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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앨리스의 아프리카 방랑기] 무지개 여신이 사는 곳! 잠비아 빅토리아폭포
[앨리스의 아프리카 방랑기] 무지개 여신이 사는 곳! 잠비아 빅토리아폭포
  • 성은경 기자
  • 승인 2007.07.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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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7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는 빅토리아 폭포. 2007년 7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여행스케치=잠비아] 일주일의 여정 중 닷새를 기차와 버스 안에서 보내고 겨우 이틀 빅토리아폭포와 대면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여행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되어 집에 다시 돌아오는 순간 끝이 난다는 것을….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만나는 사람이, 풍경이, 세상이 나의 방랑기를 채워주는 주 요소임을….

영국에서 방황하던 시절, 영화 <노팅힐>의 배경이 된 노팅힐 거리 마켓에서 가죽으로 된 노트를 하나 구입했다. 그리고 첫 장에 어딘가에서 본 이 문구를 적어 넣었다.  

‘완벽한 지도를 가져야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후부터 나의 계획성 없는 여행이 시작되었고 이 노트는 내 여행의 소중한 동반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아프리카에 왔다.

얼떨결에 국경을 넘다
탄자니아에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던 때 자원봉사를 하던 필라델피아 초등학교가 두 번째 방학을 맞이했다. 이곳은 일 년이 총 3학기로 구성되며 4월, 8월, 12월이 방학이다. 방학이고 하니 주변부터 둘러보자 마음먹던 중 다르에스살람에 세계 3대 폭포인 빅토리아폭포로 갈 수 있는 기차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티켓 값도 우리 돈으로 5만 원 정도. ‘앗싸! 여기다’라며 더 재보지도 않고 빅토리아폭포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함께 한국에서 자원봉사를 나온 J와 의기투합!  

2007년 7월. 사진 / 성은경 기자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과일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2007년 7월. 사진 / 성은경 기자

하지만 예매를 하고 보니 기차에서 내려 버스로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까지, 거기서 다시 버스로 리빙스턴까지 가야 한다고 한다. 오 마이 갓! 기차만도 2박 3일인데 그럼 도대체 우리는 언제 빅토리아폭포에 닿는단 말인가? 그래도 어쩌겠는가?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우린 가야 했다. 딱히 이 긴 방학 동안 할 것도 없지 않은가?

출발 당일, 짐은 되도록 간단히 꾸렸다. 가면서 먹을 과자와 과일을 좀 샀다. 수입품을 파는 대형 마트에서 샀더니 역시나 비싸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물가가 싸다는 생각은 순전히 잘못된 편견이다. 농산물은 저렴하지만 공산품, 휘발유, 생수 등은 한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미 역사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사실 기차 타는 것과 한 일주일 정도 여행하겠다는 것 외에 무계획이었던 우리들은 설렘 한편으로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애써 웃으며 2박 3일간 재미있게 기차 여행을 하자며 마음을 다잡는다.

4인용 침대칸은 생각보다 넉넉했다. 조금 있으니 승무원이 비누와 휴지, 생수를 들고 왔다. 우선 서비스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아프리카에서도 1등석은 1등석이구나. 기차가 출발한다. 우리는 마치 엄청난 세계 일주를 떠나는 사람처럼 기차 밖의 낯선 이들에게 크게 손을 흔들었다.    

2007년 7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짐짝처럼 우리가 타고 갔던 아프리카 버스 달라달라. 2007년 7월. 사진 / 성은경 기자

회색빛 구름 아래 끝없는 초원
우리는 지금 아프리카 초원을 통과하고 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나무들, 풀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온 것처럼 이 땅을 지키고 서 있다. 초원 사이로 종종 길이 보이기도 하고 짓다 만 집 같은 흔적들이 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들판 어딘가 남모르는 곳에 살고 있는 것일까? 

여행을 다니다 보면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잊게 된다. 지구가 각각의 국가들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구(球)임을 알게 된다. 어느새 내 마음속, 머릿속에서 국경은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한다. 

바깥구경을 하다 보니 기차 안도 궁금해졌다. 특히 화장실! 역시나 화장실 변기에는 덮개가 없어 편하게 앉을 수 없었다. 아프리카에 온 후 그래왔듯 변기위에 올라서서 쭈그려 앉거나 투명의자 버전을 선택해야 한다.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가능할까 걱정이다. 

