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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길 위에서] 우리들의 소박한 단양 여행기 한 걸음 한 걸음에 쌓이는 행복
[길 위에서] 우리들의 소박한 단양 여행기 한 걸음 한 걸음에 쌓이는 행복
  • 최지영 기자
  • 승인 2007.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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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6월. 사진 / 최지영 기자
보행자 도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길. 2007년 6월. 사진 / 최지영 기자

[여행스케치=단양] 지난 2월부터 나는 지인들 세 명과 함께 걷기여행을 시작했다. 거창하게 국토종단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지만 이제 막 시작한 초보자인데다, 모두 직장에 매인 몸이라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그저 걷고 싶은 곳을 한 달에 한 번 걸어서 여행하는 것이다.

벌써 세 번째가 되었다. 우리(모두 네 명)는 이번 여행지로 낙찰된 단양을 향해 길을 나섰다. 단양 팔경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그냥 단양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몇 마디 전해들은 게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이번에 이사한 집 앞으로 강이 흐르고 푸르른 산이 보이고, 손님방은 한쪽 면이 전체 통유리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꽤 낭만적이지 않은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냉큼 다음 번 여행지는 단양이 되었고, 코스는 단양터미널에서부터 그녀의 집 앞까지 걷는 것으로 정해졌다. 우리 멤버들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하고, 현실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여행엔 큰 목적이나 깨달음 같은 건 없다.  단지 매 순간을 즐기려는 소박한 욕구뿐. 

10시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자마자 다들 꿈나라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세 시간 만에 단양터미널에 도착했다. 바로 걷다가는 쓰러질 것 같아 일단 밥부터 먹기로 하고, 터미널 앞 순두부집에 들어갔다. 여행지에서 맛있는 밥을 먹는 것만큼 행복한 게 또 있을까. 모두 기분 좋게 밥 한 그릇씩 해치웠다.

2007년 6월. 사진 / 최지영 기자
환상적인 단양의 아침 풍경. 2007년 6월. 사진 / 최지영 기자

이제 시작이다. 터미널에서부터 목적지까지 약 10km를 걷는 코스(첫 여행인 부여에서는 20km를 걷고 다들 죽을 뻔했다). 무작정 걸어서 그녀의 집 앞까지 가겠다고 했지만, 그 길이 어떤지는 아무도 아는 바가 없다. 단양터미널에서 나와, 앞에 있는 고수대교를 건넌 다음 좌회전하여 드라마 <연개소문> 촬영지를 따라 무조건 직진하면 된다는 얘길 들었는데, 고수대교를 건너며 좌회전하는 길을 보니 산길을 올라가는 꼬불꼬불 오르막길이다.  

날도 더운데 이거 너무 대책 없이 나선 게 아닌지 살짝 겁이 났다. 어쨌든 무식하고 단순한 우리는 일단 걷기 시작했다. 먼젓번 여행지에서처럼 이번 코스도 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도로 환경 때문에 긴장하며 조심조심 한 걸음씩 나아갔다. 걸을 때는 차와 마주보며 걸어야 한다는 것쯤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마주보며 걷는 쪽 길은 한 사람도 못 다니게 되어 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한 줄로 서서 50cm 정도의 갓길에서 차와 같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승용차들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공사차량 같은 대형트럭이나 대형버스가 지나갈 때면 커다란 소리에 가슴이 한번 오그라들고, 그들이 지나가며 남긴 바람 때문에 한 번 더 간이 콩알만해진다. 

에이, 이놈의 도로. 여행할 때마다 항상 갖게 되는 불만이다. 걷기여행이 아니더라도 승용차로 작은 시골마을을 지날 때면, 차만 다니는 길이 있을 뿐, 주민들이 다닐 수 있는 인도는 전혀 마련해놓지 않아 위험천만한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2007년 6월. 사진 / 최지영 기자
푸른 녹음이 어우러진 단양의 환상적 경치. 2007년 6월. 사진 / 최지영 기자

길이란 사람이 다니는 곳이고, 그곳 거주자들이 왕래하는 곳인데 어쩜 그렇게 무식하게 도로를 내놨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산간도로라도, 도로 양옆으로 자전거도로를 내어 사람이나 자전거가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한 걸 보고 얼마나 감탄했는지. 

