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마을 탐방] 인심 좋기로 소문난 봉화 홍점마을 “뭐 먹고 사냐 하는데, 다 잘 지내”
[마을 탐방] 인심 좋기로 소문난 봉화 홍점마을 “뭐 먹고 사냐 하는데, 다 잘 지내”
  • 박지영 기자
  • 승인 2007.06.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봉화 홍점마을의 풍경.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여행스케치=봉화] 홍점마을은 봉화군 소천면 현동에서도 차로 20분은 더 들어가야 도착하는 고선1리를 말한다. 청옥산과 각화산이 오롯이 품은 현동 60릿골 중에서도  가장 안쪽인 홍제삿골에 있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오지마을 23곳에도 그 이름이 올라 있다. 인심 좋기로 소문난 홍점마을 사람들 속으로. 

고선1리와 2리의 갈림길에서 ‘야영장’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오다가 홍점교를 지나면 홍점마을이 나온다. 청옥산과 각화산이 만든 깊은 골 중에서도 비탈이 심하고 외진 곳이라 예전에는 화전민을 비롯해 40여 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10여 가구만 산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웬 깃발을 펄럭이며 한 무리의 여중생들이 군대식 박수를 쳐가며 씩씩하게 고갯길을 오른다. 마을회관 옆, 소천초등학교 황평분교였던 학교가 아이들이 없어 폐교되면서 학생들의 야영장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영주여중에서 온 학생들이 2박 3일 묵어갈 참이다.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음머~ 못 보던 처자인데 어디서 오셨나요?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홍제사 올라가는 길.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야영장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시작된다. 처음 만난 주민은 싹이 난 감자밭에서 돌을 고르고 있던 김복규(78) 할아버지. 돌이 많아 일일이 고르자면 끝이 없을 것 같은데 한 무더기의 돌이 모아지면 지게에 지고 길 옆에 쌓아두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러다가 나를 보자 “힘드제요~ 사진기 커서…” 하신다. 뙤약볕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할아버지에 비할 바가 아니기에 순간 할 말을 잃는다.

감자밭 한쪽에는 통나무만으로 테두리를 엮은 방목식(?) 외양간에 소가 두 마리 있다. 감자 싹이 나기 전 비탈진 밭을 일구었던 두 마리의 소는 지나는 여중생들을 구경까지 하며 꽤 여유로운 모습이다. 아직도 옛날 방식 그대로 쇠죽을 쒀서 먹인다며 할아버지께서 집 안을 보여주시는데, 세상에! 집 자체가 골동품이다. ㄱ자로 지어진 집은 아직도 아궁이에 땔감으로 불을 때서 밥을 해 먹고 쇠죽을 끓여 보일러 대신 방에 온기를 넣는다.

소 먹일 풀을 채워 넣는 꼴망태에 쇠죽을 끓였던 쇠죽솥이 아침에도 사용한 듯 손때 묻은 흔적 그대로다. “우리는 보일러도 안 놓고 나무 때면서 살아요. 순전히 옛날 영감이라요.” 부인인 김교숙 할머니(74)는 쇠죽을 끓일 때 넣는 쌀겨를 말리는 중이다.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덥석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원하지 않으면 안 찍으셔도 되는데… 몰래 찍을 걸…’하는 생각이 채 끝나지 않을 때쯤 할머니가 다시 나온다.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야영장이 있는 마을에선 이처럼 발랄한 학생들의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홍점마을의 첫 집.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옷이 컴컴해 베기 싫여~”하며 어느새 꽃분홍 티셔츠를 갈아입고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별일’이라며 핀잔을 주는 할아버지와 이에 아랑곳 않고 가마솥 옆에 살포시 앉아 카메라를 응시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이같이 천진스럽다.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껏 소 키우고 감자를 심으며 산다는 할아버지의 깊게 파인 눈가의 주름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홍점마을은 마을을 따라 냇가가 이어진다. 태백산 남류맥에서 시작된 물은 10여 리 아래의 현동리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하는데 그 중간의 작은 물줄기가 마을을 관통한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니 옥광산이 나타난다. 청량리가 고향이라는 이종범 씨가 건축업을 하며 전국을 떠돌다가 옥 성분이 나오는 마을 산 앞에 작은 공장을 지은 것.

10년 전 이곳에 들어오면서 따로 살던 장모와 어머니를 함께 모시고 사는데 두 분은 사이좋게 머리도 같이 자르고 반주도 같이 하며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서울에선 허리를 제대로 못 펴던 장모가 이곳에선 유모차를 밀며 강아지와 닭 모이도 줄 정도로 건강이 좋아진 점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양쪽으로 산이 가로막아 생긴 넓은 밭.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산천어와 열목어가 서식하고 한여름에도 수온이 낮은 마을 내 계곡.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고갯길을 조금 더 오르면 홍점마을의 이장인 권오성(57) 씨 집이 나온다. 사람은 없고 집 뒤편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서 가보니 부인 김화자(52) 씨가 숯에 고기를 굽고, 소천면에서 면장을 지내고 퇴임 후 이곳으로 이사 온 김동한(68) 전 면장과 술 한잔하던 참이다. 이장은 ‘오지’라서 찾았다는 말에 오히려 놀란다.

