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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특집 ①] 낙동강 옆 양산 골목 여행, 양산 순매원
[특집 ①] 낙동강 옆 양산 골목 여행, 양산 순매원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4.02.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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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면 매화 개화와 함께 문을 여는 양산 순매원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3월이면 매화 개화와 함께 문을 여는 양산 순매원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사진 / 양산시청

[여행스케치=양산] 제철 과일처럼 여행에도 제철이 있다. 아니, 꼭 제철이 아니어도 여행은 그냥 좋다. 성수기를 피하면 오히려 한갓진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가끔은 낯선 옆 동네에서조차 여행의 설렘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제철이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딱 그때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쌍계사가 있는 하동 화개에서 3년을 살았던 적이 있다. 이사 간 첫해 봄, 새하얀 벚꽃이 십 리를 빼곡히 채웠던 어느 날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아침 일찍 벚꽃길 옆 목욕탕에 갔다가 2시간 후쯤 나온 적이 있다. 20년 전, 그때의 나는 고슬고슬 갈색 털이 달린 고무신에 후줄근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불과 2시간 사이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벚꽃만큼 화사한 상춘객들 사이를 목욕 바구니를 들고 걸어야 했던 시절. 봄은 그렇게 당혹스런 추억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원동역 앞에 그려진 벽화.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원동역 앞에 그려진 벽화.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마을 곳곳에 세워진 이정표. 산 아래 배내골은 벚꽃이 예쁜 곳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마을 곳곳에 세워진 이정표. 산 아래 배내골은 벚꽃이 예쁜 곳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원동, 매화와 미나리의 거리
편리함에서는 자가용을 따라갈 수 없지만, 원동 여행은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역에서 내려 600m만 걸으면 매화축제로 유명한 순매원에 닿기 때문이다. 겨우내 문이 닫혔던 순매원은 3월에 활짝, 꽃향기와 함께 문이 열린다. 그 외의 계절엔 꽃도 없고 문도 닫히지만 벚꽃 가로수를 따라 걷기에도 좋고, 카페 할리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가끔 발아래 기차가 지나는데, 기차가 지날 때마다 커피향과 함께 꽃향기가 날린다.

광양 청매실농원에 비하면 양산 순매원은 규모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만큼 아기자기 어여쁘다. 청매실에 섬진강이 있다면 순매원엔 낙동강이 있다. 섬진강 옆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가 극찬한 19번 도로가 나 있고, 낙동강 옆엔 역시 유 교수가 최고로 꼽은 철길이 있다. 봄은 길과 길을 따라, 또 강과 강을 따라 북상 중이다. 취재를 위해 찾은 날은 아직 겨울에 머물러 있지만 조만간 남쪽에서 살랑살랑 봄이 올라오겠지.

원동 카페 '커피푸른창'엔 바느질 소품 등 볼거리도 많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원동 카페 '커피푸른창'엔 바느질 소품 등 볼거리도 많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원동역 대합실에 걸린 사진들. 마을의 역사가 한눈에 보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원동역 대합실에 걸린 사진들. 마을의 역사가 한눈에 보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순매원에서 행정복지센터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철길로 막힌 왼편에 ‘50년 전통참기름 가게를 포함해 낮은 키의 점포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참기름 가게 앞에선 고소한 냄새가 난다. 미나리 삼겹살 간판도 보인다. ‘꼬르륵뱃속이 반응을 한다. 원동에 매화가 피기 전, 파릇한 미나리가 먼저 여행객을 맞는다. 기름진 삼겹살 위에 향긋한 미나리 듬뿍! ‘원동청정미나리축제는 매화축제보다 빠른 2월 말에 열린다.

도로 우측엔 ‘7080 만화벽화거리가 나 있다. 동네가 작아 어디로 들어가든 큰길로 나오게 되어 있다. 길 잃을 염려 없이, 아니 길을 잃어도 좋다. 골목에서 추억의 캐릭터를 더듬어 올라가면 커피푸른창카페에 닿는다. 딸기를 가득 얹은 라떼를 앞에 두고 창밖에 펼쳐진 마을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영포마을 매화도 좋습니다. 배내골 벚꽃도 예뻐요. 가야진사 목련이 필 땐 사진 찍으러들 많이 오세요. 자전거 도로도 일품이고요.” 바느질을 잠시 멈춘 주인의 귀띔이다. 하아, 아무래도 원동에 다시 와야겠다. 그 수밖엔 없을 듯하다.

