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봄愛 기도하고] 김제 아름다운 순례길 7코스 느리게 바르게 기쁘게, 이 봄을 기도하라
[봄愛 기도하고] 김제 아름다운 순례길 7코스 느리게 바르게 기쁘게, 이 봄을 기도하라
  • 전설 기자
  • 승인 2014.03.0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김제] 아름다운 순례길에서는 ‘나의 신’과 ‘너의 신’을 편 가름하지 않아도 된다. 한길에 절, 교회, 성당 등 여섯 종교의 성지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종교가 무엇이건, 있건 없건 상관없이 누구든 마음껏 기도할 수 있나니. 꽃피는 봄, 순례길에 서면 신의 가호가 함께하리라.

꽝꽝 얼어붙었던 땅이 그새 폭신폭신. 뭉근한 바람에 몸과 마음이 말랑말랑. 새순 돋고 꽃봉오리 맺는 봄이다. 온통 잘고 파릇한 것으로 가득한 이 계절에는 봄볕 비치는 길을 오래 걷고 싶다. 타박타박 걷는 길 위에 잠시 머물며 기도할 곳이 있다면 바랄 나위 없을 터. 


전북의 ‘아름다운 순례길’은 봄의 순례자를 위한 가장 완벽한 여행지다. 전주~완주~김제~익산 네 고장의 종교 성지를 잇는 9개 코스로 장장 240km 걷기길이 이어진다. 짧은 코스는 14km 남짓으로 4시간, 긴 코스는 27.5km로 8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2014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꽃살문이 어여쁜 금산사 대적광전과 나한전. 2014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아홉 갈래 길 중 금산사에서 수류성당을 잇는 7코스는 완주까지 5시간이 걸리는 비교적 짧은 코스. 하지만 가장 많은 종교 성지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금산사, 금산교회, 수류성당을 비롯해 증산교, 대순진리교 등 신흥 종교가 한길 위에 징검다리처럼 자리 잡았다. 어느 한쪽에 기울어지지 않아 종교가 다른 여섯 순례자가 함께 걸으며 같이 기도할 수 있는 화합의 길이다. 물론 종교가 있는 신앙인만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는 무교인데요. 작년 여름 전주에 갔을 때 한옥마을에서 치명자산성지성당까지 순례길을 걸었어요. 날이 정말 더웠는데 중간에 성당에 들어가서 땀도 식히고 수녀님께 성호 긋는 것도 배웠지요. 십자가를 그리면서 기도하는 거 꼭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7코스의 출발지인 금산사 미륵전에서 합장을 하고 있는 김정은 씨를 만났다. 무교인데도 합장 자세가 제법이라 농담을 건네니 “스님들 하는 거 보고 배운 거예요” 하고 배시시 웃는다. 그의 말이 정답이리라. 종교가 있건 없건 이 길을 걷는 데는 아무 문제 없다. 성지에 들릴 때마다 그에 맞는 인사법만 익혀도 충분하다. 김 씨를 흉내 내 미륵불 본존 앞에 무릎 꿇고 앉아 합장을 해본다. 키 11.82의 거대한 미륵불 본존을 보고 있노라면 거인 앞에 선 듯 목이 움츠러든다. 긴장이 되면서도 가만히 부처의 미소를 바라보고 있자니 겨우내 덤불처럼 뒤엉킨 속이 소리 없이 풀어진다.

미륵전을 뒤로하고 대장전, 나한전, 대적광전을 둘러보는 동안은 화사한 때깔에 한 번 더 눈이 열린다. 문살마다 모란, 연꽃, 무궁화…. 때 이른 꽃잔치가 한창이다. 본격적으로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춘사월이면 금산사 안팎이 온통 꽃밭이 되겠구나. 이미 귀한 보물을 탐한 기분인데, 이제 막 출발선에 섰을 뿐이다. 금산사 앞 전통찻집 산중다원 앞에 7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아름다운 순례길의 마스코트 ‘느바기’ 달팽이가 마음 급한 순례자를 달랜다. 달팽이처럼 걸음걸음 ‘느리고 바르고 기쁘게’ 걸어보라고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2014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낮은 돌담 안쪽의 종탑, 십자가, 처마의 어울림이 오묘하다. 2014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목사가 된 머슴, 머슴을 섬긴 주인
금산사에서 곧게 뻗은 길로 직진하면 그곳에 ‘ㄱ’자형 한옥으로 세워진 금산교회가 있다. 한가로운 농촌 풍경을 눈에 담으며 얼마나 걸었을까. 부드러운 곡선의 처마와 낮은 돌담 위 비죽 솟아오른 종탑이 눈에 들어온다. 한 마당에 담을 수 없을 것 같은 처마와 나무 종탑, 십자가의 조화가 절묘하다. 외관도 외관이지만 사실 금산교회가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으니. 한편의 동화 같은 이자익 목사와 조덕삼 장로의 미담이다.

2014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ㄱ’ 자형 한옥의 사랑채를 예배당으로 꾸민금산교회. 2014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금산교회 역사는 사랑채에서 시작됐지요. 1905년 김제 토박이 조덕삼 장로가 자기 집 일을 돕던 마부, 쉽게 말하자면 머슴과 함께 사랑채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금산교회의 첫 시작입니다. 사랑채는 ‘ㄱ’자형인데 정면에서 남쪽에는 남자신도가, ‘ㄱ자’ 너머 동쪽에는 여자신도가 앉았습니다. 남녀칠세부동석의 관습이 남아있을 무렵이라 예배를 드릴 때도 여자쪽에 휘장을 쳐 남녀가 한 공간에 있는 것을 피했지요. 2년 뒤 신도가 200명으로 늘어나 장로를 뽑는 투표를 했는데 머슴이었던 자가 장로로 뽑혔습니다. 그분이 바로 이자익 목사님입니다.”

