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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맥주 마니아] 충북 음성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
[맥주 마니아] 충북 음성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
  • 박지원 기자
  • 승인 2015.04.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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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여행스케치=음성] 혼자만 알고 있으려 했던 뒤틀린 심사를 바로잡고, 맥주 마니아라면 쉬이 지나칠 수 없는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에 관해 누설한다. 문을 열고 발을 들여놓을 땐 모르지만 나올 땐 알아챈다. “What is your beer?”란 물음에 즉각 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곳임을.

붉은색 벽돌로 이뤄진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붉은색 벽돌로 이뤄진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한국 최초 그래프트 브루어리

최근 어떤 영화를 봤다. 영화 속에서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자 주인공이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사이를 뚫고 어느 한적한 마을에 도착한다. 그리곤 허름한 구멍가게 앞에서 캔 맥주를 들이켠다. 그 장면을 보자 혼잣말이 터졌다. “멋은 있는데 맛은 없겠다. 난 저거 맛없어서 못 먹겠던데.” 뜬금없이 영화 이야기를 꺼낸 건 왜일까. 기자가 맥주를 ‘좀 아는 사람’이란 걸 자랑하고 싶어서다. 호랑이는 죽을지언정 풀은 뜯지 않는다고 했던가. 입에 맞지 않는 맥주는 입에 대기는커녕 거들떠보지도 않는 강인한 신념의 소유자인 기자가 충북 음성에 자리한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이하 ‘KCB’)의 면전에 섰다.

투어를 샹들리에가 인상적인 로비부터 시작한다.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투어를 샹들리에가 인상적인 로비부터 시작한다.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KCB는 전국에서 물 맑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음성에 터를 잡은 한국 최초의 크래프트 브루어리다. KCB를 단순히 수제맥주공장쯤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4가지 원칙을 고수하는 그야말로 고집쟁이니까. 적절한 미네랄을 함유한 순수한 물, 원산지가 증명된 뛰어난 원재료, 세계 정상의 엔지니어와 브루마스터, 최고의 설비가 바로 이들이 표방하는 원칙이다.

그렇다면 KCB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로 타협할 수 없다는 이 원칙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KCB는 영국, 미국, 뉴질랜드의 저명한 물 전문 시험기관과 협력해 최상의 물을 찾았다. 최고급 유기농 몰트와 홉은 독일과 체코에서, 과일 등의 재료는 국내에서 엄선한 원재료만을 공수하고 있다.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지체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엔지니어와 브루마스터는 365일 24시간 내내 KCB에 상주한다.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 10여 개를 동시에 만들 수 있는 설비는 건축가, 브루마스터(맥주 제조 장인), 엔지니어가 동시에 이뤄낸 합작품이다.

그래서일까. KCB는 얼마 전까지 ‘부엉이 맥주’로 잘 알려진 ‘히타치노 네스트’를 생산했다. 전 세계적인 품절 현상을 겪으며 맥주 애호가의 사랑을 독차지한 히타치노가 한국의 신생 브루어리인 KCB에 맥주 생산을 맡긴 까닭은 KCB의 4가지 원칙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KCB는 현재 국내 최초의 그래프트 병맥주인 ARK를 세상에 내놨다. 벨기에 밀맥주의 전통적인 맛을 경험할 수 있는 ‘허그 미(Hug Me)’와 7도의 높은 알코올도수에 진한 몰트 풍미가 일품인 ‘비 하이(Be High)’인데, 출시와 동시에 많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숙성실에서 바로 뽑아 마시는 맥주 맛은 일품이다.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숙성실에서 바로 뽑아 마시는 맥주 맛은 일품이다.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아이팟을 만들던 맥주 장인
이제 본격적으로 맥주 마니아에게 참새방앗간과도 같은 KCB를 엿보기로 한다. 묵직한 검은색 철제 대문 앞에 서자 마냥 설렌다. 엄마 손을 꼭 붙잡은 어린이가 꿈에 나올 만큼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사러 발걸음도 가볍게 완구점으로 향하는 ‘룰루랄라’한 기분이랄까. 진작 찜해둔 장소를 이제야 방문하게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로비에 들어서니 투어에 참가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우측 벽면에는 ‘We don't brew beers that we don't like to drink!’란 문장이 시신경을 자극한다. 맥주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이 느껴진다. 천장에 매달아 드리운 샹들리에도 눈에 띈다. “맥주의 거품을 형상화했어요. 전구는 모두 97개죠. 이곳 주소가 97번지거든요. 놓치면 서운할 깨알 포인트는 KCB 구석구석에서 찾을 수 있답니다.” KCB 마케팅 담당 박은희 씨의 진행으로 투어는 막을 올린다. 로비에서 브루어리로 들어가려면 두 가지 사항을 숙지해야 한다. 첫 번째는 덧신 모양의 파란색 위생 비닐을 신고 소독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브루어리 내부에서 사진 촬영은 불가능하니 휴대전화와 카메라는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투어가 시작돼 발걸음을 옮기는데 은색의 거대한 양조 탱크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파란 눈의 이방인 하나가 보인다. 농촌에서 나고 자란 농사꾼이 신을 법한 긴 고무장화를 착용한 그는 기계를 조작하는가 싶더니 뭔가 생각에 잠긴 듯 손에 턱을 괴고 한참을 서있기도 한다. 엔지니어와 브루마스터의 재능을 겸비한 ‘마크 헤이먼’이다.

