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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힐링 여행] ‘볼 빨간 꽃 중년’을 위한 치유 테라피 여행, 남해 웰니스 스테이
[힐링 여행] ‘볼 빨간 꽃 중년’을 위한 치유 테라피 여행, 남해 웰니스 스테이
  • 정은주 여행작가
  • 승인 2023.06.16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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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했던 힐링과 치유의 시간을 소개해본다.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남해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했던 힐링과 치유의 시간을 소개해본다.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여행스케치=남해]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른 중년 여성들이 어쩌다 남해에서 만나게 되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른바 4050 나이(‘갱년기라는 불청객이 언제 찾아올지 모를 그런 나이 말이다)라는 것. 온전히 중년 여성에 맞춘 프로그램과 건강한 밥상, 아름다운 풍경들이 가득했던 힐링과 치유의 시간을 풀어본다.

쏴아희미하게 들리는 파도 소리에 아직 꿈결인가 싶었다. 창문 밖에 펼쳐진 바다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일상을 떠나왔음이 실감 났다. 콧노래가 흥얼거려지는 기분 좋은 아침. 숙소 앞 해안을 따라 산책에 나서본다. 소박한 바닷가 마을의 정취에 빠져 15분 남짓 걸었을까.

고목이 우거진 캠핑장을 지나자 남파랑길 여행지원센터가 나타났다. 홍보관과 남해워킹테라피센터, 여행자 라운지로 이뤄진 이번 여행의 아지트이다. 45일 동안 매일 이곳에서 요가와 명상이 진행되었다.

아침의 시작은 요가로 열고
요가 수업은 남해문화관광재단 윤문기 팀장이 직접 지도한다. 국제요가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답게 참가자들의 상태에 맞춰 동작 하나 하나 이해하기 쉽도록 가르쳐준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집에 가서도 습관처럼 할 수 있도록이 최종 목표다.

언젠가부터 멀리하게 된 요가인데 아니나 다를까 몸이 여기저기서 삐걱댔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억지로 동작을 만들다 보니 몸에 무리가 가고 있었다.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천천히 해보세요. 내 몸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욕심부리지 않는 것이 필요하죠. 잘못하다간 오히려 다칠 수 있거든요.” 마치 속마음을 들킨 거 같아 흠칫 놀랐다. 내가 몸은 생각지도 않고 마음만 앞서가고 있었구나. 이런 세심한 지도 덕분에 남해에 머무는 동안 고질적인 목과 어깨 통증을 잊고 지냈다.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는 야외 요가 수업.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는 야외 요가 수업.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남파랑길 여행지원센터.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남파랑길 여행지원센터.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바람이 잔잔한 날엔 야외 데크에서 수업을 하는데 실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연둣빛 잎사귀들이 드리워진 나무 그늘과 부드러운 햇살이 번갈아 자리바꿈 하고, 더워질 때마다 한줄기 바람이 휘익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몸과 마음이 차분하게 내려앉는 시간. 요가의 참맛이 여기에 있었다.

아침은 지역민이 직접 텃밭에서 키운 신선한 샐러드와 샌드위치로 준비되었다. 커피 한 잔 곁들이면 꽤 든든한 한 끼가 된다. 3층에 있는 여행자 라운지 테라스는 금산이 바라보이는 명당자리다. 흐린 날엔 몽환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맑은 날엔 수려한 경치를 뽐낸다. 아침마다 멋진 뷰를 바라보며 즐기는 식사는 언제나 유쾌했다. 파라솔 아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신선한 재료들로 즐기는 아침식사.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신선한 재료들로 즐기는 아침식사.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노르딕 워킹은 뭐가 다른가?
요즘 국내에도 노르딕 워킹 바람이 불고 있는데 일반적인 걷기보다 운동 효과가 훨씬 높다고 한다. 두 팔과 발을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전신운동은 물론 척추가 바르게 세워지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스틱을 잡고 최대한 어깨를 움직여가며 발맞춰 걷는 것이 중요한데 마치 리듬을 타는 것처럼 보인다.

강의 땐 어려울 것 없어 보였는데 역시 실전은 만만치 않았다. 어깨가 으쓱거리고 스텝이 자꾸 꼬였지만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니 얼추 발맞춰 걸을 만했다. 온몸의 근육을 쓰는 거라 힘은 더 들지만 허리를 곧게 펴고 걷는 것이 느껴져 절로 신바람이 난다.

