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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트레킹] 생명의 초록 물길이 산을 휘감는 북한강 조종천 트레킹
[트레킹] 생명의 초록 물길이 산을 휘감는 북한강 조종천 트레킹
  • 김선호 객원기자
  • 승인 2004.09.22 1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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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북한강 지류 가평 조종천. 2004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북한강 지류 가평 조종천. 2004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가평] 가평군 하면 대보리 조종천. 북한강 지류중 하나인 조종천에는 30여종의 어류가 살고 있고, 주변의 명지산과 청계산은 6백여 종이 넘는 자생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자연생태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수도권에 식수를 대는 일급수계 조종천. 수도권 주민들의 생명수가 흐르는 조종천을 물길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청평 지나 왼편으로 너른 내를 이룬 조종천을 끼고 달릴 때만 해도 하늘은 그냥 흐린 모습이었다. 대보리에 이르러 더욱 유장하게 흘러 시야가 환하게 트이는 조종천을 만났을 때 마침내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조종천 대보교를 지나 1.3km 2차선 산길에 우뚝 바위들이 우람하다.

그 아래 팻말은 ‘숭명배청(崇明排淸)’ 사상을 추구했던 선비들의 글씨가 새겨진 바위(조종암)라 설명되어 있다. 조종암 아래를 2차선 도로가 지나며 산과 강을 구분지어 놓았다. 아마도 옛날엔 조종암 아래는 벼랑이 있었을 것이고 그 아래를 조종천이 흐르고 있지 않았을까 싶은 곳이었다. 2차선 도로를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들은 조종암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하긴 오늘날, 모화사상에 찌들었던 옛 선조들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별 의미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마침내 조종암을 촉촉히 적신다. 찬비에 맞아 조종암에 새긴 글씨들이 더욱 뚜렷해 졌다.

선조의 친필로 새긴 '만절필동 재조번방'. 2004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선조의 친필로 새긴 '만절필동 재조번방'. 2004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선조가 친필로 새긴 ‘만절필동 재조번방(萬折必東 再造蕃邦)’. 효종이 송시열을 시켜 송시열의 서체로 새긴 ‘일모도원 지통재심(日暮道遠 至痛在心)’, 선조의 친손 낭선군 이우가 새긴 ‘조종암(朝宗巖)’.

조종암에서 바라본 조종천의 모습은 산속에 저 홀로 흐르는 강이다. 가평의 95%가 산지라더니 이곳이야 말로 온통 초록 숲의 세상이다. 산과 산이 어깨를 겯고 조종천을 호위하는 모습이다. 물길이 활처럼 휘어지면서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곳에 이쁜 돌다리가 놓여있다. 마침 우산을 쓴 사람들 한 무리가 지나가니 비가 오는 가운데 쓸쓸했던 풍경이 이내 따스하게 느껴진다.  

조종천을 따라 뻗어 있는 2차선 도로에 간간히 차들이 지나친다. 그 길을 걷고 싶었지만, 도로는 인도를 따로 마련해 놓지 않아 다소 위험해 보였다. 마땅히 주차장도 없어 물길 따라 굽이진 산길 아래를 달렸다. 능소화가 한창이다.

능소화는 가장 무더울 때 고운 주홍빛으로 피어나는 여름 꽃이다. 기는줄기인 능소화는 시골집 담벼락을 따라 꽃을 피우거나 주변의 나무를 타고 올라 꽃을 피운다. 조종천에 오면 반드시 들러 볼 곳이 있다. ‘꽃무지 풀무지’라는 예쁜 이름의 ‘가평야생수목원’이 그곳이다.

비옷 입고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 비가 올 때는 급격히 물이 불어날 수 있으므로 특별히 주의를 요한다. 2004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비옷 입고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 비가 올 때는 급격히 물이 불어날 수 있으므로 특별히 주의를 요한다. 2004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조종천을 따라 걷다 조종암을 둘러보고 가평야생수목원에서 꽃들의 세상을 만나고 내려와 조종천 맑은 물에서 놀다 가는 것도 좋겠다. 차를 달려 조종천을 따라가기를 삼십 여분, 잘 닦인 2차선 승용차 도로 대신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비록 비가 오지만 흙길은 발로 걸어야 제 맛이다.

청정한 공기가 압축되어 있는 천연의 장소를 차를 타고 달리는 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싶어 차에서 내렸다. 길가 양편으로 이름모를 풀들이 무성하다. 풀냄새에 섞인 비 냄새, 흙냄새에 섞인 물 냄새가 서로 어울려 싱싱한 기운을 내뿜는 길이다. 그 길을 가다 자연석위에 통나무 다발을 엮어 만든 돌다리를 만났다.

강 갈대와 잣나무와 소나무의 푸른 조화. 2004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강 갈대와 잣나무와 소나무의 푸른 조화. 2004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멀리서 보면 강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같이 놓여있는 돌다리는 조종천에 세 개가 남아있다. 커다란 돌이 징검돌로 박혀 있고 마을사람들 솜씨인지 일정한 굵기의 소나무 다섯 개를 한 다발로 엮어 돌과 돌 사이를 연결해 두었다.

