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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박물관 여행] 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 숨어있는 진주를 찾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박물관 여행] 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 숨어있는 진주를 찾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 최보기 작가
  • 승인 2023.11.14 08: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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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도에 이런 박물관이 있어서 정말 놀랐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을 소개한다. 사진 /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인천 송도에 이런 박물관이 있어서 정말 놀랐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을 소개한다. 사진 /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여행스케치=인천] 인류의 역사를 말할 때 문자 이전과 문자 이후로 나눈다. 문자는 인류가 세상을 지배하게 만든 가장 높은 수준의 도구이다. 그런 문자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이때 문자박물관에 다녀왔다. 인근 사람들조차 모르고 있는 문자박물관에는 무엇이 있으며 왜 중요할까?

아니, 송도에 이런 박물관이 있었다고요?
모든 대한민국은 서울과 촌으로 나뉘는 세태에 인천 송도에 있는 박물관이라 하니 솔직히 방문길에 기대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더구나 문자박물관이라니! 대체 박물관을 채울 양질의 콘텐츠가 있기나 할까 싶었다. 그런데 웬걸? 인천지하철 센트럴파크역에서 지상으로 나오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울 테헤란로에 뒤지지 않는 고층 빌딩들이 줄을 서 사방 분간이 안 됐고, 지도 상으로는 박물관이 무척 가까운 거리였지만 결국 택시를 이용해야 했다. 상전벽해라고 송도 유원지는 옛말, 송도는 그야말로 마천루와 바다의 도시로 변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의 외관.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의 외관.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송도 보고 놀란 눈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넓게 조성된 공원 한편에 자리한 박물관 일대는 건축물(페이지스) 자체가 두루마리 문서를 컨셉으로 지은 부드러운 곡선의 예술이었다. 전시관은 원형의 본관 건물 지하 1층 상설전시관, 1층 기획전시관과 어린이 체험실, 2층 야외전시관이 자리를 잡았다.

물론 굿즈샵이나 카페, 수유실 등 부대시설 또한 훌륭했다. 상대적으로 넓은(?) 신도시에 지은 탓인지 실내 구성도 조밀함이 없이 높고 시원시원한 것이 문자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명제에 걸맞았다.

상설전시실에 있는 구텐베르크 인쇄기.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상설전시실에 있는 구텐베르크 인쇄기.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문자를 담는 그릇, 매체.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문자를 담는 그릇, 매체.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함무라비 법전 비석을 처음 알현하다
상설전시실은 마치 고대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의 궁전 같은 세트장에 들어온 듯 신비감이 돋는다.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에서는 고대 도시의 체취가 묻어난다. 일단 분위기만으로도 관람객의 엔도르핀을 자극하는 데 성공적이다. 이곳은 수천 년 전 지구 각지에서 사용됐던 동굴벽화와 암각화부터 기원전 3500년 무렵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발명된 인류 최초 기록문자인 쐐기문자 유물로 시작한다.

쐐기문자가 좀 낯설 텐데 강가의 진흙으로 만든 점토판에 갈대를 사용해 기록한 문자이다. 진흙에 눌러 쓰다 보니 쐐기 모양을 닮은 상형문자다. 기원전 2000년 즈음에는 서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수메르어, 아카드어, 고대 엘람어 등 10여 개의 언어가 쐐기문자로 표기됐는데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 시기부터 점차 아람문자로 대체, 소멸됐다. 그러나 쐐기문자의 60진법 체계는 지금도 시간 단위에 쓰이고 있고, ‘길가메시 서사시는 서구문학의 근원이 됐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이슬람 경전인 쿠란.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서로 알려진 파피루스 에버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서로 알려진 파피루스 에버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이즈음 중국에서는 거북의 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문자를 새기는 갑골문자가 쓰였는데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이 수레는 바퀴가 같아야 하고, 글은 문자가 같아야 한다는 정책에 따라 발음과 형태가 달랐던 언어를 지금의 표의문자 한자로 통합해 발전시켰다.

당연히 지구상의 문자는 이들만 생겨났던 게 아니라서 박물관에는 사라진 마야문자(드레스덴 문서), 현재 유럽 문자의 원형인 라틴문자, 타이문자, 티베트문자 등 세계 각국 다양한 문자의 역사를 말해주는 유물을 전시 중이다.

우리 조상들은 중국의 한자를 빌려 우리의 말을 기록하다가 조선 4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비로소 한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소리를 모두 기록할 수 있는 글자로는 한글이 독보적일 만큼 디자인이 우수한 문자로 세계가 공인한다.

상설전시실 내부 모습.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상설전시실 내부 모습.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상설전시실에서 세계의 문자와 문명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상설전시실에서 세계의 문자와 문명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유물 중 특별히 <다호리 출토 붓과 손칼>이 눈에 띄는데 기원전 1세기 한반도에도 문자 생활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유물이다.

