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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가족여행] 철원 민통선 철새탐조여행, 쇠의 땅에 철새는 날아가고 있건만...
[가족여행] 철원 민통선 철새탐조여행, 쇠의 땅에 철새는 날아가고 있건만...
  • 이종원 객원기자
  • 승인 2005.0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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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나즈막한 철원의 산. 2005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나즈막한 철원의 산. 2005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철원] 분단 50년 세월. 사람들 발길이 뜸한 철원 민통선 지역은 철새들의 낙원이 됐다. 곳곳에 남겨진 인간들의 아픔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새들은 때 되면 왔다가 때 되면 떠난다. 사람들이 그들을 찾는 건 자연의 순리를 배우고 싶어서일까? 늘씬한 다리로 논바닥을 하늘하늘 거닐고 있는 학의 자태를 본 적 있는가? 인간이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도도함과 품위가 학으로부터 풍겨 나온다.

부부 중 하나가 죽게 되면 절대로 평생 홀로 살아간다는 부부애는 가슴까지 여미게 만든다. 가족사랑 역시 대단하다. 절대 혼자 다니는 일이 없고 아내와 자식과 늘 붙어 다니며 함께 먹이를 먹고 창공을 날기도 한다. 그렇기에 옛사람들은 학을 가장 소중한 새로 여겼다.

학의 수명이 80년이라고 하니 부모에게는 장수를, 부부에게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관직에 올라 있는 사람에게는 청렴함을 보여주어 이불이나 관복에 학을 그려 넣었다. 그런 학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철원 민통선 지대다.

50년 동안 서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지만 학은 남과 북을 준엄하게 꾸짖기를 작정한 것인지 매년 철원 땅을 찾아든다. 마치 백의민족이 하나라는 것을 학은 온 몸으로 보여주고 싶은가보다. 의정부를 거쳐 포천을 지나면 3.8휴게소가 나온다. 휴게소 옆 ‘38선 오각정’이 말없이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해방 후 비극의 3.8선이 그어지면서 개울 건너 이웃사람은 하루아침에 원수가 되어 버렸다.

철원사람처럼 전쟁의 상흔을 가진 사람들이 또 어디 있을까? 해방 후에는 북한 땅이었고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자 휴전선이 그어져 남한 땅이 되었다. 좌익은 좌익대로 우익은 우익대로 줄 한번 잘못 서면 억울하게 죽어야만 했던 비운의 땅이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달려갔지만 온전한 건물은 단 한 채도 없었다. 미군의 폭격으로 철원 땅은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이다.

철새탐조 신청을 받고 있는 철의 삼각 전적관. 2005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철새탐조 신청을 받고 있는 철의 삼각 전적관. 2005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철새 탐조를 하려면 ‘철의 삼각 전적관’에 가 미리 신청을 해야 한다. 셔틀버스로 갈아 타고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 강원도 최대 인공저수지인 토교저수지다. 저수지 물을 퍼다가 냄비에 담고 고추장을 풀어 끓이면 바로 매운탕이 될 정도로 물고기가 많다고 한다.

통일되면 낚시꾼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독수리가 몰려드는 마을로도 유명하다. 둑방 위에는 독수리 떼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햇볕을 맞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고 하늘에는 척후병인 독수리가 훨훨 비상하고 있다. 매는 산짐승을 잡아먹지만 독수리는 죽은 동물만 잡아먹기 때문에 겨울이면 독수리가 굶어 죽을 판이다.

