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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마을따라 마음따라] 새봄, 몸과 마음도 새롭게, 진천 연곡리
[마을따라 마음따라] 새봄, 몸과 마음도 새롭게, 진천 연곡리
  • 김수남 여행작가
  • 승인 2023.02.15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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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여행작가
보탑사 3층 목탑.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진천] 남녘에 매화·산수유가 만개할 때 내륙 깊숙한 곳에도 춘신은 찾아든다. 등산로 주변을 화사하게 밝혀주는 생강나무꽃은 대표적인 봄의 전령사다. 얼어붙은 산과 계곡이 겨울잠에서 깨어났음을 알린다. 이제 우리 몸과 마음에도 새로운 기운이 필요할 때다.

진천이 살기 좋은 고장임을 강조할 때 ‘생거진천’이라는 말을 쓴다. ‘생거진천 사후용인(生居鎭川 死後龍仁)’이란 말에서 따왔는데, 실제로 사람들의 인심이 좋고 자연재해도 없어 살기 좋은 곳이라 할 만하다. 그중에서도 진천읍의 연곡리와 상계리로 이어진 계곡마을은 특별한 기운으로 가득하여 3월 여행지로 제격이다.

고려시대 절터에 조성한 보탑사.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보탑사 천왕문 앞에는 300년된 보호수가 자라고 있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고려시대 절터에 조성된 보탑사
계곡 끝에는 보탑사라는 운치 좋은 절이 들어서 있다. 절 입구 천왕문 앞에 300년 된 보호수도 있고 전체적으로 고찰 느낌이 풍기지만 불과 20~30년 전에 들어선 절이다. 보탑사의 자랑거리는 신라시대 황룡사 9층목탑과 같은 방식으로 지은 3층목탑이다. 이름은 목탑이지만 사람이 올라갈 수 있어서 현대적으론 빌딩과 비슷한 구조다. 

못을 사용하지 않은 전통방식으로 지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빼어난 건축물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석탑이 발달한 문화라 목탑이 귀한데 그나마 남아있는 보은 법주사 팔상전이나 화순 쌍봉사의 대웅전은 사람이 올라갈 수 없는 구조라 비교가 어렵다. 3층이지만 상륜부까지의 높이는 무려 52.7m에 달한다. 요즘 아파트로 치면 14층 높이다. 

고요한 분위기의 보탑사 경내.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신영훈 대목수를 비롯하여 당대 최고 기술진이 지은 이 목탑은 여러 개의 불당이 더해진 형식을 하고 있다. 즉, 1층은 대웅전, 2층은 법보전, 3층은 미륵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과 3층에는 탑돌이를 할 수 있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서 지금은 통제가 되고 있다. 3층에서 주위를 내려다보면 연꽃 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3층목탑에 걸린 작은 연등.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1층 대웅전에는 동서남북으로 각각 약사여래, 아미타불, 석가여래,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그런 이유로 방향마다 각기 다른 현판이 걸려있다. 중생의 고통을 없애준다는 약사불은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여름 수박을 올리면 동짓날까지 썩지 않고 그대로 있어 동지 기도 후 신도들이 함께 나눠 먹는다고 한다. 

보탑사에는 여러 가지 볼거리들이 많다. 거대한 와불을 모신 적조전, 부처님과 오백나한을 모신 영산전, 장수왕릉을 재현했다는 지장전, 그리고 귀엽고 익살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어 절로 웃음 짓게 만드는 법고각의 목어까지, 허투루 볼 것들이 하나도 없다.

보탑사 와불.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3층목탑 앞 작은 석불. (좌) 보탑사 영산전 오백나한. (우)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방문객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은 경내 구석구석에서 웃고 있는 꽃들이다. 꽃 공양 올리는 마음으로 조성했을까, 비구니 스님들의 섬세함이 빛난다. 비록 3월에는 많은 꽃을 볼 순 없지만 계절 따라 피고 지는 다양한 꽃들로 작은 식물원을 연상시킬 정도다.

구석구석 빈 틈마다 꽃이 얼굴을 내미는 보탑사.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보탑사 한쪽에 있는 보호각에는 비문 없는 백비가 있다. 높이 3.6m로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석비인데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문이 원래 없는 것인지 닳아진 것인지 알 길은 없으나 비문이 없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더 많은 상상과 호기심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연곡리 보련마을은 팜스테이마을 사업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테마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하는 체험마을이다. 마을입구에는 ‘효자마을’과 ‘효자동’이 새겨진 커다란 비석들이 세워져 있어서 마을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마을사업으로 숙박시설과 식당을 운영한다.

