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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문학기행] 토속적이고 해학적인 문학의 향기를 간직한, 김유정역과 실레마을
[문학기행] 토속적이고 해학적인 문학의 향기를 간직한, 김유정역과 실레마을
  • 김선호 객원기자
  • 승인 2005.02.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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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김유정역 풍경.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김유정역 풍경.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춘천] ‘김유정역’팻말은 파란바탕에 흰 글씨로 쓰여 있었다. 그 느낌이 정갈했다. 춘천을 따라 구비구비 펼쳐진 북한강과도 같았고 파란 가을 하늘을 마주하는 느낌과도 같았다. 기차를 타고 갔어야 했는데 멋없게도 승용차로 김유정역에 닿았던 일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청량리역에서 하루 여섯 번, 내가 사는 마석에서 네 차례 김유정역으로 기차가 출발한다.

오전에 김유정역을 가기 위해서는 두 번의 기회로 좁아드는데 너무 이른 시각이거나 또 너무 늦은 시간인지라 난감하였다. 어쩔 수 없이 승용차를 이용해 김유정역에 도착했고 대신 기찻길에 나가보는 걸로 아쉬움을 대신해야 했다. 이른 아침부터 역사를 찾은 우리가족을 위해 역승무원은 난로를 지펴 주셨고 맘껏 구경하라며 매표소문을 활짝 열어 주셨다.

여느 철길처럼 산길을 돌아오는 기찻길이 이쪽 끝과 저쪽 끝을 분간할 수 없게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북한강이 가까워서인지 아침안개가 철길을 신비롭게 감싸고 있었다. 조금씩 햇살이 안개를 몰아내고 있는 아침의 시골간이역은 소박했고 평화로웠다.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려는데 길 건너편 잎 떨군 나뭇가지에서 까치들이 소란스럽게 우짖는다.

한들이 바라다 보이는 실레마을.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한들이 바라다 보이는 실레마을.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까치소리가 들려오는 쪽 역사 맞은편에는 김유정의 고향이자 그의 문학의 산실이 되어 주었던 실레마을이 있다. 김유정역은 그의 문학에 바치는 헌사일 터였다. 지난 12월 1일자로 신남역이‘김유정역’으로 새 이름을 얻었다. 신남역, 아니 김유정역은 경춘선 열차를 타고 가다 강촌역과 남춘천역 사이에 있는 간이역이다.

역이 생긴지 65년 만의 일이고 우리나라 1백5년 철도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 이곳의 정식명칭은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이다. 주소 어디에도 신남이라는 명칭은 없다. 그래서 마을사람들과 문학인들은 오래전부터 김유정역으로 역명을 고쳐줄 것을 철도청에 건의 했었단다.  

소설 '봄봄'의 배경장소.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소설 '봄봄'의 배경장소.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신남역을 이용한 열차이용객은 하루 서너 명에 불과했다는데 김유정역으로 바뀐 후로는 그 열배에 가까운 삼십 여명으로 늘었다. 김유정역이 불러오는 조용한 변화가 궁금한 건 나만이 아니었나 보다. <봄봄>과 <동백꽃>의 작가 김유정은 토속적이고 해학성이 강한 작품들을 썼고,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배경은 고향마을이 대부분이었다 한다.

실레마을 곳곳엔 김유정의 작품 속 배경이 되었던 장소들이 포진해 있다. 실레마을이라는 명칭에 대한 해석은 김유정의 작품 <오월의 산골짜기>에 잘 드러나 있다. “나의 고향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20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만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김유정문학전시관 내부모습.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김유정문학전시관 내부모습.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하여 동명을‘실레’라고 부른다.” 김유정이 적은 그대로 산골짜기 이 작은 마을은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 아래 옹기종기 마을이 모여 있고 그 안에 들을 품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형상 같아 보였다. 기차역에서 2백여m 마을로 들어가면 왼편에 마을정경을 마주하고 ‘김유정문학촌’이 보인다.

김유정문학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소설가 전상국 선생님이 촌장으로 계신다. 선생님은 탐방객을 위해 손수 동네를 안내하며 문학답사를 지도하신다. 우리가족은 너무 이른 시각에 가서 동네를 다 돌아보고서 내려오는 길에야 탐방객을 이끌고 안내를 하시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김유정문학촌은 김유정동상과 문학전시관, 생가로 이루어졌고 아래쪽으로 연못과 정자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소설 '동백꽃'의 배경장소. 금병산 오르는 길.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소설 '동백꽃'의 배경장소. 금병산 오르는 길.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문학촌 담벼락에 심어진 동백나무.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문학촌 담벼락에 심어진 동백나무.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문학촌 담벼락에는 동백나무를 심어 놓았다. 아직 어린 나무들이었지만 지난봄에 꽃피운 흔적마다 작고 둥근 열매를 맺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실레마을 곳곳에 동백나무를 심어 김유정의 작품 속에 드러난 ‘동백꽃’의 이미지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봉평이 이효석의 메밀꽃마을이듯, 실레마을은 이제 김유정의 동백꽃마을이 될 것이라 했다.

