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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기(氣)찬 마을 여행
[기(氣)찬 마을 여행
  • 박효진 기자
  • 승인 2015.0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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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3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5년 3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여행스케치=임실]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은 박사고을로 불린다. 삼계면 출신 사람들 중 무려 16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박사 학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세심마을과 후천마을이 있다. 출신 인구 대비 박사 배출률이 다른 마을보다 월등히 높은 이 마을에는 어떤 특별한 기운이 있어 박사들이 많이 배출된 것일까. 초봄 세심마을과 후천마을을 찾아 학문운을 받아보는 여행은 어떨까. 

코앞에 봄이 다가 왔건만 임실군 삼계면 소재지로 들어서니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결국 싸락눈이 쏟아진다. 조심조심 운전을 하며 박사고을의 중심지인 세심마을에 도착했건만 너무나 평범하고 조용한 마을이어서 당황스러울 정도다. 그 흔한 안내 표지석도 없어 이 마을이 속된 말로 ‘요즘 뜨는 마을’이란 것을 아무도 모를 지경이다. 

삼계면 출신 박사들의 명예의 전당 역할을 하는 박사골체험관. 2015년 3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삼계면 출신 박사들의 명예의 전당 역할을 하는 박사골체험관. 2015년 3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박사골체험장에 전시되는 박사현황판. 2015년 3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박사골체험장에 전시되는 박사현황판. 2015년 3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추기라도 하듯 세심마을 내에 위치한 ‘박사골체험관’부터 찾아간다. 박사 여행의 시작은 이곳 박사골체험관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근엄한 표정으로 박사모를 쓰고 책을 들고 있는 박사 동상을 뒤로하고 박사골체험관에 들어서니, 임실박사골권역 운영위원장이자 세심마을 이장인 오흥섭 씨가 만면에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반갑게 맞아준다. 


오 위원장의 소개로 박사골 체험관을 둘러보니, 박사고을 출신의 박사 명단과 사진, 박사 학위가 기록된 현황판이 체험관 안에 빼곡하다. 이곳에 이름을 올린 박사들은 모두 삼계면 출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모두 163명이란다. 그러면서 이 숫자도 작년 4월까지의 집계이므로 지금은 어림짐작으로 170명은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이야깃거리는 자연스레 박사고을이 박사를 많이 배출하게 된 원동력으로 옮아간다. 오흥섭 위원장이 다른 박사마을보다도 더 많은 박사를 배출한 세심마을과 후천마을의 박사 배출 요인을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준다. 

“먼저 마을의 터가 좋습니다. 살기 좋다는 배산임수 형 마을인데다, 저기 보이는 감은산 문필봉의 영향을 받았다고 풍수학자들이 얘기를 합니다. 또 우리 마을과 후천마을은 예로부터 집성촌 마을로 유명했습니다. 선의의 경쟁으로 학구열까지 높았으니 배움의 기회가 더 많았던 것이 지금에 이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마을과 후천마을은 예로부터 은행 마을로 유명합니다. 요즘은 은행 농사를 짓는 집이 없지만, 아직도 마을 안에는 은행나무가 많습니다. 아마도 은행나무 향이 공부하는데 필요한 집중력을 올려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로부터 풍수학적으로 ‘문필봉(文筆峰)’이라는 지명이 붙은 동네치고, 유명한 학자나 현인이 배출되지 않은 곳이 없다.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세심마을과 후천마을에서도 박사가 배출된 집터는 거의 모두 문필봉 쪽을 바라보는 형세로 지어졌다고 한다. 또 먹고 살기 바빴던 가난한 시절부터 선의의 학구열로 인해 남들보다 교육의 기회가 더 많았으니 이게 박사 배출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게다가 은행나무는 예로부터 혈관을 맑게 해주고, 또렷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던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불경을 공부하던 스님들의 거처를 지을 때에도 항상 은행나무부터 심었다지 않는가.
 