주인을 앞질러 장로로 뽑힌 머슴과, 그런 머슴을 장로로 섬겨야 했던 주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안 보이는 곳에서 심하게 야단맞지 않았나 했는데, 장로 투표 그 후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주인은 예배시간마다 장로가 된 머슴을 깍듯이 섬기고, 머슴은 예배를 마치면 다시 제모습으로 돌아가 마당을 쓸었단다. 야단은커녕 훗날 이자익 목사가 신학학교에 들어가 5년간 공부를 할 때 살뜰하게 보살핀 이도 조덕삼 장로였다고 하니 이야기의 맺음 역시 따뜻하다. 언제고 좋으니 금산교회에 가거들랑 이인수 목사께 두 사람의 이야기를 청해보자. 미처 다 풀어놓지 못한 일화가 줄줄이 쏟아진다.

2014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동양에서 가장 많은신부를 배출한 천주교성지 수류성당. 2014년 4월 사진 / 세계순례대
회조직위원회

이 길 위에선 모두 ‘느바기’가 되나니
금산초등학교를 지나 팥정이사거리에 선다. 좌회전을 하면 수류성당, 그대로 직진하면 순례길 위에 숨겨진 명소를 더 둘러볼 수 있다. 여정을 서둘러 끝낼 필요가 있을까, 느긋한 마음으로 직진한다. 이즈음부터는 길을 안내하는 느바기 달팽이 표지판이 드문드문 보이고 인도와 도로의 구분이 모호한 구간을 종종 만나니 조바심 내지 말고 느리게 이동하자.

2014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금평저수지 둘레를 도는 수변산책로를 걷다. 2014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금평저수지 앞 삼거리에서 직진해 으리으리한 대순진리회 성지를 둘러보고 금평저수지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동동 동심원으로 향한다. 문인석, 수석, 기암괴석으로 가득한 비밀의 화원같을 둘러본 뒤에는 동곡마을까지 걸음을 이어도 좋다. 그 길 끝에 증산교의 창시자 강증산(강일순)이 방 한 칸을 빌려 사람들을 치료했다던 증산교 성지 동곡약방이 있다. 동곡약방과 함께 마을을 휘 둘러본 뒤에는 다시 대순진리회 성지로 돌아가야하는데, 왔던 길을 되짚는 것보다는 마을과 연결된 금평저수지 수변산책로를 걸어보는 것이 좋겠다. 찰싹찰싹 파도소리를 들으며 물위의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저수지 둘레로 난 곧은 길을 걷노라면 강증산과 부인의 유해가 안치된 증산법종교본원이 나타난다. 근대문화재로 지정된 김제 증산법종교 본부 영대 및 삼청전에는 산사처럼 조용한 멋이 흐른다. 종교에 뜻이 없더라도 1950년대 지어진 목조건축물의 향연을 즐겨볼만 하다.

증산법종교를 지나면 저수지 댐을 넘어 물을 건너고, 닭이 콕콕 마당을 쪼는 시골풍경을 가로질러 원평마을에 들어선다. 인구 500명 남짓의 작은 마을에는 원불교 원평교당, 천주교 원평성당, 원평교회, 조계종 학교법인 금산고등학교가 마주보고 있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목격한 천주교, 기독교, 불교, 원불교의 공존은 시골의 일상처럼 한가롭다.

2014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마음에 여유를 갖자.깊은 지혜를 닦자. 숨은공덕을 쌓자”라는 원불교 법문. 2014년 4월 사진 / 전설 기자

원불교 원평교당에서 최종 목적지인 수류성당까지는 7㎞ 남짓. 온 만큼 다시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발바닥이 욱신거리고 무릎이 후들거린다. 하지만 별 수 있나. 걷고 또 걸을 뿐. 하천 옆 제방을 따라 소실점이 한 곳으로 모이는 직선의 길, 심심함을 덜어줄 구경거리도 들렀다갈 휴식처도 없으니 자연스레 무념무상에 빠진다. 동네 슈퍼, 시골 문방구, 마을 초입의 느티나무 같이 소소한 풍경속을 걷는 동안 머릿속은 더없이 맑고 고요하다. 타박타박, 오직 흙길에 닿는 내 발소리만이 들리는 길. 순례길 위에선 사람은 모두 느바기가 된다. 걸음걸음 느리고 바르고 기쁘도다. 신들의 가호가 함께하기 때문이려나.

INFO. 아름다운 순례길 7코스
‘아름다운 순례길’에 도전하기 전 반드시 스마트폰 어플스토어를 통해 ‘아름다운 순례길’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자. 주요 코스와 숙소, 먹을거리, 공중화장실 정보가 제공되며,  GPS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걸을 수 있다.
구간 금산사~금산교회~동곡약방~증산법종교~원평교당~원평성당~원평교회~원평장터~주평교회~수류성당
거리 14.5km
소요시간 4~5시간

Tip. 김제 모악산 축제
기간
4월 18~20일
입장료 금산사 입장시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지만 축제기간에는 무료 개방한다.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