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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특집 ②] 최초 평신도 순교자 김범우 잠든 곳, 밀양 성모동굴교회
[특집 ②] 최초 평신도 순교자 김범우 잠든 곳, 밀양 성모동굴교회
  • 박상대 기자
  • 승인 2024.01.16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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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 시내에 있는 천주교 성지로 순례 여행을 다녀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경남 밀양 시내에 있는 천주교 성지로 순례 여행을 다녀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밀양] 밀양시내에 천주교 성지가 두 군데 있다. 일제강점기에 건립한 명례성당과 한국 최초 평신도 순교자인 김범우의 묘소와 동굴성당이 있다. 산중턱에 동굴을 파고 건립한 성당과 돌 세 개로 만들어 놓은 십자가까지.

뜻하지 않은 귀한 만남, 송기인 신부님
밀양시 삼랑진읍 사기점길은 예전에 용전리였다. 용전리 산에 한국 최초의 평신도 순교자 김범우의 묘소가 있다는 말만 듣고 달려갔다.

초행길이 종종 그렇듯 네비게이션을 따라 갔는 데도 막다른 길에 막히고 말았다. 동네 아주머니를 만나 김범우 순교자의 묘소를 찾아간다고 했더니 길을 잘못 들었다고 친히 길을 가르쳐 주신다. 그리고 저 앞에 기와집에 사는 신부님한테 이야기하면 동행해 주실지 모른다고 한다.

김범우 순교자 묘역 및 성지는 밀양군 삼랑진읍 용전리에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김범우 순교자 묘역 및 성지는 밀양군 삼랑진읍 용전리에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용전마을 회관 뒤에 있는 송기인 신부 거처. 송기인 신부는 삼랑진읍 성당 주임신부로 일했던 인연으로 퇴임 후에도 이곳에 살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용전마을 회관 뒤에 있는 송기인 신부 거처. 송기인 신부는 삼랑진읍 성당 주임신부로 일했던 인연으로 퇴임 후에도 이곳에 살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용전마을 회관 뒤에 있는 기와집의 조그마한 대문 앞에서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비둘기집처럼 생긴 작은 우편함을 발견했다. 우편함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송기인세 글자가 씌어 있다.

혹시 그 유명한 송기인 신부님? 노무현 변호사를 유명 정치인으로 인도했다는 대부? 어쩌면 동명이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송 신부님은 현역에서 진즉 은퇴했지만 건강하고 정정해 보였다. 80년대 삼랑진성당에 근무한 인연으로 김범우(토마스) 순교자의 묘소를 찾는 데 한 역할을 했고, 그 인근에 성당을 짓고, 2004년 이 집을 지어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이슬비가 내리는 초겨울에 예고 없이 찾아온 여행객들에게 신부님은 따뜻한 꽃차를 권한다. “우선 몸을 녹이고 차 한 잔 마시고 가요.”

김범우 순교자 성지가 조성될 때 현장을 지휘한 송기인 신부. 사진 / 박상대 기자
김범우 순교자 성지가 조성될 때 현장을 지휘한 송기인 신부. 사진 / 박상대 기자

산소 돌보는 외손을 만나서 확인한 순교자의 묘소
“80년대에 김범우 순교자의 흔적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지요. 프랑스 달레 신부가 쓴 책 <한국천주교회사>에는 김범우 유배지가 충청도 동쪽 끝자락단양으로 되어 있었죠. 그런데 단양은 임금의 별장이 있어서 귀양살이를 할 수 없다는 거야. 그런데 밀양에 단장면이 있어요. 그래서 혹시 단장을 외국인이 단양으로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지요. 그런데 단장에서 김범우 순교자의 외손이 나타났어요. 아버지대부터 벌초도 하고 산소를 관리한다는 거야.”

김범우 순교자의 묘소. 사진 / 박상대 기자
김범우 순교자의 묘소. 사진 / 박상대 기자
김범우 순교성지에는 한국천주교의 역사를 돌에 새겨 놓았다. 사진 / 박상대 기자
김범우 순교성지에는 성령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송기인 신부는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1990년 다른 연고자가 없는 그 묘소를 발굴했다. 유골이 있으면 후손들과 유전자 감식을 통해 김범우의 묘지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무덤에서는 작은 돌멩이 세 개와 치아 몇 개가 발굴되었다. 그런데 돌멩이 세 개가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치아는 부산대 의대를 거쳐 일본 나고야 대학에서 30대 남자의 치아라는 정보만 밝혀냈다. 다시 미국 펜실바니아 대학에 치아 주인에 관한 분석을 의뢰했는데 3~4년에 한 번씩 동이원소 검사를 한다고 더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다시 연세대 의대에서 검사했는데 결과는 30대 남자라는 점만 밝혀냈다.

