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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월드 트래블] 이래저래 한반도와 인연이 깊은 대한해협, 늘 푸른 섬 쓰시마
[월드 트래블] 이래저래 한반도와 인연이 깊은 대한해협, 늘 푸른 섬 쓰시마
  • 박상대 기자
  • 승인 2024.01.16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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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깝게 찾을 수 있는 대마도를 다녀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깝게 찾을 수 있는 대마도를 다녀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일본]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 땅 쓰시마(對馬島). 부산에서 49km 거리에 있는 쓰시마에 다녀왔다. 한국 관광객이 압도적인 숫자를 차지하고, 한국 관련 역사유적이 많은 맑고 고운 섬이다.

뱃길로 1시간 20분 거리에 있는 일본
부산항에서 이른 아침에 팬스타 쓰시마링크호에 몸을 올렸다. 낚시 가방과 아이스박스를 든 중년 남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갯바위 낚시하러 간다는 사람들이다.

대마도와 부산을 1시간 20분 안팎에 달리는 여객선. 사진 / 박상대 기자
대마도와 부산을 1시간 20분 안팎에 달리는 여객선. 사진 / 박상대 기자
쓰시마 북부에 있는 미우다 해변. 일본 아름다운 100대 해안에 뽑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쓰시마 북부에 있는 미우다 해변. 일본 아름다운 100대 해안에 뽑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잔잔한 물결을 가르며 여객선이 부산항을 빠져나간다. 한국과 일본 이전, 백제와 에도시대, 일본과 조선 사이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배를 타고 오갔을 바다를 가로질러 관광객을 실은 여객선이 달려간다. 누구는 문명과 문화 교류를 위해, 누구는 무역을 위해, 조선통신사들은 외교를 위해 이 대한해협을 오갔을 것이다. 또 일본 전쟁광들은 조선과 대륙을 침탈하기 위해 이 바다를 건너다녔다. 지금 여행객들은 관광과 쇼핑을 위해 이 바다를 건너고 있다.

1시간 여 항해하자 눈앞에 기다란 섬이 보인다. 쓰시마다.

히타카츠 항구마을 거리. 사진 / 박상대 기자
히타카츠 항구마을 거리. 사진 / 박상대 기자
쓰시마 북부에 있는 해변은 맑은 물과 아름다운 풍경을 지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쓰시마 북부에 있는 해변은 맑은 물과 아름다운 풍경을 지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여객선은 1시간 20분만에 쓰시마 북부(상대마도)에 있는 히타카츠항에 도착했다. 항구는 그리 크지 않다. 여객선 두 척, 어선이 서너 척 있다. 높은 건물도 보이지 않고 작은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섬의 크기가 우리의 거제도보다 1.8배 크다고 하지만 이곳이 가장 큰 도시가 아닌 탓에 항구는 커다란 포구가 아닌 작은 마을이란 인상을 준다. 역사적인 명성이나 살고 있는 인구도 하대마도에 있는 이즈하라가 더 큰 도시라고 한다.

히타카츠에서 7년째 살고 있는 고광용 사장이 손을 들어 반긴다. 고광용·윤일선 부부는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사거리에서 민박집과 도시락 전문 식당(토키세키)을 운영하고 있다.

히타카츠에 있는 토끼세키 음식점.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히타카츠에 있는 토끼세키 음식점.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쓰시마 생활 8년째인 고광용 토끼세키 대표는 민박집과 음식점을 운영하며 대마도 둘레길을 개척하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쓰시마 생활 8년째인 고광용 토끼세키 대표는 민박집과 음식점을 운영하며 대마도 둘레길을 개척하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쓰시마는 상대마와 하대마로 나뉘어 있는데 본래 하나의 섬이었다. 거대한 말 모양을 하고 있어서 대마도라 부르게 되었는데 사실은 사람이 살기 시작한 태초에는 하나의 기다란 섬이었다. 그런데 1672년 에도 시대 때 아소만 운하, 1900년 메이지 시대 때 만제키 운하를 파서 3개의 섬으로 나누어졌다.

그 운하 위로 빨간 다리(萬關橋. 만제키바시)가 연결되어 있고, 관광객은 자동차를 타고 건너거나 5분 거리를 걸어서 건너기도 한다.