노르딕 워킹과 남해 바래길은 찰떡궁합을 이룬다. 바래길은 남해 섬을 한 바퀴 잇는 순환형 종주길로 총거리가 약 240km에 이른다. 본선 16개 코스와 지선 4개 코스가 운영되며 이 중 11개가 남해안 전체를 잇는 남파랑길 34~36코스와 겹쳐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여행자 지원센터에서 미국 마을과 월포 해변, 가천 다랭이 마을까지 이어진 앵강다숲길을 며칠에 나누어 걸었다. 싱그러운 풀숲을 건너고, 높은 언덕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보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노르딕 워킹 전 준비 운동을 하는 참가자들.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노르딕 워킹 전 준비 운동을 하는 참가자들.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남해의 걷기 좋은 길을 노르딕 워킹으로 걸어본다.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남해의 걷기 좋은 길을 노르딕 워킹으로 걸어본다.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해설사가 동행한 날은 더욱 의미 깊었다. 길에 얽힌 여러 가지 일화와 남해의 숨겨진 역사 이야기, 길섶에 핀 꽃과 나무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흘려들을 수 없었다. 노르딕 워킹을 통해 건강을 챙기고 유익한 지식까지 쌓는 일거양득의 시간이다. 한적한 자연에 둘러싸인 길 위에서 함께 걷고, 웃고, 공감과 위로가 되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동안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점점 한 팀이 되어 갔다.

마음 챙김의 시간, 명상
아침을 요가로 열었다면 오후엔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이 기다리고 있다. 윤문기 팀장이 준비한 자료에는 처음 접한 명상 이론과 행복론 등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내용들이 많다. 특히 뇌과학으로 풀어본 명상 이론이 흥미로웠다. 진정한 행복을 두고, 뇌졸중으로 수년 간 좌뇌를 잃고 살았던 질 볼트 테일러 박사의 일화는 묵직한 고민을 던져주었다. ‘행복은 언젠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사용해야 하는 삶의 도구라는 문구가 마음에 와닿는 시간이다.

좌선을 한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무상무념의 상태에 빠져본다. 물론 첫 술에 잘 될 리가 없다. 머릿속에 가득한 잡념들이 샘물처럼 솟아오르고, 몸이 살짝 기울어진다 싶더니 갑자기 고개가 뚝 떨어지기도 한다. 나른한 시간에 눈까지 감고 있으니 졸음이 몰려올 수밖에. 깜짝 놀라 자세를 다시 고쳐 잡는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애써 몰아내려 하기보다 지금 내가 이런 상태구나, 하는 알아차림을 반복하는 것이 초보자의 과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요동치던 마음이 잔잔해진다. 언제 이런 고요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던가. 가끔은 나를 위해 비워두는 시간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층층이 깎여 다듬어진 다랭이논. 예나 지금이나 여행이 주는 힘은 변함이 없다.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층층이 깎여 다듬어진 다랭이논. 예나 지금이나 여행이 주는 힘은 변함이 없다.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다랭이 마을을 밤에 걷는다
하루에 한두 곳씩 남해를 탐험하는 알토란 같은 시간도 빼놓을 수 없다. 수려한 경관과 명소들로 꽉 채워진 보물섬까지 왔으니. 경상남도 민간정원 1호인 섬이정원은 다랭이논을 근사한 정원으로 바꿔놓은 손꼽히는 명소다. 정원 어디든 차명호 대표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SNS 포토스폿으로 이름난 연못 앞에선 꽃중년들의 인생샷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나이는 먹어도 언제나 마음은 청춘이니까.

남해의 토스카나로 불리는 창선 고사리 밭길을 걷다 푸른 바다가 펼쳐진 라키비움 남해의 테라스에서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실내는 LP판이 가득 찬 이색적인 공간이다. 고전이 주는 편안함에 한참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위해 마련한 독일마을과 바닷가에 조성된 물건리 어부림도 인상 깊은 장소다. ‘물고기를 부르는 숲에서 우리는 줄 맞춰 걸으며 소녀처럼 깔깔거리고 웃었다.

섬이정원 최고의 포토 스폿에서 찰칵.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섬이정원 최고의 포토 스폿에서 찰칵.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은은한 랜턴 빛에 의지해 걷던 다랭이마을의 저녁 시간.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은은한 랜턴 빛에 의지해 걷던 다랭이마을의 저녁 시간.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해가 질 무렵 다랭이마을로 향했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암수 바위를 껴안기도 하고 라벤더 향이 흐르는 오솔길을 따라 걷는 사이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 푸르스름한 해안 절벽과 쉴 새 없이 들이치는 파도가 현실과 꿈결 그 사이에 놓여 있었다.

한 번씩 나이 듦에 대한 서글픔이 밀려들 때면 나만 유난인 건가 싶다가 갑자기 갱년기가 찾아들면 어쩌지 싶어 혼자 끙끙 앓던 마음들이 우렁찬 소리에 씻겨 내려갔다. 무언가 마음에 자유를 얻은 기분이다. 그래, 여행이 주는 힘이 이런 것이었지. 비록 처음 만났어도 4050 동지(?)들이 있어 더욱 든든한 여행길이었음을,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없이 가벼웠다.

남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 독일마을.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남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 독일마을.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남해 여행이 좋은 점은 여유로운 풍경 앞에서 쉬어가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남해 여행이 좋은 점은 여유로운 풍경 앞에서 쉬어가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 / 정은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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