원동행정복지센터에 활짝 핀 매화.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원동행정복지센터에 활짝 핀 매화.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물금, 오봉산에서 부르는 이름 견우
물금이 꼭 봄이랑 연결된 여행지는 아니지만 원동과 기차로 10분 거리여서 원동에 왔다면 물금까지 함께 다녀오는 게 좋다. 읍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오봉산(533m)엔 전지현 차태현 주연의 영화 <엽기적인 그녀> 촬영지가 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이 장면 견우야, 미안해. 나 정말 어쩔 수가 없나 봐.” 입가에 두 손을 모으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사를 이어갔던 2001년의 전지현 명대사 말이다. 지금은 데크가 세워져 더 많은 이들이 안전하게 쉬어갈 수 있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그 끝에 서서 손을 모으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 장소였던 물금 오봉산 전망대.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 장소였던 물금 오봉산 전망대.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물금역에서 산행 초입인 용국사까진 걸어서 갈 만큼 가깝지만 인도가 없어 위험하다. 택시를 타도 5,000원을 넘지 않으니 이 편을 추천한다. 용국사를 거쳐 갈 수도 있고, 도로에서 곧장 산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전망대까지는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한데다 길도 좋아 물금까지 왔다면 반드시 가보는 게 좋다. 영화 장면을 흉내 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말 그 끝에 서면 산자락을 휘돌아 흐르는 낙동강의 풍경이 기가 막히게 좋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여 산불감시초소 근무자에게 전망대 가는 길을 묻는다. 초소에 빗자루를 두고 등산로를 청소할 만큼 부지런한 어르신이 타지 손님을 맞는다. 전직 정원관리사답게 주변 잡목을 정리하고 때죽나무와 진달래에 공을 들였단다. “발바닥이 시렵다는 맨발 산행객들의 요청에 따라 치웠던 낙엽을 다시 등산로에 깔아둔 적도 있다니 대단하단 생각뿐. “꽃이 피면 완전 낙동강 위에 꽃잎과 함께 떠 있는 기분입니다.” 칠순의 초소 관리인은 혼자 온 손님을 전지현 자리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준다. 찍히는 것엔 한없이 어색해 어정쩡한 자세로 요리조리 몸을 돌린다. 하늘도 강물도 색이 짙다. 가만히 서 있어도 가슴이 뚫리는 조망이다.

물금 서부마을에 있는 서리단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물금 서부마을에 있는 서리단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맛집과 카페가 있는데다 거리도 짧아 걷기에 좋은 물금 골목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물금 골목길은 맛집과 카페가 있는데다 거리도 짧아 가볍게 걷기에 좋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봄을 닮은 작은 마을, 서리단길
땀을 뺐으니 채울 게 필요하다. 조심히 도로를 건너 서리단길로 간다. 물금 동쪽에 동부마을이 있다면 서쪽엔 주요 기관이 밀집된 서부마을이 있는데, 서리단길은 그 서부마을에 있다. 고층 아파트와 번화가 옆 골목길은 거리가 짧아 걷기에도 좋고, 걷다가 아무 곳에나 들어가 먹고 마시기에도 좋다. 고기가 곁들여진 한상차림집도 있고, 일본식 돈카츠와 동파육덮밥이 맛있는 집, 국숫집과 어탕집도 있다. 가볍게 먹을 피자와 토스트, 베이커리를 겸한 카페, 작은 사진관도 있고 책방도 있다. 무료로 운영되는 주차장도 있어 차를 갖고 와도 좋고, 기차를 타고 와도 좋다. 서리단길에서 물금역까지는 걸어서 10분이 채 되지 않는다.

대로 옆 골목에 아기자기 모인 서리단길의 다양한 가게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대로 옆 골목에 아기자기 모인 서리단길의 다양한 가게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카페 '순수알곡'. 2층 자리에선 물금의 명산 오봉산이 보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카페 '순수알곡'. 2층 자리에선 물금의 명산 오봉산이 보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동파육과 돈카츠와 목살정식 집은 모두 사거리에 있다. 마치 일생일대의 고민을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로 갈팡질팡하다, 라이온식당으로 들어선다. 서점에 들러 책도 보고 종이 냄새 가득한 공간에서 커피도 마신다. 보글보글 난로 위 주전자는 뿌연 김을 내뿜으며 온기를 쏟아냈고, 작은 창으로 봄을 재촉하는 볕이 눈부시게 흘러넘쳤다.

카페를 겸하는 독립서점 '기빙트리'. 봄을 재촉하는 따스한 볕이 창가를 뚫고 들어와 책 표지 위에 하나씩 앉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카페를 겸하는 독립서점 '기빙트리'. 봄을 재촉하는 따스한 볕이 창가를 뚫고 들어와 책 표지 위에 하나씩 앉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작고 낮아 보이지만 의외로 넓은 '기빙트리'. 월요일엔 문을 열지 않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작고 낮아 보이지만 의외로 넓은 '기빙트리'. 월요일엔 문을 열지 않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Editor's Pick

여긴 꼭 가야돼! 원동&양산 핫플레이스
햇살 머금은 커피푸른창
원동에 있는 카페로 2층에 있어 조망이 좋다. 주인이 직접 만든 손뜨개질 제품과 다양한 소품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파인애플크래미샌드위치, 아이스크림와플, 수제과일 요거트, 치즈케이크 등을 판매한다. 아메리카노 4500, 딸기라떼와 딸기토스트는 합쳐서 12000. 화요일엔 문을 열지 않는다. 순매원 가는 길에 할리스, 원동행정복지센터 옆엔 매화담카페가 있다.
주소 경남 양산시 원동면 원동마을1

정갈한 한상 차림 라이온식당
물금 서리단길에 있다. 아시안 퓨전 스타일로 한식 베이스에 일식과 중식을 섞은 메뉴를 선보인다. 15가지 향신료를 넣어 만든 동파육덮밥(15000)이 대표 메뉴이며, 그 밖에 꽃등심덮밥, 새우장덮밥 등이 있다. 쉬는 날은 따로 없지만 오후 3시부터 5시까진 영업하지 않는다. 1인분 식사도 가능하다.
주소 경남 양산시 물금읍 화산길 23
문의 0507-1358-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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