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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서당체험] 지리산 청학동 명륜학당
[서당체험] 지리산 청학동 명륜학당
  • 노서영 기자
  • 승인 2005.07.11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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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마산여중 학생들의 서당체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리산 청학동, 명륜학당.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마산여중 학생들의 서당체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리산 청학동, 명륜학당.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여행스케치=하동] 어깨가 들썩들썩. ‘문지기놀이’에 푹 빠진 3백여명의 마산여중 새내기. 명륜학당을 감싸고 있는 지리산 전역에 풍금이 울린다. 여중생의 장단에 살랑살랑, 보름달도 엉덩이를 흔들며 지리산 꼭대기로 살금살금 기어오른다.

“예, 알겠습니다.” “예, 그러겠습니다.” 카랑진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은 ‘인간의 도덕과 윤리를 밝힌다’는 이름의 서당, 명륜(明倫)학당이다.

옛 선비들이 살았던 청학동 도인촌. 지금은 빈집도 여러 채다.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옛 선비들이 살았던 청학동 도인촌. 지금은 빈집도 여러 채다.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ㅁ자형으로 지어진 전통 한옥집에, 3백여명의 앳된 중학생들이 훈장님께 공손히 머리를 조아린다. 명륜학당에 오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게 바로, ‘공수(拱手)-두 손을 포개어 잡는 것’하고 90도로 허리를 숙이는 인사법이다.

웃어른이나 훈장님, 훈사님 그리고 학당 내부에서 외부로 나갈 때, 항상 공수하고 예를 갖춘다. 충직한 애완견이 주인에게 하듯이 왈가닥 마산여중 학생들은 하룻밤 만에 돌변했다.

"네 잘못을 네가 알렸다" 벌 서고 있는 장기교육생.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네 잘못을 네가 알렸다" 벌 서고 있는 장기교육생.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전날 이정석 훈장의 ‘효(孝)’에 관한 강연을 듣고 눈물을 흘린 여학생들은 어른에게 대하는 몸가짐이 예전 같지 않다. “왜 울었는데?” “지금까지 부모님 걱정시켜 드린 거 너무 죄송하고…. 돌아가시면 더 이상 효도할 수 없다고 하시는데 그때 막 눈물이 쏟아졌어요.” 시연이가 수줍게 말을 꺼낸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갈 때는 어디 간다고 말씀드리고, 일 도와드리고….” 어릴수록 빨리 받아들이고 깊이 흡수한다. 인성교육은 더욱 그러하다.

지리산 청학동 명륜학당의 이정석 훈장.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명륜학당의 이정석 훈장.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충(忠), 효(孝), 애(愛). 이 세 가지가 모두 같은 데서 출발하지요.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대상이 다를 뿐, 근본적인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곧 희생정신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고요. 영어나 수학 같은 과목을 수학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서당에서 가르치는 것, 제가 가르치고 싶은 것, 교육이 나아갈 방향이 바로 그것입니다.”

말씀을 하는 이정석 훈장의 눈망울에 번쩍 별똥별이 스친다. 돌연 우르르 여학생들이 서당 뜰 안으로 몇 개의 큰 원을 그린다. 다가가니 그 안에서 남자훈사가 떡메를 치고, 여자훈사는 떡쌀을 매만진다.

학생들의 얼굴에 콩고물을 묻히며 입에 떡을 넣어주는 훈사.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학생들의 얼굴에 콩고물을 묻히며 입에 떡을 넣어주는 훈사.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오나라 오나라 아주오나~, 가나라 가나라 아주가나~.” 한명이 선창하니 이내 반 학생들이 한소리로 합창한다. 장금이 훈사와 김유신 훈사가 떡메를 치는데 분위기가 묘하다.

감수성이 예민한 여중생들이 놓칠까보냐. 드라마 대장금 주제곡을 목청껏 부른다. 사춘기 여중생 최고의 관심사는 역시 사랑(?). 다른 조보다 일찍 떡이 완성된 김유신, 장금이 훈사 조는 떡을 떼어 콩고물에 묻히고는 학생들에게 먹여준다.

여학생들은 송아지마냥 눈 크게 뜨고 남자훈사에게 말한다. “훈사님~, 저 하나만 더 주세요. 네?” 천진한 여중생들 애교에 감히 거절할 사람 몇이나 될까.

학생들의 얼굴에 떡고물을 잔뜩 묻히고서 선심 쓴다. “옛다. 너 벌써 세 번째야. 이제 그만. 자, 다음 못 먹은 사람?”

