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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8월호
[만화 속 배경 여행] 자전거 소재로 3년간 연재된 '내 파란 세이버'의 무대, 영동에 가다
[만화 속 배경 여행] 자전거 소재로 3년간 연재된 '내 파란 세이버'의 무대, 영동에 가다
  • 서찬휘 여행작가
  • 승인 2019.01.31 11: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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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성장기와 철학적 화두 담은 작품 '내 파란 세이버'
맑은 내와 저수지를 품은 산속 마을 지촌리
만화 속 인물이 자전거로 달렸던 도덕재와 도마령
만화 속 주인공인 대한이 자전거를 타고 누볐던 도마령. 사진제공 / 영동군청
만화 속 주인공인 대한이 자전거를 타고 누볐던 도마령. 사진제공 / 영동군청

[여행스케치=영동] 어렸을 적 멀미가 심해 자전거로 하루 20km 가까이 자전거로 통학하던 때가 있었다. 자전거 도로도 딱히 없던 그 시절 차도 위에서 아찔한 짓을 자주 해서 참 많이 혼나기도, 다치기도 했다. 학교는 싫었어도 자전거 안장 위에서라면 어디든 날듯이 달릴 수 있었던 그 느낌만은 지금도 가끔 그립다. 이번 여행지는 자전거에 관한 로망을 대리충족하고 싶을 때 꺼내드는 만화 <내 파란 세이버>의 배경지인 충북 영동이다.

<내 파란 세이버>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그린 만화 장인 박흥용의 작품이다. 자전거를 소재로 삼은 만화 중 국내에서 손꼽히는 이 작품은 자전거 경주와 탁월한 신체 묘사로도 정평이 났다. 

작품은 1970년대 영동을 무대로 삼는다. 중화 요릿집 아들 최대한이 일제강점기 한국 상공에서 비행한 최초의 한국인 비행사 ‘안창남’처럼 비행기를 운항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가 전학 온 여학생이 타던 자전거에 끌려 자전거의 세계에 들어서는 이야기이다.

박흥용 작가의 만화 '내 파란 세이버' 표지.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박흥용 작가의 만화 '내 파란 세이버' 표지. 사진제공 / 바다그림판

소년, 자전거 위에 오르다
비행기의 이름이었던 ‘세이버’의 이름을 몰라 ‘쌕쌕이’라 부르던 비행기의 조종석 대신 자전거 핸들을 쥐고 다니기 시작한 대한은 타고난 체력과 체격, 승부욕과 간 비대증까지 갖추어 이윽고 두각을 드러낸다. 

하지만 사이클 부 가입 여부를 걸고 사이클 부 선생과 벌인 시합에서 동네 거지를 치어 죽이는 사고를 내면서 그만 자기 손으로 앗은 생명의 무게에 짓눌리고 만다. 작품은 이렇게 자전거 시합을 묘사하는 것 외에도 소년의 성장은 물론, 생명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과 성찰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내 파란 세이버>는 그와 같은 성찰의 도구로 자전거를 활용하고 있다. 대한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자전거를 타는 것의 의미’를 찾아다닌다.

한편, 작품이 다루는 것은 인물의 내면만이 아니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 그 산업화에서 밀려난 산골 마을에 자전거 사업체와 각종 이익집단들이 자전거 경주 도박, 즉 사설 경륜 사업을 꾀하는 사건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한 일본이 경륜으로 사기 진작과 재정 확보 등의 성과를 낸 것을 본 이들이 이 땅에서도 결과를 기대하며 벌인 일이다. 

대한이 어린 시절 포대나 짚단을 타고 미끄럼 타던 동네, 지촌리.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대한이 어린 시절 포대나 짚단을 타고 미끄럼 타던 동네, 지촌리.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산속 작은 마을 지촌리의 풍경.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산속 작은 마을 지촌리의 풍경.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대한의 적수로 등장했던 동네 형 영식은 반독재 투쟁을 하던 운동권 연인의 도피자금을 대기 위해 불법 경륜에 손을 댔다가 하반신 불수가 된다. 이 사건은 대한이 자전거를 타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사실 대한의 가족이 편모 가정인 까닭도 아버지가 민주화 투쟁을 하다 죽었기 때문이다.

작품은 이렇듯 어린 인물들의 행동 속에 시대가 만든 어른의 사정들을 촘촘히 깔아놓아 소년 소녀들의 성장기를 설득력 있게 만들어낸다. 

Tip 만화 <내 파란 세이버>
박흥용 글ㆍ그림, 바다그림판 펴냄

1998년부터 청소년 만화잡지 영챔프에 3년간 연재되었다. 대원씨아이에서 나온 단행본은 모두 10권이며, 2007년 바다그림판에서 고급판으로 재판된 것은 전 5권이다. 스포츠 장르로서만이 아니라 생명에 관한 철학적 화두를 던지는 작가주의적 작품으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9년에 열린 제1회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가의 고향 곳곳에서 태어난 만화 속 배경
영동은 박흥용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가 1961년에 태어났으니 작중 배경은 작가의 소년기, 청소년기를 고스란히 관통한다. 작품 속에서는 황간, 대전을 비롯해 영동 주변 지역들도 곧잘 등장하지만 주 배경이 되는 곳은 영동의 크고 작은 ‘길’들이다. 

