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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40년 만의 AGAIN 수학여행, 그 일탈의 흔적들
40년 만의 AGAIN 수학여행, 그 일탈의 흔적들
  • 글 설성현 / 사진 천기철
  • 승인 2016.12.0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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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같았던 제주도에서의 1박 2일
[여행스케치=제주] 그것은 설렘이었다. 심장이 요동치고 아찔한 현기증을 일으키는 첫사랑의 황홀한 그것과는 달랐다. 오히려 가끔 들러 찐한 사골국물 한 사발로 추위와 허기를 달래던 익숙한 동네 설렁탕집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었다.
 
40년 만에 고교 시절 수학여행을 다시 해보자는 고교 동창회 단톡방을 보고 처음엔 실소했다. ‘어떤 놈이 쓰잘데기 없는 소리하고 있네…’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애썼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막연한 그리움인지 떨림인지 구분할 수 없는 뭔가가 가슴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돌연 가슴이 소용돌이친다. 뜬눈으로 새운 이튿날 아침 함께 갈 친구들을 기다리는데 마누라가 따라나선다. 40년 만의 일탈에 잠못 이루는 모습이 안쓰러웠나 싶다. 오전 8시 목포항 집결을 위해 7시에 광주에서 친구 차에 편승해 목포로 향했다.
 
40년 세월을 지나 다시 만난 친구들
기대와 설렘으로 50여 분을 달리니 목포항이다. 차에서 내리는데 뒤통수에 고함소리와 욕지꺼리들이 꽂힌다. 막무가내로 쏟아내는 험한 소리들이 왜 이리도 반갑고 정겨운지. 얼굴과 이름을 쉽게 연결하지 못하는 약간의 어색함도 각자의 가슴에 명찰이 내걸리며 안도(?)로 바뀌었다. 깊게 눌러쓴 모자속에 감춰진 ‘홀라당 머리’에 박장대소다.
 
선상에서 회포를 풀고 있는 친구들. 사진 / 천기철
들뜨고 흥분되고 열의가 충만한 감정이 친구들의 목소리와 과장된 행동에 드러난다. 40년을 견뎌온 안색들이 초라하다. 얼굴엔 깊은 주름이 팼고 탱탱하던 피부는 탄력을 잃었다. 그럼에도 낯익은 친구나 가물가물한 친구나 그대로 그저 반갑고 고맙다. 삿대질도, 거친 몸싸움도, 뜨거운 포옹도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40년 세월의 거리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까까머리 그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 들뜨고 흥분된 감정이 친구들의 목소리와 과장된 행동에서 역력히 드러난다. 그들과 함께 목포와 제주를 오가는 초대형 여객선 산타루치노호 일반실 2칸에 나눠 자리를 잡고 유유히 흐르는 파도에 몸을 맡긴다.

이번 수학여행은 목포 동창회에서 기획했다. 서울과 인천, 광주 등지에서 48명이란 절대 적지 않은 숫자가 모였다. 목포 동창회에서 준비한 안주와 술로 거방진 술판이 시작되고, 광주 친구가 준비한 통닭과 머리고기도 곁들여졌다. 한쪽에선 고스톱판도 벌어져 왁자지껄 흥을 돋웠다. 시시껄렁한 세상사와 40년간 묵혀뒀던 일상을 화제로 맥주 한 잔에 행복해지니 다섯 시간 가까운 뱃길이 오히려 짧게만 여겨졌다.
 

두 번째 수학여행, 제주도로 향하다

여행 첫 날, 송악산에 올랐다. 사진 / 천기철
길을 오르다 찍은 기념사진. 사진 / 천기철
제주항에서 하선해 오후 2시 15분 제주관광에 나섰다. 첫 번째 여행지인 송악산에 도착, 올레 10코스를 걷는다. 아스라한 수평선과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마라도와 가파도를 바라보며 ‘마라도 자장면’ 얘기 하나에도 모두 하나가 된다. 코스 막바지에 허름한 횟집에 들러 빈약한 안주에도 길게 술잔을 주고받는다. 고함을 마시는지 술을 마시는지 모른 채 몇 잔 들이켜고, 단체 사진 한 컷으로 첫 코스를 마무리한다.

