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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산과 호수 위에 무르익은 가을, 쓸모 있는 물의 마을 청송
산과 호수 위에 무르익은 가을, 쓸모 있는 물의 마을 청송
  • 권선근 객원기자
  • 승인 2022.09.1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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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자락을 따라 흘러내린 물이 모여 만들어진 주산지.
주왕산 자락을 따라 흘러내린 물이 모여 만들어진 주산지.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청송]빨갛게 익어가는 산과 물이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산과 호수 위에 그려진 또 하나의 가을을 만나기 위해 청송으로 향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붉은 유혹’을 모른척 떨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푸른 솔바람의 청정한 기운이 가득한 그곳, 청송은 첩첩산중 끊이지 않는 산자락으로 둘러싸여 있다. 면적의 83%가 임야이고 나머지는 기암절벽의 산이다.

예전엔 경북 3대 오지를 뜻하는 ‘B·Y·C’(봉화·영양·청송)라 불리기도 했다. 요즘에는 도로가 잘 정비되어 서울에서 넉넉잡고 4시간이면 도착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훌쩍 떠나기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장엄한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 ‘쓸모 있는 물의 마을’ 청송을 찾아 보는 건 어떨까?

댐 주변의 수려한 경관이 힐링공간으로 자리 잡은 성덕댐.
댐 주변의 수려한 경관이 힐링공간으로 자리 잡은 성덕댐.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아름답고 넉넉한 청송의 물길

청송은 산도 좋지만 물도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데, 미네랄과 탄산을 듬뿍 함유한 이 물은 바위틈에서 샘솟아 약수가 되기도 하고, 산골짜기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수려한 계곡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때론 사람이 땅을 파놓은 곳에 모여들어 저수지가 되기도 하고, 평지로 흘러들어 내를 이루기도 한다.

약 300년 전, 주왕산 자락을 따라 흘러내린 물이 모여 만들어진 주산지는 특히 가을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거울처럼 잔잔한 수면에 불타는 가을 숲과 청명한 하늘이 데칼코마니처럼 찍히는 것이다. 풍경이 아니라 그림이다. 주산지의 또 다른 명물은 물속에 뿌리 박고 사는 왕버들. 주산지의 맑은 물을 양분 삼아 짧게는 100년, 길게는 200여 년간 크고 우람하게 자라 자연이 만든 예술 작품이 됐다. 주산지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고마운 저수지이기도 하다. 길이 200m, 너비 100m, 수심 8m의 아담한 저수지이지만 아랫마을 이전리의 농업 용수로 사용되는데, 심한 가뭄에도 좀처럼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는‘효자 저수지’다.

청정지역인 성덕댐 밑에 조성된 수달캠핑장에 가을이 찾아왔다.
청정지역인 성덕댐 밑에 조성된 수달캠핑장에 가을이 찾아왔다.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이 물 좋은 고장에 몇 해 전, 성덕댐이라는 큰 물그릇이 들어섰다. 안덕면에 건설한 성덕댐은 댐 하류 지역 보현천과 길안천의 홍수조절을 목적으로 2015년에 준공했다. 성덕댐은 기존 성덕 농업용수 댐을 재개발한 다목적댐으로, 낙동강 길안천 유역의 홍수 피해를 방지하고, 경북 내륙지역(청송, 경산, 영천)에 안정적으로 용수를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 댐 주변의 수려한 경관을 담은 호수 둘레길, 방류수를 이용한 댐 직하류의 물놀이 시설(강수욕장) 및 오토캠핑장 등을 통해 댐 주변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주산지 입구에는 ‘둑을 쌓아 물을 막아 만인에게 혜택을 베푸니, 그 뜻을 잊지 않도록 한 조각돌을 세운다.’라고 쓰인 석비가 세워져 있다. 주산지와 성덕댐, 청송의 물은 맑기만 한 것이 아니라 넉넉한 인심까지 지녔다.

수달캠핑장에서는 캠핑카, 카라반 등 다양한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수달캠핑장에서는 캠핑카, 카라반 등 다양한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수달도 즐겨 찾는 ‘수달캠핑장’은 청정지역인 성덕댐 바로 밑에 조성돼 있다. 산책로를 따라가면 성덕댐의 거대함을 체감할 수 있고, 더불어 운이 좋으면 수달도 관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얕은 물가가 있어 여름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안전한 물놀이를 만끽할 수 있다. 마을주민들이 캠핑장을 운영하다 보니 캠핑사이트 24개와 정박형 카라반 3대, 이글루 5개 등 다소 작은 규모지만 아이들 놀이 시설이 잘 돼 있고 조용해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캠핑장 인근에 신성계곡, 백석탄계곡, 청송자연휴양림 등 볼거리도 많다. 매년 1~2월에는 휴장한다.

