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당진] 얼마 전 예비군 훈련을 받고 왔다. 훈련소 들어갈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군대를 두 번이나 다녀오고도 남을 5년차 예비군이 되어 있다. 아직도 마음은 청년 시절 그대로인데, 늘은 것은 몸무게요, 남은 것은 이제 허리도 들어가지 않는 군복이다.
짧은 예비군 훈련이었지만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났다. 그래서 내친김에 당진함상공원으로 향했다. 해군을 나온 것은 아니지만 여러 군대 용품과 전투식량을 맛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송악I.C에서 빠져나와 함상공원으로 향하는 길, 벌써부터 진한 바다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가끔 차를 향해 돌진하듯 날아다니는 갈매기들 때문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공원 입구에 주차를 하고 공원 내로 들어가면 바다 냄새는 더욱 심해진다. 길가에 들어서 있는 횟집이며 조개구이 집에서 나는 바다음식 냄새가 식욕을 마구 당긴다.
우선 거대한 두 군함을 탐험하기로 한다. 대양을 누비던 화산함(상륙함)과 전주함(구축함)이 현장에서 은퇴하고 이제는 삽교호에서 가족들에게 즐거움과 추억을 주는 임무를 맡고 있는 것이다. 그리 맑지 않은 날씨 탓인지는 몰라도 나란히 들어서 있는 두 대의 군함은 늠름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장갑차가 들락거리던 상륙함 통로가 전시실의 입구이다. 선착장을 지나 실내로 들어서니 잘 꾸며진 박물관이 펼쳐진다. 실감나는 세트와 해병대와 해군 밀랍 인형으로 그야말로 군함 안은 ‘박물관이 살아 있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직접 버튼을 눌러 우리 해군의 역사를 살펴보는 곳과 직접 군장을 메 볼 수 있는 미니 체험장은 아이들이 특히나 좋아할 것 같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청년들에게는 역시 군대용품을 전시해 놓은 곳이 가장 눈길을 끈다. 몇 가지는 군 생활을 하면서 실제로 쓰던 물건들이라 ‘내가 군대 있을 때는 말이지….’로 시작하는 무용담으로 가족이나 여자친구 앞에서 한 번쯤 으쓱해져도 좋겠다.
상륙함에서 나와 구축함으로 연결된 통로를 지나면 일반인들이 평소에는 접근하기 힘든 군함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구축함은 상륙함과 는 달리 전시보다는 본래의 함정 모습 그대로를 둘러볼 수 있게 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한바탕 미로가 시작되려나보다. 안내 화살표를 주의 깊게 따라가지 않으면 길이라도 잃어버릴 판이다. 100m도 훨씬 넘는 군함이건만 통로는 한 사람이 겨우 걸어다닐 만큼 좁고, 용도별로 설치된 세면장, 취사실, 의무실, 세탁실 등도 최소한의 공간만 할애했다. 배의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해 최대의 전투력을 위한 것이라지만, 일반 관람객들은 ‘어떻게 이 좁은 공간에서 생활을 한대?’라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고스란히 간직된 사병들의 의식주 공간을 살펴보고 있자니 짠한 생각이 든다. 부모 곁을 떠나 망망대해에서 생활하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랴. 사병들의 세간살이들을 보면서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리라.
‘어머나! 깜짝이야!’
밀랍 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사병들의 모습에 관람객들이 화들짝 놀란다. 금방이라도 출동할 것처럼 총을 점검하고 군화 끈을 매는 모습이 진짜 사람보다 더 현실적이다. 더구나 유리 안에 갇혀 있는 전시물이 아니라 실제 생활하던 공간에 앉혀 놓은 것이라 더 실감난다.
화살표를 따라 취사실, 함장실 등을 보고 나면 어느새 망망대해가 눈앞에 있는 갑판 위에 서 있게 된다. 이제까지 <서울1945>, <블루>, <동해물과 백두산이> 등 여러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장소로 이용된 만큼 경관이 일품이다. 특히 석양이 지는 서해안의 낙조를 갑판 위에서 받고 있노라면 ‘낭만의 마도로스’가 된 기분도 든다.
‘군함’이라는 이미지와는 다소 멀게 보이기도 하지만 전투함 갑판에 마련된 함상 카페는 연인이 함께 둘러보면 좋을 필수 코스다. 갈매기가 끼룩거리고 파도가 일렁이는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진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이제는 오늘의 최대 목표였던 전투식량을 맛보러 갈 시간이다. 군함 맞은편에 있는 ‘전투식량 전문식당’으로 달려갔다. 사실 군 제대 후에도 ‘씨레이션’이라고 불리는 미군용 전투식량을 구해서 먹어보긴 했다. 그리고 요즘은 인터넷으로 전투식량을 판매하는 곳도 많으니 굳이 이렇게 반갑게 뛰어갈 필요는 없지만, 모름지기 분위기란 게 있지 않은가! 산 속 벙커는 아니더라도 넓은 바다와 군함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먹는 전투식량의 맛은 색다르지 않을 수 없다.
식당 내부는 인테리어부터 전방의 GP나 벙커를 연상시킨다. 여기저기에 위장막이 펼쳐져 있고, 테이블보도 ‘국방색’이다. 전투식량은 동결 건조한 음식으로, 뜨거운 물을 붓고 10분쯤 기다렸다가 참기름을 살살 뿌리고 비벼주면 완성돼 간편하다. 야채비빔밥, 김치비빔밥, 쇠고기비빔밥, 김치국밥의 4가지 종류를 골라 먹을 수 있다. 비상시에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는 전투식량이라고 얕보면 큰 코 다친다. 적당하게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비빔밥의 맛은 여느 소문난 식당에 뒤지지 않는다. 구수한 된장국도 보통이 아니다. 소품으로 마련된 군복을 입고 철모도 쓰고, 찬합에 밥을 넣어 먹으니 옛 추억이 솔솔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식당 안에서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대화는 대부분 비슷하다. 아까도 맹위를 떨치던, ‘나 옛날 군대 있을 땐 말이지~ 영하 25도에서 전투식량을 어쩌고저쩌고…’로 시작하는 무용담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과장인지가 문제가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식당 안에서는 아버지가 영웅이고, 남자친구가 영웅이라는 사실이다. 가족이나 연인에게 남자다움을 보여주고 싶은 여행을 원한다면 당진함상공원으로의 짧은 나들이를 ‘강추’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