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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남도산행] 장흥 천관산 하늘가는 길
[남도산행] 장흥 천관산 하늘가는 길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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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장흥 천관산의 풍경.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장흥 천관산의 풍경.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장흥] 억새 밭 따라 하늘로 간다네 억새 춤추며 간다네 바람 따라 간다네 구름 따라 간다네 간다네 간다네 천관사 하늘 길 간다네.         

산행을 앞두고 천관산자연휴양림에서 하루 묵었다. 달은 없었다. 별들이 총총히 소나무 사이로 떠 있었다. 간혹 떨어지는 별똥별을 기다리느라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소원을 빌다가 친구들의 꿈도 생각나서 함께 빌어주었다. 대신 빌어주는 소원도 들어주는지 알 수 없지만 그냥 믿을 뿐이다.

꽃이 바위를 등지고 다도해를 향해 웃는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꽃이 바위를 등지고 다도해를 향해 웃는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천관산자연휴양림.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천관산자연휴양림.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산 속에 떠 있는 불빛이 꿈결같았다. 천관산 오르는 길 천관산은 해발 7백23m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산행은 해발 4백m 정도에 있는 천관산자연휴양림에서 시작했다. 오르는 길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잎에 가려진 돌을 밟아서 발목이 꺾일 뻔하기도 했지만 역시 낙엽을 밟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 앞서가는 사람들의 낙엽 밟는 소리가 쓸쓸한 늦가을 산길에 훈훈함을 남긴다.    

천관산은 지리산 내장산 월출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 5대산 중의 하나로 가을에는 5만여 평의 억새꽃이 장관을 이룬다. 등산로를 보면 천관산에 오르는 길이 사방으로 뻗어 있지만 모든 길은 연대봉으로 통하게 되어있다. 하긴 모든 산이 그렇다. 길은 여러 갈래이지만 정상은 하나 뿐이다.

연대봉 가는 길.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연대봉 가는 길.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천관산에는 여러 모양을 한 바위들이 많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천관산에는 여러 모양을 한 바위들이 많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산 초입에는 잡목들이 무성하다. 능선에 오르다 잠시 멈춰 산을 보고 있으니 나무들이 한 방향으로 장대비가 내리 꽂힌 형상으로 자라있다. 나무들이 좁은 길까지 가지를 내밀고 있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야 한다. 작은 나무 사이 길은 사람도 키를 낮추어야 한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바위가 많아진다.

나무 밑은 낙엽이 쌓여서 푹신푹신.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나무 밑은 낙엽이 쌓여서 푹신푹신.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왼쪽 능선으로 수십 개의 바위가 삐죽삐죽 키 재기를 하듯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천자의 면류관 모양을 했다고 해서 천관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길은 험하지 않지만 바위 사이를 기어올라야 하니, 손, 발끝에 힘이 들어간다. 물론 바위에 기대서 맞는 바람은 시원하다. 이 맛에 등산길에 나선다.

천관산에는 김유신과 천관녀의 전설이 있다. 화랑 김유신은 기녀인 천관을 사랑했다. 유신의 어머니는 술과 기녀에 빠진 아들을 꾸짖었다. 유신은 다시는 천관을 찾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던 유신이 말 위에서 깜박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천관의 집이 아닌가.

말은 늘 가는 길로 왔을 뿐인데 유신은 지레 화를 내며 말의 목을 베었다. 이제나 저제나 님을 기다리던 천관의 마음도 그 한칼에 깊이 베였다. 버림을 받은 천관은 그를 원망하는 원사를 지어 부르고 속세를 떠나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삼국을 통일한 후 유신은 그녀를 다시 찾아갔다고 한다.

천관산 올라가는 길에 핀 갈대.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천관산 올라가는 길에 핀 갈대.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그러나 천관은 자신은 원래 천관보살의 화신인데 기녀로 변해 김유신을 시험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버린다. 삼국 통일의 대장수 유신도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나 보다. 포기하지 못하고 그녀를 쫓아갔지만 천관산 아래서 그녀를 놓치고 만다. 허망한 사랑이야기다.  

1시간 30여분 정도 능선을 따라 가다가 간간이 바위도 넘다보니, 진죽봉에서 연대봉까지 펼쳐지는 억새밭. 짙은 회색 구름이 깔리고, 구름 사이로 햇빛이 살짝 갈대꽃에 비친다. 갈대꽃과 구름이 이어진다. 길 끝이 하늘이다. 하늘가는 길이 펼쳐진다. 억새 길 그 끝은 하늘인가, 바다인가?

바위 길을 오르는 사람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바위 길을 오르는 사람들.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천관산에 오르면 눈앞에 남해안 다도해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천관산에서 바라보는 다도해는 징검다리다. 바다에 적당히 뿌려진 섬들, 그 머리를 밟고 수평선 너머까지 건너 갈 수 있을까. 어쩐지 천관산 끝 절벽에서 펄쩍 뛰면 눈 앞 장재도에 떨어질 것만 같다. 사람들이 억새꽃 사이에서 사진을 찍는다.

바람은 억새를 한시도 그냥 두지 않는다. 그러나 억새는 안다. 바람을 안아야 멀리까지 날 수 있다는 것을. 해가 머리 복판을 살짝 비껴갈 무렵 구정봉을 거쳐서 장천재로 내려왔다. 올라가는 길이 워낙 짧아서 쉽게 생각했다가 내려가는 길에서 의외로 고생을 해야 했다. 경사가 급하고 좁은 길.

너럭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등산객.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너럭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등산객. 2003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올라오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중간 중간 멈춰서 서로가 먼저 가려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올라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내려가는 사람들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내려가는 길에도 여전히 바위들이 많다. 너럭바위가 있어서 여럿이 함께 쉴 수가 있었다. 천관사는 산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아름답지만 사람이 많을 때는 좀 곤란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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