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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통시장 탐방] 구수하고 정겹고 소박하고, 부여 오일장
[전통시장 탐방] 구수하고 정겹고 소박하고, 부여 오일장
  • 김수남 여행작가
  • 승인 2023.01.18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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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부여 오일장의 모습이 정겹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여행스케치=부여] 산세 따라 사람 난다고 했던가. 성품까지는 몰라도 말투는 분명 다르다. 충청도에 오니 산들도 순하고 사람들의 말투도 순하다. 순하다 못해 말끝에도 ‘~유’가 붙는데 아마도 부드러울 ‘유(柔)’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규모가 큰 오일장일수록 전국 장꾼들이 모이기 때문에 지역 색깔은 옅고 규모가 작으면 지역색이 짙다. 한겨울에 조그맣게 열린 부여시장 오일장에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오가고 있어 더욱 정겹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왕도다. 백제 멸망까지 수도였던 123년간을 사비시대라고 하는데 부여 곳곳에 그 역사적 자취가 남아 있다. 국립부여박물관과 정림사지5층석탑, 궁남지,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성과 백마강으로 둘러싸인 백제역사유적지구 한복판에 100년 넘은 부여시장이 살아있다. 매 5일과 10일에 장이 열린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부여오일장은 매 5일과 10일에 열린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월동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하산한 스님인 듯 하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엄동설한 오일장 풍경
수년 전 어느 가을, 부여장은 장터 빼곡하게 들어선 천막들로 장관을 이뤘다. 그러나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는 한겨울에 찾은 부여시장 오일장은 빈자리가 유독 많았다. 장꾼들마다 각기 제자리가 있어 빈자리가 있다고 해서 아무나 그곳에서 영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리가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10년 전 어느 날씨 좋은 날의 부여장.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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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간식 곶감을 싣고 온 트럭.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아유, 춥잖아유. 이런 날은 채소들도 다 어니께. 나오면 손해유!”
아주머니와 할머니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상인이 조그마한 난로 하나 앞에 두고 꽁꽁 싸맨 채로 앉아있다. 상인들이 많이 없다고 인사를 하니 추워서 근육 하나 움직이기 귀찮을 텐데도 환하게 웃어 보인다. 그녀가 가져온 무와 배추, 당근들은 모두 두꺼운 담요로 덮어져 있고 몇 개의 샘플들만 불쌍하게 맨몸을 드러냈다. 

추억의 국화무늬 풀빵을 굽는 풀빵 장수는 난로가 필요 없다. 익어가는 반죽에서 나오는 연기가 보는 사람까지 따뜻하게 만든다. 그는 할머니들이 더 추위에 강하다면서 점심쯤 돼서 날이 좀 풀리면 할머니들이 더 나올 거라고 하였지만 그날 할머니들의 좌판은 더 이상 늘지 않았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한때 백제의 왕도답게 부여시장 건물도 개성이 넘친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추억의 국화문양 풀빵.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추억의 번데기. 요즘은 모두 수입산이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직접 짠 기름.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즉석에서 어묵을 만들어 튀겨내는 어묵 장수도 비교적 근무 여건이 좋은 편이다. 게다가 날이 추울수록 어묵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한겨울 길거리에서의 따뜻한 어묵 국물 한 컵은 백제 왕도 일어나게 할 정도다. 부모님과 함께 어묵을 만들어 팔고 있는 선지수(35) 대표는 경력이 9년째이다.

부모님의 업력은 37년이나 된다. 직업군인이었던 그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부대를 나와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지금은 어엿한 해썹(HACCP) 인증 식품제조업체 사장이다. 새벽마다 반죽을 만들어 아침 일찍 장터로 가지고 나온다. 충청도에선 부여장, 전라도에선 익산, 완주 삼례, 군산 대아장을 나간다고 한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어묵을 즉석에서 튀겨내니 맛이 없을 수 없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국물맛이 좋다고 하니 선 사장의 어머니 김선희(62) 씨는 좋은 재료로 국물을 낸다고 강조한다. 집은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인 익산 용안면이지만 그 말투에선 충청도 냄새가 난다. 로마에선 로마말을 쓰는 게 영업의 전략일까? 언제 아드님께 실권을 모두 물려주냐는 물음에 구수한 답이 돌아온다.
“몇 년 더 해야쥬~.”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어묵가게 김선희, 선지수 모자.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손님이 많이 찾는 가게가 있으면 그렇지 않은 가게도 있기 마련이다. 보령댁의 속옷가게는 상가 건물 뒷골목이라 그늘이 깊게 드리워 지나가기조차 추운 곳에 자리했다. 부여시장에 늦게 합류하는 바람에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 천막을 펴고 물건을 진열하는 데에만 2시간이 걸린다.

