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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시골 장터 기행] 자리 바뀐다고 장터가 어디가나 강화오일장
[시골 장터 기행] 자리 바뀐다고 장터가 어디가나 강화오일장
  • 전설 기자
  • 승인 2015.01.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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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네모반듯한 강화풍물시장 건물 주차장에서 펼쳐지는 강화오일장. 사진 / 전설 기자
네모반듯한 강화풍물시장 건물 주차장에서 펼쳐지는 강화오일장.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강화] 장날마다 팔 사람 살 사람 어우러져 오일장이 열리던 강화풍물시장. 2007년 시장이 강화읍내에서 외곽의 최신식 건물로 옮겨갈 적에, 시골장의 정취를 영영 잃어버릴 것이라 걱정하는 이 많았다. 하지만 다시 찾은 강화오일장은 여전히 볼거리와 살거리 풍년이 들었다.

“에헤이!” 강화여객자동차터미널에서 오일장이 열리는 강화풍물시장으로 넘어가는 길목이었다. 시장 앞 철장 속 강아지며 고양이가 귀여워 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강원희 씨가 손사래를 친다. “사진 찍지 마요. 귀엽다고 찍어가서는 자꾸 동물보호단체 같은 데 동물학대다 뭐다 하면서 인터넷에 사진을 올려. 아니 이것들도 어딘가 팔려야 좋은 주인만나 잘 살지 않겄어요? 그래야 나도 먹고 살지.” 무어라 대꾸할 말이 없어 고개를 주억거리다 물러난다.


보송보송한 강아지가 저들끼리 몸을 부비며 온기를 나누듯, 장터 안 상인들도 칼바람 피해 삼삼오오 모여 커피 한잔으로 몸을 녹인다. 그 바람에 주인 잃은 난전에는 인삼, 곶감, 시금치를 담은 바구니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시멘트로 붓고 으리으리한 지붕 올려 새로 지은 강화풍물시장 건물 안쪽은 한겨울에도 후끈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장날 장터를 찾는 거리의 상인들에게는 한겨울 추위도 벗이며 동료일 뿐이다. 매서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면서도 지나치는 사람을 목청껏 불러 세운다. “아가씨 콩 한바구니 사. 싸게 줄게. 사라니깐!” 부탁과 고함 중간 즈음되는 호객소리가 경쾌하다. 시끌벅적한 장터 분위기에 슬슬 흥이 오른다.

손난로대신 들고 다니기 좋은 찐 옥수수. 사진 / 전설 기자
사진 / 전설 기자

“강화에 순무 사러 왔어? 이거 들여가. 10개 5000원에 줄게. 순무는 그냥 겨울무랑 달라. 단단하고 들척지근해서 그냥 베어 먹어도 맛있고 국을 끓여도 맛있고 김치를 담가도 오래 먹어. 예전에는 기관지 안 좋을 때 배추꽁지랑 순무랑 썰어다 설탕 쳐서 약으로도 먹었어.”

자줏빛 무를 꽉 눌러 짜부라뜨린 모양새가 동글동글 귀엽기도 하다. 아무생각 없이 할머니가 담아주는 대로 넙죽 받아서 돌아서는데 열 걸음 즈음 걸으니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아낌없이 담아준 5000원 어치 순무가 어찌나 무거운지 몸이 기우뚱기우뚱 흔들린다.

알록달록 '몸빼 바지'가 단돈 5000원! 사진 / 전설 기자
들고다니며 먹을 수 있는 시장 간식. 종류도 양도 푸짐하다. 사진 / 전설 기자
시장표 튀김은 역시 튀김옷을 두껍게 입혀 그 자리에서 튀겨내야 제맛. 사진 / 전설 기자

비닐봉지 째 안고 가다가 손목에 걸고 가다가 끝내 바닥에 내려놓는다. 의도치 않았지만 마침 멈춰선 자리가 튀김과 떡볶이가 앞이다. 허기도 달랠 겸 곱아든 손가락도 펼 겸 튀김 한 접시를 주문한다. 앞줄 튀김은 4개, 뒷줄은 5개 2000원. 떡볶이 국물을 넉넉하게 두른 튀김을 덥석 깨문다. 두꺼운 튀김옷이 바삭바삭 씹히는 것이 고급스럽지는 않아도 입맛이 당기는 시장표 간식답다. 한 접시를 해치우고 뜨끈한 어묵 국물까지 챙긴다. 날이 매서워서인지 짭짤한 국물 한 모금에 맛보려는 사람이 계속 몰려든다. 강화읍에서 지금의 자리로 한차례 자리를 옮긴 후에, 장터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리라 생각한 것은 단단한 오해였나 보다.

“왜 시장 이사 오기 전부터 여 나와 콩도 팔고 깨도 팔았지. 뭐 앉는 자리 바뀐다고 파는 사람 팔자까지 바뀌나. 시장 서면 오일장 열리고, 오일장 나와야 뭐든 팔아먹으니까 쫓아오는 거지. 다 똑같어. 팔러 나올 땐 장사꾼, 사러 나올 땐 손님이고 다 그런 거야.”

한걸음 물러서서 아메리카노 대신 어묵 국물을 후루룩 거리며 시끌벅적한 장터를 바라본다. 물건을 앞에 늘어놓고 쭈그리고 앉아 꾸벅꾸벅 조는 할머니, 언 발을 녹이려 겅중겅중 뛰는  사내, 마지막 남은 ‘떨이’를 팔기 위해 목청을 높이는 여인…. 그들의 치열한 삶이 칼바람을 이긴다. 찐 옥수수를 손난로 대신 주머니에 챙겨 넣고 다시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설 채비를 마친다. 오늘은 조금 더 오래 이 열기 속에 머물러야겠다.

사진 / 전설 기자

강화오일장에서 만난 사람 
호떡 장수 청희 씨

호떡집에 불난 것 같아요. 잠깐 인터뷰 괜찮으세요?
그럼요. 호떡 맛있게 부친다고 사진 찍고 인터뷰도 해서 책에 소개해주면 그 책 보고 강화오일장 한번이라도 더 오고, 호떡 한 장이라도 더 살 거 아녜요. 그 좋은걸 왜 마다해요.

바쁘셔서 거절 하실 줄 알았는데 천만 다행이예요
어머. 내가 싸남뱅이 처럼 보이긴 하나봐. 이것보다 바빠도 하나도 안 태워먹고 잘만 붙이니까 걱정 말아요. 가끔씩 막 2만원 어치 달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잘만 팔아요. 시장이 한번 이사하고 사람이 좀 줄긴 했는데 장날에는 항상 몰리거든요. 나는 장사 잘 되니 좋지요.

장터에서 호떡 장사는 언제부터 하셨어요?
강화오일장에서만 수년이죠. 한 10년 될라나? 여기 오가는 사람들 얼굴 다 알아볼 정도니 오래됐요. 어디든 정붙이고 일하면 거기가 집이고 고향이니까 난 여기 장터가 고향이죠.

제가 오늘 장터명물 제대로 만난 것 같은데, 호떡 홍보 좀 해주세요
나 말고 여기 맨날 오는 손님 한테 물어봐요. 맛이 있어서 오는지 없어서 오는지. 안 잊어 먹고 찾아오는 걸 보면 맛이 없진 않은가 봐. 장보러 오다가다 들러서 뜨거운 호떡 먹는 재미로 오는 것 같기도 하고. 하긴 이렇게 추운 시절에는 달고 뜨끈한 호떡만한 게 없잖아요?

특산품 순무, 속노란 고구마, 밴댕이, 화문석, 약쑥 등등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중앙로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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