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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가족여행] 아버지 제가 만든 차 맛보세요! 수종사 여행
[가족여행] 아버지 제가 만든 차 맛보세요! 수종사 여행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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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수정사 풍경. 2003년 11월. 사진 / 이종원 여행작가
수정사 풍경. 2003년 11월. 사진 / 이종원 여행작가

[여행스케치=남양주] 차에 관한 전통이 서려 있는 곳, 양수리 수종사를 찾아갔습니다. 아이 둘을 데리고 가서 차 마시는 법도 배우고, 딸 정수의 고사리 손으로 만들어 주는 차도 마셨습니다. 은은하게 울리는 풍경소리를 들으며 차 향내를 가슴에 담았습니다.  

수종사는 한강을 포근하게 보듬고있는 양평 운길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절입니다. 경사가 급한 산이기 때문에 수종사는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누각처럼 보입니다. 원래는 걸어서 오르려고 했는데 제 아이들이 쿨쿨 자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차를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절대로 차를 가져가지 마세요. 차가 오르기엔 길이 협소하고, 도로면이 좋지 않습니다. 더구나 경사가 급해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내려옵니다.

산중턱에 수종사가 자리잡고 있다. 2003년 11월. 사진 / 이종원 여행작가
산중턱에 수종사가 자리잡고 있다. 2003년 11월. 사진 / 이종원 여행작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가면 30분 정도 걸립니다. 산이 높고 나무까지 울창해서 서늘하게 느껴집니다. 아이들 손을 붙들고 터벅터벅 걸어 굽이굽이 아름다운 길을 걸어봅니다. 조금 올라가면 근래에 조성된 듯한 미륵불상이 서 있습니다. 너무 커서 절 분위기에 맞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한강을 지키는 미륵불이라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수종사의 가람배치는 옆으로 길게 조성되어 있는데 급한 경사 때문에 이렇게 세울 수 밖에 없었답니다.

세조 임금을 깨운 은은한 종소리
조선조 유일무이한 쿠데타 대왕 세조는 조카를 유배시키고 독살한 죄로 평생을 피부병으로 고생했답니다. 오대산에서 피부병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던 세조는 양수리 부근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 날 밤 어디선가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기이하게 생각한 세조는 날이 밝자 종소리를 따라 갔겠지요. 종소리가 들리는 곳은 뜻밖에도 산중턱 바위굴이며 그 굴속엔 16나한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암벽을 울려 일어나는 공명(共鳴)현상이었는데 그걸 종소리로 잘못 들은 것이지요. 세조는 왕명을 내려 그곳에 절을 짓고 절 이름을 ‘수종사(水鍾寺)’라 명했습니다.

약사전 앞 우물. 이 물로 차를 우려낸다. 2003년 11월. 사진 / 이종원 여행작가
약사전 앞 우물. 이 물로 차를 우려낸다. 2003년 11월. 사진 / 이종원 여행작가

‘약사전’앞에는 아무리 큰 장마와 가뭄에도 물줄기가 마르지 않는 약수가 있어 병자들이 자주 찾곤 합니다. 바로 이 곳이 수종사를 중창하게끔 단초를 제공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당시의 굴이었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약사전 오른쪽 위에 나한을 모신 ‘나한전’만 보존되어 있답니다.

중창하면서 대웅보전 옆에 팔각오층석탑을 세워 절의 품격을 높여줍니다. 그 후 몇 번 증축되었지만 한국전쟁 때 전소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수종사는 1974년부터 중건한 것입니다. 강변이라 운무가 많아요. 그래서 그런지 단청이 습기에 색이 바래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전망대가 아주 넓은 수종사. 이곳에 서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ㅁ나나는 양수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2003년 11월. 사진 / 이종원 여행기자
전망대가 아주 넓은 수종사. 이곳에 서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ㅁ나나는 양수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2003년 11월. 사진 / 이종원 여행작가

동방사찰중 제일의 전망을 가진 수종사
서거정은 수종사를 ‘동방사찰중 제일의 전망을 가지고 있다’라고 그의 시에서 극찬했습니다. 맞습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양수리는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두 개의 물이 합쳐지기 때문에 ‘양수리’란 이름을 얻었고, 우리말은 ‘두물머리’라고 부르겠지요. 양수리 읍내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고, 팔당호 건너편인 퇴촌면까지 볼 수 있답니다. 전망대가 넓어 시원스럽습니다.