문자는 기록을 위해 발명됐는데 기록은 도구(갈대, , , , 잉크, 먹물 등)를 이용해 매체(점토, 거북껍질, 파피루스, 죽간, 종이 등)에 담긴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는 단순히 문자뿐만 아니라 도구, 매체 유물이 함께 있다. 당연히 교과서에서 배워 익숙한 함무라비 법전’(모형)비석도 손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다.

상설전시실에 있는 텐트, 하피의 미라 형태의 석관.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상설전시실에 있는 텐트, 하피의 미라 형태의 석관.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기원전 18세기경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왕이 제정한 것으로 추정되는 성문법이 돌에 새겨져 있는데 말은 아카드어, 문자는 쐐기문자다. 이 법 196조는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멀게 하면, 그의 눈도 멀게 될 것이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규정했다. 바로 옆에는 북한산 정상에 세워졌던 신라 진흥왕 순수비도 서 있다. 한자를 빌려와 신라 당시의 향가를 기록해 놓은 <삼국유사>를 보면 이두문자의 개념이 확실해진다.

인디아나 존스와 가상현실이 한 곳에
상설전시실이 모험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분위기를 연출한다면 기획전시실과 어린이 체험실은 최첨단 가상현실(VR)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SF(공상과학)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기획전시실에서는 <긴 글 주의>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무슨 말인가 했는데 현대에 이르러 소통방식이 긴 문장의 글에서 이모티콘(그림말), 픽토그램(그림문자), 인포그래픽, 카드뉴스 등 기록과 매체가 그림 중심으로 간단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문자가 기록과 소통의 도구임을 일러주는 기획전시실 입구.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문자가 기록과 소통의 도구임을 일러주는 기획전시실 입구.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기획전시실에 있는 세계 도처에서 발견된 바위그림 놀이터.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기획전시실에 있는 세계 도처에서 발견된 바위그림 놀이터.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그 옛날 문자가 없었던 시절 동굴벽화로 기록을 남겼던 것과 같은데 기술의 발전에 따른 다양하고 새로운 소통방식의 생성과 활용을 자세히 전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의 기초가 되는 문자와 글쓰기는 여전히 필수적이라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점이다.

깨비와 함께 떠나는 문자 여행을 내세우는 어린이 체험실은 4차원 입체 가상현실 프로그램으로 어린이들이 문자나라 여행을 즐긴다. 회당 상영시간 50, 정원이 30명이므로 누리집에서 상영시간 파악과 사전예약이 필수인데 박물관 관계자는 인천뿐만 아니라 타지역 주민도 많이 이용 중이라고 전했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인솔교사와 함께 단체로 박물관을 관람하는 어린이들이 많았는데 인천 은봉초 1학년 이은호 학생과 함께 온 어머니는 아이가 소풍 온 듯 즐겁고 신기해한다. 세계의 다양한 문자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고 체험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인천 은봉초 1학년인 이은호 학생과 학부모.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인천 은봉초 1학년인 이은호 학생과 학부모.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어린이들이 문자와 친해질 수 있는 어린이체험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어린이들이 문자와 친해질 수 있는 어린이체험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남다르게 묻어나는 배려의 미()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을 관람하면서 특별히 느꼈던 점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barrier free)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입구 계단 옆 휠체어 경사로는 실내에도 잘 만들어졌다. 장애인 화장실로 가는 통로도 충분히 넓고 전시관 내 필요한 곳에 점자설명과 수어 동영상 등 콘텐츠를 배치해 시각, 청각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데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감상할 수도 있다. 상설전시관 내에 1926년 송암 박두성 선생께서 각고의 노력 끝에 창안한 63자의 배우기 쉬운 한글점자 훈맹정음에 관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탓이기도 한 것 같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의 해질무렵 야경. 사진 /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의 해질무렵 야경. 사진 /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혹시 관람일정에 식사가 끼이는 경우 박물관이 송도 마천루 사이 중앙공원에 있는 까닭에 자가용 이용자는 별 어려움이 없겠지만 도보일 경우 사전 정보가 없으면 어느 빌딩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 알기 어렵고 거리도 멀어 좀 난감하다. 주관적 입맛이긴 하나 박물관 정문 차도 건너 월수금 식당이 가장 가까운 데다 김치찌개 가성비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INFO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주소 인천 연수구 센트럴로 217(인천지하철 센트럴파크역 3번 출구)
운영시간 10:00~18:00(입장마감 17:30), 매주 월요일, 11, 설날과 추석 당일 휴관
관람료 무료(20명 이상 단체관람 사전예약)

문의 032-290-200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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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대 2023-12-05 15:30:08
정부에서 박물관을 건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 청소년과 중장년이 역사적인 문화를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2. 공무원인 듯 아닌 듯 정체성이 모호한 사람들 일자리 만들어 주기. 3. 지방자치단체장의 입김으로 그 지역에 인문학 관련 사업을 했다는 실적 만들기. 4. 건축업자와 문화사업자들의 수입 증대, 담당 공무원이나 단체장 용돈 벌이.... 취재할 때마다 궁금하다. 자기가 근무하는 박물관에 대해 질문하면 답변하지 못한 직원이 태반이다... 게다가 불친절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