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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자연과 사람의 내음이 공존하는 간척지 길, 서산 아라메길
자연과 사람의 내음이 공존하는 간척지 길, 서산 아라메길
  • 노규엽 기자
  • 승인 2022.09.13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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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아라메길은 서산의 자연환경을 즐기며 걷기 좋은 길이다.
서산아라메길은 서산의 자연환경을 즐기며 걷기 좋은 길이다. 사진/ 여행스케치

[여행스케치=서산]바다를 옥토로 바꿔놓은 서산간척지 AㆍB지구는 현대건설이 1979년부터 장장 15년 3개월에 걸쳐 대역사를 이룬 곳으로, 농지 면적과 쌀 생산 규모에서 전국 1%를 차지하는 대단위 농경지다. 그 혜택을 본 동네 중 하나인 사기리에서 간월도 간월암까지 최초 해안누리길 6번 노선이었던 ‘아라메길’이 펼쳐져 있다.

해안누리길이었던 아라메길과 별개로 서산시에서 추진해 조성한 ‘서산아라메길’도 있다. 서산시 곳곳의 명소들을 연결하는 총 6구간 10개 코스로 구분된 서산아라메길도 서산의 자연환경을 즐기며 걷기 좋은 길이지만, 이번에는 최초 해안누리길로 조성되었던 아라메길을 훑으며 추억을 좇는 여행을 떠나본다.

사기리 버스 종점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사기리 버스 종점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사진/ 여행스케치

서산의 자연을 보며 걷는 길

아라메길의 명칭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 말로 바다와 산을 고루 갖춘 서산 자연환경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의미로 지어졌다. 특히 간척지 지구에 조성된 아라메길은 사방의 시야가 확 트여 걷는 내내 서산의 자연을 만끽하며 걸을 수 있다.

사기리 버스 종점에서 출발한 길은 방조제에 막혀 민물호수가 된 곳으로 걷는 이를 이끈다. 호수 바람을 맞으며 터벅터벅 길을 걷다보면 밭에서 잘 자라고 있는 농작물이나 농가 마당에서 참깨와 고추를 말리는 등의 모습을 볼 때도 있다. 이 길이 자연환경뿐 아니라 사람과도 연관이 있는 길임을 일깨워준다. 이어 마을길을 벗어나면 아스라이 펼쳐진 평야 사이로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을 향해 길이 열려 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뻗어 있는 길은 계절에 따라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가을에는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과 파란 하늘이 대비되는 풍경에 반하게 되지만, 다른 계절에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풍경을 보여주기에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을 걸을 이유를 만들어준다.

길을 걸으며 지나는 평화로운 갈대숲.
길을 걸으며 지나는 평화로운 갈대숲. 사진/ 여행스케치
간척지로 바뀌며 논농사를 짓는 농토가 되었다.
간척지로 바뀌며 논농사를 짓는 농토가 되었다. 사진/ 여행스케치

6.5km 방조제에 깃든 정주영 신화, 서산간척지

제방길 입구에서 정면으로 마주보는 풍광은 말 그대로 은빛 축제다. 태양은 물 위로 반짝이는 보석을 듬뿍 뿌려놓고 걷는 이를 유혹한다. 바람이 불면 그 결에 따라 은빛 물결이 출렁거린다. 간월도 제방길을 건너 간월도까지 이어지는 길은 화장실이나 쉼터도 없이 길게 뻗은 직선 코스다.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 한 그루 없는 길이지만, 호수와 주변 풍경에 의지하며 천천히 걷기 좋다. 서산간척지가 생기기 전, 이곳 천수만은 질 좋은 갯벌 지역이었다. 조개, 굴 등 수산물의 주 생산지였으며, 많은 물고기들의 산란장 역할을 했다. 간척 사업을 추진할 때 일본 어류학자들이 찾아와 산란장 보존을 건의했고, 환경단체와 주민들도 간척 사업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쌀이 곧 백성’이란 신념이 더 강했기에 간척 사업은 진행되었다.

간월호에서 마주친 강태공.
간월호에서 마주친 강태공. 사진/ 여행스케치

그런데 이내 난관에 부딪혔다. A지구에 물막이를 할 때, 가운데 지점의 수심이 깊고 물살이 빨라 큰 돌을 갖다 넣고 흙을 부어도 금세 떠내려 가버렸다. 공사 진행이 어려워 간척 사업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이때 ‘정주영 신화’가 만들어졌다. 돌을 가득 실은 폐선을 물 흐름이 빠른 곳에 가라앉혀 조수의 흐름을 막은 다음 재빨리 바위로 바다를 막은 것이다. 이른바 ‘정주영 공법’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세계 최초로 폐선을 활용한 물막이 공사는 두고두고 세계 토목학계에 회자되었다. 정주영 신화의 현장이 바로 이 간월호이다.

