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동해] 한 번 가보지도 않고 “차도 없는데 거길 어떻게 가~” 하며 지레 포기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왜! 차 없으면 못 가니?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가면 되지. 영동선 새마을호를 타고 동해의 묵호로 떠났다.
Schedule 묵호역-묵호항(어시장)-묵호등대-망상해수욕장-천곡동굴-무릉계곡
1st day
8:00~13:40 서울에서 영동선 묵호역까지는 청량리에서 새마을호를 타고 장장 5시간 이상 걸리는 대장정이다. 8시에 출발해도 점심시간을 넘겨 도착하므로 간식거리는 필수요, 충분한 수면은 선택이다. 실컷 자도 4시간 이상 자면 -인간이라면- 눈이 떠진다. 아마 그때쯤 기차는 잠시 정차해 있을 것이다. 영동선을 통과하는 기차라면 필수 코스인 일명 ‘스위치백’ 구간에 있기 때문이다.
태백 통리역을 지난 기차는 백두대간 험준한 산맥을 이리저리 뚫고 삼척 흥전역과 나한정역 구간에서 Z자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오른다. 흥전역과 나한정역 구간은 해발 349m로, 약 15도에 이르는 급경사 때문에 철도가 한 번에 가지 못하고 앞뒤로 운행하는 것이다. 국내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코스, 그러나 이마저 올해 말이면 터널 개통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해 아쉬운 마음이 든다.
동해역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다.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건만 기차에서 보는 바다는 감흥이 남다르다. 진하지도 탁하지도 않은 동해의 바다는 연한 무채색의 코발트블루다. 너무나 투명해 속을 다 보여준다. 모래톱까지 쓸려나온 미역들이 파도가 칠 때마다 덩실덩실 춤을 춘다.
14:00 묵호역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굴다리를 지나 10분을 채 못 걸으면 묵호어시장이 나온다. 동해시 제1의 어시장인 묵호항은 동해에서 나는 싱싱한 해산물이 다 모여 있다. 오징어는 온난화로 수가 줄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잡는 7월이면 평소보다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오징어 외에도 광어, 우럭, 놀래미, 돔, 문어 등 동해 인근에서 잡히는 다양한 해산물 중에 먹고 싶은 걸로 골라 횟감을 사면 입구에 전문적으로 썰어주는 아주머니들이 있다. 회 한 접시 썰어다가 방파제에서 먹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일 테지만, 아까부터 어시장 주변 음식점에 붙어있는 ‘곰치국’이란 것이 궁금해졌다.
택시기사에게 물으니 현지 사람들은 동해관광호텔 앞의 ‘동해곰치국’을 원조로 친단다. “곰치국 먹어봤어요? 처음 먹기는 좀 그래도 곰치에 묵은 김치 넣고 끓여 낸 칼칼한 맛이 죽이지요!”
동해는 대게보다 곰치가 더 대접을 받는 동네다. 값도 비싸고 귀하다. 비슷하게 생긴 아귀의 맛을 기대했다가 흐물흐물한 살에 실망도 했지만 한 번 먹어보니 은근 다시 생각이 나는 맛이다.
16:00 2년 전에 넋을 놓았을 정도로 좋았던 묵호등대를 찾았다. 어시장 방향으로 10여 분 걸으면 오른편으로 묵호일출공원 안내판이 나오는데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온다. 그때는 없던 산책로와 출렁다리가 생겨 오르는 길이 한결 운치 있다. 등대 앞에 서면 동해 바다와 어촌이 한눈에 보이는데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포구마을의 소박한 풍경이 더욱 마음을 끈다.
이곳은 드라마 <연풍연가>와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의 촬영지로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주변 공사까지 끝마치고 근사하게 변신을 했지만 등대에는 2년 전 그때처럼 혼자서 찾는 관광객이 많다. 마음을 빼앗긴 장소에 머무르고 싶을 만큼 머물 수 있는 자유는 홀로 있을 때 가능해서일까. 여행지에서 한 곳도 마음대로 둘러보지 못하고 일행과 타협해야 한다면 그것도 참 귀찮은 일이다.
17:30 묵호에서 망상해수욕장까지는 버스로 20여 분. 묵호에도 어달리해수욕장이 있지만 규모가 작아 ‘동해’의 제 맛을 느끼기 힘들다. 오토캠핑장이 있는 망상해수욕장은 사람들이 꿈꾸는 ‘동해’의 모든 이미지를 다 갖고 있다. 코발트 블루 바다에 보드라운 모래사장. 맨발로 걸으면 투명한 블루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블루의 시선으로 보면 세상은 모래처럼 보드랍고 바다 빛처럼 투명하다.
걱정, 근심 따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파도가 밀려오면 편편하게 가라앉는 모래처럼 마음도 차분해진다. 동해로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들도, 함께 온 연인도 가족도 바다를 바라보며 그렇게 저마다의 바다를 가슴에, 머리에 담아간다. 세상살이에 힘들고 지칠 때 나만의 ‘블루’를 꺼내보며 위안을 삼겠지.
이곳까지 둘러보면 하루 코스로 딱 알맞지만 여유를 내어 하루를 더 머물 수 있다면 묵호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오는 것이 좋다. 묵호에는 대게만 전문적으로 파는 동양대게마을이 있다. 게만 따로 사다가 옆의 음식점에 자릿세를 내면 대게도 쪄주고 곁들이 음식도 나온다. 조박사 횟집이 서비스가 좋다. 망상해수욕장 부근은 식사를 할 만한 곳이 많지 않다.
2nd day
10:00 천곡동굴로 향한다. 4억~5억 년 전 자연적으로 생성된 천곡동굴은 동해시 중심부에 있어 찾기 쉽다.
1400m의 총 길이 중 700m를 개발하고 나머지 700m는 동굴 보존용으로 남겨두었다. 동굴에서 특히 눈여겨볼 것은 ‘석돌이와 석순이의 포옹’. 위쪽에서 아래로 자라는 것을 종유석, 땅에서 위로 자라는 석순이라 하는데 이 석순과 종유석이 만나 생성된 석주를 사랑으로 표현하였다. 천장에서 늘어진 커튼형 종류석, 종류폭포 등 희귀석들이 어우러진 동굴은 자연의 신비가 살아 숨쉰다.
13:00 천곡동굴에서 버스로 50분을 달려 도착한 무릉계곡. 말 그대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계곡은 무릉반석, 학소대, 용추폭포, 장군바위 등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매표소에서 걸어서 5분을 올라가면 1500여 평의 넓은 바위에 옛 문인들이 글을 새긴 무릉반석이 나온다. 그곳에 앉아 짧은 여행을 정리하며 선경에 젖는 느낌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조선시대 문인이자 서예가인 양사언이 새겨놓은 글에서 답을 찾는다.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 여기는 신선이 노닐던 세상의 별천지라, 물과 돌이 부둥켜 잉태한 대자연에서 잠시 세속의 탐욕을 버리니, 수행길 열리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