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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설따라 삼천리] 콩젖물에 슬쩍슬쩍 눈물간수 간을 하여 완주 한백상회 손두부
[전설따라 삼천리] 콩젖물에 슬쩍슬쩍 눈물간수 간을 하여 완주 한백상회 손두부
  • 전설 기자
  • 승인 2015.03.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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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완주] 퉁퉁 불린 콩을 맷돌에 간다. 웃돌과 아랫돌 사이 질금질금 새는 콩물을 받아 가마솥에 끓인다. 뽀얀 콩물에 간수를 치고 몽글몽글 핀 멍울을 네모난 틀에 붓고 누름돌을 얹는다. 그렇게 만든 두부 한 모. 손 가는 것에 비해 참으로 심심한 맛. 그런데도 찬계절 지난 이 즈음이면 왜 이다지도 그 맛이 생각나는지….

우리는 언제부터 두부를 먹었을까. 화두는 던졌으나 막상 ‘두부의 역사’를 따지려고 보니 맛이 안 산다. 돼지비계와 김치에 지져도, 된장 한 수저 풀고 끓여도, 하다못해 으깨서 동그랑땡을 부쳐도 맛난 두부건만 역사라는 고상한 단어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원두커피에 두부를 곁들이는 느낌이랄까. 내키지 않는 역사공부 대신 김영미 시인의 <두부> 속 한 구절을 빌려본다.

“그러니까 상고시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총인구수를 알고 싶다면 두부를 먹어본 사람 수를 헤아리면 되리라.” 그의 말처럼 두부는 밥상머리에서 쉬이 만날 수 있는 찬거리 중 하나다. 시장에 가도, 하다못해 집 앞 슈퍼에 가도 말간 물에 폭 잠긴 소담스러운 자태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찬계절의 후유증인지 별안간 따뜻한 두부가 먹고 싶어졌다. 끓는 콩물로 갓 만들어 김이 무럭무럭 솟는 손두부 말이다. 이 욕심을 채우려면 어디로 가야한단 말이냐.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두부 한 모 먹으러 완주 삼천리

기계로 만든 두부 말고, 사람이 만든 진짜 손두부를 찾던 도중 완주에 옛날 전통 방식 그대로 두부를 만드는 할머니가 계신다는 귀띔을 받았다.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아직도 가마솥에 군불을 때 두부를 만든다고 했다. 그러다 두부 한모 먹으러 완주까지 가도 되나, 계산기 두드려 가며 여정의 득과 실을 따지다가 이내 관뒀다. 이 몸이 먹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것이 참 여행이 아니면 무엇이랴. 그렇게 꼭두새벽부터 천리길을 달려 완주 연동마을에 찾아 든다. 겨울눈은 녹고, 봄의 새순이 돋기 전의 어정쩡한 계절. 한창 봄에는 상춘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연석산 입구는 황량하기만 하다. 분명히 이 근처인데, 꼬깃꼬깃 한 지도를 펼쳐 들고도 한참을 헤매다가 희미한 부름에 고개를 돌린다. 머지않은 곳에서 할머니 한분이 손짓을 한다. “이짝이여. 이짝으로 들어와.” 언제 올 줄 알고 나와 계셨던 걸까.

한백상회의 유일한 기계. 불린 콩을 곱게 갈아준다.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한백상회의 유일한 기계. 불린 콩을 곱게 갈아준다.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뜨거불 때 짜야 혀." 끓인 콩물을 쌀자루에 거르는 백인자 할머니.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뜨거불 때 짜야 혀." 끓인 콩물을 쌀자루에 거르는 백인자 할머니.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다리를 다쳐 싸서 쫓아가도 못하고 내리 불렀어. 이짝으로 오라고. 날이 이렇게 찰 줄 알았으먼 못 오게 하는 건디. 이 추운날 먼 디서 온다니께 지둘렸제. 여는 봄 와도 추워. 골짝이라. 아침 채려줄텡게 사진이든 뭐든 밥 먹고 혀. 새로 밥 앉혔으니께 이제 금방 돼.”