MIT를 졸업한 그는 전장에서 병원 엔지니어가 되고자 ‘네이비씰’에 지원한다. 입대 전까지 시간이 남아 양조장에서 일을 시작하는데, 걸프전이 끝나는 바람에 계속 양조장에 몸담는다. 이후 로드아일랜드와 캘리포니아 등의 브루어리에서 8년간 맥주와 동고동락하던 그는 돌연 애플에 취직한다. 그가 관여한 아이팟이 사람들의 손에 쥐어져 있을 때 느낀 쾌감은 엄청났지만 또 다른 성취감을 안아보고자 다시 맥주에 손을 댄 인물이다. 공학과 맥주 사이를 오간 그의 삶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는 ‘그냥 천재’란 생각이 든다.

국내 최초 크래프트 병맥주 마크.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국내 최초 크래프트 병맥주 마크.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당신의 맥주는 무엇입니까
“맥주는 효모 종류와 발효 방법에 따라 스타일이 결정된답니다. 숙성은 맥주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4주 정도가 소요되지요. 지금 눈앞에 있는 탱크 안에는 탄산을 주입하지 않은 ARK의 ‘허그 미’가 있어요. 한 잔씩 드릴 테니 맛보세요”

탭룸에서는 다양한 풍미의 맥주를 맛볼 수 있다.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탭룸에서는 다양한 풍미의 맥주를 맛볼 수 있다.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곳곳에서 나타나는 브루 마스터 마크 헤이먼.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곳곳에서 나타나는 브루 마스터 마크 헤이먼.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눈앞에 있는 은빛 기계 안에서 맥주가 발효되고 있다며, 그 맛을 보여주겠다는데 머리가 발효될 만큼 고민된다. 저 맥주를 마셔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말이다. 사실 종기 치료는 받고 있는 터라 “음주는 금물”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자꾸만 뒤통수를 쪼아대고 있어서다. 걱정하는 와중에도 맥주의 맛이 궁금해진다. 인간은 참기 위해 사는 동물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이 기회는 좀처럼 다시 오기 힘들다. 종기 따위야 사나흘 더 앓다가 말면 그만이니 에라 들이켜라 무장해제다. 이내 입으로 들어간 맥주의 맛은 탄산을 주입하지 않은 상태라는데 슬쩍 알싸하다. 향긋한 생강 향과 상큼한 오렌지 향이 조화를 이루며 입안을 감싼다. 수식어가 필요 없다. 갓 뽑아낸 신선함 덕분일까. 맛있는데 맛있어서 맛있다.

ARK 맥주가 생산되는 과정을 모두 둘러본 후에는 ‘탭룸’에서 최상의 맥주를 맛볼 수 있다. 이렇게 단언하는 근거는 생산자와 판매자의 사이가 무척 가깝기 때문이다. 벽 하나 옆에서 갓 탄생한 완성작을 바로 맛볼 수 있다는 건 맥주 마니아가 아닌 그 누군가에게도 축복이나 진배없다. 비유하자면 횟집에서 먹는 회가 아니라, 청정해역에서 막 잡아 올려 눈앞에서 팔딱거리는 생선을 회로 먹는 싱싱함 정도랄까. 탭룸에서는 ARK 맥주 외에도 저마다의 풍미를 지닌 생맥주로 미각에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다. 밀맥주로 반죽한 피자와 음성에 위치한 육가공품 공방에서 만든 소시지도 함께 만끽할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탭룸에 앉아 진정한 맥주의 맛을 음미하는 사람들 사이로 또 다시 마크 헤이먼이 보인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가도 사람들 곁으로 다가와 말을 섞으며 익살스런 표정도 지어보인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자 별안간 탭룸으로 내려오기 전 시선을 붙든 영어 문장이 떠오른다. “Life is too short to drink bad beers. What is your beer?”

INFO.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
주소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원남산단로 97

클래식 투어(Classic Tour)
15인 한정으로 30분 동안 투어를 진행한다. 숙성실 탱크에서 바로 뽑아 마시는 생맥주와 탭룸의 생맥주를 각각 한 잔씩 마실 수 있다.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1권, 코스터 2개, 팝업카드나 엽서를 기념품으로 제공한다. 티켓은 2만원이다.

비어 긱 투어(Beer Geek Tour)
마크 헤이먼과 함께 20인 한정으로 1시간 동안 투어를 진행한다. 맛볼 수 있는 맥주는 클래식투어와 마찬가지다.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1권, 글래스 1세트, 코스터 2개, 팝업카드나 엽서를 기념품으로 제공한다. 티켓은 5만원이다.

연간회원권
이성과 함께 무제한으로 클래식투어를 만낄할 수 있다. 비어 긱 투어는 연간 1회다. 숙성실 탱크에서 바로 뽑아 마시는 생맥주 한 잔과 더불어 탭룸에서는 무제한으로 맥주를 즐길 수 있다.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연간 구독권, KCB Store에서 모든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는 5만 포인트, KCB Store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에 대한 10%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교통
시외버스를 이용할 경우 음성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야 한다. 소요 시간은 약 10분이며, 택시비는 약 1만원이다. 투어 후에는 콜택시(043-872-8001)를 이용해 음성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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