미우다 해변과 도노사키 언덕
히타카츠의 토키세키네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길을 나선다. 첫날은 히타카츠 인근에서 시간을 보내고, 이튿날은 이즈하라까지 다녀올 생각이었다.

쓰시마 북부 해변에 있는 스톤아트해변. 작은 그랜드캐니언 모습을 하고 있는데 관광객은 별로 찾지 않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쓰시마 북부 해변에 있는 스톤아트해변. 작은 그랜드캐니언 모습을 하고 있는데 관광객은 별로 찾지 않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1996년 일본 아름다운 해안 100선에 선정된 미우다 해변. 해수욕이 가능한 모래 해변이다. 여름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캠핑을 하고, 인근 호텔에서 숙박하면서 해수욕을 즐긴다고 한다. 모래가 곱고 물이 아주 맑다. 수심이 깊지 않아서 해수욕하기에 참 좋은 해변이라고 한다.

쓰시마를 여행하는 동안 여러 해변을 마주했는데 대체로 물이 맑았다. 미우다 해변 언덕 위에 호텔과 온천 사우나가 있다. 바닷가 언덕에는 겨울에 피는 털머위가 노랗게 피어 있다.

대마도에는 한일교류의 흔적이 많이 있다. 왕인 박사가 머무르다 갔다는 마을은 왕인 박사의 이름을 빌려 지었고, 마을에 현장비를 세웠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대마도에는 한일교류의 흔적이 많이 있다. 왕인 박사가 머무르다 갔다는 마을은 왕인 박사의 이름을 빌려 지었고, 마을에 현장비를 세웠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쓰시마 해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털머위꽃. 사진 / 박상대 기자
쓰시마 해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털머위꽃. 사진 / 박상대 기자

미우라 해변에서 차를 타고 동쪽으로 10분여 가자 쓰시마해전 유적지 도노사키 언덕이 있다. 쓰시마 해전은 1905년 러시아와 일본군이 치른 러일전쟁 때 해전을 말한다.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 북해에서 수십 일 동안 달려온 러시아 해군(발트함대)은 쓰시마에서 매복하고 있던 일본 해군의 공격을 받고 크게 패배했다. 러시아 군함은 일본군의 공격에 침몰했고, 많은 군사가 죽었는데 당시 생존한 러시아 병사들이 도노사키 언덕으로 헤엄쳐 올랐다고 한다.

일본군과 러시아군은 이곳에서 러시아의 항복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리고 평화협정에 사인하는 모습을 담은 평화[友好]기념비와 사망한 러시아군 위령비를 세워놓았다.

러일전쟁 때 러시아해군이 참패한 쓰시마해전 현장 언덕에 있는 노도사키공원. 사진 / 박상대 기자
러일전쟁 때 러시아해군이 참패한 쓰시마해전 현장 언덕에 있는 노도사키공원. 사진 / 박상대 기자

해변을 따라 걷는 산책로가 있는데 동백을 비롯한 난대림이 원시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검은색 현무암과 파란 바닷물,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TIP 긴급 상황발생 시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후쿠오카 대한민국 총영사관
82-2-3210-0404

재일대한민국민단 쓰시마지부
81-90-7421-1006

재일한국민단 대마지부 고창현 사무부장. 여행하다 사고나 어려움에 처한 한국인들을 돕는 봉사단체다. 한국 여행객들이 품위를 지켜주면 좋겠다고 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재일한국민단 대마지부 고창현 사무부장. 여행하다 사고나 어려움에 처한 한국인들을 돕는 봉사단체다. 한국 여행객들이 품위를 지켜주면 좋겠다고 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부산항 불빛이 보이는 한국전망소
쓰시마는 한국 부산과 49km 거리에 있는 섬이다. 북서쪽에 있는 해안가 마을이나 해안도로에서는 어렵지 않게 부산항을 바라볼 수 있다. 날씨가 맑은 날은 부산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이고, 야간에는 부산시의 야경이 훤히 보인다. 특히 광안대교의 야경과 불꽃놀이 모습은 보는 이들이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그런 까닭에 쓰시마에는 여기저기 한국전망대가 있다. 북부지역 해안선을 따라 달리다 보면 한국전망소가 있다. 언덕 위에 한국형 지붕을 이고 있는 팔각정이 있다. 팔각정 주차장에 있는 자판기에서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판매한다.

