 보름달이 떠오른 고요한 밤에 수루에 앉아 장군의 고독을 느껴보고 싶은데 달이 뜨지 않는 날이다.

여행은 이렇게 늘 아쉬움을 남긴다. 제승당 경내에서 여행객의 시선을 당기는 주요 건축물 가운데 한산 정이 있다. 한산정은 이순신 장군이 활을 쏘던 곳이며, 병사들이 활쏘기 훈련과 시합을 한 곳이다. 사대에서 표적까지 거리는 145m이며, 과녁은 바다 건너편 숲에 있다. 바다 건너에 과녁이 있는 곳은 전국 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그 당시, 조정에서만 과거를 보았으나 장군이 장계를 올려 처음으로 이곳에서 무과시험을 치렀고, 100여 명이 급제한 곳이라고 전한다. <난중일기>에는 이곳에서 활쏘기 시합을 해서 경기 후에는 떡과 술을 나눠 먹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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