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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박물관 여행] 적멸보궁 오대산 국립공원의 인문학 거리, 국립조선왕조실록 박물관
[박물관 여행] 적멸보궁 오대산 국립공원의 인문학 거리, 국립조선왕조실록 박물관
  • 최보기 작가
  • 승인 2023.12.1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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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에 모여 있는 3개의 박물관으로 '산중의 인문학 거리'를 탐방하고 왔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강원도 평창에 모여 있는 3개의 박물관으로 '산중의 인문학 거리'를 탐방하고 왔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여행스케치=평창] 강원도 평창군에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월정사성보박물관, 한강시원지체험관 등 3개의 박물관이 모여 있다. 산중의 작은 호수와 정자를 중심으로 넓게 잘 꾸며진 정원을 함께 쓰나 운영은 각자 독립적이다. 202311월 이곳에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문을 열면서 산중의 인문학 거리가 면모를 제대로 갖추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 뒤로 또 산만 이어지는 유장한 풍광과 맑은 공기. 박물관에 입장하기도 전에 벌써 세파에 짓눌리고 얼룩진 도시인의 눈, 머리, 심장을 구석구석 해탈시킨다.

지난 11월 12일 개관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지난 11월 12일 개관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500년 기록의 나라, 조선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의 오대산 국립공원 방향으로 월정사 1.5km, 상원사 10km 전방 지점에 이르면, 산과 산 사이를 달리는 도로 한가운데 기와를 얹은 커다란 문이 떡 버티고 서있다. 한자로 오대성산(五臺聖山)’이라 쓰인 현판이 크게 걸렸다. 이 문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넓은 주차장과 아담한 전통가옥 상가를 끼고서 각각의 특징을 담아 지은 듯한 건축물 3개가 나란히 서 있다. 바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월정사성보박물관, 한강시원지체험관이다.

1388년 고려 우왕의 요동정벌 명령을 받고 출동했던 이성계는 압록강 위화도에서 군대를 되돌려 송도(개성)를 장악한 후 최영, 정몽주 등 호국세력과 투쟁 끝에 1392년 고려를 폐하고 조선(朝鮮)을 개국했다. 건국 태조 이성계 옆에는 일등공신 정도전이 있었다.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이 조화를 이루는 왕도정치의 밑그림을 그렸던 정도전의 꿈은 태종 이방원의 칼에 쓰러졌지만, 그가 남긴 <조선경국전>은 이후 조선을 ‘500년 기록의 나라로 만드는 기틀이 됐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입구.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입구.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조선 후기 외사고와 수호사찰.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조선 후기 외사고와 수호사찰.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임금은 하늘의 덕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리고 신하에게 역사가 쓰인 책을 만들게 하여야 한다.” - <태조실록>

나라는 망해도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 <세종실록>

사관은 만세(萬世)의 시비(是非)를 정하는 자입니다.” - <광해군일기>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 <연산군일기>

나라에 역사가 없다면 나라가 아니요 역사가 공정하지 못하면 역사가 아닙니다.” - <인조실록>

국가에 일이 있으면 의궤를 만들어야 한다.” - <명종실록>

<조선왕조실록>은 왕의 언행과 당시 사회상을 객관적(?)으로 서술해 편찬한 책이고, <조선왕조의궤>는 왕실의 각종 경사, 조사, 행사, 초상화(어진) 제작, 건축 등의 진행 절차와 방식을 글과 그림으로 규정하거나 설명한 책이다. 둘 다 대체 불가한 고유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의궤를 인쇄하기 위해 제작한 정리자 활자.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의궤를 인쇄하기 위해 제작한 정리자 활자.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실록의 토대가 될 사초를 남겼던 사관(史官)은 국사를 기록하는 춘추관과 왕의 명령을 문서로 작성하는 예문관 소속으로 나뉘었다. 실록은 왕의 당대가 아닌 사후에 다음 왕이 실록청을 임시로 세워, 사관이 쓴 사초와 춘추관일기, 승정원일기 등 왕실 주변의 각종 역사 기록을 토대로 편찬됐다. 완성된 실록은 초기에는 수도 한양의 춘추관사고(史庫)와 지방의 충주사고, 전주사고, 성주사고에 나누어 보존됐는데, 후기에 지방의 사고가 적상산, 태백산, 정족산, 오대산의 깊은 산속 4개로 정착했다. 태종까지는 붓으로 직접 쓴 필사본으로, 세종부터는 금속 또는 목판 활자본으로 제작됐는데 광해군, 연산군은 재위 도중 폐위된 까닭에 실록이 아닌 일기로 이름 지어졌다.

