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목포] TV가 흔치 않던 시절에는 온가족이 밤 10시면 라디오 앞에 둘러앉아 문화방송 라디오 ‘전설 따라 삼천리’를 듣곤 했다지요. 전국 방방곡곡에 전해 내려오는 귀신, 용, 구미호, 도깨비, 산신령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속속들이 훑어본 기분이 들곤 했다네요. 우리나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그 땅의 속사정, 옛 얘기, 사람 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유기현 성우처럼 구수한 목소리는 아니지만, 저 ‘전설’을 따라 다시 한 번 ‘전설 따라 삼천리’ 떠나보실래요?
어느 달동네의 이야기를 들었다. 목포 유달산 자락에 바다를 마주 본 달동네가 있다고 했다. 볕이 잘 드는 남향받이의 ‘따수운’ 동네라 그 이름도 ‘다순구미’라고. 김선태 시인이 <조금새끼>에 써내려간 동네 사연이 호기심을 당겼다. 가난한 뱃사람들이 부둥켜 사는 달동네에서는 바닷물이 가장 적어지는 조금 물때에 집집마다 아이가 들어섰단다. 발 묶인 선원들이 뱃일 대신 밤일을 하기 때문이지 않았겠느냐고. 같은 시기에 태어나 함께 바다에 묻힌 이들을 ‘조금새끼’라 부르고, 생일도 함께 새고 제사도 함께 지냈노라고 시인은 적고 있었다. 바닷가 달동네 조금새끼라…. ‘전설 따라 삼천리’의 첫 주인공으로 낙점.
그 동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뭐 볼거나 있다고 이 골짝까지 찾아와. 놀라믄 도시로 가제. 여긴 하나같이 죽은 풍경뿐인디 뭣을 볼 것이냐고. 올라갔다 내려왔다 뱅글뱅글 돌면 심들기만 심들지. 하긴, 볼라믄 지금이나 실컷 봐둬. 다 헐고 아파트 세우면 보고 싶어도 못 보는 그림이 될 것인게.”
마을 어귀에서 만난 어르신 한분이 무심한 듯 동네 소식을 전한다. 몇 년 새 ‘오살나게 심든 깔끄막’을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부쩍 늘어난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다순구미 일대는 2009년경 도시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됐다. 그리고 올 봄, 본격적인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유달산이라는 커다란 바위를 집삼아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늘어선 옛 슬레이트집을 헐고,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을 거둬 그 자리에 25층 아파트를 짓는단다. 지금 보이는 모든 풍경과 사람이 곧 사라진다는 얘기다. 동네 어귀에 서서 뒤엎기 직전의 퍼즐처럼 위태로운 다순구미의 풍경을 올려다본다. 손톱만한 지붕이 아무렇게나 엉켜서 유달산 자락까지 이어져 있다. 시간이 흘러 오늘 바라본 이 풍경이 조각조각 나뉘고 뒤섞여 사라진다 해도 기억 속 풍경을 하나하나 맞출 수 있도록 눈으로 꼼꼼히 더듬는다.
따순구미의 따순 사람들
여행 지도는 물론이고, 길 물어 볼 가이드도 없다. 우물쭈물 서성이길 한참. 따로 코스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아무렴 어떠랴, 발길 가는 대로 나선다.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돌담장, 구멍이 뽕뽕 뚫린 색색의 슬레이트 지붕, 밟으면 귀퉁이가 바스러지는 시멘트 계단, 페인트가 벗겨진 벽. ‘아이고’ 소리가 절로 터지는 비탈에 하나같이 바래고 낡은 풍경뿐이다. 하지만 그 풍경 속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가 펄럭일 때마다 대문 밖에 내놓은 화분 사이로 백구와 황구가 머리를 내밀고 멍멍 짖을 때마다, 이상하리만큼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동네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순간이 그토록 반가울 줄이야.
골목 어디선가 얼큰한 냄새가 난다. 냄새에 홀려 발길을 옮기니 이재운 씨네 집 앞 평상이다. 좁은 골목 한쪽에 평상을 내고 사방을 비닐로 막아 바닷바람을 막는 비밀 요새를 만들었다. 요새 안에는 동네 형님 노동철 씨와 친한 동생 김경환 씨도 함께였다.