알싸하고 향긋한 내음의 동백꽃이 가득한 마을은 상상 만으로 향기로운 듯 했고,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학촌 담벼락 아래서 어린 동백나무는 작고 둥근 열매를 매단 채 새로운 봄을 예고하고 있었다. 여기서 동백꽃은 남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꽃을 피우는 동백이 아니라 생강나무를 지칭한다.

이 고장 사람들은 동박나무 라고도 하는 생강나무는 잎이나 가지를 꺾어 냄새를 맡아보면 알싸하고 향긋한 생강냄새를 풍긴다. 문학촌 한가운데 책을 읽고 있는 김유정 동상이 먼저 눈에 띈다. 29살이라는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젊은 작가는 여전히 젊은 모습으로 생가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손에 책을 들고 서 있다.

ㅁ자 구조의 김유정 생가 안.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ㅁ자 구조의 김유정 생가 안.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조카의 조언에 의해 복원된 김유정 생가는 ㅁ자로 독특한 가옥구조를 하고 있다. 네모난 마당을 가운데로 앞뒤로 방들이 연결되어 있고 그 사이에 좌우로 부엌과 대문이 마주하고 있다. 네모난 마당을 닮은 네모로 뚫린 하늘. 아마도 여름밤 하늘 별구경이 찬란하겠다 싶었다. 그 마당에 멍석을 펴고 누워 별구경, 달구경을 하면 딱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대문 밖을 나와야 비로소 장독대가 있고 집 뒤편으로 창고와 화장실이 떨어져 있다. 창고는 알곡을 찧었던 디딜방아와 각종 농기구들이 즐비하여 마치 작은 민속박물관 같았다. 아이 둘이 천장에 매달린 줄을 잡고 한쪽 발을 디딜방아에 올려 방아 찧는 흉내를 내보았다. 찌그덕 쿵, 찌그덕 쿵, 디딜방아 소리가 흥겹다. 생가건물이며 마당 앞 정자의 초가지붕들이 새 옷을 입어 깔끔하다.

지난 가을에 이엉잇기를 하였다 하니 그때 새로 옷을 갈아입은 모양이다. 정자 옆 연못은 며칠동안의 추위로 꽁꽁 얼어 있어 아이들을 불러 들였다. 혹시 깨질지 모른다고 말리는 어른들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연못 위로 들어가 아예 스케이트를 탄다.

김유정생가와 문학전시관 내부모습.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김유정생가와 문학전시관 내부모습.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마침 문학촌에는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깔려서 연못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흉내를 내는 아이들의 배경음악이 되어 주었다. 김유정문학전시관은 김유정이 폐결핵을 앓으면서도 죽기 전까지 꾸준히 써온 작품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당시 신문에 연재하거나 잡지에 발표한 자료들, 함께 문학을 공부한 문우들과의 교우 등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는 곳이었다.

전시관 한가운데 커다란 책모형이 놓여 있는데 <봄봄>이 실린 책을 확대해 놓은 발상이 재밌었다. 김유정의 소설 속 배경이 되었던 만병산과 실레마을을 한바퀴 돌아보면서 작품 속 인물들과 이야기를 떠올려 보는 일도 좋았다. 문학촌을 나와 산국농장을 지나면 ‘동백꽃길’을 만난다. 점순이와 주인공이‘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파묻힌’장소이다.

만병산을 오르는 산자락은 동백꽃길 뿐만 아니라, 산골나그네길, 만무방길, 봄봄길, 금 따는 콩밭길 등의 이름을 얻어 명실공히 문학의 향기로 가득한 곳이다. <봄봄>의 배경장소는 마을 한가운데 제법 너른 들(한들)을 바라보는 곳이다. 바로 옆은 작품 속에 장인으로 등장하는 욕필이(김봉필) 영감집이고, 성례는 안 시켜 주고 일만 부려먹는 장인과 주인공이 드잡이 하던 논두렁이 그곳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김유정이 마을청년들을 가르치던 야학 '금병의숙'. 건물 옆 김유정이 직접 심었다는 느티나무가 보인다.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김유정이 마을청년들을 가르치던 야학 '금병의숙'. 건물 옆 김유정이 직접 심었다는 느티나무가 보인다. 2005년 2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김유정이 고향에 내려와 마을 청년들을 모아 야학을 가르치던 금병의숙은 이제 마을 노인정으로 바뀌었다. 다만 금병의숙 건물을 지을 당시 제자들과 김유정이 직접 심었다는 느티나무가 여전히 건재한 모습으로 서 있어 위안을 준다. 김유정생가에서 실레마을이 손에 잡힐 듯 바라다 보였다.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본질은 그것이되 얼굴이 새로워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들이 그 새로운 얼굴을 보러 하나둘 김유정 역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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