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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도심 속 숨은 문화유산 31] 제 모습 되찾은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 덕수궁 석조전
[도심 속 숨은 문화유산 31] 제 모습 되찾은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 덕수궁 석조전
  • 구완회 작가
  • 승인 2015.07.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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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5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여행스케치=서울]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는 ‘덕수궁 현대미술관’이란 이름이 더 익숙하다. 원래는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지어졌으나, 준공되던 해에 대한제국이 사라지는 바람에 한 번도 제 역할을 한 적이 없다. 일제강점기에는 ‘덕수궁 미술관’으로, 해방 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으로, 이후 국립박물관과 현대미술관을 거쳐 마침내 지난해 말 제 모습을 되찾은 덕수궁 석조전을 찾았다. 

1970, 80년대 서울 강북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이들에게 덕수궁 석조전은 단골 사생대회 장소였다. 그때만 해도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TV에서나 볼 수 있는 ‘르네상스식 석조 건축물’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장소라 야외 수업 장으로 딱이었고, 더구나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던 때니, 사생대회와는 썩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황궁이었고, 석조전은 황궁의 정전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고종이 석조전을 짓기로 결정한 것은 1897년, 세계 만방에 대한제국의 수립을 선포한 직후였다. 제국 수립의 선포가 부끄럽지 않은 건물이 필요했다. 이를 눈치 챈 영국인 브라운이 고종에게 석조전 건축을 제안했고 고종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20세기를 전후해 영국에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양식에 따른 멋진 건물이 덕수궁에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이 완공되던 1910년,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2015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시청 서소문 별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덕수궁 전경. 2015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대한제국처럼 기구했던 석조전의 운명
준공과 동시에 용도상실. 이후로도 석조전의 기구한 운명은 지속되었다. 일제강점기 초기 10년 간은 일본에 머물던 영친왕의 귀국 시 임시 숙소로 쓰이다가, 해방 전까지는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직후에는 민주의원 의사당으로,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으로, UN 한국임시위원단 사무실로 쓰이다 한국전쟁을 맞이했다. 가까스로 전쟁의 포화를 비껴간 석조전은 국립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관리국, 궁중유물전시관, 덕수궁사무소로 문패를 바꿔 달면서 건물 내부는 애초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그러다 2009년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준공 당시의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새 단장을 마치고 2014년 10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석조전의 복원에는 옛날 사진과 설계 도면, 신문 기사 등이 이용되었다. 거기다 준공 당시 가구를 독점 공급하면서 인테리어까지 담당했던 영국의 메이플사의 오래된 카탈로그도 도움이 되었다. 현재 석조전에는 메이플사의 가구 41점이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중앙홀의 대리석탁자다. 이 탁자는 1911년 영친왕이 당시 국내외 유력인사들과 기념촬영을 할 때까지만 해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복원 전에는 창덕궁 대조전에서 보관 중이었다. 

2015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석조전 2층 테라스에 서면 르네상스식 기둥 사이로 분수대와 정원이 보인다. 2015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화강암 외관보다 더욱 화려한 황제 접견실
중앙홀에서 이어지는 접견실은 석조전에서 가장 화려한 공간이다. 금박으로 장식된 새하얀 열주가 도열한 가운데 화려한 황제의 보좌가 좌정했다.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이화문(오얏꽃무늬)이 가구와 인테리어 장식으로 활용된 것 또한 눈길을 끈다. 흔히 이화문이 일제의 의해 강요된 문양이라고 오해하지만, 이화문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태극기, 무궁화와 함께 대한제국의 상징이었다. 

2015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대한제국 시기 서양식 만찬 장면을 재현해놓은 대식당. 2015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5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황후의 거실에는 영국시 티 포트가 놓여있다. 2015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5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화려한 레이스의 커튼이 달린 침대가 인상적인 황제의 침실은 100여 년 전 메이플사의 카달로그를 참고해 복원했다. 2015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중앙홀, 접견실 등과 함께 1층에 자리잡은 대식당은 서양식 코스 요리를 제공했다고 한다. 지금도 길다란 테이블 위에는 영국 스타일의 식기를 이용해 대한제국 시기의 서양식 만찬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2층에 있는 황제와 황후 침실은 사진 자료 대신 메이플사의 100여 년 전 카달로그를 참고해 복원했다. 화려한 레이스의 커튼이 달린 침대와 ‘EMPEROR’S BEDROOM(황제의 침실)’이란 문구가 새겨진 옷장 등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밖에 자료가 부족해 고증이 불가능한 공간은 당시의 역사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여기에다 고종의 근대적 개혁과 대한주국의 신문물 등을 전시한 지하공간까지 더해, 복원된 석조전의 새로운 명칭은 ‘대한제국역사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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