청송 심씨의 집성촌인 덕천마을은 사람살이의 역사가 오롯이 남아있다.
청송 심씨의 집성촌인 덕천마을은 사람살이의 역사가 오롯이 남아있다.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전통 한옥과 고즈넉한 마을 분위기에 사로 잡히다

쓸모 있고 아름다운 물길을 둘러봤다면 이제 청송의 고택 나들이를 즐겨보자. 청송군 청송읍 덕천마을은 ‘청송 심씨 집성촌’으로 99칸의 전통 한옥으로 유명한 곳이다. 6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송소고택 외에도 초전댁, 송정고택, 창실고택 등이 있으며 한옥 스테이도 즐길 수 있다. 농촌전통 테마마을이자 국제슬로 시티로 지정된 덕천마을은 사람살이의 역사를 오롯이 품은 곳이기도 하다.

덕천마을을 이야기하려면 청송 심씨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청송을 본관으로 하는 청송 심씨의 시조는 심홍부로 4세손 심덕부는 고려 충숙왕 때 왜구의 침입을 물리쳐 큰 공을 세우며 조선 개국공신으로 청성부원군에 봉해져 영화를 누렸다. 반면 심덕부의 아우 심원부는 고려 말에 전리판서를 지냈지만 조선이 개국되면서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키고자 두문동에 들어가 지내며 벼슬을 멀리하고, 그 후손도 유훈을 받들어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덕천마을은 심원부의 후손이 뿌리내린 곳으로, 마을 앞에 덕천이라는 하천이 흘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송소고택, 송정고택 등 한옥스테이를 체험할 수 있는 고택이 여러 곳이다.
송소고택, 송정고택 등 한옥스테이를 체험할 수 있는 고택이 여러 곳이다.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사랑채로 가다 보면 보이는 헛담.
사랑채로 가다 보면 보이는 헛담.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경북에서 영양, 봉화 지역과 더불어 오지로 알려진 청송군은 당진영덕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접근성이 좋아졌다. 특히 덕천마을은 인근에 소노벨 리조트가 들어 선 후 더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송소고택 곳곳에 스민 배려의 자취 덕천마을을 많은 사람이 찾는 이유는 단연 송소고택 때문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송소고택은 조선 시대 만석꾼인 경주 최 부자와 함께 9대에 걸쳐 250여 년간 만석의 부를 누린 청송 심 부자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건립한 99칸 전통 한옥이다. 전체적으로 ㅁ자형 집으로 영남 지방 특유의 양반 가옥 형태를 취하고 있다. ‘송소고장(松韶古莊)’ 현판이 걸린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사랑채가 보이고, 사랑채로 가다 보면 나지막한 담 하나가 앞을 가로막는다. 일명 헛담이라고 하는데, 여인들이 기거하는 안채가 보이지 않도록 가로막아 안채 여인들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려는 배려의 소산이다.

이러한 배려는 구멍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랑채와 안채를 가로막는 담장에 구멍이 있어 구멍담이라 부른다. 안채 쪽에는 6개 구멍이 있고 사랑채 쪽에는 3개 구멍이 있다. 망원경 원리를 역이용한 것으로 안채에서는 사랑채가 잘 보이지만 사랑채에서는 안채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청송 심씨 11대 종손인 심재오 선생이 이곳을 지키며 일반인이 전통 한옥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옥 스테이를 운영중이다.

가을걷이 후 갈무리한 수확물로 화려한 덕천마을의 가을 풍경.
가을걷이 후 갈무리한 수확물로 화려한 덕천마을의 가을 풍경.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가을부터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 밑에서 잠깐 쉬어 가도 좋다.
가을부터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 밑에서 잠깐 쉬어 가도 좋다. 사진/ 권선근 객원기자

송소고택 인근에는 초전댁, 창실고택 등 심씨 집안에서 지은 또 다른 전통 가옥들이 있다. 모두 송소고택보다는 규모가 작고 역사는 짧지만, 전통 한옥의 멋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덕천마을은 고즈넉한 마을을 둘러보기 좋게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길가를 따라가며 고택을 담 너머로 들여다보고 가을부터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 밑에서 잠깐 쉬어 가도 좋다.

덕천마을 곳곳에는 항일 정신이 배어 있다. 항일의병장 소류 심성지 선생이 1904년까지 후학을 가르친 국가등록문화재 제497호인 소류정, 청송 심씨 재실인 경의재, 청산리전투의 영웅 철기 이범석 장군이 이곳에 내려와 한 달씩 머물면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심신을 단련했다는 송정고택 등이다. 송정고택 뒤편에는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이 나 있는데, 철기 이범석 장군이 걸었다 해서 ‘철기장군길’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을 따라 올라가면 덕천마을이 한눈에 펼쳐진다.

INFO 수달캠핑장

주소 경북 청송군 안덕면 성덕댐로 129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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