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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추억 여행] 응답하라 1960~1970 추억과 희망의 구로공단 여행
[추억 여행] 응답하라 1960~1970 추억과 희망의 구로공단 여행
  • 전설 기자,김은혜 기자
  • 승인 2015.02.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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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김은혜 기자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김은혜 기자

[여행스케치=구로] 1970년대는 통기타 반주에 찬란한 청춘을 노래하던 대학생들의 시대이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로 무거운 피로를 씻던  ‘공돌이 공순이’의 시대이기도 했다. 세월 속에 잊혀진 그 시절 또 다른 청춘들을 만나러 50년 전 구로공단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디면 ‘그땐 그랬지’하고 웃으며 말할 추억이 된다. 그 시절 하루 16시간 고된 업무에 시달렸던 어린 여공은 상상조차 못했겠지만, 과거 열악한 노동자의 공간으로 기억되는 구로공단 역시 과거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추억의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구로구청이 구로공단의 역사적 명소를 하나로 연결한 <추억과 희망의 구로공단 여행>을 선보이면서 50년 전 구로공단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시간여행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법. 오늘은 ‘구로 제1코스-구로공단 장터길’, ‘구로 제2코스-산업화와 노동자의 길’ 코스 중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주요 명소를 연결해 걸어보기로 한다. 출발지는 옛 구로공단역, 세련된 영문이름으로 개명한 지하철 2호선의 구로디지털단지역 3번 출구에서 시작된다. 다 아는 동네라고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밸리’와 ‘타워’ 간판이 걸린 빽빽한 빌딩숲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앞서 걷는 시간여행자의 뒤를 바짝 쫓을 것.

새로 지어 올린 빌당숲이 좁은 골목길의 쪽방촌을 내려다본다.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김은혜 기자
새로 지어 올린 빌당숲이 좁은 골목길의 쪽방촌을 내려다본다.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김은혜 기자
닭장 같기도 하고, 벌집같기도 한, 구로공단 노동자 옛 보금자리 쪽방촌 전경.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김은혜 기자
닭장 같기도 하고, 벌집같기도 한, 구로공단 노동자 옛 보금자리 쪽방촌 전경.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김은혜 기자

빽빽한 빌딩숲속에 잠자는 벌집촌

지하철역 출구에서 나와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싸니전기’가 있던 코오롱싸이언스밸리다. 싸니전기는 지상 3층의 키 낮은 굴뚝형 공장들이 줄지어 있던 구로공단에서 대규모를 자랑했던 전자부품제조회사였다. 1966년 1공단(구로디지털단지역 일대)에 입주해 2003년 구로공단을 떠난 최후의 공장으로 기억된다. 싸니전기의 흔적을 되짚으며 새마을연수원과 공단직업 훈련원을 차례로 지나면 한손에는 횃불, 다른 한손에는 지구본을 들고 있는 여인을 만난다.

1970년대 섬유ㆍ봉제 산업의 주역인 여공을 영상화한 조형물 ‘수출의 여인상’이다. 한 때 건설공사에 밀려 자리를 잃기도 했으나 2013년 산업단지 출범 50주년을 맞아 옛 자리로 돌아온 여인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신도시와 원도심이 만나는 경계선, 공단고개에 접어든다. 길을 더듬어 가기 어렵거든 아무나 붙잡고 가리봉오거리로 가는 길을 물어보자. 백진헌 씨 같은 구로공단의 옛 얼굴을 기억하는 친절한 길잡이를 만날지도 모르니.

“싸니전기는 예전에 없어졌지요. 제가 구로에서만 10년을 살았는데 요즘에는 하도 빌딩이 많이 생기니까 가끔 저도 헤매요. 구로공단 옛 모습을 찾으면 저기 고개 너머로 가 보세요. 예전엔 벌집촌이 있던 곳인데 지금도 외국인이랑 조선족이 많이 사는 동네에요.”

그 많던 쪽방촌 사람들은 지금쯤 꿈을 이루었을까?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김은혜 기자
그 많던 쪽방촌 사람들은 지금쯤 꿈을 이루었을까?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김은혜 기자

 

백 씨가 짚어준대로 주택가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머잖아 한 건물 안에 30~50개의 작은 방이 붙어있고 1층에 서너 채의 공동화장실이 놓인 공동 살림집이 나타난다. 벌집, 닭장, 쪽방.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옛 공단 노동자들의 주거공간이었던 커다란 집들이 아직도 공단고개 골목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다. 변한 것이 있다면 방주인이 구로공단 노동자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바뀌었다는 것 뿐. 2005년 작 단편영화 <가리베가스>는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극중 쪽방에 살던 선화는 회사 이전으로 벌집촌을 나서며 방을 쓰게 될 사람에게 “꿈을 이루고 가세요” 라는 당부의 쪽지를 남긴다. 선화가 떠난 후 새로 방에 들어온 세입자는 외국인 노동자다. 영화 줄거리를 곱씹는 동안 그 많던 쪽방촌 사람들은 지금쯤 꿈을 이루었을까, 궁금해진다. 호주머니 속 몇 개 남지 않은 동전을 헤아리면서 다음 달 방세와 가족에게 보낼 생활비를 걱정했던 그 시절 청년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쪽방촌이 있는 언덕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면 곧바로 가리봉시장이다. 여공들의 기숙사 외출이 허용됐던 수요일이면 발 디딜 틈 없었다는 가리봉시장은 지금의 명동에 밀리지 않을 문화의 거리였다. 하지만 공단이 해체되면서 여공들이 떠났고, 그 빈자리를 90년대 초반부터 유입된 중국 동포가 채우면서 ‘연변거리’로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낯선 중국 먹을거리로 가득한 가리봉시장.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김은혜 기자
낯선 중국 먹을거리로 가득한 가리봉시장.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김은혜 기자