수종사 오층석탑과 부도. 2003년 11월. 사진 / 이종원 여행기자
수종사 오층석탑과 부도. 2003년 11월. 사진 / 이종원 여행작가

경내에는 ‘수종사 다보탑’이라고 불리는 오층석탑이 있답니다. 탑은 세조가 중창불사를 하면서 함께 조성됐다고 전해지지요. 팔각형의 아담한 탑입니다. 모서리마다 풍경이 달려있는 듯 구멍이 뚫려 있어요. 한강에서 시원스레 바람이 불면 청아한 소리를 내겠지요. 깜짝 놀랬습니다. 부도(주: 스님의 사리를 안치하는 탑)가 대웅보전 옆에 있는 겁니다. 보통 절 내에서 벗어난 곳에 세우거든요. 부도는 원래 스님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부도를 조성하지, 스님 이외의 부도를 경내에 안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알고 보니 원래 경내 왼쪽 산비탈에 놓여 있는 것을 이곳에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부도는 태종의 다섯 번째 딸 정의옹주 부도로 알려져 있어요. 공주의 부도답게 문양이 참 화려하네요. 수종사는 앞에도 언급했듯이 종하고 관련이 깊습니다. 북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범종이 우람하게 서있습니다. 종을 때리면 그 소리가 한강에 울려 퍼지겠지요. 성수는 종을 때리는 나무가 그네인줄 알았나봐요. 태워달라고 얼마나 보채던지 혼 났습니다.

평온한 산사의 풍경. 2003년 11월. 사진 / 이종원 여행작가
평온한 산사의 풍경. 2003년 11월. 사진 / 이종원 여행작가

삽살개와 친구가 된 정수와 성수
송아지 만한 삽살개가 정수와 성수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개가 손을 핥아도 성수는 희죽희죽 웃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심성이 고와서 그런지 동물들과 금방 가까워지네요. 솔직히 저는 무서워서 슬금슬금 피해 다녔거든요.

마당에는 들국화가 활짝 웃고 있습니다. 사찰이라기보다도 예쁜 정원처럼 아늑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정수는 잡초를 꺾어서 소꿉장난을 합니다. 그걸 보면서 어린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산사로 오르는 길이 참 아름답다. 2003년 11월. 사진 / 이종원 여행기자
산사로 오르는 길이 참 아름답다. 2003년 11월. 사진 / 이종원 여행기자

다산 정약용 선생님도 즐겼다는 차
수종사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다실 ‘삼정헌(三鼎軒)’이 있기 때문이지요. 수종사는 이름 그대로 물과 인연이 깊답니다. 물소리가 들려왔던 토굴은 없어졌지만 그 샘물은 여전히 나옵니다. 인근 마현마을의 다산 정약용은 이 곳 샘물로 차를 즐겼다고 전해지지요. 이따금 해남 대흥사에서 놀러온 초의 선사도 함께 자리를 잡았을 겁니다. 한국 다도의 산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삼정헌’이라는 다실을 지었답니다.

산행을 즐기러 왔건, 경배를 하러 왔건 간에 이곳에 오는 모든 분들께 무료로 차를 보시합니다. 그러나 불전함이 있으니 그 정성만큼은 넣으시길 바랍니다. 다산과 초의가 즐겼던 바로 그 샘물로 차를 우려내었습니다. 삼정헌에 앉아 넓은 통유리 너머로 유장한 한강을 보았습니다. ‘동방사찰중 제일의 전망’이라고 감탄했던 그 풍광을 제 눈으로 확인합니다.

차를 우려내는 법을 배우는 체험을 해볼 수 있다. 2003년 11월. 사진 / 이종원 여행작가
차 우리기 체험을 해볼 수 있다. 2003년 11월. 사진 / 이종원 여행작가

아버지! 제가 만든 차 맛보세요!
딸 정수가 삼정헌에서 봉사하는 보살님께 차 우려내는 법과 마시는 법을 배웠답니다. “아버지! 제가 만드는 차 맛 보세요!” 딸이 우려낸 차 맛이 그윽합니다. 그 안에 효심이 가득 들어 있으니까요. 한잔, 두잔, 석잔  향과 맛을 음미하며 창 밖의 선경을 봅니다. 긴장이 풀어지고 머리가 맑아집니다. 아늑하고 기분이 좋아지네요. 정수의 퓨전 다도를 보았습니다.

“아버지! 과자를 차에 찍어 먹으면 무지 맛있어요.” 네살 성수가 삼정헌을 나가 위험하게 노는 바람에 급히 뛰어 나갔습니다. 이번에는 삼정헌에서 ‘와르르… 쿵쾅’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수가 다기를 모두 엎은 것입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늘 그렇듯 산사를 벗어나는 길은 아쉬움이 함께 합니다.

성수가 다리 아프다고 칭얼거려 무등을 태웠습니다. 성수도 많이 컸네요. 이젠 제법 무거워 졌어요. 정수가 창피하게도 차 뒤에서 쉬야를 했는데 바지에 오줌이 흠뻑 젖었어요. “아빠! 내 오줌 힘이 너무 셌나봐! 자리가 높았으면 잘할 수 있었는데…” 우리 가족은 그윽한 차 향이 있는 수종사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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