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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특집① 은빛 가을을 만나러 갑니다] 은빛 혹은 금빛, 그곳은 지금 가을 창녕 화왕산 억새길
[특집① 은빛 가을을 만나러 갑니다] 은빛 혹은 금빛, 그곳은 지금 가을 창녕 화왕산 억새길
  • 황소영 여행작가
  • 승인 2022.10.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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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창녕 화왕산 억새길
가을 창녕 화왕산 억새길.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창녕]가을 산은 단풍으로 대표되지만 가을이 되었다하여 그 산들이 모두 붉게 물이 드는 건 아니다. 억새는 가을을 알리는 또 하나의 표식이다. 단풍이 화려함의 극치라면 억새는 쓸쓸한 계절 그대로를 닮았다. 단풍은 단풍대로 억새는 억새대로 산은 마지막 빛을 발하며 한해를 마감한다.

경남권에선 영남알프스 일대와 황매산 억새가 유명하다.
경남권에선 영남알프스 일대와 황매산 억새가 유명하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화왕산 억새는 2.7km의 화왕산성을 중심으로 피었다.
화왕산 억새는 2.7km의 화왕산성을 중심으로 피었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해발 756.6m의 화왕산군립공원은 봄엔 진달래, 여름엔 계곡, 가을엔 억새, 겨울에는 설경으로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가을 억새는 우포늪과 더불어 경남을 넘어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창녕의 명물로 꼽힌다. 마치 안개가 명산물인 소설 <무진기행> 속 풍경처럼 이 산의 억새는 아침 안개에 젖기도 하고, 한낮 햇살에 부딪히기도 하며, 바다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쏴아쏴아 파도 같은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의 근거지가 되어준 화왕산성.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의 근거지가 되어준 화왕산성.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1코스에서 3코스로 원점회귀

창녕읍과 고암면의 경계에 선 ‘화왕(火旺)’은 화산활동이 활발해 옛날엔 불뫼 혹은 큰 불뫼로 불렸던 산이다. 지난 2009년 2월, 정월대보름 억새 태우기 행사 당시 산불이 번져 무려 9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아픔의 산이기도 하다. 화왕산의 억새가 유난히 쓸쓸해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정상 아래엔 자연 지형을 활용해 쌓은 화왕산성(사적 제64호)이 있다. 화왕산성은 비화가야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창녕의 군사적 중심지로 활용되었는데, 임진왜란 땐 곽재우 장군이 근거지로 삼고 큰 공을 세운 곳이다. 동문에서 남문터로 내려가는 길엔 분화구이자 창녕 조씨 시조 ‘득성비’가, 또 정상 서쪽 아래엔 조선 중기에 축성된 목마산성(사적 65호)과 진흥왕 척경비가 있다.

화왕산을 오르는 산행 코스는 자하곡매표소와 옥천매표소로 크게 나뉘는데, 자하곡의 경우 암릉을 타고 오르는 1등산로(전망대길 3.3㎞), 서문으로 곧장 가는 2등산로(서문길 2.6㎞), 도성암을 거치는 3등산로(도성암길 2.6㎞)가 대표적이고, 옥천은 통신중계탑과 허준 세트장을 거치는 1등산로(계곡길 5.5㎞), 관룡사와 청룡암을 거치는 2등산로(청룡암길 5.6㎞), 용선대와 관룡산을 지나는 3등산로(용선대길 6㎞)로 각각 나뉜다. 매표소는 있지만 별도의 입장료와 주차요금은 없다.

화왕산 정상까지 가장 빠르게 오를 수 있는 2코스 서문 입구.
화왕산 정상까지 가장 빠르게 오를 수 있는 2코스 서문 입구.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성곽 보호를 위해 등산로로 걷는 게 좋다.
성곽 보호를 위해 등산로로 걷는 게 좋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도로를 따라 올라서면 3등산로(이하 코스)와 1·2코스로 길이 나뉜다. 오늘은 암릉이 멋진 1코스로 올라 화왕산 정상에 올랐다가 3코스로 내려오는 원점회귀다. 약 6㎞에 쉬엄쉬엄 4시간. 보통 억새 명산은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뤄졌는데 화왕산 1코스는 울퉁불퉁 암릉을 오르는 재미가 특별하다. 출발지로 돌아오는 원점회귀여서 산행 순서를 바꿔도 되지만 바윗길인 1코스로 올라 부드러운 3코스로 하산하는 게 무릎보호엔 더 나을 것도 같다. 혹여 바윗길에 자신이 없다면 2~3코스만 선택해 오르내린다. 다만 정상을 제하곤 조망이 없는 게 흠이다.

도성암이 있는 3코스. 안전하고 무난한 길이다.
도성암이 있는 3코스. 안전하고 무난한 길이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화왕산의 또 다른 멋, 암릉

초입 이정표 갈림길에서 석장승이 선 우측 돌계단을 올라서면 운동시설이 있는 너른 숲이다. 길이 잘게 나뉘어 조금 헷갈리지만 곳곳에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무조건 1코스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숲길 끝에 팔각정 쉼터인 자하정이 있고, 이 쉼터를 기점으로 풍경이 달라진다. 나무에 가려졌던 창녕읍내와 삼국시대 무덤인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이 내려다보인다.

