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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조금 느린 걸음으로 걸어야 보이는 풍경들...풍요의 도시, 김제
조금 느린 걸음으로 걸어야 보이는 풍경들...풍요의 도시, 김제
  • 민다엽 기자
  • 승인 2023.03.13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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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분위기의 김제 평야. 사진/ 여행스케치

[여행스케치=김제] 드넓은 호남평야를 품은 김제는 흔히 ‘풍요의 도시’로 불린다. 관광지로서의 명성은 주변 도시에 비해 다소 부족한 편이지만, 김제를 방문한다면 왜 ‘풍요의 도시’로 불리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탁 트인 지평선 위로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살과 선선한 바람에 물결치는 대지의 기운, 그리고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까지, 조금 느린 걸음으로 걸어야 제대로 보이는 느긋한 도시에 관한 이야기다.

낯선 길을 찾아 헤매는 번거로움 없이 도시를 여행하는 최고의 방법은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KTX가 오가는 전주한옥마을이나 김제역에서 탑승해, 김제의 대표적인 명소인 금산사와 벽골제, 아리랑문학마을 등을 지나 서쪽 끝에 있는 망해사나 새만금 방조제까지 편하고 효율적으로 여행할 수 있다.

각 요일마다 ‘역사문화 코스’, ‘농경문화 코스’, ‘새만금 코스’ 총 3가지 테마로 운행되어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게다가 문화관광해설사가 동행하여 각 여행지에 대해 재미난 해설도 해주면서 요금도 4,000원으로, 무척이나 저렴하니 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김제를 처음 방문하는 여행자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 되리라 본다.

김제시에서 운영하는 김제시티투어 버스. 사진/ 민다엽 기자
연둣빛으로 물드는 김제의 평야. 사진/ 여행스케치
4~5월이면 들판 가득 청보리가 올라온다. 사진/ 여행스케치
4월이면 들판 가득 청보리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사진/ 여행스케치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곡창지대
김제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평야가 반긴다. 특히 서쪽으로는 낮은 언덕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탁 트여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드는 10월에는 이를 테마로 한 ‘지평선 축제’가 벽골제 일원에서 성대하게 열리니, 가을에 방문하는 것도 정말 좋다.

실제로도 김제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곡창지대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 조사한 <농작물생산조사>에 따르면, 2022년 김제의 재배면적(10a) 당 쌀 생산량은 581kg으로 전국 1위, 총생산량은 102,433t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다.

이토록 넓은 평야와 비옥한 토양을 가진 김제는 긴 세월 동안 그야말로 ‘축복받은 땅’이었을 것이다. 대대로 수많은 사람이 이 비옥한 땅에서 생산되는 농작물로 가족들을 먹여 살렸을 터. 또 곡창지대를 가로지르는 만경강을 통해 전국으로 쌀을 운송하고 도시 경제의 발전을 위한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졌을 것이다. 농업의 시대가 가고 시대가 변했다지만, 여전히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으로 가득하다. 이처럼 비옥한 땅 위에 김제는 삼국 시대부터 이어진 풍부한 역사와 독특한 농경문화를 꾸준히 발전시켜 온 도시다.

벽골제에 세워진 두 마리의 용 조형물. 사진/ 여행스케치
벽골제의 수문 역할을 했던 장생거. 사진/ 여행스케치

김제 농경 문화의 꽃, 벽골제
김제에 왔다면 가장 먼저 들러봐야 할 곳은 단연 벽골제다. 김제 농경 문화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벽골제는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저수지로 국가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곳곳에 있는 박물관과 다양한 향토 축제를 통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독특한 농경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흘해왕 21년(330)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만들었는데, 그 둘레가 1천 8백 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제방을 쌓는 데에만 연인원 32만여 명이 동원된 것으로 추산되지만, 아쉽게도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사실은 불분명하다. 현재 유적에는 약 3km 길이의 콘크리트 제방이 남아있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아쉬운 부분. 단,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넓은 들판에 생명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수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인상적이다.

