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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동호회 따라가기] 대신증권 '산사랑회', 한없이 올라만 가고 싶은 사람들
[동호회 따라가기] 대신증권 '산사랑회', 한없이 올라만 가고 싶은 사람들
  • 이민학 기자
  • 승인 2005.11.18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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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동강 제1의 비경으로 꼽히는 어라연. 동강 물줄기가 크게 휘돌아가는데 중간에 바위가 있어 선경을 연출한다. 래프팅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동강 제1의 비경으로 꼽히는 어라연. 동강 물줄기가 크게 휘돌아가는데 중간에 바위가 있어 선경을 연출한다. 래프팅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영월] 새벽 어둠이 채 가시기전 여의도 대신증권 본사 앞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든다. 한국의 월가라는 여의도 증권가. 토요일이면 일주일간 전쟁(?)을 치르고 난 뒤의 적막감이 깃드는 곳인데 여기서 또 오를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산사랑회> 회원들이다.

“우리 입사 동기야. 그거 몰랐어?” “어머. 난 한참 아래인 줄 알았는데.” “내가 좀 젊어 보이긴 하지.” “호호. 얘가 착각 증세가 심하긴 해.”

알고 보니 입사 동기였다는(?) 세 사람이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걷는 산길. 오르막인데도 입심 덕분인지 힘이 달리지 않는다. 전국 각 지점으로 흩어져 있는 증권사라는 특성 때문에 이런 기회 아니면 얼굴 한 번 마주치기 어렵다.

재기발랄한 젊은이들이 바삐 지나간 뒤로 이번엔 머리 희끗한 중진들이 한담을 나누며 차근차근 오른다. 대화내용도 세상사는 얘기로 흘러간다. 가을 하늘 아래 동강은 흐르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끊이질 않는다.

지난 6월 결성되어 7월에 강화 마니산으로 첫 산행을 간 대신증권 산사랑회. 세 번째 산행인 오늘은 영월 잣봉이다.

잣봉은 동강의 절경 어라연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산이다. 해발 537m로 그다지 높지 않으면서도 동강의 절경을 감상하고 강을 따라 내려오는 트레킹 코스가 어우러진, 클래식으로 치면 정갈한 ‘소품’에 해당될 듯하다.

김진효 산악회장은 불수도북 종주를 준비중이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김진효 산악회장은 불수도북 종주를 준비중이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약 9km에 4시간가량 걸리는 코스. 짧다지만 그래도 늘 책상에 앉아 컴퓨터와 씨름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땀나는 코스다. 김진효 산악회장도 처음부터 많은 것을 바라진 않는다.

“이제 시작이니 차근차근 체력들을 다져가야지요. 내년 봄에는 불수도북 종주산행에 도전할 겁니다.”

불수도북.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을 잇는 종주 산행은 산악인들이 체력을 다지기 위해 애용하는 코스. 장차 백두대간 종주에의 도전을 염두에 둔 산행이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기업체마다 사내산악회가 활발해서 가끔 산악회에서 만나 결혼했다는 사내커플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었다. 그러던 것이 IMF시대라는 전대미문의 수난을 거치며 한풀 꺾인 듯한 분위기이다.

평생직장의 틀이 깨진 것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대신 요즘은 인터넷을 통한 산행동호회가 활발하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면이 있다. 하는 일도 살아온 이력도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 산을 오르며 친해진다.

그래도 한계가 있어 모래알 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이에 비해 사내산악회는 금세 끈끈한 정으로 맺어진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 솥 밥을 먹는 식구들이니 말이다.

“아무래도 회사 생활에 활력이 되지 않겠어요? 그동안 다른 지점 사람들은 얼굴도 모르고 지내왔는데 이런 기회에 서로 알게 되면 일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능력위주의 사회가 되면서 기업 분위기도 각박해졌는데 좀더 인간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정장을 벗고 산에서 만나니 사우가 한층 가깝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정장을 벗고 산에서 만나니 사우가 한층 가깝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아직은 서먹서먹한 감이 없지 않지만 산행에 참여할수록 마음속의 동지감도 깊어 간단다. 잣봉 정상에서 어라연 위쪽 언덕으로 내려오는 길은 한 20분 정도 걸리는 가파른 내리막이다.

어라연 위쪽 안부에서 남쪽 비탈길로 내려오면 동강을 따라 내려가는 평탄한 트레킹 코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동강 따라 내려가는데 가만 보니 저절로 일정한 대열이 형성된다. 선두에 젊은 직원들이 서고 그 뒤로 여직원들이 본대를 이룬다.

그 뒤를 다시 장년층의 간부들이 받치고 가고 있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이룬 대형이다. 문득 우리 기업들도 이래야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패기에 찬 젊은이들이 앞을 열고 노련한 장년들이 뒤를 받치며 가는 모습.

어라연을 풍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우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어라연을 풍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는 사우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38선이니 사오정, 오륙도니 하는 살벌한 소리가 들려오는 직장인들의 세계가 이제는 좀 평안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시대에 뒤처진 생각일까?

동강 하류로 내려가다 보면 만지나루가 나온다. 그 앞에 작은 가게가 있는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 시원한 막걸리를 한 사발씩 들이켜고 도토리묵 무침을 한점씩 집는다.

사무실에서만 보던 창백한 얼굴들에 화색이 도니 다른 사람들 같아 보이는지 연신 싱글벙글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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