10분 정도 걷다 보니 차가 쌩쌩 달리는 길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긴장도 좀 풀어졌다. 지난 여행에선 맨 마지막으로 뒤처져서 걷던 L언니는 시작부터 선두를 지키며 씩씩하게 잘 걷는다. 언니는 일행들 세명과는 열 살 정도 나이 차이가 난다. 그래서인지 걷기 중간 이후부터는 꼴찌로 걷게 되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힘들어했다. 우리가 웃으면서 조금만 더 힘내라고 하니 “딱 열 걸음만 가면 따라잡겠는데, 십 년 차이가 그 열 걸음을 못 따라잡네요” 하셨다. 언니의 대답이 재미있으면서도 괜스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랬던 언니가 시작시점이긴 하지만, 전과는 다른 걸음걸이로 걷고 있다. 괜히 뿌듯해지고, 웃음이 났다.  

L언니를 뒤따라 내가 두 번째로 걸으며 앞으로 뭘 해먹고 살아야 할지, 내가 뭘 원하는지, 풀리지 않는 고민과 이 길은 언제까지 오르막일지, 얼마나 멀까 등 두서 없는 생각을 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시원하지만, 기온이 조금 높아 슬며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위에 걸친 재킷을 벗어 허리춤에 묶었더니, 한결 시원하고 상쾌하다. 

이제까지 오르막길의 꼭짓점을 찍고 내리막길로 들어서니 반대편 차선 너머 보이는 시원한 강물이 눈에 들어온다. 충주호의 물줄기로, 꽤 넓게 초록의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새순들이 앞다투어 나오더니 어느새 연두색 나뭇잎들로 채워지고 있는 산에는 중간중간 연한 분홍의 꽃나무들까지 피어 수채화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아니 수채화보다 더 예쁜 자연의 모습이다. 같은 초록이라도, 얼마나 색이 다양한지 감탄스럽기만 하다. 저렇게 예쁘고, 부드러운 색들을 모두 기억할 수 있다면, 그리고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07년 6월. 사진 / 최지영 기자
일행을 미소짓게 만든 깜찍한 캠페인. 2007년 6월. 사진 / 최지영 기자

내리막길도 다 내려오니 이제 평지로 쭉 이어져 있다. 이 길은 플라타너스 나무 길이다. 아직 잎이 무성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양쪽 길에 늘어선 플라타너스가 마음을 들뜨게 한다. 

정말 따스한 햇살과, 푸르른 나무를 계속 바라보면 우울증 같은 건 들어올 틈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기미, 주근깨 생각하지 말고 일정 시간은 해바라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우울증 생겨 생이 불행한 것 보다는 기미, 주근깨가 더 낫지 않을까. 

1시간 40분가량을 쉴 새 없이 걸었더니 힘도 들고, 땀도 나고 해서 잠시 쉬기로 했다. 꽤 넓은 공간에, 강 옆으로 공원을 만들어놓았는데, 앉아서 쉴 벤치도 많고 무지 큰 나무도 반짝반짝 햇살을 받으며 서있고, 알록달록 꽃나무도 빼곡하고, 시원한 바람도 살살 불어오니 천국이 따로 없다. 

나와 함께한 멤버들은 모두 벤치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물도 마시고, 누워서 잠시 숨을 고르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주고, 단체사진도 찍으면서 여유를 부렸다. 

2007년 6월. 사진 / 최지영 기자
잠깐의 달콤한 휴식. 2007년 6월. 사진 / 최지영 기자

그렇게 잠시 행복한 쉼을 가진 후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한 줄로 서서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있는 내 앞의 세 사람을 보니, 함께하는 걷기여행은 ‘따로 또 같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자기만의 여행을 하는 것이다. 무슨 생각들을 하며 걷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겠다. 시속 4km의 속도로 여행을 하며 두 눈에 들어오는 자연에 감동하고(자동차로 달릴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보며 느낄 것이다. 쉴 새 없이 차들이 쌩쌩 달리지만, 차도 옆에는 콩알만한 들꽃이 피어 있고, 흰색, 노란색, 보라색, 분홍색의 꽃들이 바람에 살랑살랑거린다. 마른 나무에서 연초록의 부드러운 잎들은 눈부시다. 

20분 정도 걸었더니 예쁜 부부가 우리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며 마중 나와 있었다. 그들의 삽살개 몽실이도 짖지 않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오랜만에 보는 부부의 아이도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맞는다.

우리의 세 번째 걷기는 여기에서 끝이 나고, 부부의 ‘즐거운 우리집’에서 퍼펙트한 여정이 새롭게 진행되었다. 
벌써부터 행복한 다음 여행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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