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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군산 원도심 여행] 흐르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 군산 장미동~개복동
[군산 원도심 여행] 흐르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 군산 장미동~개복동
  • 전설 기자
  • 승인 2014.02.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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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군산] 커피 대신 쓰디 쓴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처 한 스푼, 크림 대신 마음이 포근해지는 옛 동네의 전경 한 스푼, 설탕 대신 달콤한 유년시절의 추억 한 스푼. 분량의 재료를 잘 넣고 저으면 따뜻한 한 잔의 차처럼 다정하고 애틋한 군산 여행이 완성된다.

군산 여행은 ‘땅따먹기’ 게임이다. 유년시절 추억의 놀이를 즐기듯, 가장 이름난 명소부터 구도심의 숨겨진 여행지를 야금야금 정복해 간다. 놀이는 그 땅의 가장 오래된 풍경을 간직한 장미동 내항 일원 ‘근대산업유산벨트’에서 시작된다. ‘근대’와 ‘유산’이라니. 어딘가 무겁고 지루해 보이는 단어 조합이지만, 그 옛날 풀 먹인 교복을 입고 교과서 속 역사의 명소를 찾아가던 수학여행을 떠나듯 부지런히 나서보자. 일단 장미동에 들어서기만 하면 비행기를 탄 것도, 타임머신을 탄 것도 아닌데 눈앞에 1900년대의 옛 풍경이 짠하고 펼쳐진다.

2014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과거의 유물이었던 적산가옥을 미술 체험 및 전시 공간 장미갤러리로 꾸몄다. 2014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영화 세트장 같죠? 근대산업유산벨트의 6개 명소는 모두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고건축물이예요. 지금은 전시회도 보고 공연도 관람할 수 있게 꾸몄죠. 모두 일반에게 공개돼 있는데, 군산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군산지점)부터 둘러보고 장미갤러리, 장미공연장, 군산근대미술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구 군산세관 순으로 이동하는 게 좋아요. 6개 명소에 비치된 도장을 찍으면 스탬프 투어 완주 기념품으로 흰찰쌀보리를 드리니까 꼭 받아 가세요.”


깍둑썰기를 해놓은 듯 네모반듯한 미술관과 건축관, 이국의 거리에서 떼어 온 듯 고풍스러운 갤러리와 카페가 쉴 틈 없이 눈길을 빼앗는다. 스탬프 투어의 출발지인 군산근대건축관에서 문희철 해설가의 입담에 빠졌다가, 마지막 종점인 구 군산세관에서 세관원 유니폼과 모자를 쓰고 기념사진을 남기니 오전 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 있다. 과연, 첫손에 꼽는다는 군산의 여행지답구나. 정성스럽게 가꾸어 놓은 역사의 정원을 둘러보았으니 이제는 지도를 넓혀 원도심 탐방에 나설 차례. 군산세관 앞쪽의 횡단보도를 건너 월명동에 들어선다.

2014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상주하는 관리사에게 부탁하면 초원사진관 안팎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기념사진을 잔뜩 남길 수 있다. 2014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월명동과 8월의 크리스마스
월명동의 풍경은 낡고 닳았지만 결코 추리하지 않다. 개항 직후 일본인들이 거주한 각국조례지 시절의 흔적이다. 길목과 길목이 바둑판처럼 정갈하다. 반듯한 길 위로 1930년대 지어진 일본식 가옥과 평범한 주택가의 조화가 절묘하다. 4블록쯤 지났을까 골목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하얀 건물이 보인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속 그곳, 초원사진관이다. 영화는 올 로케이션이라 해도 될 무리가 없을 만큼 거의 모든 장면을 군산의 작은 동네 월명동에서 촬영했다. 그중 가장 많은 촬영이 이뤄진 곳이 바로 초원사진관 이다.

2014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난로, 주전자, 나무 책걸상 등 포근하고 따뜻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고우당 찻집. 2014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슬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보니 실제 사진관을 보듯 새까만 안소니 사진기부터, 커다란 조명판, 가족사진 촬영의 필수품 벨벳 소파가 놓여 있다. 영화 속 장면과 어린시절 기억 속 동네 사진관의 풍경이 겹쳐진다. 디지털카메라나 휴대폰 카메라가 없던 시절엔 연례행사처럼 사진관을 찾았던 기억, 사진기 앞에 한껏 멋을 부리고 앉아 어색한 미소를 짓던 때의 기억이 떠올라 한참을 소리 죽여 웃는다. 초원사진관에서 정면을 보고 걸으면 그곳에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 있다. 일명 ‘히로쓰 가옥’이라 불리는 곳인데, 영화 <타짜>가 이곳에서 촬영됐단다. 일본가옥에서 잠시 주인 행세를 해도 좋고 그 반대편 시청 사거리로 나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이성당 빵집에 들러도 좋겠다. 빵이 나오는 오후 1시에 맞춰 따끈한 야채빵과 단팥빵을 손에 넣는다면 게스트하우스 고우당까지 산책을 이어보자. 일본식 가옥을 숙소로 꾸민 고우당에는 숙박동 외에 찻집, 주점, 연못공원 등 머무를 곳이 가득하다.

