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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봄愛 사랑] 아찔한 사량의 유혹 통영 사량도 지리산~옥녀봉 종주 산행
[봄愛 사랑] 아찔한 사량의 유혹 통영 사량도 지리산~옥녀봉 종주 산행
  • 주성희 기자
  • 승인 2014.03.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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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4월 사진 / 주성희 기자
2014년 4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여행스케치=통영] 깎아지른 암릉, 호젓한 숲, 툭 터진 바다, 아슬아슬한 출렁다리. 한려해상국립공원 중심에 솟아오른 섬 산이 펼쳐 보이는 풍광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변덕스럽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봄날처럼 변화무쌍한 매력으로 제 등에 오른 이의 가슴을 들었다 놨다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드는 섬. 사량도다. 

 
통영에서 뱃길로 20여km 떨어져 있는 사량도는 윗섬(상도)과 아랫섬(하도), 수우도 등 3개의 유인도와 8개의 무인도로 이뤄져 있다. 주섬인 윗섬과 아랫섬은 1.5km 거리를 두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데, 두 섬 사이에 흐르는 물길이 가늘고 긴 뱀처럼 구불구불 흐른다 하여 ‘사량(蛇梁)’이라 부르던 것에서 섬 이름이 유래했다. 섬 자체가 뱀의 형상이고, 뱀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사량도 가는 배편은 통영 가오치, 사천 삼천포, 고성 용암포 세 군데나 있다. 그 만큼 찾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한 해 평균 20여만 명, 특히 주말에는 5000명이 넘는 뭍사람이 섬에 몰린단다. 입도 목적은 대개 등산. 바로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린 지리산(398m)이 윗섬에 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사진 / 주성희 기자
금평항진촌마을전경. 2014년 4월 사진 / 주성희 기자

공룡 등뼈를 닮은 옹골찬 사량도 등줄기
윗섬은 지리산과 불모산(400m), 가마봉(303m), 옥녀봉(261m) 등 선 굵은 암봉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바다 위로 일으켜 세운 섬이다. 고작 200~400m 높이에 뭐 그리 굵직한 바윗길이 있으랴 싶지만,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나오는 소리다. 제일 높은 봉우리가 400m에 불과하지만 섬의 등줄기를 이룬 이들 네 봉우리를 잇는 능선은 설악산 용아장성의 축소판이라 칭해도 손색없을 만큼 험준한 암릉을 품고 있다. 칼날 같은 바위 벼랑길에 모골이 송연하고 입안이 바싹 타들어갈 때쯤 푹신한 숲길이 오아시스처럼 나타나 산행객의 숨통을 조였다 풀었다 밀고 당기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바로 이 능수능란한 밀당 기술에 기꺼이 농락당하길 자처하는 산행객이 끊이지 않는 것. 

2014년 4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산행 들머리 돈지분교 뒤로 지리산의 우람한 풍모가 보인다. 2014년 4월 사진 / 주성희 기자

평일이라 그런지 가오치를 출발한 카페리 사량호에 탄 여행객이 별로 없다. 서른 명 남짓 외지인을 태운 사량호가 뱃길을 달린지 35분쯤, 윗섬과 아랫섬 사이 세워진 콘크리트 기둥 앞에 배가 잠시 멈춘다. 내년 봄 두 섬을 하나로 이을 ‘사량도 연도교’의 기둥으로, 건설 현장에 레미콘 차량을 내려주기 위해서다. 다리가 완공되면 윗섬과 아랫섬을 오가며 구석구석 사량도 탐방에 나설 여행객이 눈에 훤하다. 

사량호는 윗섬 금평항 진촌마을 입구에 먼저 들러 대부분의 관광객을 내려주고 아랫섬 덕동에서 완전히 배를 비운다. 산행 들머리는 진촌과 옥동, 돈지, 내지 등 윗섬 곳곳에 퍼져 있는데, 섬의 동쪽 돈지에서 출발해 지리산, 불모산, 가마봉, 옥녀봉을 거쳐 서쪽 진촌으로 내려오는 종주 코스가 가장 인기 있다. 산행을 마치고 육지로 나가는 배를 이용하게 편하기 때문이다. 총 거리는 약 8㎞. 험준한 산세와 빼어난 조망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으니 5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여행객이 집중되는 봄철 주말에는 산행 시간을 넉넉히 잡아 미리 나갈 배를 예매해놓고 움직이는 편이 안전하다.    

2014년 4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사량도 종주 산행은 아찔한 암릉과 기묘한 암봉 위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2014년 4월 사진 / 주성희 기자

금평항에 도착하면 터미널 옆에 섬을 일주하는 마을버스가 기다리고 서 있다. 백발의 운전 기사님은 사량호에서 내린 등산객이 모두 탔는지 확인한 후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매끄럽게 돌아 돈지마을에 세워주신다. 금평항에서 15분 정도 걸린다. 버스에서 내리자 정류장에 나와 앉아 있던 돈지마을 어르신들이 손을 들어 정류장 뒤편을 가리키신다. 손길을 따라 마을 골목 안으로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리산의 우람한 풍모를 병풍처럼 두른 사량초등학교 돈지분교가 나온다. 산길은 분교 왼쪽 길이다. 작은 개울을 건너 산길에 접어든다. 누군가 ‘무사등반’을 기원하며 공들여 쌓은 돌탑이 가파른 오르막의 동무가 되어 준다. 

