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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숲에서 만난 사람] 설악산을 알고 싶으면 그녀를 찾으세요~ 오색 주전골 우성숙씨
[숲에서 만난 사람] 설악산을 알고 싶으면 그녀를 찾으세요~ 오색 주전골 우성숙씨
  • 김연미 기자
  • 승인 2004.09.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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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푸른 산과 맑은 물이 흐르는 오색 주전골.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푸른 산과 맑은 물이 흐르는 오색 주전골.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양양] 옥수수가 익어가는 여름은 좋다. 벌레가 슬쩍 지나간 오솔길이 있고, 바람에 수염이 마른다. 한알의 우주가 탱글탱글 여문다. 강원도의 힘은 옥수수다. 그 강원도 옥수수와 오색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등산을 하다가 상황버섯하고 생김새가 똑같은 버섯을 땄어요. 궁금해서 근처 한약방에 들렀는데 상황버섯이 아니라네. 색깔이며 모양이 상황버섯인데…. 어떤 나무에서 따왔냐고 물어요. 상황버섯이 참나무에서 자라는 건 알지. 근데 죽은 나무가 참나무인지 어떻게 알겠어?

그래 아저씨 상황버섯 맞는데 내가 버리면 주우려고 일부러 그러지! 농담을 다 했지요. 버리기가 그래서 다른 한약방에 들렀는데 상황버섯 맞대요. 그것도 최고 비싼 상황버섯이라네. 조금 땄지만 횡재했지요! 그냥 버렸으면 얼마나 아까웠겠어. 이참에 버섯이나 따러 다닐까요?”

우성숙(42) 씨와 첫 만남은 상황버섯 얘기로 시작했다. 버려질 뻔한 상황버섯을 들고 있으니 덩달아 나도 횡재한 기분이다. ‘설악산이 알고 싶으면 오색의 우성숙 씨를 찾아라!’ 한 지인이 귀띔해 주는 말을 듣고 무작정 오색을 찾았다.

오색은 양양에서 가면 서쪽으로 20km, 설악산 산자락이 너울거리는 한계령을 넘으면 바로다. 남설악 오색약수터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약수터가 말라서 원인을 조사중이라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리지만 계곡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녀는 오색 토박이가 아니다. 그런 그녀가 설악산 골짜기에 푹 빠져서 토박이처럼 살고 있다. 오색에 온지 7년째. 강원도 찰옥수수처럼 영글게 산다.

오색 주전골에서 만난 우성숙씨.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오색 주전골에서 만난 우성숙씨.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과 조용한 집에서 살고 있다. TV도 없다. 창문으로 골짜기에 흐르는 물소리며, 빗소리가 찾아온다. 매미가 무궁화나무에 번데기를 벗어 놓고 간다. 뱀도 허물을 벗어 놓았다. 늘 열려있는 대문으로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래 그녀는 주말이 더 바쁘다. 찾아오는 손 때문에….

봄에 뜯어서 둔 엄나무 순을 참기름에 묻혀서 밥상에 올려준다. 엄나무 향기가 밥상을 풍성하게 한다. 그녀의 집에 오면 객도 조용해진다. 마치 집안 곳곳에 안정제가 뿜어져 나오는 듯. 기분 좋은 잠이 쏟아진다.

그녀가 오색에 온 것은 두 아들 때문이다. 시골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무작정 이 곳으로 왔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 했어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줬으니…. TV는 없어요. 컴퓨터는 있지요. 가끔 아이들과 컴퓨터로 영화를 보는데 저는 보다가 그냥 잠들어요. 아무리 두 눈을 치켜 떠도 어느새 스르르 눈이 감겨요. 아쉬운 게 있다면 남편과 주말 부부로 사는 거지….”

다들 아이들을 도시로 해외로 유학을 보낼 때 그녀는 시골로 유학을 왔다. 그러면서 참 잘했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용기 있는 사람이구나!’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이들이 시골에서 자라는 게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늘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실천’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아들 단희가 보이차를 끓여준다. 함께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2시간 동안 꼿꼿하게 앉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설악산을 오르는 것이 그녀에겐 일상이다. 무거운 가방도 없이 간편한 등산복 차림으로 산을 오른다. 그녀가 등산복을 입고 마을을 나서면 언니 동생하고 지내는 동네 아낙들이 핀잔을 준다. “여자가 좀 가꿔야지, 그게 뭐래요?” 그러면 씩 한번 웃으면서 응수한다. “안 해도 이쁘잖아요.”

비가 거칠게 내린 후라서 설악산 골짜기들이 미끄럽다. 그래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주전골에 올랐다. 남설악 주전골은 이맘때 계곡이 아름답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다. 선녀탕, 용소폭포, 십이폭포 등 계곡이 참 좋다. 오색약수터에서 12폭포까지 2시간 정도면 돌아볼 수 있다.

설악산에서 채취한 산나물로 차린 밥상.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설악산에서 채취한 산나물로 차린 밥상.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늘 설악산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천천히 오르지요. 산을 오르는 게 마음여행이지요. 답답한 마음이 하나둘 사라지죠. 마음을 비우고 가세요.” 명상을 오랫동안 한 그녀는 가끔 스님이 던지는 선문 같이 뜬금없는 말을 한다. ‘마음여행’이라… 떠나고 싶다.  

매표소 입구 다리 아래 산천어가 떼를 지어 다닌다. 자갈 색깔과 구분이 가지 않게 보호색을 띠었다. 보호구역이라 잡는 사람이 없는데도 본능적으로 살아간다. 잎이 촉촉이 젖었다. 계곡 사이사이 기암 절벽이 병풍처럼 처져있다. 그 절벽에 소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뿌리가 바위에 매달려 있는지, 바위가 뿌리를 잡고 있는지, 처절한 풍경이다.

물은 깊을수록 옥빛이다. 얕은 물은 자갈을 드러내고 빛을 비치고 자신의 맑 음을 자랑한다. 우성숙 씨와 천천히 올랐다. 그녀의 마른 몸이 나무처럼 산과 잘 어우러진다. 마치 산의 일부인 듯하다. 선녀탕 물빛이 깊다. 계곡에 산에 하늘에 발을 담그고 강원도 찰옥수수를 먹는다. 알이 영글다. 사람 마음도 땡글땡글 햇볕에 잘 영글면 좋으련만…. 허허 웃고 마음을 비운다.

Tip. 오색 주전골 가는 길
대중교통 이용시 동서울고속터미널에서 양양 한계령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오색에서 바로 내려준다. 배차간격은 1시간 정도. 소요시간 4시간.
맛집 토박이식당 : 오색약수터 맨 끝에 있다. 산채정식, 된장국, 더덕구이백반 등 맛이 구수하다. 주인 아저씨가 설악산에서 직접 채취한 자연산 산나물로 믿고 먹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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