벽골제에서는 다양한 전통 행사가 열린다. 사진/ 여행스케치
물 기르기 체험 중인 여행객. 사진/ 여행스케치

벽골제 단지 중심에는 두 마리의 거대한 용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 이는 예부터 전해져오는 벽골제를 지키는 두 마리 용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비록 ‘지평선 축제’가 열리는 가을에 방문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봄에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산책을 즐기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다. 연둣빛으로 물들어가는 너른 평야를 바라보며 수로 주변에 핀 들꽃을 감상하면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 한복을 빌려 입고 각종 전통 놀이를 즐기거나 농경문화를 체험해 보는 재미도 있다.

INFO 김제 시티투어 버스
이용 하루 전 홈페이지나 전화를 통해 예약은 필수다. 최소 출발 인원은 5명으로 미달시 예약이 취소 될 수 있으며 당일 탑승은 불가하다. 20인 이상 단체에 한해서는 맞춤형 코스로 투어가 가능하다. 요금 성인(만 19세 이상 65세 미만)4,000원, 어린이·청소년·경로자·군인 2,000원
문의 063-540-3374

조정래 작가의 소설 <아리랑> 속의 무대를 재현한 아리랑문학마을. 사진/ 민다엽 기자
<아리랑>은 호남의 드넓은 평야를 주 무대로, 일제강점기의 민족 수난과 투쟁을 그려낸 작품이다. 사진/ 민다엽 기자

수탈과 투쟁, 소설 <아리랑>의 무대
김제의 풍요로움이 마냥 순탄하게만 흘러간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는 강제 노동과 수탈의 현장이 되었다. 김제와 주변 지역 사람들은 일본 소유의 농장과 공장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했고 이렇게 생산된 쌀은 군산으로 한데 모아져 일본으로 실려 갔다.

이러한 김제의 어두운 과거는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리랑>은 김제의 드넓은 평야를 주 무대로 일제강점기 40여 년간의 민족 수난과 투쟁을 처절하게 그려 낸 작품으로,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온 문학.

일제의 관공소나 양곡장 등이 들어서 있는 거리. 사진/ 민다엽 기자
당시 양곡장에서 쓰이던 기계. 사진/ 민다엽 기자
수탈전시관에서는 일제강점기 김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작가는 취재를 위해 국내는 물론, 중국과 일본, 미국, 러시아 등 해외로도 많은 취재 여행을 떠났다. 그가 작품을 위해 발로 뛴 거리를 모두 합치면 지구 세 바퀴에 달한다고 하니, 소설 속 이야기가 얼마나 현실 고증에 충실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제 죽산면 내촌·외리 마을 일대에 조성된 아리랑문학마을은 <아리랑>의 배경지를 재현한 테마파크로, 소설 속에 등장했던 주요 배경자들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아리랑> 속 일제의 수탈과 고난의 주 무대였던 외리마을과 내촌마을, 그리고 주민들을 탄압했던 일제의 관공서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의 동상. 사진/ 민다엽 기자
아리랑문학마을 최고의 포토존으로 손꼽히는 하얼빈역. 사진/ 민다엽 기자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리랑문학마을은 단순히 일제강점기를 재현한 공간이 아닌, 소설에 묘사된 주요 배경을 재현해 놨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 순사가 머물던 주재소나 쌀을 착취하기 위한 양곡장과 창고 등 일제의 수탈 기관 등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문학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 접근하면 보다 즐겁게 둘러볼 수 있을 듯싶다. 이 밖에도 역사적 사료와 문헌 등을 위주로 당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과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하얼빈역을 재현한 장소도 둘러보길 추천한다.

아리랑문학관에서는 작가 조정래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취재 수첩 속에 그려진 빼곡한 스케치들이 인상적이다. 사진/ 민다엽 기자

작가 조정래나 그의 다른 문학 작품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벽골제 근처에 있는 아리랑문학관을 꼭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이곳에서는 소설 <아리랑>을 넘어, ‘조정래’라는 한 인간의 삶과 정체성, 그리고 그의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더욱 깊이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아리랑문학관에서는 2만여 매가 넘는 조정래 작가의 원본 원고와 그가 기증한 개인적인 유품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취재 노트에 담긴 스케치나 글귀, 작가의 체취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육필 원고를 통해 작가의 창작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물론, 그의 작품 세계에 보다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금산사 전경. 사찰 중앙에 벚꽃이 만개했다. 사진/ 여행스케치

