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안성] 시베리안 허스키, 사모예드, 알래스카 말라뮤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썰매를 끄는 썰매개’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쉽게도 썰매개로 훈련된 토종견이 없지만, 북한에서 들여온 풍산개로 썰매체험을 하는 곳이 있다. 경기도 안성 삼죽면 덕산리 풍산개 마을이다.
높다란 메타쉐쿼이아 나무 사이의 이솔 동물농장에 도착하니, 우렁찬 목소리로 풍산개가 손님을 맞는다. 풍산이, 풍돌이, 풍순이…. 무려 800마리가 넘는다. 800마리가 넘은 뒤부터는 주인도 세어보지 않았다니 900여 마리일지도 모르겠다. 한껏 도도하게 꼬리를 말아 올리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는데 여간 영특한 것이 아니다.
눈처럼 하얀 풍산개를 보고 싶은 마음에 사육장부터 들어갔는데 집이 무너질 듯 한꺼번에 짖어대는 개들 때문에 꽁지가 빠지게 나와야 했다. 재차 주인과 함께 들어갔더니 ‘합죽이가 됩시다! 합!’이라도 한 것처럼 고요하다.
“동물에게는 강하지만 사람에게는 유순하며 충성심이 강한 개”라는 주인 이기운씨의 말이 그대로 입증된 셈이다. 13년 전, 러시아를 거쳐 들여온 다섯 마리를 지인에게서 선물로 받은 뒤 800여 마리로 키웠단다. 북한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풍산개는 개마고원 일대의 산악지대에 살며 맹수를 사냥하는 사냥개로 알려져 있다.
“야~강아지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새끼 강아지들을 잔디밭에 풀어주자 아이들은 안아보고, 들여다보고, 발을 잡고 악수도 하며 같이 뛰어논다. 풍산개 마을에 오기 전 강아지를 사달라며 졸랐던 6살 용호는 강아지들에게 둘러싸여 입이 귀에 걸렸다. 엄마 따라 온 영빈이와 영찬이 형제는 들고 온 축구공을 강아지 앞에 놓고는 같이 축구하잖다. 아이들답다.
“이쪽으로 모이세요!” 잔디밭 한 편의 커다란 드럼통 안에 불을 피우며, 이기운 이장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닭 황토구이를 만들려는 것이다. 먼저 준비된 닭의 몸 안에 대추, 통마늘, 인삼, 당귀, 은행 등을 빵빵해지도록 넣고 한지에 곱게 싼 뒤 황토를 바른다. 토종닭이 낳았다는 달걀과 고구마도 황토를 곱게 발라 불에 넣고 익힌다.
닭이 익으려면 대략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동안 썰매체험이 진행된다. 작년 한국 개썰매 선수권대회에 우승했던 유용호씨가 일 년 동안 풍산개에게 썰매 끄는 법을 훈련시켰다. 이제는 시속 40km의 속도를 내며 바람처럼 잘 달린다.
풍산개 마을의 이장이자 팜스테이 체험농장인 이기운씨의 집 앞, 500여m의 메타쉐쿼이아 길이 썰매 타는 장소다. 한쪽 발을 밀며 “가자!” 라고 외치면 잘 훈련된 풍산개가 늠름하게 달린다. 바람은 차갑지만, 짜릿함과 스릴이 있어 추위도 잊는다.
가장 먼저 체험한 7살 진호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에요” 라며 한껏 들떴다. 썰매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6살 정도의 아이들이라도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왔다 갔다 하며 신나게 썰매체험을 즐기면서 자신보다 어린 아이가 고집을 피우면 먼저 타라고 양보도 하고 체험한 아이들과 소감도 나누는 등 개구쟁이 녀석들이 순한 양이 되었다.
체험을 진행한 이기운 이장님이 엄마, 아빠 말 안 듣고 싸우는 아이들은 썰매를 안 태워주겠다며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신나는 썰매체험 뒤에 아까 넣어 두었던 황토를 꺼낸다. 흙을 부수니 잘 익은 닭이 먹음직 스럽다. 황토를 싸서 구우면 향이 배어 노린내도 없고 육질이 부드러워진다. 종일 잔디밭에서 뛰어놀았던 아이들이 “빨리 고기 줘요!”하더니 눈 깜짝 할 사이에 이장 사모님이 내온 밥도 한 그릇씩 다 비운다. 야외에서는 음식도 가리지 않는다.
이기운 이장의 농장 안에는 풍산개 외에도 타조, 흑염소, 닭 등 동물이 많아 동물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이라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논다. 풍산개 마을 안의 젖소목장, 약초농장도 둘러보고 5분 거리인 강촌 마을의 황토찜질방에서 하룻밤 숙박을 해도 좋다. 근교 30분 거리에는 한택식물원, 죽주산성, 덕산저수지 등이 있어 연계한 체험여행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체험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오늘 일기 쓸 것이 많다며 영찬이가 한숨을 쉰다. 하루 종일 새끼 강아지를 안고 돌아다녀 함께 온 이모에게 핀잔을 들었던 용호는 이미 곯아 떨어졌다. 하늘에서 썰매 타는 꿈이라도 꾸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