사전에 아무리 지도를 펼쳐놓고 조사를 해도 딱 맞아떨어지는 곳을 찾기 어려웠고,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실제 배경이 되었음직한 장소도 다르긴 마찬가지다. 일례로 영동역은1999년 신축해 작품 속 묘사와는 모양새가 적잖게 달라져 있다. 

용화양강로의 정상인 도덕재.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용화양강로의 정상인 도덕재.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해발 450m인 도덕재에 올라 바라본 풍경.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해발 450m인 도덕재에 올라 바라본 풍경.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설 자전거 대회라는 소재도 영동과 역사적으로 반드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시대 배경 상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동원한 셈인데, 실제로 국내 자전거 인구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게 한참 뒤임을 생각하면 이 작품이 보여준 자전거 묘사는 역사와는 별개로 굉장히 선구적인 면이 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들이 왜 이 작품을 성서처럼 여기는지를 짐작게 하는 부분이다. 

물론 일본이 경마를 응용한 경륜을 도입해 성과를 냈다는 부분은 사실이고, 작품은 이를 응용해 영동의 당시 현실적인 부분과 맞물려놓은 셈이다. 영동에서는 그 시절에 차는 물론 오토바이도 거의 없어 통학과 출퇴근, 배달 등이 모두 자전거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당시 어린이용 자전거가 없었던 탓에 어린이들은 어른용 자전거를 고쳐서 쓰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 부분은 작품 초반에도 언급된다.

작품 속 영동의 ‘길’ 따라 가기
실제 배경이 된 곳은 아니지만, 모티프가 된 공간이 있을 터여서 그 지점을 물어 찾아가 보았다. 먼저 찾은 곳은 대한이 어린 시절 포대나 짚단을 타고 미끄럼 타던 양강면 지촌리다. 작중에서는 ‘읍내에서 10리길’ 정도로 묘사된다. 

박흥용 작가는 “절벽처럼 깎아지른 듯한 자리와 그 아래 일대에는 이후 과수원이 들어서 과거의 흔적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맑은 내와 저수지를 끼고 산 속 깊숙이 자리한 세 마을의 풍경에서 어린이들이 어떻게 뛰놀았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대한이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고, 다른 사이클 선수들을 긴장시키기 시작하는 장면부터 등장하는 꼬불꼬불한 고갯길은 범화리에서 출발해 정상 도덕재를 거쳐 무주로 넘어가는 길이다.

용화양강로에서는 아찔한 고갯길이 이어진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용화양강로에서는 아찔한 고갯길이 이어진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대한의 시합이 열렸던 곳인 영동고등학교 교정.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대한의 시합이 열렸던 곳인 영동고등학교 교정.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이곳의 이름은 용화양강로로, 조동리를 거치는 49번 국도의 정상 도마령과 산악자전거 동호회에서 꽤 애호하는 코스로 꼽힌다. 용화양강로의 정상인 도덕재는 해발 450m, 도마령은 해발 800m에 달한다. 자동차 드라이브 코스로도 버거운 이 길을 자전거 코스로 생각하면 정말 끔찍한 난도를 자랑한다. 대한은 이런 곳을 매일 돌아다니며 체력을 다진 셈이니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한편, 영동역에서 동쪽으로 100m 정도 이동하면 영동고등학교와 중학교 교정이 나온다. 만화 속에서 대한의 군 사이클부 가입 여부를 가늠하는 시합이 열렸던 학교다. 현재 학교 운동장에는 트랙은 없고 인조 잔디가 깔려 있다.

영동고등학교 뒤편에는 삼봉천이 흐르고 있다. 영동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서쪽의 영동천과 만나는 이 개울은 영동역 쪽을 거쳐 지나가는 경부선 철도와 만난다. 작중 인물들은 하천 위로 지나가는 철길을 걷기도 하고, 자전거로 달리기도 한다. 굴다리 아래 역시 인물들끼리 시비가 붙는 등 중요한 배경지로 쓰인다. 개울을 건너 기찻길 옆을 따라 걷다 보면 작중 황천고개의 모델이 되었음 직한 도로를 만난다. 바로 영동과 황간 사이를 잇는 영동황간로다. 

영동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르는 삼봉천.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영동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르는 삼봉천.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현재 이곳에서 옛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나 도로를 다시 한번 밟으며 어린 시절부터 숱한 시합을 하고, 페달을 밟았을 대한을 생각한다. 그 사이, 작품 속 배경에는 없었던 ITX 열차가 길 너머 저만치로 나아간다.

Info 도마령
주소
충북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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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등 2019-02-01 02:50:36
만화에서 대한이의 터질 것 같던 허벅지가 왜 나왔는지 첫번째 사진만 봐도 알겠네요...정말 재밌게 본 만화였습니다 쌕쌕이 파이팅 이라고 외치던 대사가 아직 남아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