북부지역에 있는 한국전망소에서 멀리 부산항이 보인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북부지역에 있는 한국전망소에서 멀리 부산항이 보인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쓰시마에도 해안가에 여행객을 위한 산책로가 만들어지고, 작은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쓰시마에도 해안가에 여행객을 위한 산책로가 만들어지고, 작은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북부지역에 있는 한국전망소. 날씨가 좋은 날에는 부산항이 잘 보인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북부지역에 있는 한국전망소. 날씨가 좋은 날에는 부산항이 잘 보인다. 사진 / 박상대 기자

한국전망소 아래 왼쪽으로 작은 어촌마을이 있다. 전복과 해삼, 소라 등을 잡아 파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이곳이 백제의 왕인 박사가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가져와 대륙문화를 가르쳐줄 때 처음 발을 디딘 곳이다. 왕인 박사는 이곳에서 며칠 머무르다 일본 본토로 가서 일왕인 우지노와 키아라츠코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백제의 문화와 문명을 전해준 왕인 박사에 대한 명성을 잊지 않고 일본 사람들이 마을 이름을 와니우라(왕인 항구)라 지었고, 이곳에 현창비(顯彰碑)를 세워 놓았다.

제주4.3사건 때 희생자들의 시신이 쓰시마 해안까지 떠밀려왔다고한다. 시신을 가매장한 후 일본인들이 망향비를 세워 영혼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제주4.3사건 때 희생자들의 시신이 쓰시마 해안까지 떠밀려왔다고한다. 시신을 가매장한 후 일본인들이 망향비를 세워 영혼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쓰시마 서해안에는 아름다운 해넘이 광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쓰시마 서해안에는 아름다운 해넘이 광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이즈하라에 있는 조선통신사 기념관. 총 12회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다고 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이즈하라에 있는 조선통신사 기념관. 총 12회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다고 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쓰시마 북부해안을 여행하는 동안 오랜 침식과 파도에 씻겨나간 아름다운 바위 해변이 있고, 제주4.3사건 때 두세 사람씩 손이 묶인 한국인 시신이 떠밀려와서 마을 주민들이 가매장해 주었다는 해안이 있다. 이곳에는 유골로도 돌아가지 못한 한국인을 위로하는 작은 망향비가 서 있다.

쓰시마에서 가장 큰 포구마을 이즈하라
쓰시마시에는 6개 읍이 있는데 이즈하라는 가장 큰 포구마을이다. 쓰시마 시청과 쇼핑센터, 음식점과 유흥업소 등 도시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 조선통신사 역사관과 덕혜옹주결혼기념비, 면암 최익현 순국비가 세워진 슈젠지(修善寺) 등 한국과 인연이 있는 사적들이 있다.

이즈하라에 있는 덕혜옹주 결혼식 기념비. 사진 / 박상대 기자
이즈하라에 있는 덕혜옹주 결혼식 기념비. 사진 / 박상대 기자

고종의 늦둥이 딸인 덕혜옹주는 고종이 승하한 후 10살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은 덕혜옹주에게 신교육을 시키겠다며 일본으로 데려갔고, 성인이 되자 쓰시마의 번주 다케유키 백작과 억지 결혼을 시켰다. 결혼생활 중 딸을 하나 낳았으나 실종되었고, 고국을 그리워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비참한 생활을 했다. 남편과 이혼하고, 심신이 망가진 체 해방 후에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곧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남편의 고향인 이곳에 결혼축하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덕혜옹주가 이곳을 방문한 것도 겨우 한 번 뿐이라는데.

을사늑약 후 항거하다 일본으로 끌려온 최익현 선생이 단식투쟁하다 순국한 이즈하라 수선사에 선생의 순국비가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을사늑약 후 항거하다 일본으로 끌려온 최익현 선생이 단식투쟁하다 순국한 이즈하라 수선사에 선생의 순국비가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그 이웃에 조선통신사기념관이 있다. 조선통신사는 모두 12회 쓰시마를 거쳐 일본을 다녀갔다.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을 오가며 조일 간에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 역사적 자료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최익현 순국비가 있는 수선사는 작은 사찰이다. 1906년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켜 저항한 최익현 선생은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쓰시마 이즈하라로 호송되었다. 간수가 상투를 자르려고 하자 내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르지 못한다라고 말하고, “적이 주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면서 단식을 감행해 31일만에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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