“여긴 오지가 아인데요. 인터넷에 그케 나와 있어요? 여긴 오지가 아인데.” 그러고 보니 김복규 할아버지 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신식으로 지어졌다. 예쁜 펜션 같은 집이 있는가 하면 돌을 쌓아 올린 멋진 2층 집도 눈에 띈다. 도시에 나가 생활하는 자식들이 성장해 집을 수리해주거나 새로 지어줬다는데, 이장님 댁에서는 인터넷도 되고 집 안에서는 휴대폰도 터지니 마을로 깊이 들어가도 ‘이건 오지도 도시도 아니여’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을 안에는 매년 정월에 제사를 지내는 성황당이 있고 성황당에서 걸어서 15분만 더 오르면 신라시대 사찰이라는 홍제사가 나온다. 홍제사에서 남자 걸음으로 1시간을 오르면 마을에서 ‘아기 무덤’이라고 부르는 무덤이 하나 나오는데 너무 오래되어 정확히 어떤 무덤인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지만 이야기 하나가 전해진다.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이장님 내외가 가꾼 텃밭.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토종닭이 낳은 유기농 달걀.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이 길을 통해 다른 지방으로 가던 어느 고을 원님이 먼 여행길에 노독이 난 딸이 갑자기 죽자 할 수 없이 이곳에 묻어두고 갔다고 한다. ‘아기 무덤’이라고 불리기 전에는 ‘아기씨 무덤’이라고 불렀다는데 ‘아가씨’의 옛말인 ‘아기씨’에서 알 수 있듯 혼인하지 않은 젊은 처자의 무덤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이 산소의 풀을 베면 복도 받고 재수가 좋다 카고 아들을 낳는다고도 카니까 지나는 사람마다 벌초해놓고 술잔에 술도 채워 넣고 가고 그래. 가면 항상 깨끗해.” 

누군가 찾지도 않는 무덤을 그냥 두고 보기 안타까워서였을까. ‘복을 받는다’는 핑계로 임자 없는 무덤까지 깨끗이 관리하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씨가 미소만큼이나 곱다.  

집집마다 배추, 케일, 상추, 파, 마늘, 옥수수 등의 채소를 길러 먹고 토종벌을 치고 토종닭을 키우며 사는 모습이 비슷하다. 신식 부엌이 있지만 큰솥이 있는 재래식 부엌도 하나씩 남겨 두어 그 솥에 두부도 하고 나물도 삶아 먹는다.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아직도 매년 제사를 지내는 성황당. 2007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우리도 여기 들어와 산 지 10년 되었네. 이곳을 찾는 여행객마다 이 산골에서 뭐 먹고 사냐 묻는데, 내가 봐도 별다른 먹고 살 것이 없거든? 헌데 다 잘 지내. 그게 참 신기해.” 면장님 부인 금석희(67) 씨다. 면장님은 90년도에 면장 앞으로 지급되었던 90cc 오토바이를 타고 비포장길을 누비면서 마을의 일을 봤다.

“면에 있을 때 홍제삿골을 보고 여기 살려고 마음먹고 집을 짓고 들어왔지. 지금은 조용한데 여름철이면 차 댈 데가 없어. 여기 친척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고 해서 몇 해 전부터 수가 늘었어.”

매년 천을 가득 메우는 피서객이 찾는다는 마을 치고는 독특한 점이 두 가지 있다. 그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로 이골이 났을 법도 하건만 마을 사람들은 근동까지 소문이 날 만큼 여전히 인심이 좋다는 것. 유일하게 면장님 댁만 여름 성수기에 민박을 받을 뿐, 피서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집도 없다. 집집마다 키우는 오동통하게 살 오른 토종닭은 여름철 피서지를 찾아 부모에게 오는 자식들을 위한 것이라고.

마을 위에 있는 사찰 홍제사를 다녀가는 차량 외에 아직도 사람 구경하기가 힘든 곳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살아가는 터전이기 때문이다. 이제 가야겠다고 하니 이장 사모님이 비닐하우스에 정성껏 가꾼 상추를 가득 따서 건네주신다. 반짝반짝한 화초들과 사람을 반기는 귀여운 강아지들. 부지런하고 선한 홍점마을 사람들. 오지는 벗어났지만 자연을 닮은 그들의 맑은 웃음과 인심이 10년, 20년이 가도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