한국천주교의 역사를 돌에 새겨놓았다. 사진 / 박상대 기자
한국천주교의 역사를 돌에 새겨놓았다. 사진 / 박상대 기자

결국 외손의 주장대로 무덤의 주인은 37세에 고문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사망한 김범우 순교자임이 밝혀졌다.

신앙생활 위해 자신의 집을 내어준 평신도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에서 김범우의 묘소와 순교자김범우기념으로 건립한 성모동굴성당 앞까지 가는 길에는 다른 성지에 있는 것처럼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천주교회의 역사를 돌에 새겨놓았다.

성모동굴성당 뒤에 있는 피정의 집. 사진 / 박상대 기자
성모동굴성당 뒤에 있는 피정의 집. 사진 / 박상대 기자

조선반도에 복음의 빛이 내린 것은 1779. 실은 17세기 초부터 중국을 오가던 사신들에 의해 한문 서학서(성경)가 수입되어 읽히기 시작했다. 1779년 성호 좌파의 유학자들이 천진암 주어사에 모여 한문 서학서에 대한 강학회를 가졌다. 그 결과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서서히 비쳐졌다.

김범우는 1751년 서울 남부의 명례방(현 명동 주교좌성당 부근)에서 중인 역관의 8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773년 역관중과시에 합격하여 역관으로 중국을 수 차례 다녀왔다. 그러던 중 이벽의 소개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목마른 여행객과 성도들을 위해 마련해 둔 식수. 사진 / 박상대 기자
목마른 여행객과 성도들을 위해 마련해 둔 식수. 사진 / 박상대 기자

이승훈·정약전·권일신·정약용 등과 최초의 신앙공동체인 명례관 공동체를 구성하여 서학(성경)을 공부했다. 1785년 김범우의 집에서 수십 명이 모여 서학을 공부하고 세례를 받고, 집회를 하던 중 형조 금리에 발각되어 붙잡혀갔다. 이것이 바로 1785년 봄에 일어났던 을사추조적발사건(일명 명례방사건)이다. 당시 다른 사람들은 사대부가 자제들이라 풀려났는데 중인 신분인 김범우는 옥에 갇혔다.

한국에서 하나뿐인 밀양 성모동굴성당
김범우는 감옥에서 모진 고초를 당했고, 유배생활을 하던 중 고문 후유증으로 얻은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2년만인 1787914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인 최초 평신도의 순교였던 것이다.

밀양 성모동굴성당 예배당. 벽면에 나무 십자가 대신 무덤에 있던 돌멩이 세 개 모형을 내걸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밀양 성모동굴성당 예배당. 벽면에 나무 십자가 대신 무덤에 있던 돌멩이 세 개 모형을 내걸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이전까지 한국 천주교 첫 순교자로 윤지충·권상연·윤지헌을 말했다. 202191일 전북 완주에서 이들의 무덤이 발굴되어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사실은 김범우의 순교가 4년 먼저였다고 밝혀진 것이다.

김범우 순교자의 묘소 앞, 산 중턱에 자그마한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순교자김범우기념 성모동굴성당이다.

처음에 여기에 성당을 짓겠다고 하니까 산림청이나 시청에서 산림 훼손 때문에 허가를 안 내주는 거예요. 그래서 산림을 훼손하지 않고 토굴을 파서 지으면 괜찮은지 물었더니 괜찮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동굴성당이 되었지요.”

성당 안에서 무인 판매하고 있는 기념품. 사진 / 박상대 기자
성당 안에서 무인 판매하고 있는 기념품. 사진 / 박상대 기자

당시 성당을 건립하고 봉헌할 때 현장을 지휘했던 송기인 신부는 산림을 훼손하지 않고 건립한 것이 오히려 잘한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20119월 부산교구 레지아의 협조로 성모동굴성당을 봉헌하였고, 최근 이웃에 교육관과 피정의 집, 십자가의 길이 완공되었다. 순교자들의 교육과 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기자가 취재하러간 날, 산안개가 성당을 품고 있었다. 환상적인 분위기와 달리 사진을 촬영하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히고 동행한 여행객들을 동굴성당 안으로 이끌었다.

밀양 성모동굴성당 앞에 있는 작은 연못. 사진 / 박상대 기자
밀양 성모동굴성당 앞에 있는 작은 연못. 사진 / 박상대 기자
밀양시 하남읍 명례안길 44-1에 있는 명례성당도 성지이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밀양시 하남읍 명례안길 44-1에 있는 명례성당도 성지이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예배당 앞면에 다른 곳에 다 있는 십자가 대신 돌맹이 세 개가 붙어있었다. 김범우 순교자의 무덤에서 발굴한 그 돌과 같은 모형이라고 한다. 영락없는 십자가였다.

INFO 김범우 순교자 묘역 및 성모동굴성당
위치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사기점길 50-100(용전리)
문의 055-356-7030(부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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