콩물이 우르르 끓어오르면 찬물 한 바가지를 부어 불길을 잡는다.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콩물이 우르르 끓어오르면 찬물 한 바가지를 부어 불길을 잡는다.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백인자 할머니가 발을 절뚝거리며 부엌으로 들어간다. 여든을 바라보는 노모는 말끝에 “나가 혼자 있응께 밥을 안해 묵어서 맨 찬밥만 있응게 새로 했어. 아랫목에 상 놓고 천천히 먹고 나와” 하신다. 편찮은 할머니를 홀로 고생시키는 것도, 그렇다고 애써 차려주신 밥상을 물리는 것도 못하겠어서 발만 동동. 심부름이라도 하려면 차려주신 밥 꼭꼭 씹어 먹고 따라 나서는 길밖에 없다. 쿰쿰한 청국장에 밥한 술 말아 직접 쑨 도토리묵, 깻잎 장아찌, 김장 김치, 멸치 볶음을 곁들여 한 그릇을 싹싹 비운다. 칼바람에 얼어붙은 몸이 훈훈하다.

콩물에 간수를 치면 순두부. 이걸 틀에 붓고 궅히면 손두부.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콩물에 간수를 치면 순두부. 이걸 틀에 붓고 궅히면 손두부.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콩젖줄에 눈물 대신 간수 치고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앞마당에 세운 할머니의 두부 작업실로 달려간다. 작업실이라고 해봐야 아궁이 주변으로 비닐천막을 처 놓은 것이 전부다. 그 앞에는 “아들하고 큰 사우하고 빠개놓은” 장작더미가 쌓여 있다. 밥을 먹는 동안 부지런한 할머니는 군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물을 끓이면서 불린 콩 까지 갈아놓았다. 커다란 가마솥에서 벌써 김이 무럭무럭 솟는다.

“콩은 우리 밭에서 난 놈들만 100% 써. 내가 키운 콩이 이렇게 많은디 딴 것을 왜 섞어. 껄쩍시러버서 그렇게 못 만들어. 반나절 불리놓고 콩 가는 기계로 갈어, 이거 없을 땐 고생도 겁나게 혔어. 이제는 뼉다구가 시려서 맷돌 못 돌려. 이놈 빼곤 다 손으로 하제.”

물이 펄펄 끓으면 곱게 간 콩물을 솥에 붓는다. 지금부터는 장작만으로 불 조절을 해가면서 콩물을 은근히 끓여야 한다. 얌전히 기다리면 되나 싶었는데 눈물이 줄줄 샌다. 군불의 매운 연기가 사방에서 끼친다. 오만상을 하고 눈물을 쏟으며 할머니 곁에 자리를 잡는다.

“고향이 진안 마이산 있는데여. 엄마가 잔칫날 마다 밤새도록 맷돌에 콩 갈아다 두부를 혔어. 나가 팔남매 중에 맞딸이라 심부름함서 보고 배웠제. 그때 배워서 아직 두부 짓는디 이짓도 그만 해야제. 다친 다리에 힘이 안 들어 가. 우리 아저씨 가고부턴 산중이라 말벗도 없고. 제사가 두 번 돌아 왔는디, 십년을 드러누버있다가 떡 한번 해 줬는디 맛있게 먹고는 다 개워내더라고. 그러곤 갔어. 아요. 콩물 끓네. 이제 불 꺼야 혀. 오래 끓임 못써.“

평생 가마솥에 불을 지펴온 할머니도 눈이 맵긴 매웠나 보다. 앞섶으로 눈물을 찍어 누르며 빈 쌀자루에 끓인 콩물을 붓는다. 고소한 콩물 냄새를 맡고 있자면 끓인 콩물을 한바가지 퍼서 그대로 꼴깍꼴깍 마시고 싶은 심정이다. 빵빵하게 채운 쌀자루 아니, 콩물자루에 거른 말간 콩물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콩물이 어느 정도 빠지면 쇠막대기로 눌러 비지에서 마지막 한 방울의 콩물까지 알뜰하게 짜낸다. 자루 틈새로 뽀얀 콩젖줄이 몽글몽글 맺힌다.


“콩이 좋으니까 비지도 안 비려. 빚어다가 띄워 놓으면 절에서도 찾아와 달라고 혀. 전도 해묵고 무쳐먹고 하면 맛있응께.” 콩물자루는 이제 홀쭉한 비지자루가 됐다. 두부 만들기도 어느덧 막바지다. 할머니가 콩물에 간수를 치고 휘휘 젓는다. 그러자 마법처럼 몽글몽글 흰 멍울이 꽃처럼 피어오른다. 하얀 국화꽃 같은 멍울과 노란 물이 분리가 되면 이게 바로 순두부. 순두부를 한바가지 떠서 따로 두고 나무틀에 쏟아 부어 굳히면 손두부 완성이다.

