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통영] 통영은 한국의 대표적인 명품관광도시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 이야기, 풍부한 수산물 먹을거리, 수많은 문화예술인의 얼이 흐르는 항구다. 요트를 타고 바닷바람을 마시다 붉게 타는 노을에 취하기 좋은 곳 통영.
요트를 타기 전 워밍업하듯 미륵도 투어
이제껏 수차례 통영을 다닌 이유는 섬에 가기 위함이었다. 한산섬, 욕지도, 사량도, 매물도 등 아름다운 섬과 굴요리, 도다리쑥국, 물회 등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런데 정작 통영 앞에 버티고 있는 큰 섬 미륵도는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미륵도를 둘러보고 요트를 타기 위해 통영으로 달려왔다.
통영에서 요트를 탈 수 있는 포구는 여러 곳이다. 10곳 남짓 있다. 요트체험을 할 수 있는 곳마다 시간표가 다르다. 오전이나 오후에 운항하는 요트가 있고, 오후나 해질녘에 운항하는 요트가 있다. 예약해 놓은 요트 운항 시간에 맞춰 남은 시간에 통영 시내나 인근 섬을 둘러보는 것이 통영 여행의 핵심이다.
통영시청 관광과의 안내를 받아 미륵도를 먼저 여행하기로 했다. 중앙전통시장에서 물회를 먹고, 통영대교를 건너 소설가 박경리기념관과 묘소를 들러 당포항으로 갔다. 조선시대 산성인 당포성지를 둘러보고 산양관광일주도로를 달렸다. 푸른 바다에 떠있는 무수히 많은 섬은 귀엽고 아름답다. 여러 수산물 양식장과 고깃배들을 감상하고, 달아공원을 들렀다. 잔잔한 물결에 햇빛이 빛나고,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어촌마을들이 정겹다.
효봉 스님이 출가했다는 미래사와 편백나무 숲을 걷고, 먼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미륵불상을 본다. 편백나무가 뿜어대는 피톤치드를 흡흡 마시다가 숲속에 피어 있는 노랑 기린초, 하얀 돈나무꽃의 아름다운 자태에 취한다. 그리고 산양읍 영운리 삼칭이해안길에 있는 통영 한산마리나리조트로 달려갔다. 요트를 타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잔잔한 바다에 떠 있는 요트에서 와인 한 잔
‘한산마리나’는 미륵도 남동쪽, 저 유명한 한산도와 마주보고 있다. 요트가 한산마리나가 있는 영운항을 빠져나간다. 바닷물은 마치 내륙에 있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짙푸른 바닷물을 가르며 요트가 바다 가운데로 미끄러져 간다. 요트를 처음 탄 사람이나 종종 타러온다는 사람 가릴 것 없이 바다에 몰입한다.
오후 늦은 시각이라 직사광선이 없어서 좋다. 갑판에 앉아 섬과 섬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선들이 귀항하고 있다. 출렁이는 바닷물이 마침내 배 위에 앉아 있음을 실감나게 한다. 갈매기 한 마리 날지 않는 조용한 바다 가운데 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다과가 준비되어 있으니 직접 챙겨 먹으라는 선장(정명식)의 안내멘트가 들린다.
서울에서는 좀체 마시지 않는 봉다리커피를 한 잔 마신다. 그윽한 커피향이 입안에 가득 번진다. 오래 전 스위스 알프스 산장에서 마셨던 아메리카노가 생각난다. 커피는 그 장소에 따라 존재감이 빛난다.
가족여행을 온 어린이가 산딸기를 권한다. 어린이가 어른한테 달콤한 먹을거리를 권하는데 어른은 고맙다며 받아먹기만 한다. 준비성이 부족한 어른을 책망할 수밖에 없다.
