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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도심 속 숨은 문화유산32] 미술관에 남아있는 식민지 법원의 풍경 서울시립미술관
[도심 속 숨은 문화유산32] 미술관에 남아있는 식민지 법원의 풍경 서울시립미술관
  • 구완회 작가
  • 승인 2015.08.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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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9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5년 9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여행스케치=서울] 1928년 처음 문을 열고 70년 가까이 법원 건물이었다. 그 전에도 한 30년 재판소가 자리잡고 있었다니, 이 자리 법원의 역사는 100년이 되는 셈이다. 몇 년에 걸친 리모델링 후에 미술관으로 손님을 맞이한 지 이제 십 수년. 시내 한 복판에 자리한 서울시립미술관에는 여전히 그 옛날 법원의 엄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첫 눈에 범상치 않아 보였다. 십여 년 전 서울 서소문 근처 직장에 다니던 시절, 길 하나 건너에 미술관이 있다고 해서 점심 먹고 잠시 들렀을 때, 화강암 아치 정문에 갈색 타일로 마감한 직사각형 파사드가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미술관이라기보다는 어느 서양 도시의 시청사 같은 느낌. 가만, 그러고 보니 옛 서울 시청 건물을 닮은 것 같은데, 정문과 창문의 아치 몇 개를 빼고는 딱딱한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모양이 좀 더 위압적인 느낌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정면은 1928년 문을 연 경성재판소의 엄숙한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미술관으로 리모델링을 하면서 정면을 제외하고는 몽땅 새롭게 짓다시피 했지만, ‘지하 1층, 지상 3층의 근세 고딕풍’ 스타일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고딕풍이지만 뾰족한 첨탑 대신 납작하고 곧은 지붕 아래 반원형 아치를 두어 장중한 느낌을 더했다. 건물의 평면은 일(日)자인데 중앙계단과 연결통로를 중심으로 정사각형의 중정(中庭) 두 개를 두어 좌우대칭을 이루었단다. 엄정한 판결을 생명으로 하는 법원으로 어울리는 모양새다. 지금은 외벽을 가득 메운 발랄한 전시회 현수막이 장중한 정면과 묘하게 어울리는 느낌이다.

2015년 9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서울시립미술관 1층 전시실에서는 광복70주년을 맞이해 <북한프로젝트>전이 열리고 있다. 2015년 9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한성재판소에서 경성재판소,대법원을 거쳐 시립미술관으로
이 자리에 재판소가 처음 세워진 것은 1895년의 일이었다. 갑오개혁으로 근대적 사법제도가 도입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재판소인 한성재판소가 이곳에 문을 연 것이다. 한성재판소는 이름처럼 한성(서울)과 경기도 일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판했다. 이와 더불어 지금의 고등법원에 해당하는 평리원도 같은 건물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는 한성재판부를 비롯한 지방법원에서 올라온 상소심을 재판하였다.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재판소는 ‘까막소’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글줄께나 읽은 청년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곳. 그래도 조선 시대의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스타일이 아니라 증거와 법률에 근거해 형량을 정하는 근대 사법제도는 분명 진일보한 측면도 있었다. 이런 근대 사법제도가 계속 우리 손으로 발전해나갔다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1907년 일제에 의해 평리원은 대심원으로 개편되었고, 한성재판소는 경성지방재판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다 1928년 경성재판소 건물을 세우면서 지방법원뿐 아니라 고등법원과 복심법원(일제 강점기에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사이에 위치한 재판소)까지 한 자리에 모았다.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 대법원이 이 건물을 이어받아 사용하다가,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옮기면서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2015년 9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연대순으로 전시된 북한의 포스터는 북한의 사회 변화를 한눈에 보여준다. 2015년 9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우리나라 최초의 검사, 이준
옛 아치 문을 통해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면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그도 그럴 것이, 미술관으로 리모델링을 하면서 안전상의 이유로 정면을 제외한 건물 전체를 완전히 다시 지었기 때문이다. 식민지 법원에서 첨단의 문화 공간으로, 일종의 타임슬립을 하는 느낌이다. 

2015년 9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층 전시실에서는 빅뱅의 멤버인 지드래곤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2015년 9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5년 9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옛날 그대로의 파사드를 넘어서면 모던한 분위기의 실내공간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2015년 9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오랜만에 다시 찾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광복70주년을 기념해 <북한프로젝트>를 전시 중이었다. 널따란 로비에서 저 홀로 아리랑을 연주하고 있는 그랜드 피아노는 휴전선의 철조망을 피아노줄로 사용했단다. 전시실 안에는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북한의 포스터와 우표, 유화 등을 볼 수 있다. 시대별 북한 포스터를 한눈에 보니 우리와는 다른 길을 걸어온 북한의 현대사가 그려진다. 북한의 우표는 일찌감치 전세계 우표수집가들을 대상으로 한 수출품목으로 지정해, 홀로그램 우표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단다. 이번 전시는 오는 9월 29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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