할머니가 농사지어 거둔 콩. 고소한 두부 맛의 비결이자 핵심.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할머니가 농사지어 거둔 콩. 고소한 두부 맛의 비결이자 핵심.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두부 한 모에 소원성취
틀에 순두부를 쏟아 붓고 누름돌을 올려 판두부가 되기를 기다리는 데 그새 새 손님이 들이닥쳤다. 할머니는 닭을 잡으러 가고 객들은 아랫목에 남아 이불을 덮는다. 그 사이 할머니 손두부의 오랜 단골인 김맹준 씨의 자랑이 이어진다. “구정에 두부 스물다섯 모를 여기서 맞췄어요. 실컷 먹고 친구 놈들 가는 길에 하나씩 쥐어 줬더니 아직까지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해. 이 동네가 전래 동화 ‘콩쥐 팥쥐’가 나온 동네인데 그래서 농사를 지으면 콩이 참 맛있거든요. 좋은 콩으로 옛날식 그대로 두부를 만드니 이렇게 고소할 수가 없죠.”
만경강 발원지라 물이 깨끗해서 두부가 더 맛있다, 젓가락으로 들어 올려도 부서지지가 않는다, 콩으로만 만드는 걸 뻔히 아는데 잘 상하지도 않는다…. 끝없는 두부 자랑을 듣고 있으려니 안달이난다. 부엌 쪽으로 목만 길게 빼고 두부 먹을 시간만 기다린다.

쇠막대에 체중을 누르며 콩물을 짜낸다.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쇠막대에 체중을 누르며 콩물을 짜낸다.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소박한 두부 한 상. 동동주를 곁들이면 임금님 수랏상이 부럽지 않다.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소박한 두부 한 상. 동동주를 곁들이면 임금님 수랏상이 부럽지 않다.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쌀자루 표면에 젖줄 같은 콩물이 송골송골 맺힌다.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쌀자루 표면에 젖줄 같은 콩물이 송골송골 맺힌다. 2015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할머니의 손두부를 직접 맛볼 시간. 자그마한 상에 채 식지 않은 두부 한 모, 조선간장에 들기름을 똑 떨어뜨린 양념장, 묵은지 한 접시, 조물조물 무친 배추 겉절이가 올라온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젓가락으로 네모반듯한 두부 귀퉁이를 뚝 잘라 먹는다. 내색을 않던 할머니도 반응이 궁금했는지 바싹 당겨 앉는다. 그 기대에 저버리지 않게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바닥을 구르며 “맛있어요!” 소리를 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무 간도 하지 않고 맛보는 두부는 야단을 부릴 맛이 아니다. 가만 고개를 끄덕이며 빙글빙글 미소 짓게 되는 맛이다.

오물오물 씹으면 처음엔 슴슴하다가 혀를 굴리면 굴릴수록 고소한 맛이 차오른다. 뒷맛은 달다. 자연에서 난 것들로만 빚어 혀를 찌르지 않는 단맛이 뭉근하게 번진다. 마냥 부드러울 줄만 알았는데 씹는 맛이 무르지만은 않다. 마치 오랜 세월 숙성한 치즈처럼 빽빽한데 혀로 짓누르니 또 언제 사르르 풀어진다. 묵은 지와 함께 먹어도 시큼한 맛의 끝엔 마침표처럼 고소한 맛과 향이 남는다. 양념장에 푹 찍어 먹으면 우둘투둘한 자른 면에 짠맛이 고스란히 스며들고, 겉절이를 곁들이면 아삭아삭한 배추가 식감을 더해 입안에 더욱 풍성하다. 감상평 할 새도 없이 먹어치운다. 할머니는 어느새 TV삼매경에 빠져 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남몰래 두부 한 모. 소리 내 말해 본다. 모난 데 없이 한 음 한 음이 보드랍다. 말로 뱉었을 뿐인데도 벌써 다사로운 온기가 돈다.

INFO. 완주 한백상회
주소 전북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531

TIP. 손두부 여행
백인자 할머니는 현재 다리를 다쳐 거동이 쉽지 않은 상태다. 천천히 손님 맞을 준비에 나설 수 있도록 방문 날짜와 시간을 미리 정하자.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센트럴터미널에서 전주터미널로 이동한 뒤 모래내시장 정류장에서 동상행 871번 버스(08:30, 11:50, 15:10, 18:24, 21:50)를 타고 연동정류장에서 하차하면 오른편에 입간판이 보인다. 연석산(해발 925m)입구라 산행을 즐기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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