“동생도 뜨건 국물 좀 줄까?” 묻기에 그대로 자리를 깔고 앉았다. 집에서 말린 우거지를 한가득 넣고 팔팔 끓인 감자탕 국물에 땡땡 얼어붙은 코끝이 녹는다. 진득하게 우린 감자탕에 소주까지 얻어먹으니 속이 따습다. 곁을 지키던 이 씨 어머니가 “이런 음식도 잘 묵네. 바닷가로 시집와야 되갔네” 하신다. 어디서 왔느냐, 누구와 왔느냐, 뭐하라 왔느냐, 이어지는 질문공세. 건네주신 만큼 입안에 가득 밀어 넣고 웅얼웅얼 사정을 전하니 말없이 잔을 부딪쳐 온다.
“그렇지. 여가 앞으로 10년이면 아주 없어지겄제. 우리는 여가 고향인디. 젊을 적엔 다 도시로 나가 돌아댕겼어도 결국에 돌아온 곳이 여기인디. 이 바다를 아까워서 누구를 줄꺼나”하는 아들의 푸념에 어머니는 “10년이면 나 죽은 다음에야 바뀌갔네.” 혼잣말을 한다.
조금새끼라고? 예끼 이놈!
속도 데웠겠다, 소화도 시킬 겸 비탈길 끝 ‘뽁대기 집’까지 올라갔다가 개 짖는 소리에 간이 떨어진다. ‘뽁대기 집’의 황구 ‘콩이’가 안마당을 차지한 외지인을 보고 사납게 짖는다. 방문을 여는 인기척에 놀라 “죄송합니다!” 외치고 냅다 도망을 친다. 조그만 집들이 지붕 위에 지붕을 올리고 얽히고 설켜 있다 보니 제멋대로 누비다 보면 어느새 남의 집 앞마당이고 뒷마당이다. 그날,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무뢰한에 동네분들은 얼마나 놀라셨을까.
날이 저물도록 동네를 뜨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아온 건데 물을 데가 없어 갈급증이 난다.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발길을 돌리는데 골목 끝에서 임선외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서울부터 담아온 질문이 입 밖으로 터진다. “할아버지, 옛날에 정말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었어요?” 하고 말이다. 할아버지의 눈매가 가늘어지나 싶더니 “누구헌티 들었나, 그 못된 말을 누구헌티 들었어!” 불호령이 떨어졌다.
“느 조금새끼가 뭔 말인지는 알고 물어? 조금 때 애를 뱄다는 말이여. 뱃사람들은 집에 있을 시간이 조금밖에 없으니까 밤일도 같은 때 하고 그러니 아도 같이 배고 그런 거제. 그게 바닷사람들 삶이고 인생이여. 근디 무턱대고 밖에서 온 쪼그만 계집애가 어른한테 새끼, 새끼하면 써? 죽도록 고상한 옛날 어른들 욕하는 거여 그게. 느 청량리서 왔다고 했제? 내가 암것도 모름서 느한티 청량리 빡촌서 왔네, 588은 아적 있냐! 물으믄 느 기분 어떠냐?”
할아버지가 애써 다독거리며 살아왔을 속에 소금을 뿌린 것 같아 죄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뜻으로 여쭤본 게 아닌데 불같이 화부터 내시니 야속하기도 하다. 잠자코 서 있으니 또 버럭. “추분데 싸돌아 댕기지 말고 어여가! 비싼 카메라 덜렁덜렁 들고 다니지 말고 옆구리에 딱 매고! 가방도 야무지게 못 치키매? 먼데 나와 있을수록 정신머리 똑바로 챙기야제!” 언성을 높이시니 그 길로 줄행랑을 칠 밖에. “나가는 차 없어. 탈 때 잘 보고 타. 잘 데는 있어? 오늘 서울 올라가제? 하여간 요즘 것들은 겁도 없어. 뭘 뒤를 돌아봐! 확 그냥!”
뒤통수에 따다다, 짱짱한 고함소리가 박힌다. 욕을 푸지게 얻어먹고 쫒기는 주제에, 비실비실 웃음이 새는 것은 왜인지. 꽁무니에 따라 붙는 잔소리가 따끔해서일까 따스워서일까.
Tip. 다순구미 가는 길
‘다순구미’라는 옛 동네 이름만 가지고는 길을 찾기 어렵다. 길을 물을 때 목포 토박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유달산 밑 온금동 경로당’으로 행선지를 밝히자. 목포역에서 도보로 이동할 때는 목포근대역사박물관(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을 이정표 삼아 서산초등학교 방향으로 이동한다. 약 1.5km 거리로 근대역사문화거리, 지점장 사택, 일본영사관을 둘러보며 쉬엄쉬엄 걷기에 좋다.
주소 전남 목포시 온금동 1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