밤새 너무 추워서 여러 번 잠에서 깼다. 지저분해 보여서 절대 덥지 않겠다고 밀쳐두었던 담요를 몸에 꽁꽁 두르고도 덜덜 떨어야 했다. 남쪽으로 내려오니 푸른빛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나무의 수종도 달라졌다. 적도 반대편 이곳은 지금 겨울이다. 물론 한국의 겨울과는 차이가 있지만…. 점퍼 하나 챙겨 오지 않은 어리석음을 탓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1등칸이라는 이유로 승무원들이 자주 들어와서 청소를 해주고 나갔다. 스탬프를 찍어주러 온 것을 보니 탄자니아 국경을 지나고 있나보다. 여권에 또 하나의 도장이 채워졌다. 지루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2007년 7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무지개 여신이 살고 있는 빅토리아 폭포. 2007년 7월. 사진 / 성은경 기자

기차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해는 지는 모양 그대로 위치만 바꾸어 다시 지평선에 뜨고 있다. 시뻘건 덩어리가 하나 쑥 올라오더니 어느새 공기 중에 흩어져 자취를 감추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날씨는 점점 더 추워졌다. 흐르는 콧물에 검은 흙먼지가 섞여 있다. 

드디어 카피리 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 순간까지 리빙스턴으로 이어질 힘든 버스 여행을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버스정류장으로 향한 우리는 갑자기 맥이 빠졌다. 큰 버스를 기대했지만 우리 앞에는 ‘달라달라(8인승 승합차를 개조해 만든 버스)’가 서 있었다. 그 좁은 차 안에 사람과 짐이 한데 엉켜 숨쉬기도 불편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졸음이 쏟아진다. 한참 졸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져 눈을 뜨니 앞에 앉은 여자 아기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엄마 품에 파묻더니 다시 슬그머니 쳐다본다. 이곳에서도 동양 여자는 참 낯선 존재다. 루사카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우리는 자정이 넘어서 리빙스턴에 도착하였다.

2007년 7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무시무시한 악어.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2007년 7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저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봐
다음 날 숙소에서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샤워였다. 머리에서 엄청난 구정물이 나와 샴푸를 세 번이나 해야 했다. 마치 이 구정물이 이곳에 오는 3일간의 여정 속에서 마주한 낭만적인 아프리카 모습의 이면처럼 느껴졌다. 

리빙스턴 관광안내소에서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몇 가지 추천해준다. 리빙스턴박물관, 헬기 타고 폭포 보기, 번지점프, 래프팅, 악어파크 등등. 우선 우리의 목표는 빅토리아폭포였기에 낮에는 헬기를 타고 오후에 여유롭게 폭포 주변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드디어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생애 첫 헬리콥터 비행이라 가슴이 두근거린다. 조종사 아저씨가 저 멀리 연기처럼 물보라가 치솟는 곳이 빅토리아폭포라며 비행을 시작하겠다는 멘트를 날린다. 우리의 환호성 속에 헬리콥터는 상공으로 올라갔다. 위에서 내려다본 빅토리아폭포의 모습은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쩍하고 갈라진 곳으로 강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폭포 위로 솟구치는 물보라와 무지개가 춤을 춘다. “정말 크구나! 비행시간 15분에 90달러, 아깝지 않다”고 되뇌이며 계속 셔터를 눌러댔다. 

상공에서 봤으니 이제는 지상에서 봐야 한다며 우리는 서둘러 빅토리아폭포로 향했다. 1855년 영국의 탐험가 리빙스턴에 의해 발견돼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폭포라고 불리에 된 이곳은 세계 3대 폭포다. 과연, 입구에 들어서 폭포의 한쪽 귀퉁이가 보이자 우리는  “와!” 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까 하늘에서 본 게 진짜 저거야? 맞아?”라는 J의 물음에 그냥 그녀를 이끌어 폭포 앞에 세우고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폭포 맞은편에 관광객들을 위해 잘 닦아놓은 길을 따라 걸으며 폭 1500m의 잠베지 강물이 약 150m를 하강하여 좁은 협곡으로 떨어지는 진풍경을 눈에 담는다. 엄청난 굉음, 끊임없이 튀는 물방울, 협곡으로 곤두박질치는 무지개 사이에서 거대한 자연을 마주한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무지개가 생기는 걸 보니 이곳에 무지개 여신이 살고 있음이 분명했다. 한 바퀴를 돌고 아쉬워서 다른 길로 또 가보고 그렇게 오후를 다 보내고나서야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숙소에서 밥을 먹으며 이곳의 스태프인 캐런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가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번지점프를 해봐. 90달러라 좀 비싸긴 하지만 평생에 그렇게 높은 번지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을 거야.” 갑자기 귀가 쫑긋해진 우리는 눈빛으로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모험을 하고 싶다. 하지만 무섭다!  