송악산을 벗어나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안덕계곡을 잠깐 들렀다. 용암으로 둘러싸인 계곡을 빠져나왔으나 주차장을 찾지 못해 헤매다 겨우 버스를 찾았다. 길을 잘 안다며 앞장섰던 친구는 버스 기사의 “길을 잘 안다는 사람들이 꼭 일행들을 헤매게 한다”는 핀잔에도 개의치 않아 보였다.
 
왁자지껄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저녁식사 시간. 사진 / 천기철
저녁은 식당 3층을 독차지하고 흥겹게 펼쳐졌다. 부드럽게 삶아 내온 돔베고기와 굵은 갈치구이는 술을 불렀고, 고등어 조림과 미역국은 술에 취한 내장을 달랬다. 목포 회장의 환영인사와 총무의 경과보고, 광주와 서울 대표의 답사, 그리고 자발적 찬조자들의 인사말이 감동적으로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고조됐다. 고조된 분위기 속을 뚫고 들려온, “고교시절, 가정 사정으로 수학여행을 가지 못해 이번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참석했다”는 친구의 나지막한 고백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거나한 저녁이 끝나고 숙소로 향했다. 한바탕 소동 끝에 각자 방에 짐을 풀고 저녁 시간을 맞았다. 시끌벅적한 데다 술판을 벌이다 보니 해프닝은 자연스러운 현상. 술을 따르는데 술이 나오지 않아 젓가락으로 구멍도 내보고, 주둥이를 빨아보기도 하며 술병과 씨름했다. 술 구멍을 뚫었으나 결국 빈 술병. 다른 친구 두 명이 미리 한 병을 비운 것을 모르고 만취한 주당들이 빈 병을 들고 소동을 벌인 것이다.
 
꿈만 같았던 1박 2일의 여행을 마치며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한림공원으로 향했다. 식물원과 분재원, 수석관, 천연기념물인 협재ㆍ쌍용동굴을 차례로 돌며 이색적인 볼거리에 눈 호강을 만끽했다.
 
한림공원의 쌍용굴 내부. 사진 / 천기철
제주도에 오면 빠질 수 없는 흑돼지구이도 먹었다. 사진 / 천기철

점심은 흑돼지구이. 인천과 광주에서 온 친구들이 감사의 표시로 앞다퉈 밥값을 치렀다. 흥에 겨웠는지, 아쉬움 때문인지 한 친구가 ‘유달산’을 노래한다. 답가로 ‘아파트’ 한 곡도 추가됐다. 식사가 마무리될 때쯤 모두는 벌써 진한 아쉬움과 재회의 기약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잇따른 건배사에서 친구들은 40년 만의 화려한 일탈과 자유로운 비상에 감격했고, 길게 남을 여운에 전율했다.

송악산 들머리에서 기념사진 한 컷. 사진 / 천기철
점심 후 제주항으로 향했다. 제주항으로 향하는 버스에서는 무반주 음악회가 펼쳐졌다. 멋들어진 노래 한 곡에 취했으나 다음 친구가 길게 박자를 늘어뜨리다 쏟아지는 비난에 중도에 그만두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여기서 노래를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나섰다”는 친구의 얘기에 덜컥 가슴을 쓸어내리던 친구들은 유창한 팝송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왁자지껄, 옥신각신, 좌충우돌, 북새통같던, 그러나 꿈만 같았던 제주에서의 1박 2일 일탈을 목포행 산타루치노호에 몸을 실으며 일상으로 리셋한다. 미진하게 감지되는 여객선의 흔들림처럼 가슴 저 밑바닥에서 치밀어오르는 정체모를 뜨거움을 진하게 느낀다. 사랑한다,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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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성현은 목포고 27회 졸업생으로 다문화정책 박사이며 전 경향신문 기자·서울경제신문 기자로 재직했다.
천기철은 목포고 27회 동창이며, 월간 <사람과 산>에서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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