오흥섭 위원장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마을을 찬찬히 둘러보기 위해 체험관 밖을 나선다. 체험관 밖을 나오자마자 골목 어귀에 은행열매가 한 무더기 쌓여있는 것이 눈에 띈다. 지난 가을 수확하지 못한 철 지난 은행열매지만 오 위원장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새롭다. 이어 세심마을을 품고 반 바퀴 돌아 후천리에서 오수천과 합류해 섬진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후곡천을 보기 위해 마을 어귀로 발길을 옮긴다. 하천변을 따라 아름드리나무가 잘 자라있어 이 마을에서 공부하던 사람들이 이 길을 걸으며 머리를 식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하천 정비공사 중이지만 정비가 끝나면 예전의 수려한 본모습을 찾아 세심마을의 자랑거리가 될 성싶다. 

박사약수로 불리는 박사골체험관 옆의 박사우물. 2015년 3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박사약수로 불리는 박사골체험관 옆의 박사우물. 2015년 3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오 위원장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목이 칼칼하다. 물 한 잔을 부탁했더니 오 위원장이 ‘박사 약수’를 마시자며 체험관 밖 쉼터 옆에 있는 아담한 우물로 인도한다. 

“이 물이 우리 마을 출신 박사들이 마셨던 박사약수입니다. 이 시원한 물도 박사를 많이 배출시킨 또 다른 요인이 아니었을까요?”


시원하고 산뜻한 물을 마시니 몸이 시원해지고 머리까지 맑아오는 느낌이다. 이 물도 분명 세심마을의 박사를 배출하는데 한몫을 했으리라. 물을 마시고 나서 오 위원장이 인근 후천마을의 ‘6박사 집’을 보러가자며 앞장을 선다. 

세심마을 박사 여행 중심지가 ‘박사골체험관’이라면, 후천마을 박사 여행 중심지는 ‘6박사 집’이다. 이 집은 정말 특별한 집이다. 이 집의 주인이었던 고(故) 노상순 박사를 필두로 3대에 걸쳐 모두 6명이 박사 학위를 받았고, 또 다른 손자 한 명도 현재 박사 학위 심사를 받고 있어 곧 ‘7박사 집’으로 고쳐 부를지도 모르는 영예로운 집이기 때문이다.

6박사 집 사랑채에 쓰인 '부지런히 일하지.'는 근면 격려 글귀. 2015년 3월 사진 / 박효진 기자
6박사 집 사랑채에 쓰인 '부지런히 일하지.'는 근면 격려 글귀. 2015년 3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좁은 진입로를 따라 후천리 오류골마을로 들어선 오 위원장이 차량을 한쪽에 대고 허름한 골목으로 손을 잡아끈다. 오 위원장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서니 고풍스럽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허름하다고 해야 할까, 한눈에도 꽤 오래돼 보이는 집의 사랑채가 위풍당당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한쪽 벽면에 큰 글씨로 쓰인 ‘부지런히 일하자’라는 글귀. 매사에 저렇게 부지런했으니 공부도 열심히 했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랑채를 지나 본채로 들어서니 오 위원장이 솔깃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풍수학자들은 이 집터를 중심으로 귀봉(貴峰)이 사방에 있는 명당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운이 모이는 곳이 저기 옥당(玉堂)이라는 당호(堂號)가 붙은 이 집 안방이고요. 그런데 아직도 이 집 안방에는 그 특별한 기운이 많이 느껴진다고 하네요.”

6박사 집 안방에 많이 남았다는 그 특별한 기운이 마치 내 것인 것 같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나보다는 더 필요한 사람에게 그 특별한 기운이 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발길을 돌린다. 만물이 움트는 3월,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함께하는 세심마을, 후천마을 나들이는 어떨까. 이 마을에는 아직도 누군가에게 학문의 싹을 움틔워줄 특별한 기운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INFO. 
박사골 체험관
주소: 전북 임실군 삼계면 세심리 28

6박사 집
주소: 전북 임실군 삼계면 후천리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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