2014년 4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옥녀봉으로 가는 길목, 낙석 주의 구간. 2014년 4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오금이 저릿저릿 옥녀봉 출렁다리
돈지분교에서 출발해 30분이면 시야가 탁 트인 주능선 안부에 올라선다. 사량도가 품은 소박한 포구마을 돈지와 수우도를 비롯한 주변 섬을 짚어보기 좋은 조망 포인트인데 중국발 미세먼지 탓에 선명하지 않아 아쉽다. 안부 동쪽 지리산 방향으로 날을 세운 암릉이 버티고 서 있다. 하지만 이건 지리산 이후 도사리고 있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위 벼랑길의 맛보기다. 사량도 암릉의 백미는 가마봉에서 옥녀봉 구간으로 공룡의 등뼈를 닮은 바윗길 양옆으로 아찔하게 펼쳐진 한려해상을 내려다보는 재미가 특별하다. 자칫 넘어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항시 발디딤을 주의해야 한다. 

2014년 4월 사진 / 주성희 기자
불모산에서 옥녀봉으로 가는 길 왼쪽으로 대항포구가 발아래 펼쳐진다. 2014년 4월 사진 / 주성희 기자

능선 안부에서 지리산 정상까지는 1시간 거리. 기암과 다도해를 구경하며 오르다보면 금세 닿는다. 맑은 날이면 진짜 지리산을 볼 수 있다 하여 본래 ‘지리망산’이라 불렀는데 지리산만큼이나 유명해진 지금은 아예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지리산 정상을 내려오면 사량도에서 가장 높은 암봉 불모산을 거쳐 가마봉, 옥녀봉까지 가파른 칼날 능선이 이어진다. 본격적인 암릉이 시작되기 전 숲 안부 사거리에 쉼터를 마련해놓고 음료수를 파는 아저씨가 북 장단을 올려 사기를 북돋운다. 한 사발 들이키면 갈증이 싹 풀리는 막걸리처럼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쏙 들어가는 시원한 소리다.

2014년 4월 사진 / 주성희 기자
가마봉~옥녀봉 구간을 공룡의 등뼈 같은 바윗길이 이어진다. 2014년 4월 사진 / 주성희 기자

불모산의 정상은 달바위라 불리는 거대한 암봉이다. 이곳에서부터 옥녀봉까지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천하절경도 안전도 저만치 날아간다. 왼쪽 산자락 밑을 깊숙이 파고든 대항포구와 봄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금평항이 가까워질수록 깎아지른 암벽과 계단 그리고 산행의 대미를 장식할 출렁다리 등 등골이 오싹해지는 코스가 차례로 기다리고 있다. 

2014년 4월 사진 / 주성희 기자
가마봉을 내려서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가파른 철제 계단이 나온다. 산행 초보자는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2014년 4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심신허약자와 노약자, 어린이, 여성의 우회로 이용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픈 첫 번째 위험구간은 가마봉 밑 암벽과 철제계단. 둘 다 경사도가 거의 직각에 가까울 정도로 가파르니 산행 초보자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무리하지 말고 오른쪽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이 상책이다. 

“여보, 내가 안 흔들리게 꽉 붙잡고 있을 테니까 걱정 말고 먼저 건너가세요.” 다리를 덜덜 떨며 가까스로 계단을 내려와 한숨 돌렸다 싶었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출렁다리를 건너야 한단다. 임익현 씨 부부가 18년 부부애를 과시하며 출렁다리를 구름 위를 걷듯 사뿐사뿐 빠져나간다. 지난해 향봉과 연지봉을 연결하는 39m, 22.2m 두 개의 출렁다리가 설치돼지 않았다면 밧줄에 의지해 두 개의 암봉을 오르내려야 하는 난코스다. 바람에 흔들리는 출렁다리도 털이 삐죽 서는데 직벽에 밧줄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진다. 


마지막 봉우리 옥녀봉은 자신을 겁탈하려는 아비를 피해 이곳에 오른 딸이 끝내 몸을 던졌다는 슬픈 전설이 내려온다. 예부터 섬 주민들은 옥녀봉을 경원시하여 이곳에 구조물을 세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정상에는 표지석 대신 오가는 이들이 쌓아올린 돌탑만 있다. 옥녀봉에 서면 금평항과 바다 건너 아랫섬이 발아래 펼쳐진다. 빼어난 해안 절경을 혼자 보기에 못내 아깝다. 좋은 경치를 보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사량도에서 봄의 절정에 오르려거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나누고픈 이와 동행하라.

INFO. 사량도 종주 산행
구간
돈지항-지리산-월암봉-불모산-가마봉-옥녀봉-금평항
거리 약 8km
소요 시간 5시간

Tip 사량도 가는 길
통영 가오치항, 사천 삼천포항, 고성 용암포에서 배가 뜬다. 통영이나 사천에서는 40분, 고성에서는 20분 정도 걸린다.  
가오치~금평 여객 정보
가오치 선착장에서는 7시부터 17시까지 2시간 간격으로 카페리 여객선이 출항한다. 
운항 시간 가오치발 7:00, 9:00, 11:00, 13:00, 15:00, 17:00
금평발 8:00, 10:00, 12:00, 14:00, 16:00, 18:00
도선료(편도) 어른 5000원, 어린이 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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