서당 교육은 때론 엄격하다.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무릎 꿇고 서당 교육을 받는 어린이.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서당체험이라면 왠지 딱딱하고 졸릴 것 같지만, 실제는 다르다. 훈장님 앞에서 무릎 꿇고 ‘사자소학(四字小學)’을 배우는 시간, 절하는 법을 배우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전통놀이 ‘투호(投壺)’던지기나, ‘강강술래’놀이도 있다.

적절한 유희를 곁들인 명륜학당의 서당체험을 하러 국내 각 지역 학교에서 찾아든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달이 빼꼼 얼굴을 내미는 즈음, 기다리고 기다리던 강강술래놀이가 시작된다.

전라도 지방에서 전래하는 민속놀이로, 원을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 ‘강강’과 경계를 의미하는 한자어 순라(巡邏)에서 나온 ‘술래’를 합쳐 강강술래라 불리게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은 부녀자들에게 군복을 입히고 수십명씩 무리를 지어 산에서 노래 부르며 내려오게 했다.

수만의 대군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전략이었던 강강술래. 남생아 놀아라, 청어엮기풀기, 덕석몰이풀이, 문지기놀이 등도 강강술래의 일종이라고. 연생이 훈사가 학생들을 지휘한다.

강강술래의 일종인 '문지기 놀이'에 신난 마산여중 1학년 학생들.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강강술래의 일종인 '문지기 놀이'에 신난 마산여중 1학년 학생들.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이번엔 문지기놀이 해보자. 조용히 하고 크게 따라 부른다, 자~, 문지기문지기….” “문지기문지기 문열어 주소, 열쇠없어 못 열겠네.” “어떤 대문에 들어갈까, 동대문으로 들어가.”

둘씩 짝지어 문을 만들고, 그 안으로 나머지 학생들이 들어가고 또 문을 하나 더 만드는 놀이가 문지기놀이. 웃다가 넘어지고, 돌다가 미끄러지는 학생들은 반복해도 또 하자며 지치질 않는다.

2박 3일 일정으로 단체로 서당체험 온 마산여중 1년생들. 삐쭉빼쭉 말을 안들을 법도 하지만, 첫날 훈장님의 설교 덕분인가, 한바탕 울음으로, 살아오면서 지은 죄를 회개한(?) 학생들은 훈장님, 훈사님의 말씀에 군말없이 따른다.

어른을 공경하고,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떠나는 학생들. 그들의 얼굴과 마음속엔 청학동의 티없이 맑은 하늘마냥 푸르고 푸른 기운이 스며들고 있었다.

여자의 숙배(큰절)하는 법. 숙배는 부모, 조부모, 존경하는 분께 한다.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여자의 숙배(큰절)하는 법. 숙배는 부모, 조부모, 존경하는 분께 한다.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Tip. 체험 프로그램 소개
학기중에는 학교별 단체 프로그램이 있고, 방학 중에는 개별로 등록해서 서당교육을 받을 수 있다. 훈장님과 함께 읊는 사자소학, 판소리, 강강술래, 짚풀공예 및 제기 만들기, 기초생활 예절교육 및 떡 만들기 체험 등 다양한 전통문화를 배울 수 있다.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삼성궁 모습.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삼성궁 모습.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지리산 삼성궁
환인, 환웅, 단군을 모셨다 하여 삼성궁(三聖宮)이다. 문 밖에서 징을 세 번 치고 기다리면 갓을 쓰고 허리에 칼을 찬 수자가 나와 안내한다. 비밀의 화원처럼 입구의 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완연 다른 별천지 세상이 펼쳐진다.

배달민족의 혼을 일으키고 민족적 구심점을 형성하기 위해 한풀선사(大氣仙師)가 한평생 동안 홀로 솟대를 쌓았다. 10만평 정도가 되는 삼성궁에는 1,200여 개의 돌탑과 솟대가 있다.

곳곳에 ‘배달(倍達)길’이란 이정표가 많은데, 밝다는 의미의 ‘백(白)’이 모음변형 되어 ‘배’로, 응달(陰地)이나 양달(陽地)의 ‘달(地)’이 합쳐져 ‘밝은 땅의 길’, 배달길이라 한다.

삼선당 된장찌개 한 상.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삼선당 된장찌개 한 상. 2005년 7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삼선당 된장찌개
간장, 된장, 고추장을 직접 담가 요리를 만든다. 깊은 맛이 골골이 스며드는 시골된장찌개와 갖가지 나물과 고추장을 비벼먹는 새코름한 산채비빔밥이 일품이다. 이밖에도 파전과 도토리묵을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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