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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설따라 삼천리] “우리 고아원에는 버려진 나무가 살아요” 경기도 하남 나무고아원
[전설따라 삼천리] “우리 고아원에는 버려진 나무가 살아요” 경기도 하남 나무고아원
  • 전설 기자
  • 승인 2015.07.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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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하남] 살다보면 가끔, 신랄한 뉴스보다 한편의 동화가 필요한 때가 있다. 이건 지친 그대를 위해 찾아낸 동화 같은 이야기. 사람에게 버림받았지만 여전히 사람을 위해 제 그늘을 내어주는 현대판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버림받은 나무를 위해 고아원을 만든 사람들의 기록이다.

서울 춘천고속도로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 자그마한 숲이 있다. 오갈 데 없는 나무 2만 2000그루가 모여 사는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의 나무고아원이다. “이곳에 식재된 나무들은 도심지에서 병들어 버림받거나, 토목공사나 건물신축 등의 이유로 베어버릴 위기에 처했던 나무들입니다. 상처를 치료하고 건강을 회복하면 가로수나 공원수로 재사용하게 됩니다.” 안내판의 문구를 되뇌며 안으로 들어선다. 오솔길 양옆으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우르르 서 있다.

무슨 사연으로 이곳까지 오게 됐을까, 댕강댕강 잘린 가지며 군데군데 벗겨진 나무껍질에서 말 못할 과거를 읽는다. 초입을 지나자마자 길 한가운데 떡 버티고 있는 커다란 버드나무와 마주친다. 나무고아원의 상징이자 ‘인기 스타’ 수양버들이다. 두 팔 벌려 안아도 품에 넘칠 만큼 우람한 몸집에 사방으로 늘어뜨린 모습이 퍽 신비롭다. 그 둘레를 키 작은 나무들이 호위하듯 에워싼다. 마치 신하를 거느린 숲의 거인이 침입자를 내려다보는 분위기. 어릴 적 마을 어귀에서 당산나무를 만났을 때처럼 목이 움츠러든다.

2015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지난 2010년 고사 직전이었던 수양버들을 살리기 위한 외과수술이 진행됐다. 2015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반쪽버들’이 고아원에 온 사연

“살아난 거 자체가 기적이지요. 천현동 도로확장 공사 때 베어낼 처지였던 걸 옮겨 심었는데, 5년 전만 해도 고사 직전이었거든요. 원줄기가 다 썩어서 수술도 여러 차례 받았죠. 사람 수술 받는 거랑 똑같아요. 썩은 부위 도려내고 약 바르고 살점 떨어져 나간 자리에 인공 수피 붙이고. 그렇게 살려놓으니 고아원 상징으로 많이들 알아봐 주시더군요.”

하남시 공원녹지과 염규진 팀장에게 수양버들의 과거를 전해 듣는다. 처음 외과수술을 받았을 땐 가엽다 못해 흉측한 모습이었다고. 몸의 절반을 도려내 ‘반쪽버들’이라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이젠 옛 모습이 상상되지 않을 만큼 늠름하다. 흉터 역시 담쟁이덩굴이 뒤덮여 태가 나지 않는다. 수양버들을 비롯한 고아원의 나무들 모두가 느린 속도로 회복중이다.
“나무고아원 자체가 버려진 나무 살릴 방법 찾다가 만들어진 곳이에요. 1999년 창우동과 신장동 일대 가로수가 모두 버즘나무였는데, 꽃가루가 많이 날린다는 민원이 계속 들어왔어요. 가로수 교체를 하려면 700그루를 죄 베어야 할 판이었는데, 죽이지 말고 옮겨 심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죠. 그래서 부지를 선정하고 보니 이게 정말 허허벌판인겁니다.”

2015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시간이 날 때마다 위례강변길을 달려 나무고아원까지 산책에 나온다는 함석영 씨. 2015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껍질 까진 자리에 새살이 솔솔, 잘린 가지에 새싹이 쑥쑥. 2015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15년 전 나무고아원의 담당자였던 이상진 팀장은 회상한다. 한마디로 폐천부지. 온통 물웅덩이 투성이라 나무 심을 자리는 고사하고 흙도 없었다. 여기저기서 흙을 꾸어다 땅을 다진 후에야 부지의 일부가 버즘나무 차지로 돌아갔다. 이후 빈자리에 다른 곳의 나무도 받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를 계기로 2001년 나무고아원이 정식 개원했고 전국의 갈 곳 없는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향나무, 단풍나무, 배나무, 뽕나무 등 2만2000그루가 고아원을 찾아들었다. “나무고아원이 유명해지니까 청와대에서도 감나무 기증한다고 전화 오고, 여기저기서 난리였어요. 가끔은 남는 빵이며 옷이며 가져다주겠다는 전화도 왔었죠. 진짜 아이들 있는 고아원인줄 알고.” 이제는 추억이 돼버린 당시의 고생담이 한동안 이어진다.