그녀가 팔고 있는 속옷들은 대부분 유행이 덜 타는 품목들이라 재고 부담이 덜하다. 주 고객들이 할머니들인데 할머니들은 한번 입어서 편한 옷은 계속 그 옷만 찾는다고 귀띔이다. 

“30년 가까이 했는데 옛날엔 엄청 잘 됐어요. 리어카 하나 놓고 팔아도 지금보다 더 많이 팔았어요. 인터넷, 홈쇼핑도 없었고. 그땐 재밌었지!”

옛 무용담을 듣는 사이 말투 어눌한 외국인이 수면양말을 하나 구입해 간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엄동설한에 속옷만 입은 마네킹이 안쓰러워 보인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웃으면 돈이 들어와유! 오일장에서 배운다
부여 오일장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이는 이양숙(69) 씨의 생선가게였다. 한때 중앙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했었다는 그녀는 기본적으로 웃는상이라 항상 생글거리며 말을 했다. 그래서일까 손님이 끊이질 않아 혼자 하기 벅찰 정도로 분주했다. “장사 배운 지가 40년 되어 가유. 30대에 배웠는디 인자 하나만 더 먹으면 칠십이유. 어휴, 뭔 일이래유. 맘 같아선 10년만 더 하고 싶구만유.”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명태 손질 경력 40년답게 이양숙 씨의 칼질에는 힘이 넘친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쏜살같이 흘러간 세월을 뭔 일 났다고 말하는 충청도 특유의 말투에 절로 웃음이 났다. 햇살 좋은 양지에 자리한 까닭일까, 그녀의 웃는 소리 때문일까? 그 가게 앞에선 춥지 않았다. 다른 시장은 가지 않고 오직 부여장만 나온다는 그녀가 파는 생선은 약 20여 가지. 다른 시장을 안 다니면 재고 부담이 있지 않냐는 물음에 웬만하면 다 팔고 간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옆에서 이 씨의 장사 비결을 훔쳐보니 첫 번째가 자신감과 웃는 얼굴이고, 두 번째가 구수하고 친근감 가는 말씨다. 파는 품목들 하나하나에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진다. 다리가 제대로 붙어있지 않은 꽃게를 만지작거리던 손님도 이 씨가 건네는 말 한마디에 지갑을 연다. “요새 잡은 거라 인물은 없어도 내용은 괜찮어. 다리 없으면 어때. 내용이 좋은데. 가져가 두어 번 잡셔(봐)!”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어물전 생선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세 번째는 덤 인심이다. 재래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덤 문화라지만 옛날 같지 않은 게 요즘 사람들이다. 덤을 달라고 해도 안 된다는 상인이 있는데 이 씨는 이야기를 안 해도 알아서 집어준다.
“탕 끓인다구? 그러면 이거 홍합 좀 줄테니께 넣어서 같이 끓여봐. 맛있어!”
게다가 단골 관리 능력도 뛰어나다. 인상이 좋고 오래 하다 보니 단골도 많다. 손님들이 먼저 알아보기도 하고 이 씨가 손님을 먼저 알아보기도 한다.

“어휴, 이장님 오셨네. 형님은 안 오셨슈?”
이러니 손님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오일장 노점상에게 삶의 지혜를 배운다. 

주차장에 세워진 부여시장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부여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금동대향로 꼭대기에 앉아있는 봉황이 환생한 느낌이다. 턱 밑의 여의주는 햇살 받아 더욱 반짝이고 꼬리와 날개에선 생동감이 느껴져 과거 백제 왕도로서의 찬란했던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지나온 천오백 년 역사가 그랬듯이, 부여도 부여시장도 그 자신감 그대로 앞으로 계속 번창하기를 기원해 본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부여시장 주차장 입구의 조형물. 백제금동대향로의 봉황 모습이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ㆍ여행쪽지ㆍ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시골통닭(041-835-3522): 통닭과 삼계탕이 주메뉴이다. 특히, 옛날 방식으로 통째 튀겨낸 통닭은 껍질이 바삭하고 속살도 맛있다. 부여시장에서 길을 건너야 하는 중앙시장 입구 골목에 있다.
부여중앙시장: 부여시장 건너편 약 500m 떨어진 거리에 있는 부여의 대표 상설시장이다. 
굿뜨래음식특화거리: 다양한 맛집 음식점들이 한 줄로 쭉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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