가리봉 시장을 지나 쪽방촌으로
중국어 간판이 걸린 전화방과 노래방을 지나면 양꼬치, 초두부, 개고기, 소배필(소삼겹살) 등 생소한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시장 안쪽 길까지 이어진다. 그 중 떡집 앞에 붙은 “쉰 떡 팜니다”라는 말이 생소해 고개를 갸웃 거리는데 김옥천 씨가 파하하, 웃음을 터트린다.

“중국 아가씨인 줄 알았는데 쉰떡 모르는 걸 보면 한국 아가씨입니까?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쉬어 터진 떡을 먹겠어요. ‘쉬이 만드는 떡’이라 해서 쉰떡이예요. 한국말로 하편 송편.”


창피함에 얼굴이 벌게져 줄행랑을 친다. 앞만 보고 뛰었더니 거대한 다리가 보인다. 1970년대를 상징하는 먹빛 화석 ‘수출의 다리’다. 어느덧 가리봉오거리로 접어들었나 보다. 이대로 구로역 방향으로 길을 찾으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겪을 수 있는 체험공간이 나온다. 1970~1980년대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한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체험관에 여공의 삶을 다룬 전시물과 체험공간을 꾸몄는데, 여공들의 귓속말을 엿들을 수 있는 ‘비밀의 방’, 아침마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공동 세면장’, 여공의 일상을 재현한 ‘순이의 방’과 ‘희망의 방’이 오래된 영화에서나 마주했던 그 시절의 삶을 생생하게 전한다. 생활관 지하에는 생활방, 문화방, 패션방, 봉제방, 공부방, 추억방 등 6개의 주제러 재현한 쪽방체험관이 마련돼 있다.

노동자생활체험관 앞 가리봉상회에는 그 시절 추억의 소품이 가득하다.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김은혜 기자
노동자생활체험관 앞 가리봉상회에는 그 시절 추억의 소품이 가득하다.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김은혜 기자
오래된 교복과 옛 교과서를 볼 수 있는 쪽방체험관의 공부방.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김은혜 기자
오래된 교복과 옛 교과서를 볼 수 있는 쪽방체험관의 공부방.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김은혜 기자

첫 번째로 만나는 ‘생활방’ 안으로 들어선다. 싸늘할 줄 알았던 방바닥이 따끈따끈하다. 반쯤 열려 있는 비키니 옷장, 벽면에 휙휙 벗어둔 겉옷과 핸드백은 친숙하다 못해 현실적이다. 금방이라도 방주인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에 그대로 자리를 깔고 앉는다. 손닿는 자리에 이불이라도 있으면 그대로 낮잠에 들어도 좋을 것 같다. 한참 늑장을 부리다가 그 시절 옷을 입어볼 수 있는 패션방과 송창식·심수봉·김도향 등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문화방을 차례로 거친다. 좁디 좁은 쪽방인데 가지고 놀게 얼마나 많은지 6개 방을 다 돌아보는 데 한참이 걸린다.

추억여행을 끝내고 갑자기 현실로 복귀하자니 아쉬움이 앞선다. 발걸음이 영 떨어지지 않는다면 체험관 앞쪽에 자리한 ‘가리봉상회’에 들러보는 것이 좋겠다. 뻑뻑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화목난로가 돌아가던 1980년대 동네 점방으로 순간 이동한다. 펌프를 꾹꾹 누르면 앞으로 뛰어나가는 승마인형, 한 장에 100원이던 종이인형, 반짝이는 공깃돌 같은 추억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은 물론 선반 위의 아폴로, 쫀드기, 콜라향 캔디 등등 ‘추억의 불량식품’ 역시 자유롭게 맛볼 수 있다. 시간여행의 끝을 달디 단 아폴로 한줌으로 마무리 한다. 가느다란 대롱을 쪽쪽 빨며 맛보는 추억의 맛이 달아서 다행이다.

INFO
구로제1코스 구로공단 장터길
2공단사거리(마리오사거리)→가리봉오거리(디지털단지오거리)→가리봉 커피호프→호남(공단) 식당→오거리아울렛→신발가게 골목→선화기숙사→고고장마부(홍루몽)→파노라마 쇼핑센타(전진고물상)→가리베가스 거리→엄지만화방{현재 폐쇄되고 대신 만화광장(지하) 간판만 자리하고 있음}→사거리흥면식점→백송패션→백양양품→구로시장→비단길→믿음화점→구로시장 먹자골목→칠공주 떡볶이→만남의광장

구로제2코스 산업화와 노동자의 길
구로디지털단지역(구 구로공단역)→싸니전기→새마을연수원→공단직업 훈련원→수출의 여인상→한국수출산업공단→삼경복장→대협→동남전기→공단고개→공단서점→나포리 음악다방→가리봉오거리(디지털단지오거리)→구로봉제협동조합→서울통상→효성물산→대우어패럴(기숙사 포함)→수출의 다리→가리봉역→외딴방(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
관람료 무료
관람 시간 10:00~17:00
주소 서울시 금천구 가산동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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