산 아래가 빼곡한 숲이라면 자하정 이후론 소나무 어우러진 암릉이고, 거기서 더 진행하면 거칠 것 없는 바윗길이다. 역광은 단점이자 장점이다. 가을볕에 눈이 부셨지만 걷다가 돌아보면 파란 하늘 아래 작은 도심, 저 너머의 높다란 정상부가 깨끗하게 보였다. 뭉게구름 몇개만 있었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위험’이라고 적힌 푯말이 곳곳에 박혔다. 샛노란 푯말은 절벽 위에 꽂혔고, 막힘없는 암벽은 곧 전망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따스하게 데워진 바위 위에서 다리쉼을 한다.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 절벽 가까이론 가지 않는다.

난간과 밧줄을 잡고 직사각형으로 곧게 잘린 ‘두부바위’를 지나면 풍경은 극대화된다. 억새를 보러 왔다가 이 산의 드라마틱한 바위군에 먼저 감탄을 한다. 비들재 갈림길에 닿았다면 화왕산의 첫 번째 장관은 서서히 저물고 두 번째 장관, 가을 산행의 백미인 억새평원이 펼쳐진다. 이제 힘들거나 위험한 구간은 없다.

1코스는 암릉으로 이뤄져 오르는 재미가 있다. 왼쪽으로 억새군락지가 보인다.
1코스는 암릉으로 이뤄져 오르는 재미가 있다. 왼쪽으로 억새군락지가 보인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배를 묶어뒀다는 배바위.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배를 묶어뒀다는 배바위.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큰불뫼의 산, 화왕

18.5ha 면적의 화왕산 억새는 곰바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옛날 이 산 아래 사나운 곰이 나타나 마을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단다. 결국 곰을 잡기 위해 포수가 나섰고, 화왕산 정상까지 쫓기던 곰은 몸을 숨길 수 없는 억새숲 사이에서 겁에 질려 바위로 변해버렸다는 이야기다. 곰바위 옆엔 덩치가 훨씬 큰 배바위가 있다.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이 바위에 배를 묶었다고 한다.

억새는 2.7㎞에 달하는 화왕산성을 중심으로 피었다. 색감이 조금 아쉽다 싶은데 “갑작스러운 한파 때문”이라며, 빨간 조끼를 입은 동네 어르신이 혼잣말처럼 대답을 한다. 날씨는 예측하기 어렵다. 단풍도 마찬가지다. 가물어도 별로고, 비가 너무 와도 안 예쁘다. 한파가 오면 봄꽃도 얼고, 가을꽃도 시든다. 황금 또는 은빛으로 물이 들어야할 억새는 예고 없이 찾아온 추위에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럼에도 충분히 멋진 산이지만 말이다.

단풍과 억새로 대표되는 가을 산.
단풍과 억새로 대표되는 가을 산.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억새가 가득히 피어있는 화왕산 오르는 길.
억새가 가득히 피어있는 화왕산 오르는 길.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길은 억새 사이사이로 이어졌다. 그 은밀한 속살 안에 앞서 설명한 ‘창녕 조씨 득성비’와 연못 ‘용지’가 있다. 이 산의 연못에서 목욕을 한후에 아이가 생겼고, 그 아이가 훗날 창녕 조씨의 시조가 되었단다. 일단 동문으로 간다. 동문 외곽엔 드라마 <허준>을 비롯해 <대장금>, <왕초>, <상도> 등을 촬영한 세트장이 있다.

봄철 진달래를 볼 생각이라면 옥천매표소에서 관룡산을 거쳐 동문쪽으로 오는 게 좋다. 동문에서 능선을 거치는 대신 억새 사이를 걸어 서문으로 간다. 서문 성벽 위는 등산객들의 쉼터가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이도 있지만 성벽 보호를 위해 사람도 자전거도 돌담 위로 올라가는 일은 피하는 게 좋다. 돌틈은 뱀들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2코스는 주차장에서 이 서문까지 이어진다. 정상을 오르는 최단 코스지만 역시 이 산의 진면목을 보려면 1코스를 넣는 게 좋다.

화왕산 정상을 내려서는 등산객들. 3코스는 정상과 서문 사이에 있다.
화왕산 정상을 내려서는 등산객들. 3코스는 정상과 서문 사이에 있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소원바위와 미소바위를 지나 화왕의 정상에 선다. 색 바랜 억새가 아쉬운 건 사람뿐, 억새 스스로는 온 힘을 다해 가을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정상과 서문 사이에 3코스 하산로가 있다. 이제 더이상 조망은 없다. 대신 안전하고 무난한 길이다. 40분쯤 내려서면 도성암에 닿고, 도성암은 곧 출발장소로 연결된다. 멀어진 산은 남은 가을동안 또 얼마나 멋진 금빛을 산 아래로 흩뿌리려나. 가을은 산 위에서 시작해 서서히 산 아래로 쏟아지고 있었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INFO 화왕산

창녕의 진산 화왕산(756.6m)은 봄철 진달래와 가을 억새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산이다.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크게 3개로 나뉘는데, 보통 1코스에서 시작해 정상을 거쳐 3코스로 하산하는 원점회귀를 선호하는 편이다. 약 6km에 쉬엄쉬엄 4시간이면 충분하다. 최단 코스는 서문으로 이어진 2코스다.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자하곡길 147 도성암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INFO 창녕의 또 다른 명산, 영축산

영축산(681.3m)은 화왕산 남쪽에 있는 창녕의 또 다른 명산으로 암릉의 전시장으로 불리는 산이다. 차를 갖고 간다면 법성사에서 출발해 정상까지 갔다가 원점으로 돌아오는 코스가제일 무난하다. 약 6km에 휴식 포함 6시간이면 충분하다.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 계성화왕산로 18 법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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