2015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반려견과 함께 호젓한 여름 숲으로 나들이 한 번 가볼까? 2015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온통 초록 놀이터, 물빛 놀이터
수양버들을 뒤로 하고 벚나무 길을 가로지른다. 3년 전 고아원 식구가 된 벚나무는 손바닥만한 명찰을 하나씩 달고 있다. 종종 새로운 땅에 적응을 못해 죽어나가는 나무도 있다던데, 다행히 벚나무 군단은 새 보금자리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발끝으로 까만 버찌를 터트리며 야생화 군락지로 향한다. 본래 연못이었으나 이제는 습지가 돼버린 언덕에 꽃잔디며 엉겅퀴의 보랏빛이 선명하다. 그 주변으로 한 움큼만 꺾어도 꽃 한 다발이 될 것 같은 들국화 천지다. “깜지야, 사랑아! 이리와, 착하지?” 한발 앞서 야생화 군락지를 차지한 이주원 가족은 반려견과 달리기 시합중이다. 맴맴 귓전을 따리는 매미 울음소리, 파란 하늘, 푸른 초원, 가짓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야생화와 숲의 어울림. 보기만 해도 가슴 속이 맑게 갠다.

2015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풀밭을 가로지르는 배 한 척과 나무 한 그루. 나무고아원의 출사 포인트다. 2015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저도 오늘 처음인데 친구가 걷기 좋은 데 있다고 해서 따라 나왔습니다. 한여름에 무슨 고아원을 가나 했는데, 나무 고아원이었네요. 와서 보니까 온천지가 다 나무고 꽃이잖아요. 온통 초록이니까 눈도 덜 피곤하고. 와서 보니까 이 친구가 참 좋은 동네 사는구나 싶어요.”

30년 지기라는 이천일 씨와 박고영 씨는 나무고아원을 가로질러 하남위례길의 한 구간인 위례강변길 따라 미사리 조정경기장까지 둘러볼 생각이다. 그 뒤를 쫄래쫄래 쫓아 강변에 선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무고아원에서 짤막한 계단 하나만 오르면 바로 한강이다. 온통 초록이었던 세상이 금방 물빛으로 바뀐다. 숲과 강이 맞닿은 길 위로 자전거 한 대가 휙 지나간다. 오전부터 고아원을 가로지르는 자전거가 유독 많이 보인다 싶더니 탄탄한 자전거 도로가 위례강변길을 따라 곧게 뻗어 있다. 따라 달리고 싶은 마음, 점점 부풀어 오른다.

2015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나무를 위한 고아원, 이제는 사람을 위한 숲으로 거듭나고 있다. 2015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나무의 고아원, 사람의 숲이 되다
위례강변길을 한 바퀴 크게 돌아 다시 수양버들이 있는 고아원 입구로 돌아기는 길. 숨 돌릴 겸 앉을 자리를 찾는데 누군가 정자 앞 바위 위에 노란 살구 서너 개를 올려 두었다. 오는 길에 봤던 자두나무의 자두도 불그스름하게 물이 올랐던데, 이 자그마한 숲에 과일나무는 또 몇 종류 인지. ‘고아 나무’는 버려진 후에도 부지런히 열매를 맺고 있었나보다.

“이곳에는 상처 입은 나무들뿐이죠. 쓸 만한 나무는 도시로 돌아가고 결국 그런저런 볼품없는 나무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양부모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너무 커버린 고아들처럼….” 

‘나무고아원’의 이야기를 한편의 만화로 담아낸 에니메이터 안승희 씨는 자신의 저서 <나이테 기행>에서 현재 나무고아원의 안타까운 사정을 전한 바 있다. 본래 치료목적으로 나무를 거두고 새로운 곳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조성된 나무고아원에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예전에는 기증도 활발했고, 상한 나무를 치료해서 내보내기도 했죠. 그런데 한 3년 전부터는 운영이 어려워졌어요. 고아원은 이미 포화상태라 새 나무를 받을 수 없고, 옮겨 심은 나무는 그 상태로 커버려서 갈 곳이 없어졌거든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거죠. 대신 지금은 고아원 전체가 누구나 편히 와서 쉬었다 가는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나무 고아원 2부지를 선정할 예정이에요. 또 하나의 나무고아원이 생기는 거죠.”

고아원으로서의 기능을 잃었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볕 잘 들고 물 흐르는 곳에서 겨우 회복한 나무들이 또 다시 간판 가린다고 잘리고, 전깃줄 걸린다고 베이고, 쓰레기통이 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아마도 나무를 사람의 아이처럼 귀하게 여기는 고아원에 있는 동안만큼은 내내 푸르고 안전하리라.

INFO. 위례강변길
길이 13.5km
코스 산곡천∼덕풍천∼미사리경정공원∼나무고아원∼선동축구장∼서울

TIP. 나무고아원 여행
하남시 나무고아원은 미사리카페촌을 지나 서울 춘천고속도로 입구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고아원 내에는 화장실을 제외한 별도의 편의 시설이 없기 때문에 마실 물을 미리 챙겨서 들어가는 것이 좋다. 고아원 맞은편에는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촬영지였던 구산성당이 있다. 179년 역사에 빛나는 성당이지만 재개발로 인해 철거될 위기에 놓인 성당도 함께 둘러보자.
주소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 3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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