의식 절차를 기록한 의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의식 절차를 기록한 의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의궤를 재현한 애니메이션.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의궤를 재현한 애니메이션.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의궤에 그려진 어진 제작관련 왕실기물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의궤에 그려진 어진 제작관련 왕실기물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조선이 왕실 역사기록과 사고관리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 일화가 증명한다. 당시 왜군이 금산까지 들이닥치자 전라 감사 이광은 사고의 자료를 내장산의 암자들로 옮길 것을 지시했다. 이에 참봉 오희길과 유신, 선비 안의와 손홍록, 내장사 승려 등이 사재까지 털어가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태조 이성계 어진 등 말 수십 마리 분량의 방대한 자료를 내장산의 은적암, 비래암 등에 옮겼고, 1년 넘게 버티며 지킨 탓에 전국의 사고 중 유일하게 화를 면해 선조 때까지 기록됐던 우리의 역사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선조가 이들에게 벼슬을 내리려 하자 그것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며 사양했다고 한다. 오늘날 내장사 옆 금선계곡을 따라 은적암에 이르는 약 2km실록길이 탄생한 배경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를 거친 후 사료 소실을 막기 위해 외사고를 접근이 어려운 산속으로 옮길 때 전주사고 자료는 태백산사고로 옮겨졌다.

INFO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주소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76
개방시간 11~409:30~16:50 (입장마감 16:20)
5
~1009:30~17:30 (입장마감 17:00)
휴관일 매주 화요일, 11, 설날과 추석 당일
관람료 무료
문의 033-333-7610

기록문화의 나라, 조선.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기록문화의 나라, 조선.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책례, 행렬 반차도.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책례, 행렬 반차도.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조선건국 400년 기념 금보.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조선건국 400년 기념 금보.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오대산 사고와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월정사를 수호사찰로 지정해 보안을 맡긴 탓에 온전히 보존됐던 오대산사고 서적은 일제강점기에 서울로 옮겨졌다. 이 시기 패망한 왕실의 기록물들이 흩어지거나 소실되는 와중에 1913년 일본 동경제국대학(현 도쿄대학교)으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1922년 일본 궁내성으로 <조선왕조의궤>가 반출됐는데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실록 다수가 소실돼 75권의 책만 남았다. 그중 27권의 책이 1932년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로 돌아왔고,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 불교계, 민간기관의 합심과 줄기찬 반환 노력으로 오대산사고의 나머지 서책들도 대부분 돌려받았다. 이를 계기로 오대산사고의 전통을 잇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을 개관하면서 반출 당한 지 110년 만에 오대산사고본들이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나라를 잃으면 역사도 빼앗긴다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의 교훈이 오대산 정기에 실려 국민과 지도자들의 가슴마다에 닿기를 감히 소망한다.

조선 왕조의 다양한 기록을 살펴볼 수 있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전시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조선 왕조의 다양한 기록을 살펴볼 수 있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전시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내 손으로 직접 조선왕조실록을 완성해 볼 수 있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내 손으로 직접 조선왕조실록을 완성해 볼 수 있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월정사 전나무숲길, 상원사 적멸보궁 가시는 길이거든
월정사 전나무숲길, 상원사 적멸보궁은 부연설명이 사족(蛇足)일 터, 오대성산문을 통과하면 두 사찰을 향해 곧바로 직진하지 말고 잠시 차를 세우고 산중 인문학 거리에서 의미 있는 휴식을 취할 것을 권한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과 나란히 선 월정사성보박물관에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유물인 금동반가사유상’,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보물 제1811)’에서 나온 복장유물(보물 제1812),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의 복장유물(보물 제793, 명주적삼), 적멸보궁실 장엄물과 팔만대장경, 탱화와 여러 보살이 뜻밖에 관람객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다.

월정사 산문 오대성산.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월정사 산문 오대성산.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오대산먹거리마을에서 산촌 곤드레솥밥도 빼놓을 수 없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오대산먹거리마을에서 산촌 곤드레솥밥도 빼놓을 수 없다. 사진 / 황일민 사진작가

또 그 옆에 있는 한강시원지체험관에는 한강의 물이 시작되는 발원지(시원)인 오대산 수정암 옆의 샘 우통수(于筒水)’를 체험할 수 있다. 만약 진격의 먹방을 위한 식당이 필요하다면 박물관 바로 옆 식당가의 갖은 강원도 전통 산채(山菜) 음식 상차림이 대체로 비주얼이 정갈하고, 맛도 훌륭하다.

INFO 월정사성보박물관
관람시간 11~309:30~17:00, 4~1009:30~17:3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1, 설날과 추석 당일
관람료 무료
문의 033-339-7000

INFO 한강시원지체험관
관람시간 11~310:00~17:00 (입장마감 16:30), 4~1010:00~17:30 (입장마감 17: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1, 설날과 추석 당일
관람료 무료
문의 033-332-7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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