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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아날로그 여행] 비좁은 골목골목 ‘이바구’가 술술 부산 초량이바구길
[아날로그 여행] 비좁은 골목골목 ‘이바구’가 술술 부산 초량이바구길
  • 송수영 기자
  • 승인 2014.0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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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여행스케치=부산] “산동네, 살아봐라. 얼마나 고된데. 그걸 뭐 볼거리라라고…” 그렇긴 하다. 그런데 막상 산동네 사는 분에게 물으니 “그래도 이만한 동네가 없다. 공기 좋고. 인심 좋고. 딴 데 가서 못산다” 하신다. 오지게 힘들었던 근현대사의 질곡을 모질게 맨몸으로 이겨낸 생채기가 마을에 고스란히 더께처럼 내려앉아 있는 부산 동구 초량이바구길.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팍팍한 산동네, 그런데 막상 사는 분에게 여쭈니 “그래도 이만한 동네가 없다. 공기 좋고, 인심 좋고, 딴 데 가서 못 산다” 하신다.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부산 출신의 요절 시인 김민부 시인의 대표작 ‘기다리는 마음’이 벽에 새겨져 있다.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서울에서 2시간 반, 깜박 졸았나 싶은데 벌써 부산 종착역이다. 평소라면 부리나케 차를 타고 이동하기 바빴지만 오늘은 역 앞 동네를 찬찬히 돌아볼 참이다. 8차선 대로를 따라 병풍을 치듯 높게 올라간 건물들, 그 뒤로 부산의 치장하지 않은 민낯을 만날 수 있다. 