어머니의 품으로…천년고찰 금산사
‘어머니의 산’으로 불리는 모악산. 그 품에 안겨있는 금산사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평온하다. 울창한 숲과 나무, 고요한 사찰의 분위기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마음을 재충전하기에 좋은 장소. 템플 스테이나 명상 프로그램을 통해 오랫동안 머물사찰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온전히 몰입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금산사는 백제 599년에 창건된 천년고찰로 신라 시대 고승인 진표율사가 지은 미륵전(국보 제62호)과 10점의 보물이 남아 있다. 백제시대 때는 35부 353권의 불교전적을 판각하여 미륵성지로서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승병을 모집해 왜군을 격퇴하기도 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국보 제62호 금산사 미륵전. 사진/ 여행스케치
금산사 근처에 있는 금평저수지 산책로. 사진/ 여행스케치

높이 11m에 이르는 초대형 불상이 자리하고 있는 미륵전의 압도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이는 기존 미륵전에 있던 미륵본존불상이 1935년 불에 타 훼손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조각가인 김복진 작가에 의해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모악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사찰 입구는 다소 번잡하지만, 넓은 주차장과 각종 음식점과 카페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여행자에게는 나름 유용한 편이다. 게다가 사찰로 가는 길목에는 아름다운 산책로가 마련된 금평저수지가 있으니 한가롭게 봄 날씨를 즐기며 산책을 즐겨보는 것도 좋갰다.

환상적인 낙조를 볼 수 있는 만경낙조전망대. 사진/ 민다엽 기자
지평선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만경강이 금빛으로 물든다. 사진/ 민다엽 기자
지평선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만경강이 금빛으로 물든다. 사진/ 민다엽 기자
새빨간 태양이 진다. 사진/ 민다엽 기자

지평선 너머 금빛 낙조
김제에는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여럿 있지만, 그중 첫 손에 꼽히는 곳은 만경낙조전망대다. 너른 평야지대 한가운데 볼록 솟아오른 작은 언덕이 바로 그것. 언덕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나지막한 높이지만, 전망대에 오르면 놀라울 정도로 주변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탁 트인 평야와 유려하게 흐르는 만경강의 물줄기,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지는 금빛 노을이 한데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눈 부신 태양이 점점 지면에 가까워질수록 파스텔톤의 신비로운 색감이 물감 번지듯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새빨간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그 아름다움이 시시각각 달라지니 끝까지 놓치지 말 것. 다만, 시티투어 버스가 운행하지 않고 외진 곳에 있어 접근성이 떨어지나, 사실상 김제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으니 꼭 한번 들러보길 권한다.

펄펄 끓인 팥죽에 칼국수 면발을 넣어 끓여낸 팥칼국수. 사진/ 민다엽 기자 
옹심이가 들어간 팥죽과는 또다른 맛이다. 사진/ 민다엽 기자

달달하면서도 고소한 팥칼국수
예부터 팥죽은 보릿고개에 보양식이 되어 준 서민들의 음식이었다. 팥죽의 인기의 비결은 바로 편리함과 합리적인 가격. 김제에서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몇 가지 재료만 있으면 집에서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만족스러운 음식이었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김제전통시장 주변으로 오래된 팥죽 가게가 여럿 남아있는데. 그중 팥칼국수 맛집으로 꼽히는 ‘무지개팥죽’이 유명하다. 외관은 허름해도 현지인은 물론, 타지인에도 인기가 제법 많다고 한다. 주문과 함께 펄펄 끓는 팥죽에 손 반죽한 칼국수 면발을 넣어, 진득해질 때까지 다시 한번 푹 끓여내면 팥칼국수가 완성된다.

크리미한 식감과 팥의 달콤함이 입 안 가득 은은하게 번진다. 기본적으로 팥죽에 설탕을 많이 들어가지 않아서 특유의 쌉싸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오롯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 게다가 쫄깃한 식감의 면발도 일품이다.

평생 팥죽을 쑤어 오셨다는 무지개팥죽의 주인 아주머니. 사진/ 민다엽 기자

INFO 무지개팥죽
주소 전북 김제시 남북로 214
메뉴 팔칼국수 7,000원
문의 063-546-8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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