할 수 없이 군청에서 수 백 마리의 생닭을 논바닥에 뿌려 놓았다.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철원 쌀 팔아서 독수리 먹여 살립니다.” 철원을 빼앗기고 김일성이 하도 억울해서 고지에 올라 곡했다는 ‘김일성 고지’도 보이고 무수한 군인들이 죽어 피가 냇물처럼 흘러갔다고 하는 ‘피의 능선’, 그리고 폭격을 많이 받아 봉우리 모양이 바뀌었다는 ‘아이스크림 고지’까지 내다 보인다.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 2005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 2005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월정리역. 2005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월정리역. 2005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분단의 상징 노동당사. 2005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분단의 상징 노동당사. 2005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철의 삼각 전망대에 올라서면 드넓은 DMZ가 펼쳐진다. 망원경으로 움직이는 북한군도 볼 수 있다. 숲에 뒤덮인 궁예궁터를 아름아름 더듬어 보았다. 통일이 되면 가장 먼저 달려가고 싶은 곳이기 때문이다. 전망대 바로 앞에 월정리역이 서 있다.

‘月井里’ 풀어쓰면 달의 우물이 있는 동네란 뜻이다. 이름만 가지고는 이 곳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싸움터였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서울서 원산까지 가는 기차가 잠시 쉬어 가는 곳이 월정리역이었다는데 너무 오래 쉬고 있는 것은 아닌지. 50년 세월동안 월정리역에서 서성거렸으면 이젠 기차가 출발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폭격 맞은 기차는 앙상한 뼈대만 드러낼 뿐 묵묵부답이다.

민통선을 벗어나면 노동당사가 처연하게 서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전쟁의 상처라기보다는 서태지가 뮤직비디오를 찍은 곳으로 더 알려져 있다. 얼마 전에는 열린음악회도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음악을 통해서나마 이 곳이 통일의 상징으로 여겨졌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 곳은 6.25전쟁 전까지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북한은 이 건물을 지을 때 쌀 2백 가마와 수많은 인력을 들여 건설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가장 세련되고 웅장한 건물이었을 것이다. 노동당사를 벗어나면 ‘제일감리교터’가 나온다. 겨울엔 주로 폐사지를 찾아다니며 아련한 감동을 받았는데 뼈대만 남은 교회터를 거닐다보니 마찬가지 느낌이 들었다.  

얼음이 언 고석정. 겨울엔 트레킹을 할 수 있다. 2005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얼음이 언 고석정. 겨울엔 트레킹을 할 수 있다. 2005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이 곳은 반공운동의 본거지였다가 3.8선이 그어지면서 수많은 신도들이 학살 당했던 곳이다. 6.25 때는 인민군 병동이 되었으며, 폭격으로 인해 박살나 버렸다. 고석정은 신라 진평왕이 이 곳에서 애틋한 사랑을 나눈 장소다. 20m 높이의 거대한 기암이 강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어 빼어난 절경을 보여주고 있다.

‘외로운 돌’이라는 이름을 가져서 그랬을까 아니면 바위틈새에 간신히 뿌리 내리고 있는 소나무의 고고함 때문일까 힘찬 분위기가 느껴진다. 의적 임꺽정의 전설이 깃든 곳으로 유명하다. 강 건너 석성을 쌓고 함경도에서 조정에 상납되는 공물을 탈취하여 서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임꺽정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고석정. 2005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임꺽정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고석정. 2005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기암봉에 임꺽정이 은신했다는 동굴의 입구는 한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작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10여 명의 장정들이 둘러앉을 정도로 너른 공간이 나온다고 한다. 관군에게 쫓긴 임꺽정은 ‘꺽지’라는 물고기로 변신하여 강물 속으로 은신했다고 한다. 억압과 수탈의 역사 속에서 임꺽정은 희망이었고 그가 죽고 나자 희망을 잃은 민초들은 이 강을 보면서 한탄하며 울었을 것이다.

그 탄식의 소리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남북이 총부리를 겨누며 대치하고 있는 휴전선이 바로 코 앞에 서있기 때문이다. 통일되는 날 ‘한탄강’의 이름은 무엇으로 바뀔까?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현무암 분출지이며, 강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내고 있다. 하류로 내려가면 순담계곡으로 이어져 여름이면 래프팅으로 북적거리며 물이 꽝꽝 얼었다면 얼음 위로 걷는 겨울 트레킹도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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