간월호는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생태학습장이기도 하다.
간월호는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생태학습장이기도 하다. 사진/ 여행스케치

철새들의 군무도 볼 수 있는 생태학습장

쌀 생산지로 변신한 간월호와 주변 논은 가을걷이가 끝난 후 새들의 천국이 된다.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이곳을 그 시기에 방문하면 어디서나 철새를 만날 수 있다. 사람의 출입이 적고 대규모로 농사를 지으니 가을 수확기에 바닥에 떨어진 낱알이 꽤 많은 덕분이다.

이런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시베리아에 사는 철새들까지 9월 이후부터 이곳으로 날아든다. 많은 먹이를 얻을 수 있고 천적들의 방해를 받지 않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월동지이기 때문이다. 가창오리나 두루미, 큰기러기 등 겨울 철새들이 모여들면 드넓은 평야에서 펼쳐지는 군무가 장관이다. 이를 보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니 이 길은 생태학습장으로도 오래 기억될 길이다. 하루 두 번 길을 열어주는 간월도 간월암 길의 끝 부분은 간월도로 이어진다.

서산A지구 방조제 인근의 홍성조류탐사과학관도 들러볼 만하다.
서산A지구 방조제 인근의 홍성조류탐사과학관도 들러볼 만하다. 사진/ 여행스케치
유명한 서산 간월도 어리굴젓.
유명한 서산 간월도 어리굴젓. 사진/ 여행스케치

간월도는 맛과 굴 생산지로 유명하다. 특히, 다른 지역의 굴보다 단단한 특성 덕분에 만들어진 어리굴젓은 간월도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하여 코로나19 전에는 매해 가을마다 어리굴젓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그렇게 굴이 유명한 간월도 선착장으로 가는 길 주변에는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대부분이 굴밥을 비롯한 다양한 굴 요리를 취급하고 있어 사시사철 방문객들의 입을 즐겁게 해준다. 특히, 식사시간 즈음에 이곳을 지나다 굴밥 짓는 냄새가 풍겨오면 그 유혹을 참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더라도 아라메길의 종착점인 간월암을 먼저 가는 것이 좋다. 하루에 두 번만 걸어서 들어갈 수 있기에 물때 확인이 먼저인 것이다.

물이 빠져 길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간월도의 모습.
물이 빠져 길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간월도의 모습. 사진/ 여행스케치
만조 때의 간월암 일몰.
만조 때의 간월암 일몰. 사진/ 여행스케치

간월암은 작은 섬인 간월도 위에 지어진 사찰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조언자였던 무학대사가 창건하였으며, 만공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간월암 주차장에서 간월도를 바라보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지만, 만조 때는 섬이 되어 암자로 건너갈 방법이 없다. 밀물과 썰물은 6시간마다 바뀌는데, 혹 물때를 맞추지 못해 간월암으로 건너가지 못하더라도 아쉬울 것은 없다.

바다에 둘러싸인 간월도의 풍경도 빼어날 뿐더러 해넘이와 달이 뜨는 밤에 찾으면 더욱 묘한 절경을 볼 수있다. 그래도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사람 욕심이니 이왕 간월도를 방문했다면 간월암으로 건너가보기를 누구나 원한다. 물이 빠지고 바닷길이 열린 시간에는 간월암의 해탈문을 금세 지날 수 있다. 그리 넓지 않은 암자이기에 사찰 건물을 둘러보는 시간은 금방이지만, 간월암에서 바라보는 서해 풍경이 또한 보는 맛이 있어 규모에 비해 오래 머무르게 된다.

굴밥을 맛보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
굴밥을 맛보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사진/ 여행스케치

간월암을 돌아보고 나와서는 이제야 주변의 굴 요리 전문식당을 찾아 굴밥과 굴전, 어리굴젓 등으로 차려지는 음식을 즐기며 걷기를 마무리하면 만족감이 배가된다. 또한, 여유가 있다면 간월암에서 시작해 서산의 또 다른 명소인 버드랜드를 둘러볼 수 있는 서산아라메길 6구간을 둘러봐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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