여행객들은 함께한 일행과 바다를 감상하다 기념사진도 촬영하고, 과자를 먹거나 캔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와인 한 잔씩 드시죠.” 선장은 와인병을 꺼내주며 각자 따라 마시라고 한다. 낭만이 어떻고 분위기가 어떻고 하는 사설을 늘어놓지 않아서 맘에 든다. 선장은 참 담백하게 필요한 말만 한다. 분위기는 여행객들이 알아서 느끼고 챙기면 된다.
요트에서 감상하는 명품 해넘이 광경
요트는 출항한 포구에서 점점 멀어진다. “가까이 있는 섬이 한산도이고, 저쪽에 있는 섬이 비진도입니다. 연화도 뒤에 욕지도예요.” 가이드 겸 해설사로 동행한 김기림 ‘사월의 모비딕’ 대표는 연화도와 욕지도를 가리킨다. 요트는 1시간 30분을 운항하기 때문에 연화도나 욕지도 가까이에는 가지 못한다.
여행객들은 차나 음료를 마시고, 과일과 과자를 먹으면서 사진을 촬영한다. 육지에 있는 지인들에게 사진이나 영상을 보내면서 아름다운 바다여행을 공유하고 있다.
상큼한 바람을 맞으며 바다와 섬의 경치에 취해 있는데 미륵도 상공에 붉은 태양이 내려와 있다. 기나긴 하루를 마감할 시각인 모양이다. 바닷물이 출렁일 때마다 주황색 물감이 뿌려지는 듯하다. 미륵산 위에 구름이 짙고 두텁게 덮여 있다. 해가 구름 속에 들어버리면 노을빛이 밋밋해질 것이다. 노을빛이 밋밋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어찌 모든 노을이 붉게 타며 하루하루가 모두 화려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구름 속에 스며들었던 태양이 다시 얼굴을 드러낸다. 어린이 여행객이 “야호!”하고 짧은 탄성을 내지른다. 여행객들은 일제히 카메라를 들이댄다. 빌딩들 사이로 천천히 얼굴을 숨기는 태양이 참 아름답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바닥이 간지럽다. 이 멋진 모습을 육지에 남아 있는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로 전하면 결례일까?(웃음)
오래 전 욕지도에서 통영항으로 나올 때, 여객선에서 해넘이를 마주한 적이 있다. 너무나 장엄한 광경이었다. 사람들의 인생도 수명을 다할 때 화려하게 마무리하면 참 좋겠다는 야무진 꿈을 꿨다.
저 앞에 있던 요트가 항구로 방향을 튼다. 육지에 땅거미가 내리고, 바다에도 어둠이 밀려든다. 먹물을 풀어놓은 듯한 어둠이 요트들을 포구로 인도한다. 등대는 보이지 않아도 포구의 거리에 켜진 가로등이 요트를 안전하게 안내한다.
파바박~하선을 준비하는데 폭죽이 터진다. 여행객들은 예고에 없던 폭죽을 바라보며 1시간30분의 요트여행을 마무리한다. 황금빛 불꽃이 20여 차례 어둠이 내려앉은 항구 위에 뿌려진다.
<요트 체험 전 통영 미륵도 여행>
#1 박경리기념관
「김약국의딸들」과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은 통영 출신이다. 미륵도에 기념관이 있고, 묘지가 있다. 그의 인생과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2 달아공원
미륵도를 한 바퀴 도는 산양관광일주도로를 드라이브할 때 만나게 되는 작은 공원. 언덕에서 통영 앞 여러 섬들을 관망할 수 있다.
#3당포성지
조선시대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했던 석성이다.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성곽과 잔디, 동백나무 숲이 아름답다.
#4미래사
일제강점기 판사 출신 승려로 유명한 효봉 스님이 토굴을 짓고 수행했다는 사찰. 효봉 문중의 시발점이며, 구산ㆍ법정 스님도 인연이 있는 사찰이다.
#5편백나무숲
미래사 앞 오른쪽 산에 조성된 편백나무 숲이다.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가져갈 생각으로 식재했다고 함. 왕복 1km 숲길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