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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세계 작은 도시 산책] 흐르는 시간보다 천천히 지어진 목화의 성 터키 파묵칼레
[세계 작은 도시 산책] 흐르는 시간보다 천천히 지어진 목화의 성 터키 파묵칼레
  • 김다운 기자
  • 승인 2015.03.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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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4월 사진 / 김다운 기자
2015년 4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여행스케치=터키] 하얀 구름이 산에 내려앉은 모습을 똑 닮았다. 희고 거대한 석회층, 그 위를 흐르는 하늘빛 온천수. 파묵칼레를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면 자연의 섭리에 경탄할 수밖에 없다. 대체 조물주는 왜, 터키에만 이런 보석을 허락했을까.

한반도의 3.6배인 터키 여행은 의외로 쉽다. 지역마다 오토가르(버스터미널)가 있고 버스 회사에서 운영하는 세르비스, 돌무쉬 등의 미니버스가 관광지의 심장부까지 사람들을 태워 나르기 때문이다.


파묵칼레를 찾아가는 방법 또한 어렵지 않다. 데니즐리 오토가르에서 “파묵칼레!”라 소리치는 호객꾼을 따라 미니버스로 환승하면 끝. 머잖아 차창을 희게 물들이는 거대한 언덕, 대망의 파묵칼레가 코앞이다.

석회충의 정상에 서면 파묵칼레 시네가 넓은 프레임에 담긴다. 2015년 4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석회충의 정상에 서면 파묵칼레 시네가 넓은 프레임에 담긴다. 2015년 4월 사진 / 김다운 기자

클레오파트라도 다녀간 온천 도시
‘목화의 성’이라는 뜻을 지닌 파묵칼레는 터키 최고의 온천 유적지로, 믿기 힘들겠지만 설산같이 하얀 산등성이가 바로 그 온천지대다. 1만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석회 온천수가 흐르며 남긴 탄산칼슘 자국이 온 산을 하얗게 뒤덮었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석회층은 지금도 1년에 약 1mm씩 두터워지는 중이다. 그 웅장함은 백문이 불여일견! 살짝 과장을 보태 설명하자면 히말라야의 거대 설산을 연상케 한다. 단지 눈 대신에 푸른 빛깔의 온천수가 흐를 뿐이다. ‘신발 제한 구역’인 이곳을 맨발로 저벅저벅 걸어 오르면 반짝이는 온천수가 발등을 휘감는다. 그리고 마침내 도시를 끌어안은 석회층의 넉넉한 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히에라폴리스 박물관에 전시된 석상. 그의 코를 가져간 건 전생이었을까, 시간이었을까? 2015년 4월 사진 / 김다운 기자
히에라폴리스 박물관에 전시된 석상. 그의 코를 가져간 건 전생이었을까, 시간이었을까? 2015년 4월 사진 / 김다운 기자
단돈 32리라에 로마시대 유적 위에서 온수 온천 수영을 즐긴다. 2015년 4월 사진 / 김다운 기자
단돈 32리라에 로마시대 유적 위에서 온수 온천 수영을 즐긴다. 2015년 4월 사진 / 김다운 기자

하지만 1만 년이란 시간의 작품 앞에서 1시간조차도 감동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이스탄불, 카파도키아와 함께 터키 여행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이곳은 누구나 ‘당연한 마음’으로 여행 일정에 끼워 넣고, 별 감흥 없이 발만 적시다 돌아간다. 이토록 경이로운 시간의 대작 앞에서 신발 뒤축이라도 밟힌 것처럼 도망치듯 떠나는 사람들. 죄는 아닐지언정 실례이지 않은가.

석회층 너머에는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의 흔적이 남아 있다. 파묵칼레의 입장료(24리라)는 이곳까지 포함한 가격이다. 석회 온천이 피부병, 고혈압, 심지어는 발기부전에까지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고대부터 치료와 휴양을 목적으로 사람이 모여들었다. 로마 황제의 휴양지이자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방문했다는 설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한때 번영했던 도시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음을 말해주듯 지진과 전쟁으로 무참히 파괴되었다. 지금은 어느 한 구석씩 부서지고 없어진 유적물들이 역사를 증언해줄 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부서지고 흩어진 탓에 누릴 수 있는 호사도 있다. 온천수를 이용한 고대 수영장(Antique Pool)은 바닥이 온통 거칠거칠한 유적물로 가득하다. 로마시대에는 기둥으로 쓰였을 것들이다. 단돈 32리라에 ‘감히’ 수영복 차림으로 즐기는 유적 위 온천욕은 파묵칼레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지중해식 아침 식사. 터키식 홍차'차이'를 곁들여 먹는다. 2015년 4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지중해식 아침 식사. 터키식 홍차'차이'를 곁들여 먹는다. 2015년 4월 사진 / 김다운 기자

파묵칼레가 한 시간 코스라고?
혹자는 파묵칼레를 ‘1시간이면 둘러 볼 수 있다’고 말하지만, 글쎄. 석회 온천과 히에라폴리스로만 회자되는 이곳은 사실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거리가 많다.


온천탕과는 또 다른 묘미가 있는 하맘(Hammam)은 이슬람식 전통 사우나로 우리의 목욕탕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건식 사우나인 이곳에서는 뜨겁게 달궈진 팔각형 대리석 위에 앉아 열기와 습기로 몸을 불리게 된다. 입장할 때 구입한 패키지에 따라 각질 제거, 샴푸, 마사지 등의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중요 부위를 전부 옷으로 가리기 때문에 민망함도 덜하다.

용기가 필요한 체험이긴 하나, 패러글라이딩도 도전해볼 만하다. 석회 온천과 히에라폴리스가 작은 마을처럼 보일 만큼 땅과 멀어진 채 상공을 가르면 발가락 끝까지 전율이 인다. 비행 중에는 조종사가 동영상을 촬영해 주는데 결과물을 확인해 보고 CD로 구매할 수 있다. 예약은 해당 업체 사무실, 현지 숙소, 인터넷 등에서 전부 가능하나 현지 숙소를 통하는 편이 가장 저렴하다.

시내에는 “예뻐요”라고 사람을 불러 세워놓고 “아줌마”라고 익살스럽게 마무리할 만큼 한국어에 유창한 현지인이 많다. 뼛속까지 애국자(?)라서 향수병을 앓고 있는 여행자라면 이만큼 편한 곳이 없다. 식당에서 파는 비빔밥, 수제비 등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묘하게 다를지언정 절대 뒤지지 않는다. 가격도 이스탄불 한식당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다.

혹시 ‘더한’ 애국심으로 우리 음식은 우리 땅에서만 먹겠다는 사람은 괴즐레메와 피데, 케밥 등으로 대표되는 터키의 맛에 빠져보자. 조식을 제공하는 숙소에서는 빵, 올리브, 무화과, 요거트, 달걀, 치즈 등으로 구성된 지중해식 식단이 차려진다.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아 여행 이후 사무치는 그리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석회 온천에 야간 조명이 켜지면 터키의 국민 맥주 ‘에페스’를 마시며 달달한 밤공기에 젖는 것도 좋겠다.

자, 이래도 발만 담그다 돌아갈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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