2014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골목갤러리를 화려하게 장식한 샤갈의 ‘도시 위에서’. 2014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뜻하지 않은 여정, 개복동 구도심
고우당에서 동국사로 향하는 길에는 걸음을 늦추고 봐야 할 볼거리가 많다. 그중에서도 꽃가게 옆 문화창작공간 ‘여인숙’ 앞 ‘골목갤러리’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숨은 보물이다. 서진옥 큐레이터의 안내를 받아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담장과 벽에 박수근 화백의 ‘나무와 두 여인’을 비롯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샤갈의 ‘산책’ 등 세기의 명작이 그려져 있다. 유명 미술관 부럽지 않은 골목 갤러리를 관람하고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 동국사까지 둘러보면 군산의 명소는 모두 둘러본 것. 하지만 여정은 ‘진짜’ 구도심, 개복동에서 끝을 맺는다.

2014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온기를 잃은 지 오래인 가구점. 개복동의 상점 90%는 이미 문을 닫은 상태다. 2014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개봉동은 참 사연이 많은 동네입니다. 예전에는 군산에서 가장 큰 극장인 국도극장과 우일시네마가 있었고 골목마다 홍등가라고 해야 하나, 성매매업소가 많아서 여기를 개복동 극장골목, 술집골목이라고 불렀죠. 그러다가 2002년에 한 성매매업소에 불이 나서 아가씨 13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은 후에 상점도 90% 문을 닫고 사람들도 동네를 떠났습니다.”

2014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수백 가지 오브제로 채워진 카페 ‘나는 섬’은 개복동의 새로운 명소이자 키워드다. 2014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군산의 제일 번화가였다는 극장 거리는 주인을 잃은 듯 텅 비어 있다. 오도카니 남아 있는 옛 구멍가게, 철물점, 사진관의 풍경을 보다보면 괜스레 코끝이 찡해진다. 고불고불 엉킨 골목으로 무뚝뚝한 태권도 사범님, 마음씨 좋은 사진관 아저씨, 풋된 얼굴의 주차단속요원을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인지. 쓸쓸함을 더는 반가운 소식 하나는 지역 예술인들이 방치된 점포를 작업실 삼아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개복동이 아주 느리게 ‘예술의 거리’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 두루 뭉실한 소문의 진상은 회색 골목을 물들인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벽화를 따라가면 골목 사이사이 문화창작소 ‘남쪽에 힘 있는 얼굴들’, 카페 ‘나는 섬’, 칵테일 바 ‘앙팡테리블’ 같은 새로운 명소가 눈에 들어온다. 거리는 한 겨울 메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지만 그 속에 젊은 예술가들이 물고 온 봄이 움트고 있다. 잊혀진 추억의 거리 개복동, 이곳에 서면 아주 오래된 동네가 잠에서 깨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TIP 군산 맛집
이성당 빵집

1945년 문을 연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전국 3대 빵집’을 꼽을 때면 항상 첫손에 꼽히는데, 이집 대표 메뉴인 단팥빵과 야채빵을 한번 맛보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야채가 듬뿍 들어간 야채빵도 소문난 맛이지만, 역시 최고는 달지 않게 살짝 으깨진 팥소가 가득 들어있는 단팥빵. 높은 인기 덕에 사재기족이 많아 1인당 구매 제한을 둘 정도다.
메뉴 쌀단팥빵 1200원 야채빵 1400원
주소 전북 군산시 중앙로1가 12-2

복성루
대한민국 ‘짬뽕의 성지’라 불리는 중식당이다. 워낙 유명해 오전 10시 30분 개점 직후부터 긴 줄이 늘어서 기본 30분을 기다리지 않으면 맛도 보기 힘들다. 짬뽕의 자랑은 푸짐한 고기 고명. 산처럼 수북하게 쌓은 고기 고명 밑으로 오징어, 꼬막 등 다양한 해물이 한 가득이다. 해물 먼저 건져 먹다 보면 면에 입을 대보기도 전에 배가 불러올 정도다. 
메뉴 짬뽕 7000원
주소 전북 군산시 풍문2길 3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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