잘 알다시피 부산은 1876년(고종 13년) 강화도조약으로 인해 가장 먼저 개항을 한 도시다. 일제는 지리적으로 이점이 많은 부산을 대동아공영권의 거점으로 삼을 계획으로 식민도시를 건설하였다. 이를 위해 부산역, 세관 등 기반 시설이 들어서고 1905년 경성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개통에 이어 외국의 영사관이 문을 열면서 조용하던 어촌은 전에 없는 격동의 변화를 맞았다. 여기에 6?25전쟁으로 전국의 피란민이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 성장한 부산엔 당시의 흔적들이 주름처럼 남아 살아있는 역사서가 되었다. 작년 3월, 부산 동구청에서는 이런 역사의 흔적과 숨겨진 이야기를 되살리는 도심 재생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초량이바구길’이라고 하는 걷기 길 루트를 만들었다. 총 1.5km에 이르는, 약 2시간 정도면 한 바퀴를 돌아볼 수 있는 길지 않은 코스이지만 역사가 오랜 동네인 만큼 ‘이바구(이야기의 방언)’는 찰지고 길다.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철거에만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원형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도시를 새롭게 가꿔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죠. 옛날 사람들의 삶, 골목의 문화, 생활상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안에 숨어있는 매력을 끄집어내서 이야기라는 살을 붙이는 것이죠. 이를 통해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골목 경제를 살리는 것에 의미를 두고 초량이바구길을 만들었습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골목의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또 그분들이 살아온 모습을 생생하게 봄으로써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고, 한편 위안도 받고…. 그러니 이곳은 단순히 관광 코스가 아니라 힐링 코스입니다.” 동구청 총무과 자치행정 담당 박세웅 팀장이 자세히 초량이바구길을 설명해 준다.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초량초교 입구에서 만난 작은 문방구. 왠지 그립고 짠하다.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부산역에서 내려와 길 맞은편 종합안내판 앞쪽의 작은 골목으로 약 80m 가량 들어간 곳에서 만나게 되는 오래된 붉은 벽돌 4층 건물이 걷기길의 시작점이다. 1922년에 지어진 옛 백제병원으로, 지금은 90여 년 세월의 풍상이 건물 곳곳에서 확연하다. 건립 당시엔 부산의 제일 큰 건물로 대단한 볼거리였다. 한국인이 설립한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이었던 백제병원은 그러나 1932년 의사가 행려환자를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한 것이 들통이 나 원장 부부가 야반도주를 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후 봉래각이라는 중국식당으로 운영되다, 초량 권번을 낀 일본군 장교 숙소가 되는가 하면, 해방 후에는 치안부대로 사용되다가 생뚱맞게 예식장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1972년엔 한 차례 화제로 5층이 전소되어 지금까지 4층의 형태로 일반 상가로 연명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난세에 태어난 건물도 사람의 일생처럼 기구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많은 이들이 초량 이바구길의 하이라이트로 꼽는 168계단. 계단 끝이 까마득하다.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초량이바구길의 코스는 구 백제병원에서 조붓한 길을 올라가 초량초등학교로 이어지나, 잠시 발길을 왼쪽으로 돌려 초량상해거리를 들러볼 것을 권한다. 인천에만 차이나거리가 있는 줄 알았더니 규모는 작아도 제법 중국 거리의 분위기가 난다. 이곳에 중국인들이 모여살기 시작한 것은 1884년 중국영사관이 설치되면서부터. 골목 내에 붉은 색 일색의 이국적인 중화요리집이며 발마사지 가게, 화교중고등학교 등이 줄지어 있고, 심지어 관할 내에 있는 초량1동주민센터도 중국풍으로 꾸며져 있어 눈길을 끈다. 5월 9일~11일에는 차이나타운 축제가 성대하게 열린단다.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차이나타운의 동화문. 매년 5월 초엔 차이나타운 축제가 성대하게 열린다.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차이나타운 끝자락에 ‘래래강령(來來康寧)’이라 씌어 있는 청조대 양식의 동화문(東華門)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왼쪽 아래에 초량초등학교가 있다. 초량초등학교를 끼고 올라가는 작은 골목길에서 다시 걷기길 코스가 이어진다. 오르막길 오른쪽의 초량교회는 겉보기에 여느 동네 어귀의 교회와 다를 바 없어 무심히 지나치기 쉬우나 1892년에 미국인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가 설립한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이다. 6.25전쟁으로 피난 왔던 이승만 대통령이 예배에 참석하였다고. 그러고 보면 동네 곳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당시 예배를 보러온 이승만 대통령의 눈에도 산등성이까지 빼곡하게 가건물을 짓고 들어선 피란민들의 처참한 생활상이 분명 눈에 들어왔을 터, 일국의 수장으로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그로부터 6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허리를 펴 올려다보면 산등성이에 집들이 억척스레 붙어있다.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산등성이에 뿌리를 내린 고단한 흔적들이다. 산비탈에 삐뚤빼뚤 집들이 들어섰으니 자연 계단도 많아 지금부터 올라가야 하는 168계단은 하늘로 깎아 지르는 듯 치솟아 있다. 계단 바로 아래에 담벼락 에는 예전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던 우물이 있으니(문을 열고 구경할 수 있다) 매일 물을 지고 이마가 땅에 닿을 듯 힘겹게 계단을 올랐을 옛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편으론 MLB 강타자 추신수를 배출한 명문 부산고등학교 야구부가 지금도 이 계단을 찾아와 체력 훈련을 한다는데 건각(健脚)을 자신한다면 체력 테스트를 한 번 해보시길.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걷기길 마지막엔 초량시장에 들러 이것저것 눈요기하는 재미도 별나다.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다행히 계단 중간에 김민부 전망대로 빠지라는 반가운 표식이 나온다. 가쁜 숨을 잠시 돌려 쉬고 가라는 배려인 듯 작은 노천카페가 있다. 이곳까지 힘들게 높이까지 올라온 보상을 확실히 받을 수 있으니, 바로 눈 아래의 전망이 그야말로 백만 불이다. 파란 물탱크가 바닷길 부표처럼 떠있는 집들 너머로 부산항과 부산항대교가 한눈에 보인다. 이미 전국구 유명 여행지가 된 사하구의 감천마을 등 부산의 피란민들로 인해 만들어진 산동네 마을을 흔히 그리스 산토리니에 비유한다. 그러나 천당같이 온통 하얀 산토리니가 복잡한 일상을 잊게 만드는 환각의 세상이라면 부산은 정반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적나라하게’ 일러주는 현실 각성제 같다. 옥상에 옹기종기 모아놓은 항아리들이며,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 화분들…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산동네 중턱에 자리한 김민부전망대.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이바구공작소에 전시된 그 옛날 부산의 사진들. 2014년 3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코스는 이곳에서 또 구불구불 골목을 올라 마을 당산과 이바구공작소, 유치환의 우체통, 까꼬막 등으로 이어진다. 당산은 과거 마을 사람들이 음력 3월과 9월 평화와 안녕을 위해 제를 지내던 곳. 마을에 사당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다만 길을 알려주는 표식이 마을의 일부 공사로 인해 사라져 자칫 헤매기 쉽다. 작은 골목 사이를 누비는 걷기길이라 큰 랜드마크가 없는 관계로 잘 모를 때는 동네 주민에게 길을 묻는 것이 빠른 답이다.  

이바구공작소는 해방~월남 파병 등 어려웠던 시기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생활자료관이고, 유치환의 우체통은 경남여고 교장을 지낸 청마 유치환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1년 후에 배달해준다. 각기 전시물이나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나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슬슬 걸어서 찾아가볼 만하다. 그곳을 목적지로 하기보다 옛 동네를 높이서  내려다보며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마지막 코스 까꼬막은 마을에 마련해 놓은 게스트하우스. 특별히 묵을 계획이 아니라면 패스해도 좋다. 부산역으로 되돌아오는 길엔 초량전통시장에 들려 부산의 명물인 부산어묵을 여행의 기념으로 사도 좋겠다. 전국에서 택배 주문이 밀려드는 곳이니 만큼 후회하지 않을 것. 

초량이바구길 코스 
(구) 백제병원 → 남선창고터 → 담장갤러리 → 168계단 → 김민부전망대 → 이바구공작소  → 장기려박사 기념 더 나눔 → 유치환의 우체통 → 까꼬막

INFO.
이바구공작소 
관람료 : 무료
개관 시간 : 10:00~17:00(매주 월요일 휴관)
주소 : 부산시 동구 망양로 486번길 14-13(초량동 875-2)

해설사 안내 
부산역 앞에서 출발하여 해설사의 안내로 이바구길을 돌아볼 수 있다. 단, 1주일 전에 미리 신청해야 한다. 1시간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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