연곡리 보련마을은 효자마을로 칭송된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신라의 변방에서 김유신 장군이 탄생하다 
연곡리에는 참숯가마가 있어서 마니아들이 알음알음 찾아든다. 이곳의 참숯가마는 원래 숯을 구워내는 공장인데 숯을 꺼낸 빈 가마를 찜질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숯을 만들던 열기와 가마를 구성하고 있는 황토에서 나오는 다량의 원적외선이 몸에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가마 한 개가 5일에 걸쳐서 1톤 가량의 참숯을 만들어내는데 숯을 꺼내고 나면 그 다음 날부터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숯을 꺼낸 지 하루 된 가마는 가장 뜨겁다고 해서 ‘꽃탕’이라고 부르는데 꽃탕을 이용할 수 있는 날만 일부러 찾아오는 ‘꾼’들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잴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온도에 10초가량 머물다 나오는 것을 반복하는데 효과는 정말 좋다고 이용객들이 입을 모은다. 

진천참숯. 진천은 전국 제1의 숯 생산지이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진천참숯가마에서 숯가마 찜질을 즐기는 사람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숯가마찜질 도중 고기를 구워 먹는 이용객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숯을 뺀 빈 가마가 두 개 더 있는데 꺼낸 순서대로 온도가 낮아져서 알맞은 온도의 가마에 들어가서 찜질을 하면 된다. 피로를 푸는 정도를 넘어 만성병이나 심지어 암 환자들도 자주 찾고 그만큼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게 이용자들의 이야기다.

연곡리 아랫마을 상계리에는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김유신(595~673) 장군 탄생지가 있다. 가야 후손인 김서현 장군과 신라 왕족인 만명부인 사이에서 김유신이 태어났다. 경주가 아닌 당시로는 신라의 최고 변방이었던 진천에서 김유신이 태어난 것이다.

태령산 정상의 김유신장군 태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태령산의 화랑정.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탄생지에는 옛 건물 한 채를 복원해 놓았으나 특별한 내용이나 이를 뒷받침할 프로그램 등이 없어서 다소 썰렁한 편이다. 다만 여기서 등산로로 1.25km 오르면 산꼭대기에 김유신의 태실이 남아있어서 추천할 만하다. 등산로는 경사가 약간 급한 구간이 있지만 위험하지는 않아 어린이들도 오를 수 있을 정도다. 탄생지에서 화랑정을 거쳐 약 40분이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김유신의 태를 묻은 산이라고 하여 산의 이름도 태령산(453.5m)이다. 김유신의 태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로 1,500여 년 전 것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일반 무덤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봉분이 평평해졌다. 그나마 둘레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석 덕에 유실을 어느 정도 막은 것으로 보인다.

태령산 오르는 길에 생강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렸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김유신 탄생지에서 태실로 오르는 등산로 초입에는 당시 태수 관저의 우물이었다는 연보정이 남아있다. 김유신도 이 물을 마시면서 유년기를 보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연보정 바로 아래에는 궁도장인 화랑정이 있다. 국궁은 육체와 더불어 정신 수양을 중시하는 스포츠다. ‘무념무상’이라는 사대 앞 돌비의 글씨가 가슴에 와 닿는다. 김유신의 후예라고도 할 수 있는 화랑정 궁도인들은 산자락을 가리키며 장군이 말달리기와 활쏘기 연습을 하던 치마대라고 주장한다.

약 7km 떨어진 이웃 백암리에는 김유신 사당인 길상사가 있어서 김유신의 이야기를 좇는 테마여행 코스로 제격이다. 김유신은 사후 162년이 지나서 흥무대왕으로 추존되었다. 살아서는 신하였지만 죽어서는 왕이 된 것이다. 보탑사에서는 마음을, 숯가마에선 몸을 정갈히 하고 김유신의 기운까지 받았다. 두 팔 활짝 벌리니 어느새 봄이 가슴에 들었다. 

보련골연꽃가든 한상 차림.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 여행쪽지 |

보련골연꽃가든 (043-532-3412): 체험마을 사업을 하는 보련마을에서 만든 식당으로 개인이 십 년 넘도록 임대해서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연 음식을 내놓고 있는데 식당의 분위기나 음식 맛이 정갈하고 깔끔하다. 
진천참숯가마 (043-533-9451): 숯불화로를 대여해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 꽃탕은 이용할 수 있는 날이 정해져 있는데 신발도 보통 슬리퍼는 녹을 수 있어서 가마 앞에 준비된 나무신을 신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보탑사 (043-533-0206): 고려시대 절터에 조성된 사찰로, 못을 사용하지 않는 전통방식으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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