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통영] 솔향이 깊다. 햇볕 가득히 청마 유치환의 러브 스토리와 다도해의 낭만, 그리고 석양이 어우러진 곳. 통영시내에서 통영교나 통영대교를 넘으면 미륵도. 좌회전 일주든 우회전 일주든 반나절 정도면 일주 드라이브를 충분히 만끽한다. 나머지 시간은 통영의 잠 못 드는 밤이다.
통영엔 도대체 섬이 몇 갠가 했더니 무려 1백 51개란다. 그 많은 섬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장면은 얼핏 한 눈에 가늠하기 힘들다. 해서 정말인가 싶어 드라이브 도중 세 보는 사람 꼭 한두 명 있지 싶다. 그러진 말자. 눈부신 하늘빛이 어질어질하고 사랑스런 섬들에 눈멀어, 사고나기 십상이다.
통영 산양 일주도로는 통영대교나 통영교에서 시작해 미륵도 해안을 일주하는 1021번 지방도를 일컫는다. 통영 사람들은 꿈길 60리라 부른단다. 동백 가로수 사이로 시원스러운 바다와 점점이 떠있는 크고 작은 섬이 21km 내내 벗처럼 다가오는 길이다. 하지만 통영 드라이브의 재미는 이걸로 끝이 아니다. 통영에서만 즐길 수 있는 색다른 재미 세 가지.
출발, 청마의 ‘행복’을 안고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에메랄드빛 햇살이 스며드는 통영 우체국 창가. 청마(靑馬) 유치환 시인은 하루가 멀다하고 이곳에 들렀다. 정운(丁芸) 이영도 시인에게 연서(戀書)를 띄우기 위해서였다. 정운은 우체국에서 열 걸음 떨어진 수예점에 머물고 있었고, 청마는 창가에서 그녀가 수를 놓는 모습을 바라보며 엽서를 썼다.
두 사람은 그렇게 5년 동안 4천 통의 편지에 그리운 사연을 담았다. 그 엽서 한줄 한줄에 탐스럽게 수놓아졌을 통영의 바다는 그래서 더욱 애틋하다. 통영은 청마 유치환의 고향이다. 청마 뿐 아니라 시인 김춘수와 소설가 박경리, 음악가 윤이상과 시조시인 김상옥, 그리고 전혁림 화백을 비롯한 무수한 현대 예술인이 통영의 바다에서 나고 자랐다. 이른바 ‘통영문화협회’회원들이다.
통영은 그 섬만큼이나 많은, 아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예술인을 배출한 예향이다. 통영교에서 멀지 않은 정량동 언덕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청마 문학관. 드라이브를 시작하기 전에 잠깐만 이곳에 들러 청마의 ‘행복’을 안고 드라이브를 시작하는 건 어떨까.
둘, 달아 공원의 석양, 다도해에 잠기다
달아 공원은 산양일주도로의 액센트. 차를 세우고 매화나무와 소나무 사잇길을 따라 바위 언덕에 잠깐만 올라 보자. 달아 공원에서는 다도해가 한 눈에 보인다더니, 가보니 거짓말이다. 한 바퀴 빙 돌지 않고선 그 많은 섬을 다 볼 수 없다. 학림도, 비진도, 연대도, 연화열도, 욕지도, 두미도, 곤리도, 저도, 송도, 만지도, 장재도…. 따뜻하고 포근하다. 달아 공원의 바다 석양은 통영 8경 가운데 으뜸이란다.
달아 공원 근처 통영수산과학관의 풍광도 그에 못지않다. 가파른 언덕 위의 통영수산과학관이 저녁 무렵 불을 밝힌다면 거대한 다도해의 등대가 되지 않을까. 바다와 지구의 탄생을 담은 특수 모형을 비롯한 전시물도 볼 만하다.
셋, 물과 빛의 고향, 통영 강구안 야경
일곱 색의 빛이 수직으로 바다에 빠지고 있다. 소리 없는 밤배 하나가 그 빛을 가른다. 어두워지면 통영 시내 남망산 공원의 수향정(水鄕亭)에 올라 보자. 소나무 향기는 밤에 더욱 짙다. 그 너머 강구안 해협에 빛의 나이아가라가 펼쳐진다.
통영대교와 통영교 아래의 강구안 해협은 원래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미항이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는 이렇듯 도시의 야경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가 보다.
통영에 그 많은 예술인이 배출된 데에는 흔히 두 가지 이유를 든다. 일찍 개항한 덕에 서양 문물이 들어오고 일본 유학생도 많았다는 점, 그리고 구한말 전국에 세 군데 밖에 없는 극장 가운데 한 곳이 개관하면서 공연 문화가 성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은 하늘빛과 오색빛이 물의 품에 잠기는 곳에선 시(詩)가 저절로 날개를 달지 않았을까.
남망산 공원은 조각공원이다. 통영의 조각가 심문섭을 비롯해 세계 10개 국 유명 조각가 15인의 작품이 심포지엄하듯 넓은 공원 언덕에 어우러져 있다. 야경을 벗삼아 작품을 감상하는 산책도 나쁘지 않을 듯.
Tip. 통영 국제음악제 (Tongyeong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지난 3월 4회째를 맞는 2005 봄 시즌 통영 국제음악제가 열렸다. 통영 국제음악제는 평소 만나기 힘든 현대음악전문 연주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음악제로, 규모나 수준에서 이미 남도의 대표적 음악제로 자리 잡았다.
봄, 가을 시즌별로 개막된다. 윤이상 타계 10주기를 기념한 올해 음악제의 메인테마는 그가 74년 작곡한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기억(Memory)’이었다. 오는 10월 27일부터 11월 6일까지 펼쳐질 가을 시즌에는 정기음악회와 함께 국제 윤이상 심포지움과 경남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 경연도 함께 열린다.
풍화 해안 일주도로
풍화 해안 일주도로는 통영 미륵도가 숨겨 놓은 또 하나의 드라이브 코스. 미륵도 서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풍화리를 한바퀴 도는 해안도로다. 풍화리의 길은 그야말로 구절양장의 연속이다. 마을 앞에는 오비도, 월명도, 이끼섬 같은 섬들이 떠있고 굴양식장이 바다를 가득 메운 풍경이 정겹다.
맛집
수봉식당 : 미륵도 영운 포구의 부담없는 해물탕집. 수족관에 넣어 둔 직접 잡은 꽃게로 싱싱한 해물탕을 끓여 낸다. 포구 앞 바다에 떠있는 ‘복바위’에 얽힌 사연이 재밌다. 애초에 이 바위는 남근의 형상이었는데, 영운 포구의 아낙들이 이 바위 때문에 자꾸 바람이 난다며, 남편들이 다이너마이트로 바위를 날려 버려 잔해만 남았다.
두메골 식당 : 12년 동안 통영 시민의 사랑을 받는 아구찜과 대구찜 집. 맛은 물론 가격도 12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고. 간판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신전리 시내버스 정류장 앞.
뚱보 할매김밥 : 통영에서 충무 김밥 안 먹을 수 없다. 충무 김밥의 원조라고 인정받는 몇 곳 가운데 하나. 충무김밥 맛은 밥맛과 무김치를 얼마나 잘 삭혔나에 좌우된다. 무김치와 오징어 무침으로 맛을 낸다. 통영시내에서 문화마당을 찾을 것.
숙박
달아 펜션 : 건축가 주인이 직접 지은 펜션. 발코니에서 남도의 바다와 산양일주도로를 내려보며,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 황토방 구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