멀리서 보았을 땐 아기자기한 돌다리처럼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징검돌은 생각보다 훨씬 컸고, 그 사이를 물살이 거칠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징검돌을 지나 걸을 때마다 낭창하게 휘어지는 통나무 다리를 건너는 일은 얼마간의 용기를 필요로 했다. 특히나 비가 내려 물살이 거칠게 흐르는 오늘 같은 날은….

조종천은 물이 깊어 ‘수영금지’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다. 물 깊은 곳에 간간이 낚시꾼들을 볼 수 있었다. 물살이 얕게 흐르는 곳에선 다슬기 잡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비가 오는데도 고무보트를 타는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싱그럽게 퍼진다.

어떻게 허가가 났는지 조종천 바로 윗길에 대규모 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골프장에서 흘러든 농약은 다 어디로 갈지….

백사장이 깔린 조종천 하류 강산터. 2004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백사장이 깔린 조종천 하류 강산터. 2004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산 그림자가 깃든 물빛은 맑고 파랗다. 파랗다 못해 시퍼렇게 흘러간다. 기암괴석과 어울린 깊은 물길이 있는가 하면 자갈돌 위를 얕게 흐르며 물놀이하기에 안성맞춤인 곳도 있다. 물이 깊은 곳은 어김없이 낚시꾼들이, 얕은 물엔 가족 단위의 행락객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풍경들이 이어졌다.

이 모든 풍경을 겹겹이 이어진 산과 유유히 흐르는 물이 품고 있는 길이다. 그곳에서 강산터까지 넉넉잡고 한 시간여 거리를 걸어서 가기로 했다. 날이 좋으면 물길을 따라 산길을 끼고 걷는 멋진 트레킹 코스가 되었을 것이다. 빗소리에 섞여든 물 흐르는 소리가 우렁차다.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는 싱싱했다. 청정하게 귀를 씻어주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에 백로 한 마리가 물가에 앉아 있었다. 백로가 앉아 있는 자리 위로 잣나무 숲이 가지런하게 펼쳐져 있다. 소나무 군락이 다시 한 층을 이루고 그 뒤로 잡목이 푸르게 무성하다. 비가 그치려는지 나무들이 연이어 숲을 이루는 산자락에 걸린 안개구름이 풀어지듯 모이고 다시 풀어지기를 반복한다.

안개구름에 싸인 초록 숲은 신비롭다. 조종천의 물길은 숲을 닮아 진한 초록이다. 초록 숲은 안개를 감싸 안고, 초록 물길은 백로를 품고 흐른다. 강가에 앉아 자연이 연출한 신비경을 들여다보니 신선이 따로 없었다. 백로가 앉았다 간 자리에 강 갈대가 무성하다. 가을에 갈대가 꽃을 피우는 풍경 또한 그지없이 아름다울 것 같았다.

강산터 성벽 흔적. 2004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강산터 성벽 흔적. 2004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조종천 하류에 위치한 강산터는 간산터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간씨들이 성을 쌓고 집성촌을 이룬 곳이라 한다. 강산터에 이르러 조종천은 물길이 점점 잦아들고 다른 이름을 갈아입는다. 그렇게 흐름을 계속하는 하류의 물길은 다시 청평댐으로 편입되고 북한강으로 흘러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만나 한강을 이루며 바다로 흘러갈 것이다.

강산터 모래사장에서 물가에 발을 드리우고 앉아 물길의 유장한 흐름을 생각해 본다. 간씨들의 집성촌이었음을 말해주는 강산터 물길 위에 돌로 쌓은 성벽의 흔적이 남아있다. 조종천의 물길이 잦아드는 강산터는 내(川)로서는 보기 드문 백사장을 갖춘 곳으로 물놀이하기에 적당한 장소다.

조종천에서 만난 통나무다리. 2004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조종천에서 만난 통나무다리. 2004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잣나무 푸른 숲이 물위에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물살은 여리게 흘렀으며 백사장의 모래는 고왔다. 그 아래 조종천에서 본 마지막 돌다리가 놓여있어 휘어져 흐르는 물길에 그림 하나를 그려 놓았다. 아이들과 비로소 물속에 들어갔다. 마침 장대비처럼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햇살이 환하게 비쳐 들었다.

유원지에선 행락객들이 부르는 뽕짝 메들리가 이어지고 강산터를 사유지화한 유원지의 방갈로가 아무렇지도 않게 물길을 점령하듯 서있고 여기저기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꺽지, 어름치, 버들치, 갈겨니, 돌마자, 메기, 다슬기등 30여종의 맑은 물 어류가 사는 곳, 또한 민달팽이, 딱정벌레, 제비나비 등 8백여 종의 곤충들이 살고 있어 곤충들의 낙원으로 불린다는 조종천. 여름철 한때, 물길 따라 산길 따라 조종천을 찾는 우리는 부디 이 맑은 수계가 지켜질 수 있도록, 조종천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를 유심히 들여다 볼 일이다. ‘쓰레기 투기 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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