2007년 7월. 사진 / 성은경 기자
하늘에서 바라본 폭포. 2007년 7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다음 날 번지점프에 대한 합의를 보지 못한 우리는 먼저 악어공원에 가기로 했다. 입장료 7달러, 가이드를 따라 정해진 코스를 걸으며 악어를 구경했다. 80살 된 것부터 시작해서 수백 마리의 다양한 악어가 살고 있었다. 대부분 날씨가 더워서인지 늘어져 잠을 자고 있다. 가이드가 막대로 건들이자 신경질을 내며 입을 무섭게 벌린다. ‘헉! 저놈이 사람을 물면 정말 한 번에 죽겠구나.’ 악어 구경 뒤엔 뱀 구경이다. 해골 스티커가 붙어 있는 곳엔 맹독을 가지고 있어 물렸을 시 해독 불가능이라고 적혀 있다. 독이 너무 순식간에 퍼지기 때문이다. 

악어공원을 빠져나와 번지점프가 있는 빅토리아폭포로 향했다. 번지점프는 잠비아와 짐바브웨를 잇는 철도 교량 위에 있었다. 여러 번을 망설인 끝에 결국 신청서를 작성하고 점프대로 갔다. 높이 111m, 아래를 내려다보니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좁은 협곡으로 흐르고 있다.

“머리가 물속에 빠지기도 해?”
“뭐, 강수량이 많은 시기에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 왜 물에 들어가고 싶어? ”
괜한 질문을 했다. “그냥 표준이 좋아”라고 웃으며 대답한 뒤 점프대 위에 섰다. 스태프들이 카운트를 했다. 그 소리에 괜히 더 공포감이 커진다.

“나, 기도 한 번 하고. 내가 숫자 세고 뛸게.” 
짧은 기도를 하고 혼자 숫자를 세고 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드디어 뛰어내렸다. 팔을 활짝 펴니 정말 계곡을 향해 나는 것 같았다. 살아있다. 갑자기 신이 났다. 공포심을 씻은 듯 잊고 다음에는 더 높은 번지를 하겠다며 으스댔다.

2007년 7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아프리카 초원 위로 지는 저녁 노을. 2007년 7월. 사진 / 성은경 기자

탄자니아로 돌아가는 40여 시간의 버스 여행
큰 버스이니 5시간이면 루사카까지 가겠지 하는 우리의 기대를 깨고 버스는 고장이 났다며 3시간 후에 출발을 했다. 게다가 루사카로 가는 길에 소를 한 마리 치어 죽게 했고 경찰서까지 가게 됐다. 결국 리빙스턴에서 루사카까지 기다리는 시간 모두 해서 10시간이 걸렸다. 

탄자니아로 가는 기차는 화요일과 금요일밖에 없어 우리는 루사카에서 다르에스살람까지 가는 스칸디나비아 고속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서둘러 정류장에 가서 얼마나 걸리냐고 하자 2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럼 아마 30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2007년 7월. 사진 / 성은경 기자
군집해 있는 바오밥나무. 2007년 7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버스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걸어서 국경을 넘어 새로운 탄자니아 비자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다른 세계와 쉽게 접하는 세상, 문득 내 나라 한국은 걸어서 넘을 수 있는 국경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탄자니아로 넘어오니 마음이 편해졌다. 한 달밖에 안 지냈지만 그래도 내 물건들이 있는, 내가 편히 발 뻗고 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창 너머로 바오밥나무가 군집해서 자라는 마을이 보인다. 요정들이 금방 튀어 나올 것 같다.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그 요정들을 따라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스르르 잠이 든다. 아직도 10시간 이상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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